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세귀환록-189화 (189/203)

# 189

현세귀환록

189. 준비(4)

지금 유니온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 제니아의 공지 이후 세계 각국의 지부 및 지역 본부에서 수많은 문의와 협조 요청이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작은 일로는 유니온의 요원들을 자신들의 도시로 보내달라는 요청이었고, 크게는 자국의 국가 방위 전부를 유니온에게 맡기고 싶다는 제안도 있었다.

당연히 그에 따른 보상도 해주겠다고 했지만, 지금 유니온이 개입해야 하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식의 제안은 대부분 거절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큰 이슈 중의 하나가 바로 유니온 본부의 이전이었다.

현재 유니온 본부는 볼티모어에 자리하고 있는데, 볼티모어는 인구가 백만이 안 되는 중간 규모의 도시이기 때문에 유리엘의 결계에서 빠져 있는 상황이었다.

그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지 본부의 안전을 강구해야 하는데, 가장 손쉬운 방법이 결계 도시로 이전하는 방법이었다.

물론 유니온 본부에는 수많은 능력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 수많은 본부 근무자들은 본부가 비록 결계의 수혜를 보지 못한다고 해도 웜홀의 폭주 정도에 자신들이 무너질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벤자민을 비롯한 수뇌부들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일단 웜홀의 폭주가 어느 정도의 수준으로 일어날 것인지에 대한 데이터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수뇌부에서는 당연히 안정적인 곳인 결계 안으로 본부를 이전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제니아 시스템의 등장 이후 총재인 벤자민이 8서클 마법사가 되었고, 주요 간부들도 상당수가 S급에 이르고 있지만, 그래도 그랜드 마스터급이라 할 수 있는 SSF급 이상의 마물이 등장한다면 이겨내기가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전 세계적 혼란 상황에서 유니온이라도 제대로 기능해야 그 혼란을 그나마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대외적인 명분도 있었기에, 유니온 본부의 이전 절차는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었다.

얼핏 생각해보면 유니온의 본부 이전이 쉽지만은 않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대부분의, 아니, 모든 결계 도시들은 도시 밖 사람들의 도시 내 이주를 제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본부의 직원들과 그들의 가족까지 다 포함한다면 10만 명이 넘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사람들이 이전해 오는 것을 반길 도시는 드물어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인들이 이주한다고 생각했을 때의 이야기였다. 지금 많은 도시에서는 일반인이 아닌 능력자, 특히 고위능력자들에 대해서는 수많은 특혜를 주면서까지 자신들의 도시로 끌어들이려고 하였다.

조건은 단 하나였다. 나중에 있을 웜홀의 폭주 시 도시방위대로 활동하는 조건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수많은 능력자의 모임이라 할 수 있는 유니온 본부의 이전은 엄청난 전력을 얻을 수 있는 획기적인 기회였다.

그 때문에 수많은 도시, 아니, 국가의 수뇌부에서는 유니온 본부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유니온이 갈 곳은 어차피 정해져 있었다.

“유니온 본부는 통일 한국의 평양, 예전 북한의 수도였던 그 도시로 이전하겠습니다.”

벤자민의 발언에 장내는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유니온의 정관에 본부 위치의 결정은 명목상 총재의 권한이기는 했지만, 아직 한 번도 본부를 이전한 적이 없었기에 있으나 마나한 조항이었다.

하지만 벤자민이 그 조항을 명분으로 생각지도 못한 장소를 본부의 이전지로 언급하자, 장내의 본부장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였다.

그중 북미지역 본부장인 제너럴 피어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벤자민을 향해 외쳤다.

“총재님! 뜬금없이 한국이라니요? 당연히 워싱턴 DC로 옮기는 것 아니었습니까?”

제너럴의 말에 벤자민은 되려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그에게 반문하였다.

“왜 워싱턴으로 가야 한다는 말인가요?”

