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세귀환록-186화 (186/203)

# 186

현세귀환록

186. 준비(1)

지금 전 세계의 국가들은 초비상사태에 들어간 상태였다. 지난달부터 제니아 시스템에서 마나장 통합의 카운트다운 시계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현재 D-87을 가리키고 있는 카운트다운 시계는 악마처리 퀘스트가 마무리되고 난 지 일주일 정도 지났을 무렵 제니아의 공지와 함께 나타났다.

제니아는 공지사항에서 차원 통합 및 마나장 통합의 개략적인 내용과 웜홀의 폭주까지 설명했다.

이로써 지금까지 고위 이능력자들만 알고 있던 차원 통합에 관한 사실을, 이제는 사람들이 모두 알게 된 것이었다.

특히 웜홀의 폭주를 들은 대다수의 일반인은 패닉에 가까운 공포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나라에서나 종말론이 대두하였고, 모든 생필품이 품절되는 상황이라 상당수의 국가가 계엄을 선포하기도 하였다.

특히 악마의 창궐 때 완전히 무너진 나라의 사람들은 세계 각국으로 이민을 신청하고 있었지만, 다른 나라들의 사정 역시 녹록하지 않아 재산과 능력을 지닌 소수의 사람만 이민이 허용되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 혼란은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유리엘이 펼친 척마진 덕분에 악마들에게 입은 피해는 초반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지만, 웜홀 폭주에서도 한국이 피해갈 것이라는 보장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금 슈퍼마켓, 마트를 가리지 않고 대부분의 생필품이 동나 버린 상황이었다.

하지만 강민의 집은 이런 혼란과는 관계없이 너무도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주말이라 가족 모두가 정원에 모여 다과를 먹고 있는 것이 마치 다른 세상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때 과일을 먹던 강서영이 강민에게 물었다.

“오빠. 우리도 뭐 준비해야 하는 거 아냐?”

“무슨 준비?”

“웜홀 폭주인가 뭔가가 된다면서. 라면이나 뭐 그런 생필품 같은 걸 사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서 말이야.”

“우리 가족은 평생 먹고살 만큼 음식이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엥? 어디에? 따로 창고라도 산 거야?”

강서영은 집에서는 그런 창고를 본 적이 없었기에 강민이 다른 곳에 창고를 샀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강민은 유리엘을 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언니는 왜? 아…… 아공간이 있었지. 근데 아공간에 그렇게나 많이 들어가?”

강서영 역시 유리엘이 아공간을 여는 것을 본 적이 있었기에 아공간을 유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조그만 물건을 넣고 빼는 것밖에 보지 못했기에 그렇게 많은 물건이 들어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호호호. 서울을 통째로 넣을 만큼 크니까 걱정하지 마.”

“네에? 헐……. 서울을 넣다니…….”

생각지도 못한 사이즈에 강서영은 혀를 내둘렀다. 그런 강서영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던 강민이 최강훈에게 말을 건넸다.

“시아는 또 그 녀석 만나러 간 거야?”

“아. 네, 형님. 요즘 데이트가 잦네요.”

“드미트리 그 녀석은 새로이 루시페르의 로드에 올랐다면서 시간이 많은가 봐.”

지금 강민이 말하는 그 녀석은 드미트리였다. 그때 정시아가 드미트리의 목숨을 구해준 이후 드미트리는 종종 정시아와 만남을 가졌고, 결국 둘은 진지한 만남을 가져보기로 결정한 상태였다.

더군다나 새로이 루시페르의 로드에 오른 드미트리는 루시페르의 원래 본부였던 러시아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 본부를 설치하며 루시페르의 재건을 천명했기에 둘이 만날 기회는 많이 있었다.

오늘도 정시아는 드미트리와의 데이트를 위해서 밖으로 나간 상태였다.

강민의 물음에 유리엘 역시 강서영에게 물었다.

“그런데 너희들은 데이트 안 해?”

“해야죠, 헤헤.”

“호호. 할 말 있으면 해봐. 그렇게 눈치만 보고 있지 말고.”

“언니 알고 있었어요?”

“그래, 넌 꼭 뭐 부탁할 때 머리를 꼬는 버릇이 있잖아.”

아니나 다를까, 강서영은 지금 오른손으로 그녀의 귀밑머리를 배배 꼬고 있었다. 그녀는 유리엘의 말을 듣는 순간 황급히 손을 내렸고, 모두 그녀의 행동에 웃음을 지었다.

