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세귀환록-171화 (171/203)

# 171

현세귀환록

171. 확전(2)

블러디 일족과 비슷하다는 말에 실망감을 표했던 아바투르는 이어지는 케일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금 반문했다.

“흐음…… 그렇다면 그들 중에서 우리들의 악기를 받아들일 만한 존재가 있다는 것이냐?”

“한두 명 정도라면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지는 않았겠지요.”

“그럼?”

“제가 조사를 해 본 결과 지금 뱀파이어라 불리는 일족은 종족 내 싸움을 하는 중입니다. 한쪽은 인간 세상에 편입되어 이 세계의 평범한 인간과 다르지 않은 성향을 지니고 있는데, 다른 한쪽은 무슨 이유인지 상당한 악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군이 들어간 그 인간 숙주가 가진 악기 정도는 아니겠지만, 웬만한 고위 악마들도 다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종족 싸움이라면 한두 명은 아닐 것이 분명하였다. 그 예상 밖의 희소식에 아바투르는 반색하며 말했다.

“그래? 악기를 가졌다는 그놈들의 숫자가 충분하더냐?”

“네, 그렇습니다. 작위마를 받아들일 수 있을 녀석들만 해도 족히 5명 이상은 될 것이고, 상급 악마를 받아들일 녀석들 또한 오십은 넘어 보였습니다. 하급 악마까지 다 치면 모두 오백 명은 될 것 같았습니다.”

“허. 그 정도 숫자라면 충분하겠구나! 마계에서처럼 활동할 수 있다면야 인간 따위의 수준이 아무리 높아졌다 해도 충분히 쓸어버릴 수 있겠지!”

“그렇습니다, 주군. 그리고 이것은 동유럽에 있는 본부만을 말씀드린 것이고, 각국에 흩어져 있는 지부까지 다 합한다면 그 인원은 더 많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케일라의 말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던 아바투르는 케일라의 옆에 있던 악마에게 지시를 내렸다.

“파루스! 네가 케일라와 함께 가서 그들을 포획해 오도록 해라.”

파루스라 풀린 악마는 바스라나 케일라와는 달리 인간형의 악마는 아니었다.

몸이 3미터가 넘는 거구인 것만 제외한다면 인간과도 흡사한 몸이었지만, 얼굴이 전설상에 나오는 용의 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용의 꼬리와 등에는 날개마저 달고 있어서 인간형이라 하기에는 힘든 외모였다.

아바투르에게 지명받은 파루스는 히죽거리는 웃음을 짓더니 대답하였다.

“네, 주군. 이 마룡장 파루스의 명예를 걸고 확실하게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흐흐.”

파루스의 무력을 믿고 있는지 아바투르는 그를 향해 한 번 고개를 끄덕인 뒤, 이번에는 바스라에게 말했다.

“바스라, 너는 나와 함께 라이트 소더를 만났던 곳으로 가자. 그곳에서부터 기운을 추적하면 되겠지.”

“네! 주군.”

“어차피 바스라 네가 제대로 된 숙주만 얻으면 충분히 상대가 가능할 것이지만, 라이트 소더는 우리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을 것이니 미리미리 처리해야겠지. 내가 직접 나서겠다.”

“알겠습니다. 주군!”

바스라에게까지 지시를 내린 아바투르는 세 악마 모두를 한 번씩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마지막 말을 그들에게 전했다.

“마나 능력을 가진 인간들만 다 처리하고 나면, 마목의 씨앗을 널리 심어 이곳을 우리의 영지로 삼자꾸나. 하하하하.”

* * *

챙챙~ 파직!

쾅~콰가강~!

사방에서 전투가 벌어진 듯한 소리가 들려왔고, 여기저기에서 화광이 충천하고 있었다. 마치 전시상황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뜻밖의 전투 소리에 놀란 벨리알의 로드 드레이크는 침대에 누워 있다 벌떡 일어나더니 밖에다 대고 지시를 내렸다.

“여봐라! 당장 무슨 일인지 파악해서 보고하라!”

“네, 로드!”

드레이크의 문밖에는 항시 대기하고 있는 두 명의 부하 중 한 명이 서둘러 달려가려고 할 때, 한 여성 뱀파이어가 황급히 드레이크의 방 쪽으로 뛰어왔다.

