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4
현세귀환록
164. 광검(3)
시작하자는 말과 함께 강민은 밖으로 나왔다. 아무래도 방 안에서 드잡이질을 하기에는 방의 크기가 너무 작았기 때문이었다.
마당의 한가운데 선 강민이 백무성에게 덤비라는 뜻으로 오른손을 내밀어 까딱거리자, 백무성은 극도로 화가 난 표정을 지으며 강민에게 달려들었다.
달려드는 백무성은 처음부터 광검을 꺼내어 들지는 않았다. 시작은 검강, 도를 쓰는 백무성에게는 도강인 강기부터였다.
항상 허리에 차고 있던 환도(環刀) 형태의 애도를 꺼내어 든 백무성은 곧장 그 도에 도강을 발현하여 강민에게 짓쳐 들어갔다.
기세는 흉험하였다. 지금까지 무의식적으로 백무성의 자제력에 억눌려 있던 심마가 백무성이 전투의지를 가진 순간 삽시간에 백무성의 본능을 장악하며 거친 기운을 뿜어냈기 때문이었다.
“허!”
그런 백무성의 거친 행동에 대각선사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경호성이 터져 나왔다. 대각선사의 생각으로는 백무성이 가볍게 강민을 혼내주는 것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지금의 기세는 가벼운 것이 아니라 마치 생사결(生死決)을 나누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백무성을 말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자신의 능력으로는 물리적으로 백무성을 막기는 힘들었다. 그러니 그가 손속에 사정을 두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다만 백무성이 이런 상황에 대해서 인식하는 것을 도와주려고 정신을 일깨우는 창룡음(蒼龍音)을 포함한 한 줄기 전음을 날렸다.
[무성! 손속이 과하네! 실력이 있다 하더라도 아직 어린아이야! 자네가 자비를 보이시게나!]
하지만 백무성은 대각선사의 그런 바람과 달리 지금의 기세를 늦추지 않고 강민을 가격하였다.
콰앙-!
폭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도강을 머금은 백무성의 환도는 강민을 직격하지는 못했다.
그의 환도가 강민을 가격하기 직전 강민은 품속에서 2미터 정도 길이의 빛나는 봉을 꺼내 들어 그의 환도를 막아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첫 번째 공격이 막혔다고 바로 물러나기에는 지금까지 백무성이 살아온 시간이, 해온 수련이 너무 많았다. 백무성은 당연히 강민이 막아낼 줄 알았다는 듯 이어지는 공세를 펼쳤다.
쾅! 쾅! 쾅! 쾅! 쾅!
폭탄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백무성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공격으로 강민의 상체 전부를 범위에 놓고 파상공세를 펼쳤고, 강민은 들고 있던 봉으로 그의 공세 하나하나를 침착하게 막아냈다.
만일 이들의 전투를 알아볼 안목이 있는 사람이 이 전투를 보았다면, 이들의 흉험한 기세와는 달리 둘의 전투가 실전이 아니라 마치 지도 대련을 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었다. 당연히 가르치는 쪽은 강민이었고, 배우는 쪽이 백무성이었다.
하지만 그런 안목이 없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백무성의 공세를 강민이 간신히 막아내는 것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었다.
밖에서 어떻게 보이든 현재 강민의 표정은 너무 여유로웠고, 그렇게 강민이 여유 있는 표정을 지을수록 백무성의 표정은 점점 더 일그러지며 점점 더 강한 기운을 풍겨냈다.
그러나 그의 깊은 수행이, 마지막 이성이 심마의 발현을 저지하고 있는지 흉흉한 기세에도 불구하고 아직 살기까지는 띠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대각선사는 전투의 맹렬한 기세에도 크게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백무성이 아까 자신의 전음을 듣고 손속에 사정을 두고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대각선사의 생각과는 달리 사실 백무성이 가진 인내력에 한계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 점점 파괴적인 욕구가 솟구치며, 머릿속에 누군가의 말까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다…… 죽여…… 다 죽여라…….>
백무성은 내심 고개를 흔들며 머릿속의 목소리에 저항하였지만, 머릿속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며 백무성을 자극하였다.
그런 백무성의 기색을 읽었는지, 강민은 지금까지의 수세적인 모습에서 벗어나서 이제는 적극적으로 봉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쾅! 퍽! 퍼퍼퍼퍽!!!
첫 번째 공격은 간신히 막아냈으나 이어지는 연환공격까지 백무성이 막기는 힘들었다. 봉에는 살기가 담겨 있지 않아 생명을 잃을 정도로 치명적이지는 않았으나, 무슨 방법을 썼는지 고통은 살기가 담긴 치명상보다 더 큰 것만 같았다.
“윽, 으윽…… 윽…….”
퍼버벅!
“으으윽…….”
퍽! 퍽, 퍼억!
강민은 한 번 가져온 기세를 다시 백무성에게 넘겨주지 않았다. 마치 태풍이 몰아치듯 강민은 가지고 있는 봉을 휘둘러 백무성의 전신에 몽둥이찜질을 하였다.
