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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세귀환록-185화 (185/203)

# 185

현세귀환록

185. 해결(3)

“크윽…… 네놈들도 보통이 아니군. 마치 합격술을 배운 것과도 같이 움직이는군…….”

드레이크의 말에 최강훈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그걸 이제야 알았어? 생각보다 둔하군.”

“그러게 말이야. 이런 흐름을 보고서도 합격술을 생각하지 못했다니, 멍청한 것 아닌가 싶어.”

지금 최강훈과 엘리아는 실제 합격술을 사용하고 있었다. 제니아 시스템을 통해서 마법과 무공의 합격술을 익혀 자신들에게 맞게 재해석하여 수련해왔던 것이었다.

다만, 드레이크는 마법과 무공의 합격술이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기에 그런 말을 하였다.

“그렇군……. 하지만 절대적인 힘 앞에서는 그런 것들이 다 무용지물이지! 하압!”

드레이크는 우선 피의 격노를 사용하였다. 진혈을 자극하며 터져 나온 드레이크의 폭발적인 힘에 최강훈과 엘리아는 잠시 밀렸고, 그 순간 드레이크는 전장을 이탈하여 드미트리에게 날아갔다. 우선 복수부터 마치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드미트리는 갑자기 자신을 공격해 오는 드레이크를 피하고자 하였는데, 드레이크의 손이 그에게 뻗쳐지는 순간 그의 몸은 순간적으로 덜컥 멈추고 말았다. 염력과 비슷한 이능의 일종이었다.

일시적으로 멈춘 것이었지만 그것으로도 드레이크가 복수를 마치기엔 충분했다.

“죽어라! 블라디미르의 마지막 핏줄!!”

검강을 드리운 드레이크의 검이 몸이 굳은 드미트리의 목으로 떨어지려는 순간, 드미트리의 좌측에서 누군가 튀어나오며 그의 몸을 튕겨냈다. 바로 정시아였다.

그간 드미트리를 원망했던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정시아가 드미트리를 밀쳐내고 드레이크의 공격을 받았다.

스아악!!

“아악!!”

정시아가 몸으로 드미트리를 튕겨냈기에 드미트리는 드레이크의 살수를 피했지만, 그의 공격을 받은 정시아는 등에 엄청난 상처를 입은 채 바닥에 나뒹굴었다.

뿜어져 나오는 피의 양으로 보아 보통의 상처가 아니었다. 치명상이었다.

“큭! 이년이 방해를!!”

드레이크는 뒤따라온 최강훈과 엘리아가 공격을 감행하는 것까지 무시하고 드미트리를 죽이려 했는데 정시아의 방해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하자, 드미트리를 죽인 후 정시아 또한 죽이려고 하였다.

하지만 상황은 그의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드레이크의 뒤를 쫓아온 최강훈과 엘리아의 매서운 공격이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둘의 공격을 무시하고 살수를 펼치려고 하였지만, 그랬다가는 복수보다 자신의 목숨이 먼저 떨어질 것 같았기에 결국 드레이크는 최후의 선택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좀 성급하게 보일 수도 있었지만 아바투르를 처치한 자가 이 전장에 달려든다면, 그때는 그 최후의 선택을 할 시간조차 없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어차피 이곳에서 죽을 것, 모두 다 같이 가자꾸나!!”

그렇게 외친 드레이크는 곧바로 피의 폭주를 시전했다. 드레이크는 일단 피의 폭주가 발동되면 가장 먼저 드미트리를 죽이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진혈이 끓어오르면서 갑자기 의식이 흐려지더니 어느 순간 의식이 끊어져 버렸다.

최강훈과 엘리아는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던 드레이크의 힘이 일순간 잠잠해진 것에 의아함을 느꼈다. 하지만 어쨌든 그를 처리해야 하기에 공격을 펼치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드레이크가 머리를 번쩍 들더니 광소를 내뱉었다.

“크하하하하하!! 드디어 부활하였구나!!”

“갑자기 무슨 소리냐!!”

“크크큭. 이놈이 피의 폭주를 사용해 주는 바람에 내가 이놈의 몸을 장악할 수 있게 되었지. 초면이니 새로이 소개해야겠군. 난 카락스라고 한다."

"카락스?"

"아. 내 이름을 모르는 자들이 많겠군. 블러디 나이트메어 카락스라면 알겠나?”

자신을 블러디 나이트메어 카락스라는 말에도 최강훈과 엘리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이름 역시 처음 듣는 이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곁에 있던 뱀파이어들은 블러디 나이트메어라는 이름에 그가 누구인지 파악했는지 경악에 찬 목소리를 내뱉었다.

