소설리스트

현세귀환록-197화 (197/203)

# 197

현세귀환록

197. 만남(1)

일행이 나타난 곳은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였다. 그리스의 수도인 만큼 아테네는 결계 도시에 들어갔는데, 지금 보이는 아테네의 모습은 황폐하지 그지없었다.

아테네의, 아니, 그리스의 대표 문화유산인 파르테논 신전은 이미 다 부서져서 돌무더기로 변하고 말았고, 오랜 세월을 이어온 다른 많은 아테네의 유적들도 대부분이 부서져서 무너진 상태였다.

드문드문 인적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아테네의 시민들이 완전히 사멸한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 도시에는 인간보다 마물이 더 많은 상태로, 아테네는 도시의 기능을 유지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나마 인간들이 많이 모여 있는 거주지의 인근에는 마물과는 약간 다른 마나의 흔적이 느껴졌다. 아마 유니온이 접촉했다는 견인족이 이들인 것 같았다.

“엇, 이곳이라 들었는데…….”

벤자민은 자신이 말한 좌표로 공간 이동을 했는데 아무것도 없는 폐허가 나타나자 순간적으로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미 강민과 유리엘은 대략 이곳에서 8㎞ 정도 떨어져 있는 곳에서 견인족의 흔적들을 파악한 상태였기에 벤자민을 향해 자연스럽게 말했다.

“최근에 옮긴 것 같군. 저쪽에서 그들의 흔적이 느껴지니 그리로 가보지.”

강민이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유리엘은 다시 손가락을 튕겼고, 이번에 나타난 곳은 수백 명의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느껴지는 기운이 인간과 다른 것이 벤자민이 말한 견인족인 것 같았다.

무너진 건물의 파편 등을 5미터 정도 높이로 높게 쌓아 울타리를 친 이곳은 하나의 마을처럼 보였다.

그 마을의 입구에는 경비를 서는 것과 같은 모습의 노랑머리와 갈색 머리의 남자가 있었는데, 둘 다 흰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있는 모습이 외견상으로 보아서는 지구인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었다.

그 둘은 갑자기 강민 일행이 나타난 것을 확인하고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누구냐!!”

강민과 유리엘, 벤자민까지 모두 통역 마법을 시전 중인 상태였기에 견인족이 하는 말을 알아듣는 것에는 지장이 없었다.

일단 견인족과 이미 접촉을 했다는 벤자민이 앞으로 나서며 이야기를 하였다.

“나는 유니온의 수장 벤자민이라 하오. 이곳에 있는 도그마 일족의 족장님을 뵙고 싶어서 이렇게 온 것이오.”

견인족의 경비병들은 유니온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지, 반색하며 말했다.

“아. 그렇군요. 일단 족장님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시지요.”

두 명의 경비병 중 갈색 머리 경비병은 고개를 돌려 특이한 파장의 소리를 내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두 명의 청년이 입구를 향해서 뛰어왔다.

이 청년들 역시 지구인의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들의 옷차림을 보던 벤자민이 강민에게 슬쩍 속삭였다.

“처음 이들을 목격한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다소 조악한 천이나 무두질한 가죽으로 된 옷을 입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들도 이곳에 머무른 지 몇 달이 지나면서 이곳에 적응했나 봅니다.”

안에서 뛰어나온 두 청년은 일행들에게 살짝 고개를 숙인 후 앞장서서 일행들을 안내했다. 이들의 마을은 그리 크지 않아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족장의 거처까지 오 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다른 곳들은 원래 있던 건물들을 그대로 이용한 것처럼 보였는데, 족장의 거처는 가로세로 30미터짜리 피라미드 모양으로 된 집으로, 이들이 새로 지은 것처럼 보였다.

물론 제대로 된 자재가 없었고 이들이 현대적인 건축 지식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기에 조악한 모양의 건물이었으나, 확실히 주변의 건물과는 다른 모양이었다.

안내원들이 건물 앞에 서 있는 경비들에게 말을 건넸고, 경비는 다시 안의 허락을 받아 일행의 입장을 허가받았다.

조악한 외형과는 다르게 건물 안의 모습은 현대적인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창이 없는 구조라 당연히 어두울 줄 알았는데, 안에는 기이한 빛을 발하는 돌 조각들이 조명처럼 방을 밝히고 있어 오히려 신비로운 분위기까지 내었다.

