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8
현세귀환록
188. 준비(3)
“대통령님. 이번 안건은 투자 제안 건입니다.”
“이번에는 누군가?”
“미국을 본사로 둔 KPI그룹의 회장 마이클 콜입니다.”
“KPI그룹이라면 세계 10대 그룹 안에 드는 대기업이 아닌가?”
KPI그룹은 세계적인 투자은행으로 미국 기업이라기보다는 글로벌 기업이라 할 수 있었다. 다만, 본사와 주요 주주들이 미국인이다 보니 미국 기업이라 불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얼마 정도 투자한다고 하던가?”
“5년간 100억 달러의 투자를 계획 중에 있다고 하는군요.”
100억 달러면 한국 원화로 10조 원이 넘는 엄청난 돈이었다. 그런 큰 자금의 투자 제안이었지만, 지금 윤강민 대통령은 섣불리 판단하지 않았다.
평소라면 두말할 것도 없이 투자를 받아들이고 각종 편의를 봐주겠지만, 지금은 이 KPI그룹의 투자조차 고민해 봐야 할 정도로 수많은 투자 제안이 이미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건은 또 그건가?”
“네, 한국에서 거주 자유를 얻고 싶다고 하는군요.”
제니아의 공지 이후 한국은 특별한 나라가 되었다. 바로 모든 이가 들어와서 살고 싶어 하는 나라가 된 것이었다.
다른 나라들이 많아야 몇 개의 도시가 웜홀 차단 결계의 혜택을 받는 것에 비해, 한국은 국토의 전역이 결계의 수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세계 각국에서는 한국으로의 이민 요청이 쇄도하였다. 지금까지 한국은 투자 이민이나, 전문 기술직의 이민은 어느 정도 자유로이 허용해왔으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결계의 수혜지가 되는 도시들이 출입 제한을 가하듯이 한국 역시 이민과 국내 여행을 제한해야만 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한국의 인구는 한국의 국토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 이상의 인구가 들어와 버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미 여행으로 온 수많은 관광객이 한국에 눌러앉아 버린 상태였기에 한국의 조치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다만 북한의 개발을 전략적으로 추진하던 윤강민 대통령은 일종의 투자 이민은 허용하는 쪽으로 방침을 잡았고, 그런 내용을 미디어를 통해서 발표했다.
KM그룹과 백산그룹을 비롯한 많은 국내 대기업들이 참여하여 50조 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돈이 투자되었지만, 그간 독재로 인해 개발되지 못했고 전쟁의 피해까지 입은 북한을 개발하는 데는 한참 부족한 자금이었기에 해외 투자 유치를 끌어모으려 했던 것이었다.
그 이후 전 세계의 수많은 개인과 기업들이 투자를 제안하였고, 이미 북한의 기본적인 시설들을 설치하는데 필요한 비용은 대부분 마련이 된 상태였다.
사실 100억 달러의 투자금은 초기만 하더라도 100% 승인되는 금액이었고 그에 따른 상당한 편의도 보아줄 정도로 큰 금액이었지만, 지금은 수많은 투자 제안 중의 하나로 그칠 정도로 현재 수많은 투자 제안들이 한국 정부로 들어온 상태였다.
그 때문에 윤강민 대통령은 이제는 ‘을’이 아닌 ‘갑’의 위치에서 투자 제안을 검토할 수 있었다.
“거주 자유의 범위는?”
“대주주들과 주요 임직원들의 가족입니다.”
“몇 명이나 되던가?”
“다 포함하니 대략 5천 명 정도 되었습니다.”
“5천 명? 아까 5년간 100억 달러라고 했나? 1년에 20억 달러 정도라는 말인데…… 그럼 결과적으로 1인당 4억 원 정도의 투자라는 말이군.”
윤강민 대통령의 계산을 듣던 이기우 비서실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연간으로 치자면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5년을 보면 1인당 20억 원 정도입니다.”
“허허. 세계 10대 그룹 안에 드는 투자회사가 이 정도 제안을 하다니, 별로 급하지 않나 보지?”
“무슨 말씀인지…….”
“몰라서 묻는 건가? 지금 이민세가 얼마인가?”
