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세귀환록-191화 (191/203)

# 191

현세귀환록

191. 통합(2)

처음 하토르 단장은 이곳에 이렇게나 많은 S급 마물이 나타날 것을 예상하지는 못했기에, 자신들과 S급 이능력자 네이트 한 명이면 충분히 자신이 맡은 구역을 방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쩌면 네이트가 나서지 않아도 자신들로만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도 하였다.

하지만 다섯 마리가 넘는 S급 마물을 본 이상 상황은 달라졌다. 네이트가 나선다 해도 힘든 상황에서, 네이트가 나서지 않는다면 절대 승산이 없었다.

그래서 하토르는 어떻게든 네이트를 구슬려서 전장으로 투입하려 하였다.

다섯 배의 보상을 들은 네이트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받기로 한 보수가 천만 달러였는데, 그 다섯 배면 5천만 달러이다.

이제 갓 S급이 된 네이트는 장비에 투자하느라 금전적으로 그리 넉넉한 상황이 아니었기에 하토르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S급 마물의 마정석에 5천만 달러면……. 한번 해볼 만하겠네. 뭐 어차피 도망치는 것에는 자신이 있으니 위험하면 바로 피해야겠군.’

하토르 단장이 말했던 네이트의 능력이 바로 이것이었다. 은신의 능력이 있는 네이트는 자신이 살아남는 것에는 큰 걱정이 없었다.

당연히 네이트는 이곳에서 뼈를 묻을 생각은 없었다. 물론 이집트인이라 이집트가 유지되길 바라고 있었지만, 마스터급 능력자면 어딜 가나 환영받을 수 있는 인재였다. 굳이 생명을 버려가면서까지 이집트에 충성할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결심을 한 네이트는 특유의 파장을 내뿜으며 자신의 몸을 마물들의 기감으로부터 감추면서 조용히 S급 마물에게 접근해 갔다.

지금 네이트가 목표로 한 마물은 반인반수 형태의 마물로, 아름다운 미녀의 모습을 한 상반신과 뱀과 흡사한 형태의 하반신을 갖고 있었다.

신화에 나오는 라미아와 흡사한 마물이었다. 이 마물은 지금껏 등장한 적이 없어 매뉴얼에 등재가 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인간형의 상체는 딱 보아도 방어력이 그리 강해 보이지 않았기에 네이트가 목표로 삼은 것이었다.

더군다나 이 마물의 위치는 지금 마물의 무리 중에서도 가장 뒤쪽 편에 자리하고 있어 은신으로 처리하기가 딱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라미아의 지척까지 다가간 네이트는 어둠 속성의 마법을 인챈트한 단도를 꺼내어 소드 오러를 불어넣었다. 은신에 이은 기습적인 일격으로 목을 끊어내 전투 불능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마친 네이트가 폭발적인 움직임으로 땅을 박차고 마물의 목을 찍어 갈 때, 지금껏 네이트를 전혀 인식하지 못한 것처럼 보이던 라미아가 갑자기 그를 돌아보았다.

‘알아챘나? 하지만 늦었어!’

라미아가 돌아보았을 때에는 이미 네이트의 단도가 라미아의 목 가까이 도달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네이트가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라미아의 눈이 잠시 번뜩인 순간 네이트의 몸이 굳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으윽!! 뭐지?’

네이트는 순간 당황하였지만,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체내의 마나를 돌려서 마비에 저항하려 하였다. 그리고 그의 판단이 맞는지 마나가 돌면서 그의 마비도 빠르게 풀려가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하면 마비를 풀고 뒤로 물러서서 다시 은신을 펼칠 수 있을 것이었다.

‘됐다. 이제…….’

“커헉!”

네이트의 판단은 정확했지만, 라미아의 움직임은 그가 마비에서 풀리는 것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뱀과 같은 하체를 흔들어 순식간에 네이트의 옆으로 다가온 라미아는 날카로운 손톱을 가진 오른손으로 그의 심장을 뽑아버린 것이었다.

“흐음.”

네이트의 벌떡거리는 심장을 든 라미아는 그것을 음미하기나 하는 듯 잠시 코에 가져가더니 곧 심장을 씹어 삼키기 시작했다.