“당연히 유니온의 본부는 미국 내에 있어야 할 것이고, 이전 거리와 각종 여건을 생각해보아도 그나마 수용에 여유가 있는 워싱턴이 좋지 않겠습니까?”

제너럴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볼티모어와 가장 가까운 결계 도시가 워싱턴이기 때문에 이전 거리 등의 요인을 보았을 때 워싱턴이 가장 좋은 선택지라 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워싱턴은 뉴욕처럼 포화상태도 아니었기에 제너럴은 유니온 본부가 워싱턴으로 옮겨갈 것을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하지만 벤자민의 생각은 달랐다.

“전제부터 잘못되었네요. 왜 유니온의 본부가 미국에 있어야 하는 것이죠?”

벤자민의 질문에 제너럴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반문하였다.

“그야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유니온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에스퍼즈의 창립 배경을 아는 사람이라면 제너럴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과거 유니온이 생기기 전, 아니, 에스퍼즈가 생기기 전에는 이능 세계에서 초능력자들의 입지는 극히 미미했다.

그것은 대부분의 초능력자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였고, 큰 힘을 발휘한다 하더라도 거의 그것을 컨트롤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초능력자들은 이능력자들 중에서도 반푼이 취급을 받고 있었는데, 유니온의 전 총재인 앤더슨의 등장으로 인해서 이런 시선은 바뀌게 되었다.

앤더슨은 초능력을 다루는데 천재적인 재능을 갖고 있었는데, 이 재능을 토대로 초능력을 키우는 법부터, 유지하는 법, 컨트롤하는 법까지 다양한 방법들을 매뉴얼화시켜 초능력자들에게 전파하였다.

그의 가르침에 많은 초능력자가 앤더슨을 따랐는데, 이들을 일컫던 모임이 바로 에스퍼즈였다.

하지만 유럽은 마법사들과 뱀파이어들의 세력이 워낙 강대한 곳이었기에, 초능력자들이 에스퍼즈라는 이름으로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능력자 세계에서 초능력자들의 대우는 그리 개선되지 못하였다.

만일 초능력자들이 압도적인 힘을 가졌으면 모를 일이지만, 앤더슨의 노력에도 아직까지는 초능력자들이 다른 능력자들에 비해서 약체라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앤더슨은 훗날을 도모하자는 판단하에 자신을 따르는 초능력자들을 이끌고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피나는 수련을 통해서 그들의 능력을 더 갈고닦았다.

틈틈이 유럽과 아시아 등의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초능력에 재능이 있는 사람들을 모으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후 마스터에 오른 앤더슨과 실력이 늘어난 에스퍼즈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대활약하며 전쟁의 승리를 도왔고, 이로써 이능력자 세계에서도 에스퍼즈에 대해서 확실히 인지하게 되었다.

이 인지도를 토대로 앤더슨은 기존의 이능력자 집단과 담판을 지어, 주류 이능력계에 편입할 수 있었다.

특히 2차 대전 종전 후 이능력 세계와 일반 세계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해줄 집단이 필요하였는데, 귀찮다고 모두 기피하는 그 일을 앤더슨이 자신과 에스퍼즈가 하겠다고 나섰던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유니온이었다. 물론 주류 이능력 집단에서도 지원의 명분으로 실상은 유니온을 감시할 소수의 이능력자를 보내주었으나, 실질적인 유니온 직원들의 대부분은 앤더슨을 따르던 에스퍼즈였다.

그 때문에 지금도 유니온에는 마법이나 무공 계통의 이능력자보다 초능력 계통의 이능력자가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지금 북미지역 본부장인 제너럴도 당시 앤더슨을 따르던 그 에스퍼즈 중의 하나였기에, 그의 입장에서는 유니온은 미국에 있는 것이 당연하였다. 미국 본부는 에스퍼즈가 한 투쟁의 산물이라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같은 맥락에서 마법사인 벤자민이 유니온의 수장을 역임하고 있다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초능력자도 아닌 마법사가 초능력자들이 일궈놓은 과실을 따 먹고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 제너럴의 생각을 알고 있다는 듯 벤자민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연하다고 말씀하시는 피어 본부장의 생각은 알겠습니다만, 유니온은 에스퍼즈가 아닙니다.”

