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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세귀환록-180화 (180/203)

# 180

현세귀환록

180. 격돌(2)

흰색 띠 금강승의 다소 비웃는 듯하는 말에도 바스라는 대답조차 할 수 없었다. 사방에서 자신을 죄여오는 압력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금 전 금강승이 했던 자만심이, 자신을 죽인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갔다.

이들이 이런 기술을 펼치기 전에 전력을 다해서 해치웠어야 했다는 생각이 바스라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지만, 이미 시기는 늦었다.

비틀거리는 바스라가 어렵게 검강을 발현시키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다섯 명의 금강승은 손쉽게 각자의 계도에 도강을 불어넣더니 전투준비를 마쳤다.

다섯 개의 검강이 발현되면서 전장의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어갔고 팽팽하다 못해 터질듯한 긴장감이 사방에 흘렀다.

하지만 금강승들은 바스라에게 섣불리 접근하지 않았다. 지금 바스라의 상황이 좋지 않긴 하였지만, 금강승 하나하나보다는 그가 월등히 강했기에 비록 바스라가 제 컨디션이 아니라 해도 금강승들은 그를 쉽게 보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이렇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자신들의 봉마진이 어느 정도 안정화되었다고 판단한 흰색 띠의 금강승은 지금까지 하고 있던 기마 자세를 풀고 기를 집중하더니 서서히 계도를 머리 위로 올렸다.

금강승의 모습에 바스라 역시 공세가 시작될 것임을 직감하고 흩어지려는 마기를 부여잡고 사방으로 기파를 뿌려내며 전투준비를 했다.

이윽고 흰색 띠의 금강승이 금강배불(金剛拜佛)의 식으로 계도를 상단에서 하단으로 뿌렸고, 이것이 신호나 된 듯 나머지 네 명의 금강승 또한 공세를 펼치기 시작했다.

휘익!

쾅! 쾅! 쾅! 콰앙- 퍼억!

썩어도 준치였다. 아무리 바스라가 금강승들의 봉마진에 빠져 광검를 뽑아내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기본 실력은 금강승보다 높았다.

그렇기에 다섯 명의 금강승이 폭풍 같은 도세를 날렸지만, 바스라는 모조리 막아내었고 심지어 마지막으로 공격한 적색 띠의 금강승에게는 발차기까지 날리며 타격을 주었다.

하지만 치명상은 아니었기에 적색 띠의 금강승은 곧바로 전장으로 다시 뛰어들었고, 수레바퀴처럼 재차 몰아치는 다섯 금강승의 공세에 바스라는 조금씩 조금씩 밀리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반복되는 공방에 조금씩 상처가 늘어나던 바스라는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라면 힘들다……. 강제 귀환 될지도 모르겠어. 크윽…… 이딴 놈들한테 이걸 쓸 줄은 몰랐군. 일단 이 공격의 흐름을 끊어 시간을 벌어야겠군.’

무언가 결심한 바스라는 자신의 롱소드에 막대한 마나를 불어넣은 후 바닥을 찍었다.

콰앙!!

바스라의 검에 서린 마나는 대지의 마나와 충돌했고 사방으로 엄청난 충격파를 터뜨렸다.

그 충격파에 돌아가는 바퀴와 같은 차륜전으로 바스라에게 공격을 가하던 금강승들의 공세는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큰 공격 뒤에는 언제나 허점이 생기게 마련이었다. 이런 공격을 했다면 순간적으로는 마나 출력이 떨어질 것이 당연하였기에, 눈빛을 주고받은 금강승들은 충격파가 끝나는 시점을 노리기 위해서 모두 계도에 서린 푸른빛의 도강을 더 날카롭게 세웠다.

역시 금강승들의 생각처럼 충격파는 계속될 수 없었다. 파장이 약해질 때를 노리던 금강승들은 충격파의 힘이 줄어드는 시점에 일제히 공격을 펼쳤다.

