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3
현세귀환록
183. 해결(1)
앞으로 나서는 최강훈을 잠시 살펴본 드레이크는 조금 의외라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오호라. 뒤에 있을 때는 마스터인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마스터는 넘어섰군. 그래 봤자 그랜드 마스터에 오른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네놈 정도가 내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이냐?”
마스터 정도라고 생각했던 최강훈이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라는 것에 드레이크는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그래 봤자 그를 위협할 정도는 아니었기에 드레이크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 한 명이 다가 아니었다.
“그럼 한 명 더 있다면 어떨까?”
한 걸음 걸어 나와 최강훈과 정시아의 옆에 서서 말을 한 사람은 붉은 머리의 엘리아였다.
엘리아 역시 드레이크의 말에 분노하며 앞으로 나선 상황이었는데, 최강훈이 먼저 나서는 바람에 상황을 지켜보다 이제야 입을 연 것이었다.
“흐흐. 네년도 9서클 마법사군. 제니아 시스템인가 뭔가가 나오면서 마스터급 능력자들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오는 것은 알았지만, 그랜드 마스터급도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군.”
악인인 드레이크는 제니아 시스템을 사용하지는 못했지만, 시스템 존재 자체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서 수백 년의 시간을 보냈고, 블러드 코어까지 있는 자신이 아무리 두 명이라 해도 이제 갓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든 둘에게 밀릴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최강훈 역시 드레이크의 그런 자신감을 읽었지만, 자신과 엘리아가 함께한다면 충분히 할 만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근거리 공방을 담당하는 최강훈과 원거리 공격 및 최강훈의 지원을 담당한 엘리아의 조합은 상성이 매우 좋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따로따로 상대한다면 잡기 힘들었을 SSA급의 마물도 엘리아와 함께 잡아낸 경험도 있었기에, 드레이크의 자신감만큼 최강훈과 엘리아 역시 자신감이 있었다.
그렇게 드레이크와 최강훈, 엘리아가 일촉즉발의 상황에 있을 때, 유리엘은 편안한 목소리로 강민에게 말을 건넸다.
“저 녀석은 애들한테 맡겨두고 우리는 저기 있는 이번 사건의 원흉이나 잡아볼까요?”
어차피 유리엘이 제공한 마법기 때문에 최강훈이나 엘리아나 죽음에 가까운 위기는 있을지언정 죽을 일은 없었다.
그렇기에 다소 밀릴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강민이나 유리엘은 승패가 판가름 날 때까지는 이들의 전투에 개입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래, 잡아야지. 저 뒤에서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는 모습을 보니 완전 맹탕은 아닌 것 같군.”
강민의 말처럼 지금 아바투르의 머릿속은 상당히 복잡했다. 은신을 감지하지 못한 것은 그쪽 분야로 특화된 마법이라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지만, 지금 강민과 유리엘의 경지가 잘 가늠이 안 되는 것이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은 능력을 감추기 위한 별도의 수법을 펼치지 않고 있었지만 고수의 실력을 하수가 가늠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에, 아바투르의 상황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둘이 마왕인 자신을 능가하는 무력을 가졌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아바투르는 무언가 특별한 방법으로 그들이 경지를 감추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며 생각을 마무리 지었다.
어느새 자신의 앞에 다가온 강민과 유리엘을 보며 아바투르는 입을 열었다.
“호오. 멀리서 볼 때도 심상치 않은 미모더니,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더 아름답구나. 네년은 특별히 마족으로 만들어서 내 곁에 두마.”
아바투르는 색(色)을 밝히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무성욕자는 아니었다. 그래서 마계에 있을 때도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서큐버스들로 잠자리 시중을 들게 하곤 했다.
다만 지구에 온 이후로는 한 번도 성적인 욕심을 보인 적이 없었는데, 그것은 지구의 인간들이 마계의 서큐버스에 비해 떨어지는 외모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전혀 흥이 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유리엘을 본 아바투르는 그녀가 가진 절세의 미모에 오랜만에 성욕이 동함을 느끼고, 전투 후에 그녀를 통해서 성욕을 풀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맹탕이 아니란 말은 취소해야겠네. 마왕급이라 해서 조금 기대했더니, 지금 하는 짓을 보니 기대 이하겠군. 어쨌든 애초에 살려둘 생각도 없었지만 방금 그 말 때문에 네 수명이 더 줄어들었다.”
