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세귀환록-168화 (168/203)

# 168

현세귀환록

168. 통일(2)

결과적으로 한국의 통일은 큰 희생 없이 마무리되었다. 한국군 측의 사망자는 두 자릿수 정도에 그쳤고 부상자도 세 자릿수에 그쳐, 적은 희생은 아니지만 통일 전쟁을 수행한 것 치고는 거의 피해가 없었다고 할 수 있었다.

물론 북한군의 피해는 수십만에 헤아릴 정도로 막대했다. 하지만 그 피해의 대부분은 자기들 간에 벌어진 내전 때문이었고, 한국군과의 전투에서 벌어진 희생은 총 사망자 수의 10%도 채 되지 않았다.

어쨌든 통일 전쟁은 그렇게 마무리되었고, 이제 대한민국은 한반도 전체를 아우르는 단일국가로 거듭나게 되었다.

물론 통일이 되었다고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내전으로 인해서 반쯤 폐허가 된 북한의 재건 비용 및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인도적인 지원 등 막대한 통일 비용이 들어가게 될 것이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반세기가 훌쩍 넘도록 기다려온 통일이었다. 준비되지 않은 갑작스러운 통일에 적지 않은 비판세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대다수는 이런 통일 자체에 대해서 환영의 뜻을 밝혔다.

오늘도 방송에서는 앞으로 통일 한국의 상황에 대한 예측 보도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방송을 한참 보고 있던 강민은 반복되는 보도가 지겨웠는지 TV에서 눈을 돌리며 옆에 있던 유리엘에게 말을 건넸다.

“저렇게 부정적으로만 보이는 건가?”

지금 방송의 논조는 대부분 섣부른 통일에 대한 우려의 시각이 높았다. 준비가 잘 되었던 독일조차 통일 후에 많은 문제가 발생했는데, 제대로 된 준비가 없었던 우리나라는 더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식의 논리였다.

“뭐 그리 틀린 말만을 하는 것은 아닌데요. 통일은 분명 지금 한국 사회에는 커다란 리스크가 될 것임은 분명하죠.”

유리엘의 말처럼 방송의 논조는 사실 어느 정도는 맞는 부분도 있었다. 현재 통일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북한 지역은 일반인들이 방문할 수 있는 지역은 아니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한국 군대가 북한 전역을 장악하고 있었고, 현재는 인도적인 차원의 식량 지급만 군대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이것은 임시방편이었고 완전한 통일을 위해서는 북한과 남한을 어느 정도는 비슷한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할 텐데, 그러기 위해서는 가히 천문학적인 비용이 투입되어야 할 것이었다.

“그렇다 치더라도 방송의 논조가 너무 일방적이란 말이야. 단기적으로는 혼란스러운 상황이 벌어질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는 분명 긍정적인 부분도 있을 텐데, 지금은 너무 일방적으로 부정적인 보도만을 하는 것이 문제란 것이지.”

강민의 말처럼 일반 국민들의 감정과는 대조적으로 방송의 논조가 일방적인 경향은 있었다. 특히, 긍정적인 보도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거기에는 뭔가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흐음. 그럼 한번 알아볼까요?”

“그래, 궁금하네. 한번 알아봐줘.”

강민의 의문에 유리엘이 별것 아니라는 식으로 말을 하였고, 그녀는 곧장 마나 위성을 움직여서 상황을 파악하였다.

마나 위성의 관제 인격은 제니아였지만, 굳이 제니아를 통하지 않더라도 마나 위성의 주인인 유리엘은 그것을 직접 움직여서 사용할 수 있었다.

잠시의 시간이 지나자, 유리엘은 곧 상황을 파악했는지 빙그레 웃으며 강민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시작했다.

“윤강민 대통령, 생각보다 유능한가 봐요.”

“무슨 소리야?”

“전부 다 대통령의 의도네요.”

유리엘이 대통령의 의도라는 말만 하였는데, 강민은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대통령의 의도라……. 그럼 윤 대통령이 벌써 방송을 장악했다는 말이군.”

