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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세귀환록-170화 (170/203)

# 170

현세귀환록

170. 확전(1)

“어떻게 된 것이냐! 왜 아직도 물질계를 장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냐!”

이형태의 몸을 하고 있는 아바투르는 화가 난 표정으로 전면에 부복하고 있는 세 명의 수하를 다그쳤다.

수하들은 아바투르의 질책에도 할 말이 없는지 고개만 숙이고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하였다. 그런 수하들의 모습에 더 화가 난 아바투르는 이번에는 한 명 한 명 직접 지적하며 질책하기 시작했다.

“바스라! 말해보라! 도대체 뭐가 잘못된 것이냐!”

바스라라 불린 악마는 미남형 외모를 가진 악마로, 외모만 보아서는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등에 달린 용의 날개가 분명 그가 악마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바스라는 아바투르 휘하의 악마 중에서도 공작위에 있는 악마였다. 보통 마공작이라면 마계에서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높은 위치로 이런 질책을 받을 만한 자리는 아니었지만, 지금 그를 질책하는 자는 주군인 아바투르였다.

그렇기에 바스라가 아무리 마공작이라 하지만 감히 대거리할 수는 없었다. 어쨌든 거듭되는 아바투르의 질책에 마공작 바스라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제대로 된 숙주가 없이 바로 실체화하는 것에 따른 손실률이 너무 높았던 것 같습니다.”

마계에서 물질계로 소환될 때 가장 손실률을 낮출 수 있는 방식은 바로 이형태의 몸을 차지한 아바투르처럼 숙주에 깃드는 방식으로 소환되는 것이었다.

물질계에 이미 존재하였던 육체를 사용한다면 자신의 신체를 물질계의 마나와 맞추는 과정이 필요 없게 되어 손실률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다만 숙주가 가진 악기가 소환 대상이 되는 악마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제한이 있었는데, 그런 숙주를 찾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악마들은 소환의식을 통해서 바로 물질계로 강림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 아바투르가 차지한 이형태의 경우가 매우 특이한 경우라 할 수 있었다.

따라서 아바투르를 제외한 다른 악마들은 아바투르가 진행한 소환의식에 따라 마계에서 사용하던 자신의 몸을 갖고 이곳으로 소환되었다.

그렇게 소환된 악마들은 당연히 마기로 이루어진 몸을 물질계의 마나와 적응시키는 과정이 필요하였고, 그 과정에서 막대한 마기의 손실이 있었다.

물론 다시 마계로 귀환한다면 마핵에 담겨 있는 마기의 정수에 따라서 금세 다시 원래 수준의 마기를 찾을 수 있을 것이지만, 지금의 물질계에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마기의 손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이유로 인하여 지금 바스라를 포함한 다른 악마들은 마계에서 능력의 반도 보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것도 아바투르가 직접 시전한 소환의식이기에 반에 가까운 능력을 가져온 것이지, 보통의 소환술사가 시전한 소환의식이라면 20%의 능력도 가져오기 힘들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아바투르는 바스라의 변명에도 진노를 거두지 않고 말했다.

“그건 고려가 된 사항 아니냐! 처음 소환되었을 때도 알고 있었던 사항을 지금에 와서 꺼내는 이유가 뭐냐! 당시에는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지 않았느냐!”

아바투르의 말처럼 바스라 등이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런 상황을 알고 있음에도 당시 소환되었던 바스라는 자신감을 내비추었었고, 아바투르는 그런 바스라와 부하들을 믿고 있었던 것이었다.

계속되는 아바투르의 지적에 결국 바스라의 입에서 그가 하기 싫었던 말이 나왔다.

“인간들의 수준이 생각보다 높습니다. 주군.”

“뭐라?”

“인간들의 수준이 과거 이곳을 방문했던 악마들에게 들었던 수준과는 천양지차입니다.”

인간들이 한 소환의식에 의해서 악마는 종종 인간 세상을 방문하곤 하였다. 그때마다 인간 세상에 많은 피해를 주기는 하였지만 그렇게 온 악마는 본신의 능력을 완전히 보이지는 못했기에, 그리 오랜 시간을 머물지 못하고 인간 세상의 능력자들에게 강제 귀환되곤 했다.