그때였다. 조금 전의 충격파보다도 훨씬 강한 힘이 바스라의 몸을 중심으로 터져 나오면서 다섯 금강승을 덮쳤다.

쿠아아앙!!!

큰 공격 뒤에 딜레이도 없이 이어서 큰 공격을 하리라곤 생각하지 못한 금강승들은 이번 공격에 큰 충격을 받고 뒤로 튕겨 나갔다.

이번 바스라의 공세에 안정화되었던 봉마진조차 크게 흔들리며 다소 불안한 상태로 변해 버렸다.

“크윽…… 역시 한 수가 있군. 하지만 그 공격에 이어서 또다시 저런 공격을 펼쳤다면 저놈 역시 좋은 상태는 아닐 것이다. 빨리 끝내자!”

큰 충격을 받기는 하였지만, 전투 불능의 치명상은 아니었다. 적색 띠의 금강승이 개중 실력이 가장 떨어지는지 충격에서 회복되는 것이 느렸지만, 그 역시 전투 불능의 상태는 아니었다.

한편, 흰색 띠 금강승의 말처럼 바스라는 큰 충격파를 내보낸 뒤 그 중심에서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마치 전투 불능이 된 것처럼 보이는 바스라의 모습에 가장 많은 타격을 입은 적색 띠의 금강승이 자신이 끝내고자 하는 욕심을 감추지 않고 공세에 나섰다.

바스라의 지척까지 접근하였음에도 그가 움직이지 않자, 적색 띠의 금강승은 자신이 마무리한다는 생각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푸른 도강을 드리운 계도를 천지분획(天地分劃)의 식으로 강하게 내리그었다.

카앙-!

하지만 그의 계도는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아무것도 보이지는 않았지만 바스라의 주위 대략 1미터 정도에는 그를 보호하는 투명한 구체가 나타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숙이고 있던 바스라는 고개를 번쩍 달고 잠시 멈칫하고 있는 적색 띠 금강승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덥석!

“크크큭. 한 놈만 걸린 것인가?”

“커헉…… 저, 전투 불능이 아니었다는 말인가?”

“전투 불능은 무슨……. 네놈들의 이상한 진법만 아니었어도 마기 폭발까지 사용하지는 않았을 텐데…… 어쩔 수 없지. 이왕 이렇게 된 것 네놈들이라도 다 해치우고 가야겠군.”

바스라가 잠시 고개를 숙이고 침묵하고 있었던 이유는 마기 폭발 후 급증한 마기와 체내의 상태를 맞추기 위한 동조화 과정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동조화가 이루어질 때에 급증한 마기가 체외로 배출되어 잠시 시전자를 보호하는 보호막의 형태로 작용하는데, 그 순간에 적색 띠의 금강승이 난입한 것이었다.

나머지 금강승들은 자신의 동료가 바스라의 손에 잡히는 것을 보고 크게 놀라며 소리쳤다.

“적승!!”

바스라는 자신을 힘들게 했던 금강승들이 괴로워하는 것이 재미있기나 하는 듯 이죽거리며 그들에게 말했다.

“역시 동료애는 있나 보지? 그렇다면 이렇게 한다면 어떨까?”

바스라는 적승을 잡고 있는 손아귀에 점점 힘을 주기 시작했고, 이미 신체의 통제권을 완전히 잃은 적승은 몸을 움직이지조차 못하고 얼굴만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만둬라!!”

고통 속에서 눈마저 까뒤집어지려 하는 적승을 보다 못한 흑색 띠의 금강승이 고함을 치면서 공격을 펼쳤다.

하지만 그의 공격은 중간에 멈추고 말았다. 그것은 바스라가 몸을 움직이면서 적승의 몸이 공격로에 놓였기 때문이었다.

“크윽…….”

“하하하하. 이거 재미있는데? 계속 이렇게 놀고 싶지만, 나도 마기 폭발을 사용한 이상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군. 이제 슬슬 끝내보자. 마음 같아서는 저기 늙은이도 내 손으로 끝장내고 싶지만. 저자는 주군이 처리한다 했으니 나머지 놈들이라도 내가 모조리 처리해야겠다.”