우적우적~

아름다운 미녀의 얼굴을 한 라미아가 심장을 뜯어먹으며 붉은 피를 입가로 흘리는 모습이 그로테스크하게 보이기도 하였지만, 지금 전장의 처참함은 이 정도 상황에는 눈을 줄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하였다.

네이트가 본 것처럼 이곳에는 다섯 마리의 S급 마물이 있었는데, 라미아가 움직이는 것을 신호로 삼은 건지 그 마물들 역시 날뛰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네이트를 제외하고는 S급 능력자가 없는 이곳은 S급 마물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A급 능력자들 십수 명이 모여서 S급 마물을 막아보려 하였으나, 애초에 S급 마물은 S급 능력자들조차 파티를 이루어 상대하는 마물이었기에 A급 정도의 능력자들로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카이로의 A2-1섹터의 이능력자들은 마물에 의해서 괴멸되어 버렸고, 차단벽마저 거대한 투구벌레를 닮은 S급 마물이 몇 번의 박치기를 통해서 뚫어버렸다.

그 이후의 상황은 불 보듯 뻔했다. 뚫린 차단벽을 통해서 수백 마리의 마물이 도시 안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뚫린 곳은 A2-1섹터뿐만이 아니었다.

현재 카이로는 A1-1섹터부터 C10-10섹터까지 총 300개의 섹터로 구분하여 도시를 방호하고 있었는데, 몇 시간 만에 50여 개 섹터가 마물에게 뚫려 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카이로는 최후의 보루가 있었다. 수천 년 동안 이집트를 수호해 온 이집트의 이능력 집단 룩소르가 바로 그 최후의 보루였다.

도시의 가운데에 임시로 만든 통제센터에서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던 룩소르의 정예들은 차단벽이 뚫리는 것을 확인한 후 도시로 들어온 마물들을 진압하기 위하여 정해진 조별로 빠르게 흩어졌다.

마물들이 강하기는 하지만 룩소르의 정예들도 무시할 수 없는 강자였다. 그렇기에 정예들은 자신감과 결의에 찬 표정으로 서둘러 몸을 날렸다.

그런 정예들의 움직임을 보고 있던 룩소르의 지도자, 오시리스 제사장은 나지막한 신음성을 내었다.

“흐음…….”

파라오 가면 때문에 그 표정은 알 수 없었으나 오시리즈 제사장의 음성은 무척이나 가라앉아 있었다.

그 기색을 느꼈는지 오시리스 제사장의 곁에 있던 30대 초반의 청년이 그에게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제사장님, 괜찮으십니까?”

청년의 물음에 오시리스 제사장을 슬쩍 그를 보더니 여전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하다. 마물들의 수준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강해. 제르한, 수호대와 신규 수련생들을 이끌고 도시를 빠져나가라.”

오시리스 제사장의 말에 제르한이라 불린 청년은 깜짝 놀라며 그에게 반문하였다.

“제사장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사장님이 나선다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제르한은 오시리스 제사장이 최근 그랜드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의 약한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오시리스 제사장은 제르한이 보지 못한 것을 보고 있었다.

“지금 다가오는 마물은 내 역량을 훨씬 능가한다. 어서 서둘러라! 더 지체하다가는 빠져나갈 수도 없을 것이야.”

웜홀 차단 결계 때문에 결계 도시들은 공간 좌표를 활용하는 도시 간 텔레포트도 막혀 있는 상태였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도시에서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도시 내에서 도시 외곽까지 잇는 터널을 만들어 그곳에 텔레포트 마법진을 설치한 상태였다.

“제사장님…….”

“일단 인근 결계 도시 쪽으로 갔다가 최종적으로는 한국으로 가거라. 그곳에서 다시 자리를 잡고 힘을 길러 언젠가 다시 카이로, 이집트를 되찾도록 하거라! 어서 가거라!!”

오시리스의 말에 눈물을 흘리던 제르한은 거듭되는 그의 재촉에 결심한 듯 그에게 고개를 숙인 뒤 방을 벗어났다.

제르한이 나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오시리스 제사장은 자신에게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마물의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펑~

손을 휘저어 자신의 앞에 있는 창문을 없앤 오시리스 제사장은 육안으로 마물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 마물의 정체는 길이가 30미터에 가까운 커다란 비룡, 와이번이었다.