그렇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서 마계의 악마들은 그런 악마들로부터 인간 세상의 정보를 구할 수 있었다. 물론 단편적이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상당한 수준의 정보를 획득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악마들, 정확하게는 아바투르 휘하의 악마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최신의 정보는 가장 최근에, 그리고 상당히 오랫동안 인간 세상에 머물고 있었던 사스투스에게 들었던 정보였다.

문제는 사스투스에게 들었던 인간들의 수준과 막상 이곳으로 나와서 겪고 있는 인간들의 수준은 너무나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스투스가 있던 시기에는 제니아 시스템이 도입되기 이전이었다.

인간 세계는 제니아 시스템이 등장하기 전과 후가 전혀 다른 세계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마나 문명 쪽에서는 천지개벽에 가까운 변화가 생겼다 할 수 있었다. 당연히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인류 전체의 전력이 올라갔던 것이었다.

“허…… 바스라, 네가 그렇게 말할 정도라는 것이냐?”

아바투르는 바스라의 대답이 어처구니가 없는지 헛웃음을 지으며 반문하였다.

“그렇습니다. 최근에 제가 직접 나섰던 적도 있었지만, 당시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를 능가한 인간도 있었습니다.”

“뭐? 정말이냐?”

그랜드 마스터를 능가했다는 말은 광검, 라이트 소드를 사용했다는 이야기였다. 아니나 다를까. 바스라는 라이트 소드를 언급하며 말을 이었다.

“네. 라이트 소드를 쓰는 것을 목격하였습니다. 기운이 정련되지 않은 것이 초입인 것으로 보이긴 했지만, 지금의 기운으로는 섣불리 상대하다가 잘못하면 마계로 강제 귀환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몇 차례 상대하다가 물러났었습니다.”

사실 마공작이라는 자리는 보통의 자리가 아니었다. 마계에서도 손가락 안에 드는 무력의 정점 중의 하나에 있는 마공작은 충분히 라이트 소드를 상대할 만한 무력을 가지고 있었다.

즉, 마계에서의 바스라라면 초입의 라이트 소드 정도야 그가 가진 마기로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마계가 아니었다. 능력의 절반도 채 가져오지 못한 그가 발휘할 수 있는 기운은 극에 달한 그랜드 마스터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에, 초입의 라이트 소드라도 승리를 확신하기 힘든, 아니, 패배할 확률이 더 높은 상태였다.

라이트 소드가 등장했다는 말에 잠시 생각을 가다듬던 아바투르는 바스라에게 물었다.

“라이트 소드를 사용하던 자가 혹시 젊은 동양인이던가?”

지금 아바투르는 강민을 염두에 두고 물은 것이었다. 아바투르가 가진 정보로는 지금 라이트 소드가 가능한 자는 사스투스를 강제귀환시킨 남자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바스라의 대답은 아바투르의 예상과는 달랐다.

“아닙니다. 동양인은 맞습니다만, 그는 백발의 노인이었습니다.”

“허…… 라이트 소드가 가능한 사람이 또 있었다는 말인가…….”

“또 라면…….”

“너도 알고 있겠지? 반푼이 사스투스가 마핵을 상당 부분 잃고 강제 귀환된 것을 말이다.”

“알고 있습니다. 백작위를 갖고 있던 녀석이 물질계에서 무슨 일을 당했는지 마핵마저 다쳐서 남작위로 떨어졌었지요.”

사스투스의 이야기는 마계 전체까지는 아니지만 아바투르의 영지에서는 꽤나 유명한 이야기였다.

보통 물질계로 소환되었다가 강제귀환하는 경우, 다소간의 마기의 손실은 있을지 몰라도 사스투스처럼 본신 능력의 반도 지키지 못하는 경우는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고위 악마들 사이에서는 사스투스는 반푼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으로 불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바투르를 제외한 다른 악마들은 사스투스를 반푼이로 만든 자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다. 그 상황 자체를 떠올리기 싫었던 사스투스가 입을 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만, 아바투르를 주군으로 모시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는 사실을 알린 상태였다.

