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
현세귀환록
193. 전개(1)
강민과 유리엘이 마나 축을 벗어난 날은 마나장의 통합이 있은 지 대략 8개월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결국 다섯 번째 흐름까지 막아내고 현실 세계로 돌아온 강민은 주변을 살피고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은 마나 축으로 들어갈 때 입구로 이용한 정원이 무사한 것과 어머니 한미애와 동생 강서영의 평온한 기운이 잡히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유리엘이 만든 마법기는 절대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것과 같이 광검지경 마물의 공격에도 충분히 버틸 수 있는 생존 마법기였기에, 둘의 신체에 위해가 가해졌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공격을 받았다면 심적인 충격을 받아 평온한 기운으로 있지만은 못했을 것이기에, 지금의 확인으로 약간의 우려마저도 날려 버릴 수가 있었다.
강민이 주변의 상황을 체크하는 것을 본 유리엘은 제니아를 불렀다. 지구의 전반적인 상황을 체크하기 위해서였다.
“제니아.”
유리엘의 나직한 부름에 반투명한 형태의 제니아가 스르륵 나타나며 그녀에게 고개를 숙였다.
[유리 님을 뵙습니다.]
“인사는 됐고, 일단 상황을 보고해봐.”
[네, 유리 님. 일단 전체 상황부터 보고 드리겠습니다.]
말과 동시에 제니아는 지구 전체를 보여주는 홀로그램을 띄운 뒤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선 총인구 82억 4,753만 2,248명 중에서 40억 2,504만 6,054명이 살아남았습니다. 비율로 보면 약 48.8%의 생존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제니아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 제니아는 전 지구인에 대한 실시간 정보를 파악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지금도 정확한 숫자를 포함한 정보를 이야기할 수 있었다.
“뒤의 세부 단위는 떼고 말해도 돼. 구체적인 숫자가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니니 말이야.”
[네, 알겠습니다. 다음으로 생존자 중 이능력자 생존 현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SSX급은 11명, SX급은 1,283명, AX급은 98,837명, BX급은 683,937명, CX급은…….]
“아, 그 밑 등급까지는 굳이 들을 필요가 없을 것 같네.”
유리엘이 말을 끊고 다음으로 넘어가길 원하자, 제니아는 즉각 그녀의 의도대로 다음 정보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네, 그럼 이번에는 결계의 유지상황에 대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총 214개의 결계가 펼쳐진 도시 중 112개의 결계 도시가 살아남았습니다. 마물의 손에 떨어진 102개의 결계 도시 중 22개의 결계는 축이 훼손되어 결계 자체가 사라졌지만, 나머지 80개는 결계의 기능은 유지되고 있어 마물만 몰아낸다면 다시 도시의 기능을 찾을 수 있을 듯합니다.]
“결계가 다 훼손되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군.”
[지역별로 보시면 다음과 같습니다.]
제니아는 홀로그램을 조작하여 살아남은 도시와 마물의 손에 떨어진 도시, 결계 자체가 파괴된 도시가 명확히 구분되도록 했다.
그 화면을 본 유리엘이 의아한 듯 제니아에게 물었다.
“남반구 쪽은 전멸인데? 무슨 이유라도 있었던 거야?”
[마물에 대한 대비가 북반구 쪽이 좋았던 것도 있었지만, 주된 이유는 남반구 쪽에 상대적으로 더 강한 마물들이 많이 출몰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남반구에 강한 마물이 출현했다는 제니아의 이야기를 듣던 강민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마나 축을 보호하면서 축의 아래쪽으로 마나를 흘린 것이 다소 영향을 미친 것 같아.”
“아, 그런 것인가요? 그렇다면 이해가 가네요. 뭐 어쩌면 지구인들에게는 더 잘된 일일지도 모르겠네요.”
유리엘이 잘된 일이라 말하는 것은 지구의 인구 대부분이 남반구보다는 북반구에 몰려 있었기 때문에 이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남반구 사람들에게는 불행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일단 개괄적인 설명은 여기까지입니다.]
제니아의 개괄적인 보고를 들은 유리엘이 강민에게 말을 건넸다.