기다란 꼬리, 광택이 나는 푸른색 비늘과 박쥐의 그것과도 같은 피막이 있는 날개를 달고 있는 모습은 전설상에 나오는 비룡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지금 오시리스 제사장 쪽으로 날아오고 있는 비룡은 다른 곳으로 날아가는 비룡들과는 달리 머리 위에 피처럼 붉은 두 개의 뿔이 솟아나 있었다. 그리고 덩치도 다른 비룡에 비해 적어도 10미터 정도는 더 커 보였다. 딱 보아도 우두머리급 비룡임이 틀림없었다.

뿔이 난 비룡을 목격한 오시리스 제사장은 안색을 굳히며 체내의 전 마나를 끌어올리기 시작하였다.

일견해 보건대 비룡이 가진 힘은 그가 가진 힘을 월등히 앞서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탐색전 같은 것을 할 여유는 없었다.

한계라 할 수 있을 정도까지 마나를 끌어올린 오시리스 제사장은 번개처럼 움직여 마나를 가득 머금은 손으로 자신의 지척까지 날아온 비룡의 머리를 가격해 나갔다.

콰앙-!

너무도 빠른 움직임에 반응하지 못한 것인지 비룡은 오시리스 제사장의 일격을 허용했는데, 당연히 공격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쾅쾅쾅쾅! 쿠아앙!!

지금 끝장을 본다는 심정으로 오시리스 제사장은 전 마나를 동원하여 비룡의 약점과도 같아 보이는 목덜미를 연속적으로 공격하였다.

하지만 비룡은 그리 큰 타격을 받지 않은 듯 보였다.

“크르릉…….”

그것을 보여주기나 하는 듯 한 차례 투레질과 같은 소리를 낸 비룡은 입을 쩍 벌리더니 그 입에서 가공할 만한 마나 폭풍을 쏘아냈다.

후와와아아악!!

오시리스 제사장은 이런 브레스 공격을 어느 정도 예상이나 한 듯 서둘러 위치를 옮겨 다시 공격하려 했다.

아무래도 큰 공격을 하면 빈틈이 생기게 마련이니 그 빈틈을 노려 치명상을 가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의 생각처럼 되지는 않았다. 비룡의 브레스에는 기이한 흡력이 있는지 뒤로 돌아가기는커녕 되려 비룡의 브레스 쪽으로 몸이 가까이 끌려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크윽!”

이대로라면 브레스에 휩쓸릴 것이라 생각한 오시리스 제사장은 비전의 기술까지 동원하여 지금 자리를 벗어나려 하였다.

하지만 비룡의 움직임은 더 빨랐다. 오시리스 제사장이 벗어나려는 것을 눈치채기나 한 듯, 브레스에 더 많은 마나를 불어넣었다.

그리고 그 마나의 움직임에 반응이나 하는 듯 비룡의 머리에 있는 뿔 두 개가 붉은빛을 머금더니 브레스를 향해 붉은 번개 줄기를 쏘아내기 시작했다.

번개 줄기를 받은 브레스는 한층 더 강한 힘으로 오시리스 제사장을 끌어들였고, 결국 오시리스 제사장은 흡력을 이기지 못하고 브레스의 범위 안으로 빨려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으, 으윽…… 으아악!!”

브레스 안에 들어간 오시리스 제사장은 자신이 가진 힘을 다하여 방어막을 펼쳤으나, 상상을 초월하는 브레스의 힘에 혼신의 힘을 다한 그 방어막은 다 흩어지고 말았다.

그렇게 지역의 패자이자 과거 위원회의 일원이었던 오시리스 제사장은 이름도 모를 마물에게 당해 한 구의 시체로 변하고 말았다.

오시리스 제사장의 생명 반응이 끝난 것을 확인한 비룡은 잽싸게 움직여 아직까지 강대한 마나를 머금고 있는 그의 시체를 꿀꺽 삼켜 버렸다.

시체를 먹은 비룡은 여기서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마치 이능력자들이 자신의 먹이인 것처럼, 도시의 상공을 유유히 날면서 그중 강해 보이는 이능력자들을 급습하여 하나씩 하나씩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마물과의 격전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상급의 이능력자들이 계속 비룡에게 잡아먹히자 결국 전선은 무너지고 말았고, 마물들이 도시 전체로 밀려 들어왔다.

그렇게 카이로의 차단벽이 뚫리고, 도시가 마물에게 장악당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세 시간에 불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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