“그래, 그 사스투스를 처리한 녀석이 라이트 소드를 사용하는 자였다.”

“음…… 그렇다면 또 다른 자가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지금 네가 언급한 자가 사스투스를 처리한 자가 아닌가 했더니, 네 말을 들어보니 다른 자 같구나. 또 다른 라이트 소더라……. 인간들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네 말이 이해가 가기는 하는군.”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바스라의 말을 인정하지 않고 있던 아바투르였지만, 라이트 소드의 사용자인 라이트 소더가 나타났다는 이야기에 그는 바스라의 말이 맞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의 라이트 소더만 해도 지금껏 인간사에서 보기 힘든 인물이었는데, 두 명이 한 시대에 나타났다는 것은 분명 수준 자체가 높아졌다고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스라는 아바투르가 자신의 말을 인정해 주자 반색하며 말을 덧붙였다.

“그렇습니다. 또한 라이트 소더인 그를 제외하고도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인간들 역시 한두 명이 아닌지라 나름 고위 악마를 소환한다 하더라도 그리 오래 버티지 못했습니다.”

여기까지 들은 아바투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최초 생각했던 계획을 변경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부하들을 통해서 세상을 휘저으면, 당연히 사스투스를 해치운 라이트 소더가 나타날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가 등장하면 그때 자신이 나서서 그를 해치우고 완전히 세상을 장악하려 하였다.

하지만 인간들의 수준이 올라가면서 생각보다 인간 사회의 혼란은 크지 않았고, 사스투스를 죽인 라이트 소더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더군다나 또 다른 라이트 소더에 다수의 그랜드 마스터까지 나온 상황이라, 이제 더 이상 자신이 뒤에서 앉아만 있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었다. 그는 귀찮겠지만 결국 자신이 나서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 바스라의 옆에 있던 아름다운 여성 형태의 악마가 입을 열었다.

“주군, 지금 상황을 반전시킬 방법이 있습니다.”

“오. 케일라, 무슨 방법이냐?”

몸에 딱 달라붙는 옷을 입고 자연스럽게 색기를 풍기던 케일라는 주군 앞이라 그런지 몸가짐을 바로 하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결국 지금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마계에서의 능력을 다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 물질계에 우리의 숙주가 될 수 있는 제물들을 구해서 그들의 몸으로 들어가면 될 것입니다.”

“누가 그걸 모르느냐. 당연한 소리는 되었고, 그 해결책을 말해보아라.”

당연한 케일라의 말에 아바투르가 못마땅한 표정을 짓자 케일라는 빠르게 말을 이었다.

“네, 모두가 알고 있지요. 지금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그 제물이 될 만한 녀석들을 찾은 것 같다는 것입니다.”

“호오. 어떤 놈들이냐? 하위 악마라면 몰라도 작위마급의 고위 악마를 받아들일 녀석들은 그리 찾기 쉽지 않을 텐데 말이야.”

“제가 담당했던 지역은 이곳에서 부르는 말로 유럽이라는 지역이었습니다. 그곳을 돌며 소환구를 뿌리던 중, 블러디 일족과 비슷한 녀석들을 보았습니다.”

“블러디 일족이라면…….”

“네, 흡혈을 통해서 에너지를 얻는 일족이지요.”

마계에서도 흡혈 마족이 있었다. 하지만 지구의 뱀파이어와는 달리 마계에서는 지능이 미약한 하등 종족에 가까운 마족이었다.

그런 상황을 말해주는 듯 아바투르는 실망했다는 투로 말했다.

“그따위 하등 종족을 숙주로 삼는다면 지금보다도 더 능력이 제한될 것이야. 알 만한 녀석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이냐?”

“그런 상황이면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겠지요. 이곳의 뱀파이어들은 피를 통해서 에너지를 얻는다는 점은 블러디 일족과 같지만, 지능과 마나 친화력 등은 이곳의 인간을 능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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