“네, 취임한 지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언론을 다 장악하였네요. 지금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되어서 신문과 방송에서 저런 논조를 펼치는 것이네요.”

“흐음…… 대통령이 의도했다면 분명 통일 대책 자금 조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겠군. 특히, 부유층에게 말이야.”

“그렇겠지요.”

지금 윤강민 대통령은 밑밥을 던지고 있는 것이었다.

통일해서 힘들다. 그리고 앞으로도 힘들 것이다. 북한을 어느 정도 수준까지 올려야지 통일의 효과가 있을 것인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이 든다.

이런 논리의 방송을 통해 통일에 대한 비용이 발생한다는 것을 인식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마지막은 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윤강민 대통령의 성향상 그 칼날은 부유층이 될 것이 자명하였다.

유리엘이 대통령이 유능하다고 말하는 것은 이런 상황을 감안한 결과였다.

그런 둘의 추측이 맞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여전히 흘러나오고 있는 방송에서 긴급 속보라는 문구와 함께 대통령의 대국민담화 발표라는 자막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정규방송은 중단되고, 대통령이 단상에 서 있는 모습이 나타났다.

다소 긴장한 듯한 윤강민 대통령은 굳은 표정을 하고 천천히 담화문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 국민은 최근 치른 총선과 대선에서 위대한 선택을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이어져 왔던 구태 정치를 청산하고 새로운 정치를 할 수 있는 기틀을 만들어주셨습니다. 이에 저는 국민 여러분의 열망을 적극 반영하여 새로운 정치를 해왔다고 자부합니다.]

서두를 시작한 대통령은 잠시 카메라를 직시하며 눈을 빛내더니 말을 이었다.

[현재 우리나라는 크나큰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드디어 우리 한민족이 통일하여 하나의 나라를 이루게 되었지만, 이 통일은 기회인 동시에 큰 위기이기도 합니다. 기회를 잡는다면 반만년의 장구한 세월 동안 이어온 우리나라가 또 다른 반만년을 아니, 그 이상을 승승장구할 수 있을 것이지만, 위기에 빠진다면 지금까지 보내온 반만년이 무색하게 힘든 세월을 보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가야 하는 길은 자명할 것입니다. 당연히 우리나라가 승승장구할 수 있는 기회를 잡는 길이겠지요. 그리로 가려고 한다면 우리 국민 여러분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할 것입니다.]

여기까지 말한 윤강민 대통령은 한 번의 침묵을 가졌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모으기 위해서였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가 원하는 길을 가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의 희생이 필수불가결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조금씩 허리를 졸라매어 고통을 분담해야 할 것입니다. 사업자는 사업자대로, 노동자는 노동자대로, 공무원은 공무원대로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씩 고통을 나누어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눈 고통의 결과로 북한의 재건을 위한 통일 대책기금을 조성하겠습니다.]

점점 심각한 내용이 이어지면서 표정이 굳어가는 윤강민 대통령은 결단력 있는 목소리로 다시 말을 이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하였습니다. 사회적 지도층들은 당연히 지금까지 누린 권리에 걸맞은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솔선수범의 의미에서 저부터 모든 월급을 그리고 제 재산의 절반 이상을 반납하여 통일대책기금으로 편입시키겠습니다.]

대통령이 말하는 의미는 분명하였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외치며 부유층의 적극적인 참여를 말하는 것이었다.

대통령이 대국민담화에서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만일 통일대책기금에 불성실하게 참여하는 재벌들은 대통령의 성향상 알게 모르게 페널티를 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아직 대통령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물론 일방적인 희생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통일대책기금 조성에 우수하게 참여하는 기업들을 적극 선발하여 향후 있을 북한 재건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우선권을 제공할 것입니다. 지금은 전후처리만을 하기에도 급급한 북한의 사정이지만, 과거 개성, 평양이 우리나라에서 지녔던 가치를 생각한다면 향후 북한 재건사업의 우선권을 지닌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윤강민 대통령은 채찍과 함께 당근을 들었다. 북한 재건사업에 대한 우선권은 생각보다 큰 권리였다. 엄청난 기회가 될 수 있는 그런 권한을 기금조성과 연동해서 준다는 것은 분명 기업들에게는 당근이 될 수 있을 것이었다.

