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9
현세귀환록
179. 격돌(1)
새로이 몸을 얻어 자신감이 붙은 바스라는 백무성의 다소 비꼬는 듯한 말에도 자연스럽게 받아넘기며 대답하였다.
“보시다시피 좀 달라졌지 않소? 이번엔 쉽지 않을 것이오.”
“껍데기는 달라졌군. 하지만 알맹이는 그대로인데?”
그렇게 대답하는 백무성의 내심은 말과는 달랐다.
‘이자의 기운이 과거 그때보다 훨씬 높아졌군. 단순히 몸만 입은 것이 아니라는 것인가?’
그때 바스라와 백무성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던 아바투르가 바스라에게 물었다.
“저자가 네가 전에 말했던 라이트 소더인 것이냐?”
“네, 주군. 그때는 피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 몸도 얻었으니 한 번 제대로 상대해 보겠습니다.”
바스라는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말했지만, 아바투르는 잠시 백무성을 바라보며 그의 경지를 가늠하더니 다소 부정적으로 바스라에게 말을 건넸다.
“마계에서의 네 몸이라면 또 모를까, 지금 상태로는 승부를 장담하기 힘들겠군. 아니, 조금 밀린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이겠지.”
“……그래도 마기 폭발을 이용한다면 해볼 만하지 않겠습니까?”
밀린다는 말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바스라는 마기 폭발까지 언급하며 반문하였다.
“마기 폭발을 한다면 지금 몸이 버틸 수 있겠느냐? 그렇게 지금 쓰는 몸이 죽고 나면 어쩔 수 없이 마계로 귀환해야 할 텐데, 그러기엔 아쉽지 않느냐?”
“그렇긴 하지만…….”
“되었다. 저놈은 내가 상대할 테니, 넌 저놈 뒤에 있는 저 그랜드 마스터급의 인간들이나 상대를 하거라.”
아바투르의 말에 바스라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백무성 뒤쪽에 늘어서 있는 그의 수하들을 바라보았다.
지금 백무성이 데려온 인원들은 백두일맥이 가진 전력의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전력이었다.
특히, 50대 정도로 보이는 5명의 대머리 중년인들은 엄청난 기세를 뿜어내며 백무성의 말이 떨어지면 곧장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는 백두일맥만 온 것은 아니었다. 백무성의 친우이자 금강선원의 주인인 대각선사 역시 함께하고 있었다.
잠시 중년인들의 기세를 본 대각선사는 흐뭇한 표정을 짓더니 백무성에게 말을 건넸다.
“무성. 아이들이 참기 힘든 것 같은데 이제 그만 시작하는 것이 어떤가?”
“허허. 참기 힘든 건 아이들이 아니라 자네 같은데 말일세.”
“이 사람도 참……. 그래, 맞네. 항마금강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생각하니 내가 다 떨리는구만.”
“그래, 30년간의 결실이 드디어 세상에 보여지는군.”
“아이들의 희생이 헛된 일이지 않아야 할 텐데…….”
희생이라는 말이 나오자 잠시 백두일맥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그런 분위기를 깨기라도 하려는 듯 백무성은 다소 강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만약 우리가 말세를 이겨낸다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는! 먼저 간 이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알겠나!”
백무성의 목소리에 담긴 심정을 알았는지 백두일맥의 모두는 진지한 표정을 하고 진심으로 대답하였다.
“네! 가주님!”
과거 선법과 술법에 관심이 많았던 대각선사는 여느 때와 같이 천기(天氣)를 가늠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천기의 큰 흐름의 일부를 엿볼 수 있었다.
그것은 당시 대각선사의 수준으로는, 아니, 지금의 대각선사의 수준이라도 보기 힘든 천기의 흐름이었으나 천기와 지기와 인기가 맞아 떨어지면서, 그가 보기 힘든 오묘한 하늘의 기운을 잠시나마 볼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 기운이 의미하는 바는 몇십 년 뒤에 이 세상에 말세가 도래한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대각선사는 이 사실을 친우인 백무성에게 이야기하였고, 대각선사의 말을 믿은 백무성은 대각선사와 함께 말세에 대한 대비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둘은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많은 것을 준비하였다. 그리고 지금 이 다섯 명의 중년인은 둘이 준비했던 말세에 대한 대비책 중 가장 심혈을 기울인 사람들이라 할 수 있었다.