벤자민 또한 에스퍼즈와 유니온의 창립 배경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벤자민의 생각에 그것은 과거의 이야기였다. 이제는 앞으로 나아갈 시간이었다.

벤자민은 오른손을 들어, 반발하며 다시 이야기하려는 제너럴의 말을 막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이제 위원회도 없어졌으니 이능 세계의 중심은 우리 유니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야 미국이 세계의 강대국으로서 우리 유니온의 본부가 미국에 있는 것이 효율적이었지만, 앞으로 세계의 중심은 한국이 될 것입니다. 그럼 당연히 우리 유니온의 본부도 그 세계의 중심으로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번에는 유럽지역 본부장인 페르난도 아를이 손을 들어 발언권을 얻더니 입을 열었다.

“총재님, 이례적으로 결계가 한국에게 후하게 펼쳐진 것은 알겠지만, 그것만으로 세계의 중심이 된다는 것은 과한 생각 아닐까요?”

페르난도의 그런 생각에 동조를 하는지 몇몇 본부장이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 모습에 벤자민은 헛웃음이 나왔다.

“참…… 이런 말씀까진 할 필요는 없을 줄 알았는데…… 아를 본부장님은 왜 한국에 저리 후하게 결계가 펼쳐졌다고 생각하시오?”

“그건 잘…….”

페르난도는 대답이 궁색한지 벤자민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고 말만 얼버무릴 뿐이었다.

“그럼 달리 묻겠소. 이 결계를 누가 펼친 것이라고 생각하시오?”

이번 질문은 그가 대답할 수 있는지 페르난도는 자신 있게 대답하였다.

“제니아가 말한 대로 그녀의 주인이지 않습니까?”

“그거야 공지사항에 나온 말이고, 그 주인이 누군지를 묻는 것이오.”

“그건 아무도 모를……. 설마…… 총재님은 그 주인이 누군지 아시는 것입니까!”

그렇게 대답할 때 뭔가 떠올랐는데, 페르난도의 마지막 말은 묻는다고 하기보다는 숫제 외치는 것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의 말이 충격적이었는지 다른 본부장들도 깜짝 놀란 표정으로 다들 벤자민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주류 이능 세계에서 제니아의 주인은 신적인 존재일 것이라는 추측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제니아 시스템의 존재 자체가 신이 아니고서는 할 수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벤자민은 아무 말도 없이 경악한 표정의 좌중을 둘러보았다. 모두가 벤자민의 입만을 보며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렇소. 나는 누군지 알고 있소. 그리고 그분은 한국에 있소이다.”

벤자민의 말이 끝나자마자 사방에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국이라니!!!”

“그럼 한국인인 것이오?”

“도대체 누구요?”

“말씀 좀 해보시오!”

시끄럽게 물어오는 본부장들을 향해 벤자민은 왼손을 들어 올렸고, 그의 손짓에 따라 다시 좌중은 조용해졌다.

“아직 그분의 정체를 밝히는 것에는 허락받지 못했기에 말씀드릴 수는 없소. 하지만 간단히 생각해봐도 지금 한국에만 과도한 혜택이 돌아가고 있는 것을 정말 모르겠소? 저번 악마창궐 때도 그렇고, 이번 결계 때도 그렇고 말이오.”

벤자민의 말에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렇게 한 번 말을 끊은 벤자민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분이 계시는 이상 이제 세상의 중심은 한국이 될 것이오. 그리고 우리 유니온도 그에 맞추어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소?”

이제 더 이상 평양으로 본부를 이전하자는 벤자민의 말에 토를 다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일반 세계와 이능 세계를 가리지 않고, 개인과 집단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은 모두 다가올 차원 통합에 대비해 나름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런 사람들의 준비 속에 모든 것이 바뀌게 될 운명의 날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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