퍼억! 데구르르…….

말을 마친 바스라는 웃으면서 다시금 적승을 잡고 있는 손아귀에 힘을 주었고, 적승의 목이 터져 나가면서 그의 머리는 몸에서 분리되어 바스라의 발치를 뒹굴었다.

“적승!!!!!!”

“이노옴!!!!”

“죽여 버리겠다!!”

수십 년을 함께 고련한 동료의 죽음에 모든 금강승들은 극도의 분노에 차올랐다.

금강승들이 분노하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바스라는 한결 낫다는 표정으로 그들에게 말했다.

“한 명만 줄여도 움직이기가 휠씬 낫군. 역시 그 이상한 진만 아니었어도 네놈들 따위는 식은 죽 먹기였을 건데 말이야. 근데 어차피 우린 생사결로 싸우고 있는데 이렇게 한 놈 죽었다고 흥분한다면 어쩌나?”

식은 죽 먹기라는 말에 충혈된 눈을 한 흰색 띠의 금강승은 내뱉듯이 외쳤다.

“식은 죽 먹기? 그래, 그 식은 죽에 목이 막혀 죽어봐라. 준비하라! 멸마진(滅魔陳)이다.”

뒤의 말은 나머지 금강승들에게 한 말이었다. 나머지 금강승들 역시 적승의 죽음에 극도로 분노한 상황이라 항마진, 복마진을 제치고 최후의 단계인 멸마진을 꺼내어 든 흰색 띠 금강승의 말에 거부의 의사를 보이지 않았다.

또한 단순히 화가 났기 때문에 멸마진을 시전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멸마진 정도는 펼쳐야 바스라를 제압할 수 있다는 생각 역시 포함된 판단이었다.

“또 진이냐? 미안하지만 이번에는 두고 보지 않겠다.”

조금 전 진에 당한 바스라는 이번에는 그것을 시전할 기회조차 주지 않기 위해서 재빨리 몸을 움직였다.

마기 폭발을 사용하여 순간적인 출력이 마계에 있을 때와 거의 동일해진 바스라는 펼쳐진 봉마진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광검을 꺼내어 들었다.

끼이이잉!!

마치 유리를 긁는 듯한 소리를 내며 바스라의 검에는 회색에 가까운 탁한 빛이 깃들었는데, 그 속에 담긴 파괴력에 항마승들은 몸까지 떨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항마승 역시 항마금강대진 중 최후의 비기인 멸마진을 꺼내어 든 상태였다. 별도의 진언도 없이 네 항마승의 몸에서는 가공할 만한 기운이 뿜어져 나와 기존의 봉마진에 흘러 들어갔다.

봉마진은 기이한 기운이 있다는 것 말고는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없었는데, 멸마진은 진이 펼쳐진 곳에 황금색 기운이 서려 밖에서도 진이 펼쳐져 있다는 것을 명확히 알 수 있게 하였다.

더군다나 진 안에 있는 존재는 황금빛 광채와 가공할 만한 압력에 오감을 상실한 것과도 같은 효과를 받고 있었다.

그렇게 멸마진이 가동되며 황금빛 광채가 사방을 비추자, 바스라의 혼탁한 빛의 광검 역시 힘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멸마진의 기운이 마기를 억누르며 광검의 발현 자체를 막아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크윽…… 네놈들 역시 한 수가 있었구나. 하압!!”

바스라는 사그라드는 광검을 억지로 유지하며 내뱉듯이 항마승들에게 말하더니 기합을 넣었다.

마기 폭발까지 사용한 상황에서 이대로 항마승들에게 밀린다는 것은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기에 바스라는 온몸을 짓누르는 멸마진에 대항하여 신체의 마기를 끌어모았다.