“다행히 예상했던 범위 내의 피해였네요.”
“그렇군.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겠군.”
둘이 애초에 생각했던 것이 절반 정도의 생존이었으니 지금 상황은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충분히 생각했던 범위 내의 피해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아. 마물의 상황은 어때? 몇 마리나 나타난 것이지?”
[마나를 감추는 능력이 있거나, 특이한 파장을 뿜어내 확인이 안 되는 마물을 제외한다면 현재 확인되는 마물은 대략 12억 4천만 정도입니다. 그중 1차 각성 개체라 할 수 있는 SX급 이상의 마물은 19,835개체이고, 2차각성 개체인 SSX급 마물은 38개체입니다. 다만, 각성 개체들은 대부분 남반구 쪽에 자리하고 있어 살아남은 인간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힐 가능성은 적은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 혹시 초(超)각성 개체는 확인된 것이 없어?”
초각성 개체라면 윤회의 고리를 벗어나 홀로 설 수 있는 개체 즉, 인간으로 치면 광검지경이나 10서클 마법사에 해당하는 경지의 마물을 일컫는 것이었다.
[남반부의 마물들은 진면목을 드러내지 않아 그중에서 초각성 개체가 있는지 그 여부에 대한 확인은 되지 않았지만, 북반구에서는 한 개체가 초각성 개체로 추정이 됐습니다.]
초각성 개체라면 제니아 시스템으로 진면목을 모두 확인할 수 없었기에 제니아는 추정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어떤 녀석이었지? 아니, 초각성 개체로 추정이 되었다는 말은 그만한 활동을 했다는 것인데, 어디서 나타난 거야?”
[그 부분은 이곳 한국의 상황과 연계해서 말씀드리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제니아는 지구 전체를 보여주는 홀로그램 중 한국의 지도를 확대해서 다시 상황을 보고했다.
[일단 보시는 것처럼 일단 한국의 피해는 다른 나라에 비해서 크지 않습니다.]
제니아의 홀로그램에 한국의 지도는 붉게 물들어 있는 인근의 다른 나라들과는 다르게 영롱한 푸른빛을 발하고 있었다.
“뭐 당연한 결과인가?”
특별히 한국에 그런 결계까지 펼쳐주었는데 어쩌면 이런 결과는 당연할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제니아의 말은 달랐다.
[그게…… 당연한 결과는 아니었습니다.]
“무슨 소리야?”
[과거 북한 지역과 중국의 접경지역에 고룡급 드래곤이 나타났었습니다. 이것이 조금 전 말씀드린 북반구에 나타난 초각성 개체입니다.]
드래곤이 나타났다는 제니아의 말에 유리엘은 제대로 들은 것이 맞냐는 듯한 모습으로 그녀에게 반문하였다.
“지금 말하는 드래곤이라는 것이 내가 네게 준 기억에 있는 그 드래곤이 맞는 거지?”
[그렇습니다, 유리 님. 아르센 대륙에 있는 드래곤과 거의 동일한 개체였습니다.]
유리엘은 과거 그녀가 있었던 차원인 아르센 대륙의 정보를 기준으로 제니아에게 기억을 주입하였고, 지금 제니아는 정확히 그 차원의 드래곤과 같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흠…… 아르센의 고룡급 드래곤이면 확실히 초각성 개체라 할 만한데…….”
마물이나 인간이나 홀로 오롯이 설 수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특별한 깨달음이나, 계기가 필요하였다. 윤회의 고리를 벗어나는 일인 만큼 그런 깨달음이나 계기는 무척이나 얻기 힘든 종류의 것이었다.
하지만 드래곤의 경우에는 세월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초각성 개체로 각성할 수 있는 종족이었다.
드래곤은 특별한 깨달음이나 계기가 없더라도 시간이 흐르고, 마나가 깊어지면 자연스럽게 초각성의 경지와 흡사한 경지를 얻게 되는 것이었다.
물론 깨달음이나 계기를 통해서 홀로 오롯이 선 존재들과는 다소 다른 종류의 경지였지만, 무력만을 놓고 볼 때는 오히려 그들을 능가하는 무력을 가졌다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드래곤은 대부분의 종족이 두려워하는 종족이 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럼 그 드래곤을 누가 저지한 것이야?”