유리엘이 저런 시선을 받는 것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었지만, 자신의 여자에게 그런 시선을 주는 것을 용납할 강민이 아니었다.
강민이 아바투르의 수명을 언급하자 유리엘이 웃으면서 강민에게 물었다.
“호호호. 어차피 여기서 해치워봤자 강제 귀환밖에 더 되겠어요?”
그녀의 말처럼 이곳에서 해치워봤자 아바투르를 완전히 죽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완전히 마족을 죽이기 위해서는 마계에서 해치워야 했다.
하지만 강민은 나름의 생각이 있었다.
“그렇지, 이곳에서 완전히 죽이기는 힘들겠지. 그렇다고 저놈 하나 때문에 마계까지 따라가기도 그렇고. 하지만 마핵을 박살 내면 강제 귀환되어 마계로 돌아가서도 과거와 같은 능력을 찾기는 힘들걸?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할 것 같아.”
“하긴 그렇겠죠. 마계의 성향이라면 힘이 떨어진 악마는 언제라도 잡아먹히고 말 것이니 말이에요. 결과적으로는 민의 말을 지킬 수 있겠네요. 호호호.”
그렇게 강민과 유리엘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옆에서 엄청난 폭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드디어 최강훈과 엘리아가 드레이크와 격돌하면서 터져 나온 소리였다.
“이제 슬슬 우리도 시작하지.”
시작하자는 말과 동시에 광검을 꺼내어 든 강민을 보고 아바투르는 기억이 났다는 듯한 표정으로 외쳤다.
“아! 라이트 소더와 젊은 남녀! 그렇군. 네가 바로 사스투스를 반푼이로 만든 장본인이구나!!”
오랜만에 듣는 사스투스라는 이름에 강민 역시 아바투르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사스투스라……. 그럼 네가 사스투스의 두목이라는 아바루르겠군.”
과거 사스투스는 자신이 아바투르 휘하의 악마임을 강민에게 밝혔었기에 강민은 아바투르의 이름까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아바투르는 자신의 이름까지 알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기에 의외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허. 그 반푼이가 내 이름까지 언급했던가? 뭐 어쨌든 이곳에서 네놈만 지운다면 더 이상 물질계에서 나를 막을 자가 없겠구나. 하하하.”
자신의 실력에 절대적 자신감을 갖고 있는 아바투르는 다 잡은 고기를 보는 것처럼 호탕한 웃음소리를 냈다.
아바투르가 이렇게 자신감을 가지는 이유는 저기 의식을 잃은 채 누워 있는 백무성을 상대해 본 경험에 의해서였다.
백무성은 인간 중에서는, 아니, 마족까지 포함해도 분명 강자라 할 수 있는 정도의 경지였지만, 그래도 마왕인 자신을 상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경지였다.
애초에 천족이나 용족도 아닌 인간 따위가 자신을 능가하는 무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아바투르는 이제 마무리를 짓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누구부터 올 것이냐? 너? 아니면 네 옆에 있는 여자? 뭐 둘 다 한 번에 덤비는 것이 시간도 절약될 수 있겠지.”
자신의 실력에 대해 확고한 신뢰를 하고 있는 아바투르의 말에 유리엘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강민을 바라보며 물었다.
“민, 어떡할래요? 내가 처리할까요?”
“아니야. 저런 놈은 내가 처리하지.”
그렇게 말한 강민은 자신의 바스타드 소드를 빼 들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섰고, 그 모습에 아바투르는 좋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좋아. 그래, 네놈부터 처리해야 뒤에 있는 저년이 순순히 내 말을 따르겠지. 흐흐.”
“말이 많군.”
더 이상 아바투르의 더러운 말들을 들을 생각이 없는 강민은 그의 말을 자르며 광검을 발현시켰다.
“호오. 확실히 저 늙은이보다는 기운이 강한데? 간만에 재미있는 전투가 되겠어.”
백무성은 라이트 소더이긴 했지만 아무래도 초입이다 보니 아바투르의 상대로는 한창 부족한 실력이었다. 그래서 아바투르의 입장에서는 전투라고 할 수도 없을 정도로 시시한 일전이었다.
하지만 강민의 검에 실린 기운은 아바투르라 해도 쉽게 보기는 힘든 강한 기운이 들어 있어 아바투르는 만족한 표정으로 자신의 광검을 빼내 들었다.