“블러디 나이트메어!!”

“카락스라니!”

뱀파이어계에서는 카락스는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물론 그 전설은 악명으로 쌓인 것이었다.

변종 뱀파이어의 시조나 마찬가지인 카락스는 그가 활동할 당시 전 뱀파이어의 사 분의 일을 그 혼자 먹어치운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결국 각 혈족의 로드가 힘을 합쳐 그를 해치운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그 카락스가 이렇게 부활한 것이었다.

“그럼 드레이크는 어떻게 된 것이냐?”

하지만 지금 드레이크와 싸우던 최강훈에게 중요한 것은 드레이크였기에 그에게 드레이크의 행방을 물었다.

“크크, 이제 그놈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이지. 내 블러드 코어에 흡수되어 버렸으니 말이야. 어쨌든 대화는 여기까지다, 오랜만에 피 맛을 좀 봐야겠어. 다들 피가 맛있어 보이는구나. 하나씩 먹어 치워주마!”

드미트리를 포함한 뱀파이어들은 카락스가 내뿜는 기세에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지금 카락스가 내뿜는 기세는 그랜드 마스터를 능가한 신위, 즉 광검지경에 다다른 기세였다.

최강훈과 엘리아 역시 카락스가 조금 전 드레이크보다 더 위험한 상대임을 파악했기에 다소 침중한 얼굴로 그의 기세를 받아냈다.

그런데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외치는 카락스의 머리 위로 갑자기 혜성과도 같은 빛이 떨어졌다.

콰앙!!

웃고 있던 카락스는 그 자리를 피하지도 못한 채 빛에 맞고 사라져 버렸다. 시체조차 남기지도 못한 완벽한 소멸이었다.

그의 소멸 뒤로 강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참 이놈 저놈 할 것 없이 잘도 다른 사람 몸에 들어가는구나.”

조금 전의 빛은 카락스의 행태를 보며 눈살을 찌푸리던 강민이 광검의 운용식 광검결 중의 하나인 낙성흔(落星痕)을 펼친 것이었다.

카락스 역시 부활하며 그랜드 마스터를 넘어 광검지경의 초입까지는 들어갔다 할 수 있었으나 강민의 공격을 받아낼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수천 년 만에 부활한 카락스는 부활을 기다렸던 시간이 무색하게 부활한 지 몇 분 만에 먼지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허무한 죽음이었다.

* * *

“고맙소. 강 시주.”

“고맙긴요. 별일 아니었습니다.”

“별일이 아니라니, 세상을 구했다고 해도 될 만큼 큰일이오.”

대각선사는 거듭 강민을 칭찬하며 말했고, 그의 옆에 있던 드미트리 역시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강 회장님, 저는 루…… 시페르의 제5 대행자 드미트리라고 합니다.”

드미트리는 루시페르를 언급할 때 잠시 망설이긴 하였지만, 자신이 루시페르의 대표나 마찬가지인 상황이기 때문에 강민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우리 시아가 오해를 했더군. 원래부터 그럴 목적은 아니었지만, 그로 인해 결과적으로 자네와 자네 일행들을 살릴 수 있었으니 그것으로 오해한 것에 대한 사과를 대신하지.”

“아,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조금 전에 실비아, 아니, 시아 씨에게 목숨을 구원받았으니 사과는 당치도 않습니다.”

분명 조금 전 드레이크가 공격할 때 정시아의 희생이 없었으면 드미트리는 목숨을 잃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긴 그렇기도 하군.”

“그렇습니다. 그런데 시아 씨는 괜찮으신가요?”

“그래. 지금 저쪽에서 회복 중이니 가면 만날 수 있을 거야.”

“그럼 시아 씨께 제가 따로 감사의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해.”

드미트리까지 자리를 옮기자 대각선사가 강민에게 나직이 말했다.

“흠흠. 미안하네만, 백 가주에게도 치료 마법을 사용해 줄 수 있으신가? 포션을 먹이고 추궁과혈을 하는데 좀처럼 상태가 돌아오지 않는구만.”

백무성의 상처는 아무래도 광검에 당한 상처, 더군다나 아바투르의 마기까지 서린 광검이어서 그런지 일반 상처에 비해 회복이 더뎠다.

어쨌든 목숨까지 구해줬는데 또 부탁하는 것이 다소 민망했던지 대각선사는 쑥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대각선사의 요청에 대한 대답은 강민이 아닌 유리엘이 하였다.

“그러지요, 선사님.”