“그, 그게…….”

“무슨 부탁이길래 그래?”

“언니. 힘들 거라는 건 아는데, 전에 악마들을 막은 것처럼 웜홀 폭주도 막아주실 수 있나요?”

강서영이 이야기하는 것은 정확히 말하자면 웜홀 폭주 자체를 막아달라는 것이기보다는, 악마를 막기 위한 척마진을 펼쳤던 것처럼 한국에서 웜홀 폭주를 막아달라는 것이었다.

강서영의 말에 최강훈 역시 기대감 가득 찬 얼굴로 유리엘을 보았다. 먼저 부탁하지는 못했지만, 최강훈 또한 그 부탁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강서영의 부탁에 유리엘은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강민을 바라보았다. 유리엘의 시선을 느낀 강민은 역시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할 수 있지. 뭐 척마진보다는 좀 더 힘이 들긴 하지만 말리야.”

척마진의 원리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물론 한반도를 다 덮는 범위에 사용하는 것은 일반적인 마법사라면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 원리 자체는 그렇게 어렵지 않은 편이었다.

하지만 지금 강서영이 요구한 웜홀의 발생을 막는 것은 해당 지역의 차원 좌표를 움직여야 하는 것으로, 유리엘이라도 한반도라는 넓은 범위에 그것을 펼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다소 힘이 든다는 것이지 그녀에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진짜요? 그럼 해주실 수 있어요?”

반색하며 기뻐하는 강서영에게 유리엘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래, 네 부탁이니 들어줄게. 근데 한국이 빠진 만큼 주변 국가에는 더 많은 웜홀이 발생할 거야.”

“아…….”

어차피 웜홀의 폭주라는 것은 양 차원 간의 마나 밀도를 맞추기 위한 과정이었다. 한국에서 나타날 웜홀을 막는다면 그만큼 주변국에 많은 웜홀이 생길 것이었다.

그건 마치 물줄기의 한 부분을 막으면 다른 부분으로 더 세찬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과 같은 원리였다.

유리엘의 말에 강서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주변국이라면 중국과 일본, 동남아 정도였다.

잠시 고민하던 강서영은 뭔가 생각해 냈다는 듯 기쁜 얼굴을 하고 유리엘에게 물었다.

“언니! 혹시 모든 대륙에서 웜홀을 막으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 아닐까요? 물론 언니가 힘이 많이 들긴 하겠지만…….”

전 지구를 대상으로 그런 결계를 치는 것은 유리엘이라 하더라도 뚝딱 해낼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제니아 시스템을 만든 것처럼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할 것이고, 마나 위성 또한 동원해야 가능한 일일 것이었다.

즉, 가능하긴 한 일이었다. 하지만 유리엘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서영아. 그렇게 할 수는 없어.”

“아……. 제가 너무 무리한 부탁을 드렸지요? 미안해요, 언니.”

“그런 게 아니라 어차피 웜홀의 폭주는 한 번쯤은 벌어져야 하는 일이야. 억지로 이 흐름을 막는다면 차원의 구멍인 웜홀이 아니라 차원막 자체가 찢어져 버려서 더 큰 재앙이 벌어질 수 있으니 말이야.”

유리엘의 말은 흐르고 있는 수도관을 막다 보면 수도관 자체가 파열되어 버리는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렇군요…….”

그 말을 끝으로 강서영은 잠시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 유리엘이 자신의 부탁을 들어준다면 주변 나라가 더 큰 피해를 입는다는 것에 대한 고민이었다.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강서영은 고개를 들고 유리엘에게 말했다.

“주변 나라에는 미안하지만, 언니 부탁드릴게요. 저는 우리 드림시티의 아이들이,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 중요해요. 그 나라에서는 저를 비난할 수 있겠지만, 저도 어쩔 수 없는 한국 사람이네요.”

다소 죄책감은 들었지만, 그래도 한국을 구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강서영은 부탁하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그래 알겠어. 그럼 이왕 하는 김에 서비스로 주요 국가들의 핵심 도시들 정도는 같은 결계를 펼쳐줄게.”

유리엘은 별것 아닌 것처럼 이야기하였지만, 한 도시 범위에 결계를 펼치는 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진짜요? 고마워요, 언니!”

“다른 나라의 도시에 결계를 펼치는데 왜 네가 고마워해?”