“그, 그게…….”
이민세는 한국 전역에 결계가 펼쳐진 것이 알려진 이후 외국에서 수많은 이주자들이 몰려들었기에, 이민을 원하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부여한 새로 생긴 세금 제도였다.
그 이민세가 지금 1인당 2억 원이었다. 최초 인당 1억 원으로 책정하였는데, 그래도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들자 지금 2배로 올린 것이 2억 원이었다.
문제는 2억 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신청이 들어오고 있어서 지금 국회에서는 아예 10억으로 올리자는 제안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런 이민세의 부과는 비단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국가 단위는 아니었지만 도시 단위에서 비슷한 명목의 세금이 부과되고 있었는데, 그 금액이 국가별로 1천만 원 선에서 수십억 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황이었다.
어쨌든 그런 상황에서 세금도 아닌 투자 금액이 1인당 4억 원이라는 것은 지금 한국에는 전혀 구미가 당기지 않는 제안이었다.
처음 100억 달러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큰 금액으로 보였지만, 한 명당 금액을 계산해 보니 전혀 큰돈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물론 5년간 투자하니 결과적으로는 인당 20억 정도의 투자 금액이긴 하나 5천 명의 영주권을 얻는 대가로는 부족하다 할 수 있었다.
게다가 비서실장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 이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 생각이 든 윤강민 대통령은 은근한 표정으로 비서실장을 보며 물었다.
“자네…… 혹시 KPI그룹과 사적으로 만난 적이 있는가?”
표현은 사적으로 만났는지를 묻는 것이었지만, 그 속내는 KPI그룹에서 금전이나 향응을 받았는지를 물어보는 것이었다.
“아, 아닙니다. 그런 일 없었습니다.”
“그런가? 음…… 알겠네. 일단 KPI그룹의 투자 제안은 거절하는 것으로 하지.”
“네, 알겠습니다. 대통령님. 기재부에도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KPI의 투자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한 윤강민 대통령은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자는 제스처를 취했다. 대통령의 제스처에 이기우 비서실장은 서둘러 다음 안건에 대해서 말했다.
“이번 건은 방호벽 설치에 관한 건입니다.”
“그렇지. 방호벽은 어디까지 진행이 되었나?”
“전라남도 쪽에서는 골조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는데, 함경도 쪽은 아직…….”
“뭐? 비슷한 시기에 진행했는데, 왜 그렇게 차이가 나는 것이지?
“그게…… 북한 쪽의 도로 상황이 좋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도로를 개설하면서 결계의 한계선에 나가다 보니 아무래도 시간이 더 걸리고 있습니다.”
지금 대통령과 비서실장이 이야기하는 것은 웜홀의 경계선에 칠 방호벽에 대한 내용이었다.
유리엘의 결계는 한국 전역을 ‘거의’ 덮고 있지만 그렇다고 모두 포함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유리엘은 척마진 때 펼쳤던 범위와 동일한 구역에 웜홀 차단 결계를 펼쳤는데, 그 범위에서 척마진과 마찬가지로 백두산을 포함한 함경도의 일부와 제주도를 포함한 전라도의 일부는 제외되어 있었다.
결계 밖의 마물이 결계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은 이미 공지된 사실이었기 때문에 지금 한국 정부는 결계의 범위에 맞추어 20미터 높이의 방호벽을 건설 중이었다.
물론 강대한 마물은 벽을 넘거나 부술 수 있겠지만, 방호벽에 상당수의 능력자를 배치하고 벽 밖에서 격살한다면 마물이 벽 안으로 들어와서 분탕질을 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에서 설치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이 방호벽은 한국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미국과 유럽의 국가들이 시행하는 것을 보고 한국 정부에서 따라 하는 것이었다.
지금 결계가 펼쳐진 세계 각국의 도시들은 도시 외곽의 결계선을 따라서 중세시대의 성곽과 같은 거대한 높이의 방호벽을 세우는 것이 유행 아닌 유행이었다. 이는 민간인의 피해를 최대한 막아보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군. 넓은 범위에 방호벽을 올려야 하니 시간이 걸린다는 것은 알겠지만, 최대한 서둘러 주게나. 신이 도와 우리나라에 이런 기회를 주셨는데, 만에 하나라도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우리가 노력해야 하지 않겠나?”