바스라의 정신력에 흩어지려는 마기가 그의 몸 주위를 맴돌며 힘들지만 광검의 운용을 가능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일시적인 상황일 뿐 오래 유지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바스라 역시 그것을 알기에 그는 이를 악물고 멸마진의 압력을 뿌리치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멸마진 내에서 마기를 가진 존재는 단지 걸음을 옮기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멸마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압력이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방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바스라는 광검을 운용하고 있었기에 혼탁한 빛의 광검으로 멸마진에서 흐르고 있는 힘의 흐름을 하나씩 잘라가며 자신이 운신할 수 있는 폭을 넓혀 나갔다.

멸마진은 항마승과 직접적인 교류를 하고 있는지 진의 기운이 바스라의 광검에 잘려나갈 때마다 항마승들은 입에서 울컥울컥 피를 토해내었다.

바스라 역시 억지로 광검을 운용하느라 입에서 한줄기 핏물을 흘리고 있었는데, 그 광경은 마치 누가 먼저 쓰러지는지 치킨게임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언뜻 보아서는 멸마진의 기운을 잘라내고 있는 바스라가 유리해 보였으나, 바스라는 마기 폭발을 통해서 일시적으로 마기를 불러온 것이기 때문에 시간상의 제한이 있었다.

만일 이대로 시간이 계속 가서 마기 폭발의 시간제한이 끝난다면 바스라는 광검을 발현하지 못할 것이고, 광검을 사용하지 못한다면 멸마진을 파훼할 수 없어 결국 멸마진의 압력에 눌려 전투 불능의 상태가 되고 말 것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항마승들은 바스라의 목을 따버릴 것이니, 바스라의 움직임에는 여유가 없었다.

파츠츠츠, 파팍! 치이익!

마기 폭발의 제한시간이 다 되어 가서 그런 건지, 멸마진의 기운이 많이 줄어들어서 그런 건지 바스라의 칼질은 점점 더 빨라졌다.

그렇게 멸마진의 기운이 누더기처럼 변하는 동안, 네 명의 항마승의 입가는 피범벅으로 변해 있었다. 멸마진의 기운이 상처 입는 만큼 그들의 내상도 깊어졌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여기서 더 멸마진의 기운이 잘려 나간다면 멸마진 자체가 파훼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바스라 역시 좋은 상황은 아니었지만, 네 항마승보다는 나은 상황으로 보였다.

이런 상황을 파악한 흰색 띠의 항마승은 이를 악물며 눈을 빛내다가 다른 항마승들에게 전음을 보냈다.

[흑승, 청승, 황승! 잠시 후 진에서 빠질 테니 잠시만 내 몫을 맡아주게!]

다섯 명이 연습하던 것을 네 명이 하는 것도 힘든 상황에서 수장 격인 백승이 진에서 빠진다고 하자 다들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 놀람에 대답을 해주기나 하는 듯 백승은 말을 이어갔다.

[이제 나는 멸마분신(滅魔焚身)을 펼칠 생각이네.]

멸마분신이라는 말에 항마승들은 진에서 빠진다고 할 때보다 더 크게 놀라며 그에게 전음을 날렸다.

[대주!]

[아니되오!!]

[그만두시오!!]

백승은 다른 항마승들의 전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말을 계속했다.

[만일 멸마진이 깨진다면 우리는 모두 다 같이 엄청난 내상을 입을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저 악마 놈을 막을 수가 없게 될 걸세. 멸마분신이라면 저 악마 놈을 잡을 수 있을 것이야.]

[그렇지만…….]

[어쩔 수 없네. 그럼 난 가네!]

[으윽…… 대주!!!]

다른 항마승들이 더 설득하기 전에 백승은 진의 유지에서 벗어나 서둘러 멸마분신의 식으로 기를 순환시켰다.

이윽고 백승의 단전에서 한줄기 황금색 불꽃이 피어오르더니 그의 몸 전체를 휘감아 버렸다. 불꽃 속에서도 아직 의식이 있는지 백승은, 아니, 황금색 불꽃은 황금빛 기운이 가득한 멸마진 속으로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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