십여 미터 정도 되는 복도를 따라 들어가자 70대 정도는 되어 보이는 한 노인이 경호원으로 보이는 네 명의 청년들에게 둘러싸여서 일행을 맞이하였다.

노인은 다른 청년들과는 달리 황색 천으로 된 로브와 비슷한 옷을 입고 있었다. 그들의 전통 복식인 것 같았다.

“어서 오시지요. 저는 이 부족의 족장 하크마라고 합니다.”

하크마는 갑작스러운 일행의 방문에도 친절해 보이는 미소를 머금고 일행에게 인사를 건넸다.

“저는 유니온의 수장 벤자민이라 합니다. 이쪽은…….”

벤자민이 강민과 유리엘을 소개하려 하는데 강민이 손을 들어 벤자민의 말을 막고, 그 스스로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강민이라 합니다.”

앞으로 나서 인사를 하는 강민을 바라보던 하크마 족장은 무언가 의아한 듯 고개를 살짝 움직였다. 그리고 강민에게 시선을 떼지 않고 한참 동안 그를 바라보았다.

좌중에는 침묵이 흘렀지만, 누구도 그 침묵을 깨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하크마 족장은 경악한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바닥에 오체투지를 하며 크게 외쳤다.

“시, 신을 배알합니다!”

하크마 족장의 뜻밖의 행동에 주변에 있던 경호원이 깜짝 놀랐는데, 족장의 말을 듣자마자 그들 역시 같은 모습으로 바닥에 몸을 붙이며 족장과 같은 말을 하였다.

그들의 모습에 유리엘이 신기하다는 듯 그들을 본 후 강민에게 말을 건넸다.

“혹시 민이 저들에게 기운을 보인 거예요?”

“아니. 그랜드 마스터 정도의 기운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저자가 뭔가 본 것 같아. 능력은 마스터 정도의 급밖에는 되지 않아 보이는데, 특이한 능력을 가진 것 같군.”

둘의 이야기에도 하크마 족장은 처분을 기다린다는 모습으로 바닥에 몸을 붙이고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런 하크마 족장의 모습에 강민이 입을 열었다.

“일단 고개를 들고 이야기를 하지.”

신을 언급했다는 것 자체가 강민의 일부나마 진체(眞體)를 보았다는 말일 것이기에, 강민은 위엄을 숨기지 않고 하크마 족장에게 말을 건넸다.

강민의 말에 하크마 족장은 상체를 들어 자신이 앉아 있던 상석을 강민에게 권하였고, 자신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이곳에도 신성이 있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대체 뭘 보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지?”

철저하게 능력을 감추려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랜드 마스터급의 무인들도 강민의 진신 능력의 일체를 보지 못했는데 마스터급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는 하크마 족장이 자신의 능력을 보았다는 것에 강민은 의아했다.

“저희 종족은 나이가 들면서 본질을 보는 눈이 일부나마 생깁니다. 과거 먼발치에서 신성을 모시는 분을 뵈었었는데, 지금 강민 님의 내면에서 느껴지는 모습은 그때 그 기운을 떠올리게 하였습니다.”

“흠, 그렇군. 뭐 어쨌든 이리되면 이야기가 쉽게 풀리겠군.”

자신을 신성시하며 대한다는 것은 그의 어떤 질문에도 쉽게 대답할 것이라는 판단을 한 강민은, 하크마 족장에게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일단 네가 건너온 차원의 이야기를 좀 해봐. 왜 지금까지 이성체가 이곳에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지? 네 모습을 보니 인간 종족도 다수 있을 것이 분명한데 말이야.”

일반적으로 수인족은 인간의 유전자와 동물의 유전자가 결합해 생기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그 결합이라는 것이 마나 문명이 극도로 발전한 세상에서 인간들이 행하는 것인지, 초월적인 존재가 자신의 마나를 투영해서 행하는 것인지의 차이는 있으나 그 본질은 같다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하크마 그 자신은 모르겠지만 그의 마나 상태로 보아 지금 결합하는 차원에서는 후자의 방법으로 수인족이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강민은 판단하였다.

어쨌든 두 가지 방법 모두 인간이라는 베이스 유전자가 필요하였기 때문에 인간족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은 당연했다.

“일단 저희가 온 대륙은 미케아 대륙이라하고 합니다. 그곳에서는…….”

하크마는 강민의 지시에 따라서 미케아 차원의 개괄적인 부분부터 하나씩 설명하기 시작했다.