이 밖에도 대통령의 담화는 한참 동안 이어졌다. 통일이 되었기에 군비를 축소한다는 이야기도 하였고, 앞으로의 주요 정책 사항에 대한 이야기들 하였다. 그리고 대통령 담화의 마지막은 다음과 같았다.

[……다른 나라는 지금 어디서 나타난 건지도 모르는 악마의 공격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적으로 마비 상태에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처음의 공격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악마도 나타나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이런 우리나라를 부러워하며 신의 축복을 받은 나라라고 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노력하니 이렇게 신이 우리나라를 돕고 있습니다. 단언컨대 우리나라는 위대한 나라, 그리고 우리 국민은 위대한 국민입니다. 앞으로도 국민 여러분들의 많은 지지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 말은 조금은 낯 뜨거운 말이었지만, 실제로 한국에는 악마들이 나타나지 않고 있어 많은 사람은 신의 축복이 있다고 말하고 있기도 하였다.

그런 대통령의 마지막 말을 들은 강민이 유리엘에게 장난스럽게 말하였다.

“유리가 신인가 봐. 하하하.”

“신같이 귀찮은 걸 왜 하겠어요? 호호호.”

지금 한국에서 악마가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유리엘이 펼친 척마진(斥魔陳)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대통령이 신의 축복이라 말하는 것에 빗대어 강민은 유리엘에게 신이라는 식의 농담은 한 것이었다.

최초에 악마가 발생하였을 때, 경기도에 있는 드림시티도 그 악마로 인하여 피해를 보았다.

자체 방어 결계가 있었기 때문에 드림시티가 직접 피해 대상이 된 것은 아니었지만, 드림시티 결계 밖의 인근 마을에 나들이 갔던 세 명의 중학생이 악마에 의해서 피살을 당했던 것이었다.

물론 그 악마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드림시티 안에 있던 백록원의 문도들에 의해서 곧바로 척살되었지만, 이미 죽은 세 명의 목숨은 어쩔 수가 없었다.

전 세계적으로 난리가 난 상황에서 세 명의 목숨은 크다 할 수 없었지만, 학생들 하나하나에 애정을 갖고 있던 강서영의 충격은 꽤나 컸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좀처럼 부탁 같은 것을 하지 않는 강서영이었지만, 드림시티 학생들의 죽음에 눈물을 글썽거리며 유리엘에게 부탁을 하였다. 드림시티 인근에서 악마가 나타나지 않게 해달라고 말이다.

보통의 마법사라면 수 킬로미터에 이르는 결계만 펼친다고 해도 큰 무리가 될 수 있겠지만, 유리엘은 보통의 마법사가 아니었다.

울먹이는 강서영의 부탁을 들은 유리엘은 당연히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 부탁의 결과가 드림시티를 중심으로 반경 400㎞에 펼친 척마진이었다.

악마와 상극의 기운을 가진 척마진은 악마를 쫓기 위해서 만들어진 결계의 일종이었다. 이 척마진의 기능은 단순하였다. 진 안에 들어온 악마 중 약한 악마는 그대로 물질계에서 소멸시켜 마계로 강제 추방해 버렸고, 강한 악마는 그 기운 때문에 어떻게든 척마진을 벗어나기 위해서 발버둥을 치도록 만들었다.

현재 유리엘이 펼친 범위를 벗어나는 곳은 남한 쪽에는 전라도 해남의 일부와 제주도, 북한 쪽에서는 백두산을 포함한 인근의 양강도와 함경북도 정도였다. 거의 한반도 전역이라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악마가 나타나고 있는 일부 지역은 마물을 상대하는 특수 부대인 사신(四神) 부대에서 적극적으로 악마를 상대하고 있었는데, 타국에 비해서는 매우 좁은 지역이라 그리 어려움 없이 악마를 퇴치하고 있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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