“히히. 그래도 그곳이라도 있으면 다른 나라도 피해가 좀 줄어들 것 같아서요.”

드림시티와 한국을 위해서 타국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결계를 부탁했지만, 강서영의 마음 한편은 불편하였다.

그런 상황에서 유리엘이 주요 도시라도 보호할 결계를 타국에 펼쳐준다 하니 강서영은 약간이나마 마음이 편해졌다.

그렇게 강서영과 대화를 마무리한 유리엘이 강민에게 심어를 건넸다.

[역시 서영이네요.]

[그렇지, 자신의 품 안에 들어온 아이들을 그냥 두고 볼 리가 없지. 준비는 다 되어 있어?]

[네, 이제 곧 발동할 거예요.]

[발동하기 전에 제니아를 통해서 공지 정도를 해주는 것이 좋지 않겠어?]

[그래야지요. 그래야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테니 말이에요.]

조금 전 강서영이 처음 웜홀 차단에 대한 말을 꺼낼 때, 유리엘이 그런 표정을 지었던 이유는 이미 그녀가 웜홀 차단에 대한 준비를 해놓았기 때문이었다.

과거 악마 창궐 때 그녀가 마음에 상처를 입은 것을 고려하여 유리엘이 조치를 하려 했던 것이었다. 즉, 강서영의 부탁이 없었어도 한국 전역과 다른 국가들의 주요 도시들에 대한 웜홀 차단을 할 예정이었다.

다만, 강서영이 부탁할 때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은 그녀가 그런 부탁을 할 때, 어느 정도의 각오가 되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자신이 한 부탁의 무게를 깨닫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사실 강민과 유리엘이 제니아를 통해 차원 통합과 웜홀의 폭주에 대해 사전에 알린 것은 인류가 단합하여 그것에 대해 대비를 하길 원했던 것이었지, 이렇게 패닉에 빠지길 원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모든 인간이 강민과 유리엘처럼 강한 정신력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강민의 의도와는 달리 사람들은 대비보다는 공포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패닉에 빠진 사람들이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하여 생각보다 더 큰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 강민과 유리엘은 무언가 사람들이 기댈 수 있는 것을 주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이 바로 주요 도시에 웜홀 발생을 차단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강서영을 배려하기 위해서, 한국 정도에만 펼치려던 결계를 각국의 주요 도시까지 다 확장하여 펼치기로 계획을 변경한 것이었다.

물론 웜홀을 차단하는 것이지, 마물을 막는 것은 아니어서 도시 외부에서 발생한 웜홀에서 나온 마물들이 도시 내부로 들어오는 것은 각국에서 알아서 처리하여야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결계 내부의 사람들은 큰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었다. 도시의 외곽만 지키면 되기 때문이었다.

도시의 외곽만 잘 지켜낸다면 충분히 삶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기에, 이제는 희망을 가진 사람들은 강민과 유리엘의 의도대로 마물에 대한 대비를 할 것이 분명하였다.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할 것 같군. 너무 의존하게 해도 안 될 테니 말이야. 그런데 웜홀 차단 결계는 영구히 유지되는 거야?”

결계의 유지 기간은 굳이 강서영이 듣지 말아야 하는 이야기가 아니었기에 강민은 심어가 아닌 육성으로 유리엘에게 물었다.

“음. 일단 추후 상황을 봐야 할 것 같은데, 지금 상황에서는 영구히는 아니고, 아무래도 제가 있을 동안만 유지될 것 같네요.”

“그래? 왜 그런 거지?”

“그게 안정화된 차원에서라면 몰라도 지금 차원 통합이 진행되는 이 차원에서는 유동적인 차원의 흐름에 대응하려면, 아무래도 주기적으로 대응 술식의 대역대를 수정해야 해서 그래요. 뭐 제니아에게 맡길 수도 있겠지만, 제니아의 역량으로 그것까지 하려면 지금 시스템을 운용하는 것에도 차질이 생길 테니 아무래도 힘들 것 같네요.”

제니아는 분명 대단한 능력을 지닌 인공 정령이었지만, 그 한계가 있었다. 제니아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지금 유리엘이 말한 것까지 다 수행하기에는 다소 역량이 떨어진다 할 수 있었다.

어쨌든 결계가 영원하지 않다는 유리엘의 말을 들은 강서영은 놀라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 그럼 그 결계라는 것이 영원하지는 않은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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