이 다섯 명의 중년인은 백무성이 젊은 시절 우연히 구했던 항마금강(降魔金剛)의 연신법(鍊身法)과 연혼법(鍊魂法), 연단법(鍊丹法)을 토대로 구현한 전설상으로만 존재하였던 항마금강승들인 것이다.
항마금강승은 그릇된 것, 부정한 것들을 징치하는 항마(降魔)의 능력을 지닌 무적의 금강승(金剛僧)을 의미하는 말로 전설로 구전되기만 하였을 뿐 실제로 출현한 기록은 한 번도 없었다.
백무성 역시 항마금강의 연신, 연혼, 연단법을 입수하였음에도 대각선사의 예언을 듣기 전까지는 그것을 구현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그 이유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항마금강의 수련법을 해석하는 것도 엄청나게 어려웠지만, 그것보다 항마금강승이 되는 수련법 자체가 처절한 고통을 수반한다고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이곳에는 다섯 명의 항마금강승이 있었지만, 처음 이 금강승의 후보로 항마금강법을 시도한 사람은 108명이었다. 108명이었던 이유는 108 항마금강승을 만들어보자는 백무성과 대각선사의 염원 때문이었다.
하지만 5명을 제외한 나머지 103명 중 55명은 불구자가 되어 제대로 된 일상생활을 할 수도 없는 상태가 되었고, 32명은 실혼인이 되어 식물인간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남은 16명은 돌아오지 못하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그것도 백무성과 대각선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였기에 5명의 항마금강승을 완성하고 실패자들도 불구자이지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지, 평범한 사람이 이런 일을 시도했다면 모두 죽음으로 끝나고 말았을 가능성이 컸다.
물론 처음 시작할 당시만 하더라도 이런 희생이 있을 것이라고는 백무성도 대각선사도 생각하지 못했다. 또한 대부분 20대였던 지원자들 역시 이런 희생이 있을 것이라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 이런 희생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지원자들이 스스로 하자고 한다 하더라도 결코 백무성과 대각선사는 이런 일을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한 번 항마금강의 수련법에 들어간다면 적어도 연신법이 끝나기 전에는 그것을 중단할 수 없었다.
항마금강신을 완성하지 않고 항마금강의 수련법을 끝낸다면 체내에서 작용하는 항마금강요결에 의해 온몸이 뒤틀리게 되어 결국 불구자의 몸이 되고 말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10년의 세월 동안 항마금강신을, 다음 10년간 항마금강혼을, 마지막 10년간 항마금강단을 연성한 사람은 고작 5명에 불과하였다.
한 단계 한 단계의 수련을 거칠 때마다 수십 명의 사람이 불구자나 실혼인이 되어버렸고, 그때마다 백무성과 대각선사는 이 수련법을 폐기하려 하였다.
하지만 살아남은 수련자들이 동료들의 희생을 헛되게 하지 말라며 오히려 백무성과 대각선사를 다그쳤기에 결국 이렇게 다섯 명의 항마금강승이 탄생하게 된 것이었다.
“이제 할 말은 다 끝났나?”
백두일맥에서 흐르고 있던 숙연한 분위기는 아바투르의 말과 함께 깨어졌다. 그리고 숙연했던 분위기만큼 그것을 깬 당사자에 대해 타오르는 분노의 불길 역시 거세었다.
그런 분위기를 말해주듯 선두에 있던 백무성이 강한 말투로 아바투르에게 쏘아붙였다.
“네놈과 네놈이 이끄는 악마들을 시작으로 앞으로 인간 세상이 겪을 말세의 환란을 우리의 손으로 꺾고 말겠다!”
“크크큭. 고작 그 정도 능력으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이냐? 바스라!”
“네! 주군!”
“저기에서 눈을 부라리고 있는 대머리들을 치워 버려라. 난 이 앞에 서 있는 늙은이를 처리할 테니 말이야.”
“네, 알겠습니다.”