대답을 마친 유리엘은 늘 그렇듯 손가락을 튕겼고, 거대한 마나의 움직임이 백무성의 주위에 요동쳤다. 아무래도 마기까지 있는 상처이다 보니 보통의 치료마법보다는 더 큰 마나를 필요로 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유리엘의 마법은 아바투르의 마기를 잠식하며 백무성의 몸을 치유해 나갔다.

“호오, 역시 대단하구려. 그럼 백 가주도 다 나은 것이오?”

“육체의 상처는 치유하였으나 단전이 깨지며 마나가 유실된 것을 복구하려면 상당한 시일 동안 회복에만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렇구려…….”

“그리고 치료하는 김에 저기 쓰러진 스님들도 치료했습니다. 이미 돌아가신 분들은 어쩔 수 없겠지만 말입니다.”

“아…….”

유리엘의 말에 대각선사는 항마금강승들을 돌아보았다. 30여 년의 시간 동안 수많은 희생 끝에 간신히 다섯 명의 금강승이 만들어졌는데, 첫 출도에 두 명이 목숨을 잃고 말았다는 사실이 대각선사의 표정을 어둡게 만들었다.

비척비척 금강승 쪽으로 걸어간 대각선사는 유리엘의 마법에 의식을 찾은 세 명의 금강승을 끌어안고 한줄기 눈물을 흘리며 그들을 다독여 주었다.

* * *

정시아는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치명상을 입었지만, 유리엘이 심어둔 마법기 덕분에 심맥을 보호받을 수 있어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게다가 지금은 유리엘이 치료 마법까지 시전한 상태라 다소 체력만 빠졌지, 상처 하나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드미트리가 정시아를 찾아갔을 때 그녀는 최강훈과 엘리아와 함께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까 오빠 엄청 느끼했던 거 알아?”

“그, 그러니까…….”

“뭐라고 했더라? 막돼먹은 입 어쩌고였는데? 히히히.”

“이거 참 도와줬던 사람한테 너무한 거 아냐?”

“히히. 그래도 그 말이 너무 느끼해서 말이야. 앞으로는 느끼남이라 불러야겠어. 키킥.”

정시아는 무뚝뚝한 최강훈을 놀리면서 재미있어했는데, 그녀의 눈 가득히 최강훈에 대한 고마움이 담겨 있었다.

지금 정시아는 최강훈에게 직접적으로 고맙다는 말을 하는 것이 부끄러웠기에, 이렇게 놀리는 말로 자신의 마음을 대신하고 있었다.

최강훈 역시 그녀의 그런 마음을 알고 있기에 정시아의 그런 놀림에도 전혀 기분이 상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치명상에서 회복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정시아의 상태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그것은 수십 년간 가슴 속에 품고 있었던 복수를 해냈기 때문이었다.

물론 수십 년간 잘못된 사람을 오해하긴 하였으나 결과적으로는 제대로 된 원흉을 찾아서 복수했기에 그녀의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일행에게 드미트리가 다가와서 말을 건넸다.

“시아 씨 몸은 좀 괜찮으신가요?”

“아…… 네…….”

“아까는 감사했습니다. 시아 씨 덕분에 목숨을 구했습니다.”

드미트리는 정식으로 정시아에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인사를 하였고, 이유는 모르겠으나 그의 인사에 정시아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런 정시아의 모습에 엘리아는 최강훈에게 신호했고, 둘은 드미트리와 정시아만을 남기고 자리를 비켜주었다.

정시아는 최강훈과 엘리아가 자리를 뜨는 것도 인식하지 못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드리트리의 인사에 답했다.

“벼, 별일 아니었어요. 그, 그리고 저도 드미트리 씨한테 잘못한 점이…….”

“그건 시아 씨가 잠깐 오해한 것일 뿐이었지요. 사실 그런 건 별일이 아니에요. 하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신의 생사를 거는 것은 정말 큰 일입니다.”

거듭되는 드미트리의 감사 인사에 정시아는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의 말투 하나하나,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그녀의 마음을 흔들고 있었다.

‘뭐지? 왜 이렇지? 분명 이 사람은 그때의 그 사람이 아닌데 내 기분이 왜 이러지?’

정시아는 지금 드미트리의 모습에서 과거 드미트리의 모습이 보였다. 드미트리는 정시아가 뱀파이어가 되기 전 인간 시절에 처음 반했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지금까지는 드미트리를 원수로 생각하며 그 모습들을 지우기 위해서 애썼지만, 그가 원수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그의 모습과 행동들은 과거 그녀가 반했던 그 모습으로 정시아에게 다가왔다.

그래서 정시아의 마음은 마치 수십 년 전처럼 두근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그녀에게 새로운, 아니, 수십 년간 가슴 깊은 곳에 숨겨왔던 사랑이 다시 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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