“그렇지요.”
“그리고 제주도의 주민 소개(疏開)작업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가?”
“예상보다 주민들이 잘 협조해 주고 있어 카운트다운이 끝나기 전에 모두 철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주도 역시 결계의 범위에서 빠져 있기에, 정부 차원에서 결계 안으로 주민들을 이주시키고 있었다. 주민들 역시 제니아의 공지를 보고 들었기에, 이런 정부의 방침에 잘 협조해 주고 있는 상황이었다.
“다행이군. 어쨌든 방호벽 설치를 서둘러 주게. 다른 보고사항은 없나?”
“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렇군. 그럼 그만 나가보게.”
“네, 대통령님.”
왠지 식은땀이 난 것처럼 보이는 이기우 비서실장이 나간 뒤 윤강민 대통령은 사무용 전화기의 수화기를 들고 단축 버튼을 눌렀다.
단축 버튼에 불이 들어온 곳은 이청영 공직자 비리 수사처장이라고 쓰여진 곳이었다.
이기우 실장은 다른 안건으로 넘어가서 다소 안심하는 듯 보였지만, 윤강민 대통령은 전혀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공직자 비리 수사처, 줄여서 공수처는 윤강민 대통령이 대통령직에 오르고 가장 먼저 창설한 기관으로 이름 그대로 공직자, 특히 고위 공직자들의 비리를 수사하고 기소하는 특수 부서였다.
이 공수처가 만들어지게 된 계기는 검찰은 누가 감찰하고 감사는 누가 감사를 하냐는 국민의 그런 요구에 부합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공수처는 대통령의 직속 기관으로 자체 수사와 대통령의 명만 받아 움직이는 기관으로 외압의 여지가 적은 곳이었다.
두 번의 통화음이 울리더니 이청영 처장이 전화를 받았다.
-네, 대통령님. 이청영입니다.
“이 처장, 이기우 실장 알지요? 우리나라에 결계가 펼쳐진 이후부터 오늘까지 이기우 실장의 행적에 대해 조사해서 보고해 주시오.”
비서실장의 자리는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자리였다. 늘 독대를 할 수 있음은 물론, 사적으로는 친구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자리이자 사이였다. 그만큼 책임과 권한이 큰 자리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런 비서실장에 대한 조사를 명령받아서인지 이청영 처장은 약간 당황한 듯한 목소리로 한 차례 반문하였다.
-네? 비서실장 말입니까?
“그래요. 비서실장. 제 말 잘 안 들리시나요?”
이청영 처장의 반문에 윤강민 대통령이 약간 역정을 내는 것 같자, 이 처장은 긴장하며 재빠르게 대답하였다.
-아, 아닙니다. 대통령님. 지시하신 사항 잘 알겠습니다.
“이번 주 중으로 중간 보고라도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대통령님!
그렇게 전화를 끊은 윤강민 대통령의 눈은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아무래도 이기우 실장이 뒤가 구린 행동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 실장,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만일 그렇다면 아쉽지만 당신과 같이 일하기는 힘들겠소. 휴…… 내 안목은 아직 멀었군…….’
윤강민 대통령이 자책하는 것은 자신이 비리를 무엇보다도 싫어한다는 것을 이기우 비서실장이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 비서실장이 비리를 저질렀다고 생각하니 자신의 안목에 대한 회의감이 들어서였다.
‘그런데 정말 한국이 신의 축복을 받기라도 한 것인가? 어떻게 이런 일이 연이어서 벌어지는 것이지? 김세훈 지부장도 잘 모르는 눈치던데, 벤자민 총재는 이 일을 좀 알고 있으려나? 한 번 만남을 주선해 봐야겠군.’
윤강민 대통령은 이능력과 무관하기는 하였지만, 이능 세계가 수면 위로 등장한 상황에서 유니온에 대해서는 모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유니온 한국 지부장인 김세훈 지부장도 몇 차례 만난 경험이 있었지만, 강민과 유리엘의 존재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