[그것은 영상을 보시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
제니아는 기존의 홀로그램을 둔 채로 별도의 영상을 띄웠다. 영상의 앵글은 공중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가는 식이라 어디를 촬영한 것인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게 하였다.
“이곳은 백두산 인근이네.”
[네, 그렇습니다.]
백두산 인근이라는 유리엘의 말에 지금껏 가만히 있던 강민이 입을 열었다.
“백무성이 나섰겠군. 그의 상태는 어떻지?”
영상은 이제 시작됐지만, 강민은 바로 결과를 물었다. 지금은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요한 상황이었다.
[……그는,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역시…… 고룡급 드래곤이라면 그렇겠지.”
고룡급의 드래곤은 인간의 기준으로 본다면 광검지경의 초입 정도의 경지로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어찌 보면 비슷한 경지에 있는 백무성이라면 한 번 해볼 만한 상대라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강민은 백무성의 패배를 예상이나 한 듯이 중얼거렸다. 아니, 되려 이렇게 물었다.
“그럼 그 드래곤은 어느 정도의 피해를 입었지?”
드래곤이 당연히 살아 있을 것을 가정한 물음이었다. 그런 판단의 기저에는 드래곤이 어떤 생물인지 누구보다도 강민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일 보통의 마물을 상대한다면 그 마물과 비슷한 정도의 능력자라면 충분히 박빙의 대결이 가능할 것이었다. 오히려 장비나 주위 능력자들의 도움을 얻어 좀 더 유리한 대결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드래곤은 달랐다. 마나를 주입하면 검강도 버틸 수 있는 육체적 능력만 따져도 엄청난 마물이라 할 수 있었는데, 드래곤의 강함은 육체보다는 마법의 사용에 있었다.
마나 사용에 최적화된 드래곤의 신체는 무한의 마나를 바탕으로 엄청난 위력의 마법들을 사용하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게다가 고룡급이면 9서클을 넘어 10서클 마법 또한 사용이 가능할 것이었다.
물론 윤회의 고리를 끊고 홀로 오롯이 선 10서클의 마법사처럼 자유자재로 10서클 마법을 사용하지는 못하겠지만, 자신의 성향과 맞는 마법 중 주력으로 삼는 몇 개의 마법계통에서는 충분히 10서클 사용이 가능하였다.
오히려 그 마법들은 보통의 10서클 마법사가 쓰는 마법보다도 더 강한 힘을 낼 수 있을 것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나오는 제니아의 말에 강민은 약간 놀랍다는 듯 반문하였다.
[그것이……. 드래곤 역시 죽었습니다.]
“음? 사실이야?”
[네, 그렇습니다. 자세한 상황은 영상을 보시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
그제야 강민은 제니아가 보여주는 영상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드래곤의 강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강민은 백무성 정도의 수준으로 고룡급 드래곤을 잡았다는 것이 신기하였기 때문이었다.
지금 제니아의 영상에서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검은 비늘의 블랙드래곤이 다리와 꼬리를 휘저으며 난동을 부리는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마치 화풀이를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왜 저러는 거야?”
“아무래도 뭔가 하다가 이리로 날아온 것 같아요. 저렇게 날뛰는 모습이 꽤나 중요한 일을 하다가 그런 것 같네요.”
“그래도 그렇지. 고룡씩이나 된 녀석이, 해츨링도 하지 않을 성질을 부리다니 어이가 없네.”
“뭐, 이유가 있겠죠. 아. 저기 백무성이 나오는군요.”
유리엘의 말처럼 화면의 한쪽에서 백무성이 십여 명의 수하들을 이끌고 블랙드래곤이 활개 치는 곳으로 뛰어왔다.
“수하가 있어서 이길 수 있었나? 저기 세 명의 금강승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힘들었을 텐데…….”
일 대 일이 아니라는 것에서 백무성의 승산이 조금 올라가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고룡을 이길 정도는 아니었다.
“이제부터 보면 알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