보통 강민과 유리엘은 차원을 구분할 때 해당 차원의 주요 대륙 이름으로 지칭했기에, 이제야 통합될 차원의 이름이 미케아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미케아는 아직 둘이 방문했던 적이 없었던 차원이었다.

이어지는 하크마의 말에 따르면 미케아 차원은 중세 지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왕이 있고 봉건제가 있는 그런 중세의 모습이라 할 수 있었다. 다만, 지구와 다른 점은 몬스터가 있다는 부분이었다.

지금이야 지구에도 몬스터가 만연하였지만, 그 전까지 지구의 몬스터는 간혹 웜홀을 통해서 넘어오는 놈들을 제외한다면 상주하는 마물은 없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케아 차원에는 다수의 몬스터들이 있었고, 특히 몬스터만이 살고 있는 미토스 산맥 너머를 마경(魔境)이라 부르면서 경원시하고 있었다.

하크마 족장이 이끄는 견인족은 바로 이 미토스 산맥에 살고 있었는데, 그는 마경을 보다가 한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했다.

마경에는 엄청난 수의 몬스터가 있었는데 상대적으로 능력이 약한 몬스터들은 간혹 미토스 산맥을 넘어와 인간들이 있는 곳을 공격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강한 능력을 가진 몬스터들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이 미토스 산맥을 넘지 못하였다.

사실 애초에 대부족과의 세력싸움에서 밀린 하크마 족장이 위험천만하다고 알려진 마경의 경계인 미토스 산맥에 자리를 잡은 것도 이런 특성을 이용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몰랐지만, 일정 실력이 있다면 미토스 산맥은 생각보다 위험한 곳이 아니었다.

물론 완전히 넘어오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십 년 정도마다 한 번씩 발생하는, 피처럼 붉은 달이 뜨는 적월(赤月)의 밤이 되면 강한 몬스터들도 산맥을 넘을 수 있었고, 그때마다 인간 세상에서는 큰 난리가 났다.

하크마 족장 역시 이를 알고 있었지만, 적월의 밤은 불과 작년에 지나갔기에 최소 오 년 이상의 시간은 남았으리라는 생각에 미토스 산맥에 자리 잡게 되었다.

그렇게 하크마 족이 이 미토스 산맥에 정착하여 살아가던 중 하크마 족장은 3년 전부터 마경에서 웜홀의 발생 빈도가 급격히 올라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웜홀이라는 현상은 미케아 대륙에서 그리 흔한 현상이 아니었다. 특히, 간혹 새로운 생물이 웜홀을 통해서 나타날 때는 있었지만, 반대로 웜홀을 통해서 사람이 사라지는 경우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었다.

즉, 들어오는 웜홀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었지만, 나가는 웜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부분 웜홀은 대륙으로 들어오기만 하는 차원의 구멍 정도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미토스 산맥에 사는 하크마는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미토스 산맥을 기준으로 마경 쪽에서는 나가는 웜홀이 종종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하크마는 자신의 가시거리에서 몬스터가 웜홀을 통해서 사라지는 것을 실제 목격한 적도 있었다.

무엇인가가 미토스 산맥의 북쪽으로만 나가는 웜홀이 열리도록 조절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것은 추측일 뿐 그 주장을 뒷받침할 만할 근거는 전혀 없었다.

어쨌든 웜홀 역시 몇몇 강한 몬스터처럼 미토스 산맥을 넘지 못하였기에 하크마 족장은 웜홀에 대해서도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웜홀의 발생 빈도가 높아지면서 종종 산맥을 넘어오는 몬스터들이 줄어들자 웜홀을 환영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이 왔다. 지구에게는 둠스데이라 명명된 그날, 미토스 산맥 너머의 웜홀이 미친 듯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웜홀의 크기 역시 평소보다 월등히 컸기에 수많은 몬스터가 웜홀을 통해서 사라졌다.

하크마 족장은 처음엔 몬스터들이 사라져서 좋아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자신의 부족 인근에 대형 웜홀이 생겼다.

분명 몬스터나 웜홀이 출현하는 한계선 밖에 마을을 건설했는데, 이 대형 웜홀의 발현지는 한계선 안이었지만 빨아들이는 범위는 한계선을 넘어섰다.

결국 하크마 족장을 포함한 부족원 대부분이 이 웜홀에 휘말려 지구로 넘어오게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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