바스라는 백무성을 상대하고 싶었지만, 주군인 아바투르의 말을 거스를 수 없었기에 다소 불만족스러운 얼굴로 다섯 명의 항마금강승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또한 백무성은 아바투르를 향해 자신의 환도를 빼 들고 자리를 옮겼기에 이제 전장은 크게 두 군데로 나누어졌다.
원래 드미트리를 처리하려던 드레이크는 백무성이 중간에 끼어들고 아바투르가 나섬으로 인해 잠시 뒤로 물러선 상태였기에, 이 두 대결을 제외하고는 다른 전투는 일체 벌어지지 않고 있었다.
모두가 이 전투, 아니, 전쟁이라 할 법한 이 대규모 항쟁의 결말은 지금 벌어질 두 대결의 결과에 따라서 달라질 것을 알고 있었다.
최초의 움직임은 항마금강승부터였다. 항마금강승은 다섯이 모두 비슷한 차림에다 모두 대머리인 상태였기에 단순히 외형만으로는 누가 누군지 구분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무슨 의미인지 다섯 명의 금강승은 각각 흰색,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검은색의 천으로 된 허리띠를 하고 있었기에 외모보다도 더 명확하게 서로가 구분되는 상태였다.
그중 먼저 움직인 금강승은 흰색의 허리띠를 한 금강승이었다. 흰색 띠의 금강승이 이들의 수좌(首座)인지 다른 금강승들에게 눈짓을 하였고, 이내 다섯 명의 금강승은 바스라의 주변을 에워쌌다.
하지만 이제 몸을 얻어 검강을 넘어 광검을 시전할 수 있는 바스라는 금강승들의 그런 움직임에도 여유 있는 표정으로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금강승들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바스라가 이죽거리며 입을 열었다.
“이제 준비는 끝난 것이냐?”
바스라의 말에 흰색 띠 금강승이 다소 섬뜩한 미소를 짓더니 조용히 대답하였다.
“나중에 저승사자를 만나거든 네놈의 그 자만심이 네놈을 죽였다고 말해주거라.”
금강승의 담담한 말에도 바스라는 별 대꾸도 하지 않았다. 광검지경과 검강지경의 차이는 일반인과 마스터의 격차만큼 컸기 때문이었다.
다섯 명의 마스터가 있다 하더라도 한 명의 그랜드 마스터를 이기기 어려운 것만큼, 지금 이 금강승들은 다섯 명 모두 그랜드 마스터 경지였지만 광검지경의 바스라로선 손쉽게 해치울 자신이 있었다.
다만, 아직 완전히 몸에 적응한 상태는 아니니 천천히 가지고 놀면서 적응을 해볼 생각이었다. 다섯 명의 그랜드 마스터라면 적응도는 확실히 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때 흰색 띠의 금강승이 외마디 진언을 외쳤다.
“옴!”
그 진언이 신호인 듯 다른 금강승 역시 각기 진언을 발하기 시작했다.
“파드마!”
“마하!”
“무드라!”
“즈바라!”
이 다섯 명의 진언이 합일되자 지금까지와는 다른 무언가 기이한 기운이 펼쳐지며 바스라를 덮쳤다.
다섯 금강승 가운데에 있던 바스라는 자신을 덮쳐온 기운에 깜짝 놀라며 외쳤다.
“뭐냐!”
바스라가 당황할 만도 한 것이, 금강승들이 뿜어낸 기운은 바스라가 가진 마기와 상극이었는지 체내의 마기를 조금씩 조금씩 희석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좀 더 시간을 주면 자칫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바스라는 적응도를 올리려는 생각을 포기하고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기 위해서 마기를 집중하였다.
하지만 금강승이 펼친 기운은 한 가지의 능력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니, 크게 보면 한 가지일 수도 있었다. 바로 모든 사악한 기운을 부정하는 능력이었다. 이 능력은 바스라가 마기를 집중하는 것조차 방해하고 있었다.
“크윽…… 대체…….”
바스라는 곧장 광검을 발현하여 이 금강승들을 쓸어버리려 했지만, 지금 그의 검에 서린 기운은 광검이 아니라 검강이었다.
그나마 바스라 정도의 경지가 되니 검강이나마 발현한 것이지, 만일 그랜드 마스터였다면 검기조차 발현하기 힘들었을 수도 있었다.
“어때? 지금도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드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