달려오는 인물이 낯이 익었는지 경비를 서던 부하 중의 한 명이 그녀에게 물었다.

“이레나 님, 지금 상황에 대해서 알고 계십니까? 로드께서 물으십니다.”

“그것 때문에 이곳에 온 것이야! 당장 로드께 내가 왔음을 알려라!”

하지만 밖의 소란에 이미 자리에서 일어난 드레이크는 경비가 고하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

“이레나를 들라 하라!”

드레이크의 말에 경비는 지체없이 문을 열었고, 방에 들어온 이레나는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인 뒤 입을 열었다.

“로드! 큰일입니다. 지금 수많은 악마기 우리 본부를 공격 중입니다!”

“악마? 갑자기 웬 악마란 말이냐!”

“무슨 연유로 나타났는지는 모르겠으나, 마치 유럽 전역에 나타났던 악마들이 모조리 이곳으로 모인 것만 같습니다. 숫자가 물경 오천에 달합니다!”

“오천이라고!”

지금 벨리알의 본부에 있는 뱀파이어의 숫자는 5백 정도였는데, 5천이라면 그 열 배에 달하는 숫자였다. 드레이크의 놀람도 당연한 것이었다.

일당백으로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지금 벨리알 본부에서 일당백으로 악마들을 상대할 수 있는 자는 얼마 되지 않았다. 아니 일 대 일로 상대해도 힘들 가능성이 더 높았다. 그것은 5백이라는 숫자 중에서 상당수는 새로이 뱀파이어가 된 신참들이라 아직 힘을 제대로 사용하기조차 힘든 자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물론 본부 말고 세계 각지의 지부에 흩어져 있는 인원들까지 합치면 천 명은 훌쩍 넘었지만, 일단 지금 가용할 수 있는 전력은 본부의 전력이 전부였다. 그 때문에 오천의 숫자는 지금 벨리알이 대적하기에는 너무 많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습니다. 대강 살펴보았는데도 그 정도로 보이고 있습니다. 모두가 강자인 것은 아니지만 숫자가 숫자인지라…….”

“블러디 투스와 다크 클로는 어떻게 하고 있느냐!”

블러디 투스와 다크 클로는 벨리알의 정예 무력단체로 최근 루시페르와의 항쟁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는 단체였다. 당연히 이런 상황을 좌시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이미 나라크와 키로스탄이 각자의 대원들을 이끌고 전투에 나섰으나 아무래도 적들에 비하면 소수에 불과한 상황이라 전세를 뒤집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악마들도 지도부에서 나왔는지 그 무력이 마스터급에 달하는 자들이 한두 명이 아닌 상황입니다. 마스터 급이 최소 열 명은 되어 보입니다.”

“뭐라!”

차원 통합이 진행되면서 지구인뿐만 아니라 뱀파이어들도 풍족해지는 마나에 영향을 받아, 그간 벽에 막혔던 뱀파이어들 중에서도 벽을 넘어 듀크급, 인간으로 치자면 마스터급이 된 뱀파이어들이 종종 나타나곤 했다.

그래서 지금 벨리알의 본부에도 로드인 자신을 제외하고도 3명의 듀크급 뱀파이어가 있었는데, 지금 악마들은 열 명에 이른다고 하니 전력으로 상대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일단 로드라도 피하신 후 흩어져 있는 지부의 세력을 규합하셔서 다시 대적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이런 상황을 알고 있는 이레나는 작전상 후퇴를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드레이크의 생각은 달랐다.

“하위 악마 따위야 숫자가 얼마가 있든지 관계없을 것이야. 어차피 승부는 강자들 사이에서 나겠지. 가자! 어떤 놈들이 온 건지 모르겠지만 우리 벨리알의 저력을 보여줘야겠다!”

숫자에 놀라기는 했지만, 드레이크의 말대로 승부는 위에서 나는 것이었다.

마스터 한 명이 작정하고 나선다면 C급 정도의 마물들은 수백 수천을 상대할 수 있는 것처럼, 하위 악마의 숫자가 많다고 해봤자 결국 강자들의 승부로 전투의 향방이 갈린다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레나는 모르겠지만, 드레이크에게는 비장의 무기가 두 가지나 있었다. 그렇기에 악마들이 강하다 하더라도 충분히 상대할 자신이 있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드레이크는 제이크와 함께 서둘러 전장의 중심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나오는 기파를 보았을 때 이미 마스터급의 강자들 간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 *

용머리의 파루스와 흑발의 미녀 케일라는 허공에 뜬 채로 아래의 전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중 용머리의 파루스가 잠시 눈살을 찌푸리더니 입을 열었다.