아바투르의 광검은 검푸르게 빛나는 묘한 느낌을 주는 검이었다. 마치 손을 대면 얼어붙어버릴 것만 같은 불길함을 내뿜는 그 광검을 본 강민은 약간 인정한다는 표정으로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크크. 지금이라도 저 여자와 함께하던지, 그럼 더 재미있는 전투가 될 것 같은데 말이야.”
“마나 운용은 괜찮아 보이지만 확실히 안목은 별로군.”
“만용을 부리시겠다? 흐흐. 그래 그럼 들어와 보거라.”
마치 지도대련을 하겠다는 식의 말을 하는 아바투르를 보다가 강민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아니 사라진 것과도 같이 빠른 속도로 움직인 것이었다.
하지만 광검을 꺼내면서 그랜드 마스터급 초월의 영역을 운용 중이던 아바투르는 강민의 빠른 움직임을 눈으로 따라가며 볼 수 있었다.
‘흐흐, 이 정도인가? 인간치고는 강한 편이지만……. 엇!’
충분히 강민의 움직임을 알아차리고 있던 아바투르는 강민을 어떻게 요리할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자신의 지척까지 다가온 강민의 기척이 순간적으로 사라지자 내심 경호성을 내며 전신을 방어하였다.
콰아앙!!
아바투르가 방어막을 올린 것과 동시에 엄청난 폭음과 함께 아바투르는 순식간에 몇백 미터나 날아가 버렸다. 마치 고대의 거인족이 망치로 공을 때린 것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크윽!!!”
충격은 컸지만, 제때 호신막을 올렸기에 치명적인 일격은 아니었다. 아바투르는 조금 전 이 공격에 지금까지 강민을 경시했던 마음을 버리고,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이미 기세는 넘어가 버렸다. 강민의 공격에 날아가던 아바투르가 기를 뿜어내며 제자리에 선 그때, 강민의 이격이 떨어졌다.
이번에는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일도양단(一刀兩斷)의 공격이었다.
쿠아앙!!!
조금 전 공격에 아바투르가 호신막을 더 두텁게 하였기에 망정이지, 그것이 아니었다면 이번 공격으로 그의 호신막은 깨어지고 말았을 것이었다.
문제는 그 공격이 끝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미 호신막 채로 바닥에 처박혀 버린 아바투르의 머리 위로 폭풍과도 같은 강민이 공격이 이어졌다.
쾅! 쾅! 쾅! 콰앙! 콰아아앙!
순식간에 십수 차례의 공격이 떨어졌고, 아바투르의 호신막은 금세 너덜너덜해져 버렸다. 이대로 가다가는 그냥 강제 귀환될 가능성이 높았다.
‘으윽…… 이놈의 능력이 내 예상을 훨씬 상회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최선을 다하는 것인데, 이미 기세를 놓쳤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아깝기는 하지만 마기 폭발로 저놈을 잡고, 육체가 부서지기 전에 드레이크의 몸으로 갈아타야겠군. 마기 손실이 크긴 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 없다!’
호신막이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고 판단한 아바투르는 서둘러 생각을 정리하였다. 마기 폭발을 통해서 강민을 해치운 뒤, 지금의 육체를 버리고 드레이크의 몸으로 옮겨가려는 판단이었다.
원래부터 아바투르는 이번 일이 끝나면 드레이크의 몸으로 갈아타려 했기에 지금의 육체를 버리는 것 자체는 아깝지 않았으나, 마기 폭발을 사용한다면 드레이크의 몸을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하고 마기의 손실도 많다는 점이 그를 망설이게 하였다.
드레이크의 몸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대법을 통해서 그의 몸과 영혼을 자신의 마기와 일치시키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 대법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마기 폭발을 사용한다면 지금 육체의 수명이 극도로 떨어져 버려서 드레이크의 몸에 대법을 펼치고 안정화시킬 때까지 지금의 육체가 버티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물론 자신의 능력이라면 그런 대법 없이 드레이크의 몸으로 옮겨갈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옮겨간다면 드레이크의 몸은 지금 이형태의 몸보다도 동조화율이 떨어질 것이었다.
더군다나 급작스럽게 숙주를 바꾸어야 하기 때문에 그에 따른 마기의 손실 역시 감수해야 할 부분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위급한 상황을 탈출하기 위해서는 아바투르는 그런 방법이라도 선택해야 할 입장이었다.
결국 결단을 내린 아바투르는 자신의 마핵에 정해진 술식에 따라 마나를 주입하였다. 바로 마기 폭발을 시전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