“저항이 만만치 않은데?”

확실히 초반에 몰아칠 때와 비교해서 지금 전투는 박빙으로 상대를 완전히 압도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특히 붉은 옷을 입은 20명의 뱀파이어와 검은 옷을 입은 40명의 뱀파이어가 전장에 참여하면서부터 그런 모습이 보였다.

파루스의 말에 케일라는 요사스러운 웃음을 흘리더니 별것 아니라는 식으로 대답했다.

“그래 봤자 시간문제야. 지금 뒤쪽에 있던 상급 악마들도 이 상황을 파악했으니 이제 곧 저놈들을 밀어버리겠지. 그냥 해치운다면 별로 어려울 것도 아니지만, 목숨만은 붙여놓으려니 쓸데없이 피해가 크네.”

악마들의 숙주로 삼기 위해서 팔다리 정도는 사라져도 상관은 없었지만, 목숨만은 붙여놓아야 했다. 그 때문에 지금 악마들은 한방에 목숨을 끊을 수 있는 치명적인 공격은 웬만해서는 피하고 있었고, 그런 상황이 압도적인 악마들의 숫자에도 전황을 팽팽하게 유지할 수 있는 힘이 되고 있었다.

케일라의 대답을 들었지만 파루스의 눈살은 여전히 펴지지 않았다.

“그래도 저 앞의 두 명은 웬만한 작위마와도 맞먹겠는걸? 일단 저놈들만이라도 전투 불능으로 만들어야겠어.”

“흐응…… 뭐 원한다면 그러시던지. 누가 마룡부대의 마룡장 아니랄까 봐 손이 근질근질한가 봐?”

파루스가 이끄는 마룡부대는 아바투르 휘하의 악마들 사이에서도 가장 호전적이기로 유명한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파루스는 단지 손을 풀기 위해서 움직이려는 것은 아니었다.

“대검을 쓰는 저자가 마음에 드는데, 괜히 어디 상하기 전에 확보해 놓으려고 그러지. 크크큭.”

지금 파루스의 시선은 붉은 옷을 입은 뱀파이어들, 블러디 투스의 대장 나라크를 향해 있었다.

이미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나라크는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붉은 검기를 줄기줄기 흘리는 대검을 힘차게 돌려대고 있었는데, 그 대검에 담긴 경력이 엄청났던지 그의 일격을 제대로 받아내는 악마가 보이지 않았다.

물론 아직 상급 악마들이 투입되지 않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었지만, 그 대검의 위력이 남다르다는 것에는 이견을 제기할 사람이 없을 것이었다.

파루스가 입맛을 다시는 것을 본 케일라는 아깝다는 표정으로 검은 옷을 입은 뱀파이어 키로스탄을 바라보았다.

케일라는 쌍검을 쓰는 키로스탄의 날렵한 모습은 마음에 들었으나 남자라는 것이 걸렸다.

일반적으로 악마의 성별은 성체가 될 당시 악마 본인의 의지로 인하여 결정이 된다. 즉, 케일라는 본인의 의지로 여성체가 된 것이었다.

그 때문에 남성체의 숙주에 들어가는 것 자체를 그리 선호하지 않았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으나 좋아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케일라는 숙주를 포획하는 것에 그리 서두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케일라의 생각이 어떻든 이미 나라크가 마음에 든 파루스는 등에 달린 날개를 펼치더니 쏜살같이 전장으로 날아갔다.

콰앙-!

파루스의 마검과 나라크의 대검이 맞부딪히면서 터져 나온 폭음이었다. 하늘에서 떨어진 파루스는 자신의 마기로 만든 거대한 마검을 나라크에게 휘둘렀고, 마스터의 경지에 있는 나라크는 갑작스러운 공격이었지만 어렵지 않게 그 공격을 막아내었다.

그렇게 터져 나온 엄청난 폭음에 잠시 그 주위의 전투는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이 둘의 대결이 이 전투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일전임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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