날도 없는 봉의 공격이었지만 내포된 경력이 대단한지 백무성은 봉이 닿을 때마다 신음성을 내며 몸을 비틀었다.
광검지경까지 올라온 고수가 이 정도 고통에 신음성을 내뱉는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지만, 강민의 봉이 자신을 가격할 때마다 발생하는 고통은 광검지경의 고수로서도 참기가 힘들 정도도 극심했다.
<죽……여……라.>
그렇게 강민의 봉에서 오는 지속적인 고통에 머릿속의 목소리까지 계속 반복되자, 어느 순간 백무성은 이성을 잃고 말았다. 드디어 심마에 완전히 장악당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강민이 노려왔던 것이 이것이었다. 한 방에 잠재울 수 있는 것을 굳이 시간을 두고 두들겨 대었던 것은 이렇게 골수에 스며든 심마를 완전히 발현시키기 위해서였다.
백무성의 눈가가 붉게 물들고 손에 살기가 맺히는 것을 확인한 강민은 잠시 물러나서 봉을 돌리더니 그에게 불쑥 말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
지금까지 한 전투가 무색하게 강민은 본격적이라는 말을 하며, 다시 백무성에게 봉을 휘둘렀다.
하지만 백무성은 조금 전까지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제 심마를 완전히 발현하여 손속의 망설임이 사라진 백무성은 살을 주고 뼈를 깎는 모습으로, 강민의 봉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내며 일수일수(一手一手)에 살기를 띤 흉맹한 공격을 감행해 왔다.
환도에 맺혀 있는 도강 역시 아까 전과는 차원이 다른 모습이었다.
갑작스럽게 터져 나온 살기에 놀라 대각선사가 한 번 더 창룡음이 섞인 전음을 보냈지만, 백무성은 이제 그런 것을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대각선사가 보기에는 흉험한 도강을 두르고 환도를 전개해 나가는 백무성에게 강민이 곧 살해당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상황은 이런 대각선사의 생각과 정반대로 흘러갔다. 여전히 강민의 봉에 백무성이 두들겨 맞고만 있었기 때문이었다.
흉폭해 보이는 백무성의 도격이 강민의 전신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여전히 강민은 그런 공격을 슬쩍슬쩍 피하면서 백무성의 온몸에 금빛으로 빛나는 봉을 가격하였다.
다만, 아까와 다른 점은 백무성이 기를 극도로 운용하여 호신강기까지 펼쳤는지, 더 이상 봉의 공격에 신음성을 내거나 움찔거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 봤자 수세를 피할 수는 없었다. 살기 띤 공격까지 했는데도 여전히 상황을 장악하지 못하자, 백무성은 최후의 수단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네가 이것까지 막을 수 있는지 보자!”
광검이었다. 잠시 정신을 집중한 백무성은 아까 전 대각선사에게 보여줬던 광검을 시전했다.
광검만 별도로 생성한 것이 아니라, 지금 쓰는 도에 도강 대신 광검, 이 경우에는 광도(光刀)를 깃들게 한 것이었다.
순간 엄청난 기운을 내뿜으며 밝게 빛나는 백무성의 환도는 마치 지상에 태양이 강림한 것과 같은 모습을 보였다.
“어떠냐? 이것이 광검이다. 아니, 광도라고 해야 할까? 뭐 어쨌든 네 오만을 탓하며 세상에서 사라지거라!”
백무성은 빛이 깃든 자신의 환도를 유성파천(流星破天)의 식으로 강민에게 내리그었다. 도세를 전개하는 백무성은 강민이 결코 이것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는 자신감에 찬 모습이었다.
그런 백무성의 자신감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강렬하게 빛나는 백무성의 광도는 주변을 초토화시킬 수 있는 거력을 머금은 채 강민에게 떨어졌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강민은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이제야 끝낼 때가 왔군.”
자신에게 다가오는 도세에도 강민은 느긋하게 한마디 던지더니 광도에 맞서 봉을 내질렀다. 가볍게 찌르는 것처럼 보이는 봉이었지만, 그 속에 담긴 힘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콰지직!!
마치 아름드리나무가 부러지는 것과 같은 소리가 나더니 백무성의 광도는 강민의 봉에 뚫려 버렸다.
그렇게 백무성의 공격을 파훼한 강민의 봉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한참을 더 백무성에게 나아갔다. 봉의 끝이 가리키는 곳은 백무성의 단전이었다.
백무성은 자신의 도세가 파훼되는 것을 확인한 후 초월의 영역까지 펼치면서 자신의 단전을 향해 다가오는 봉을 피하려고 하였으나, 그의 역량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콰앙!
백무성은 피하지는 못했으나 자신의 전 마나를 담아서 호신강기를 펼쳤고, 강민의 봉과 호신강기가 부딪히며 마치 폭탄이 터지는 것과도 같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봉에 맞고 날아가려는 백무성을 허공섭물로 움켜쥐어 자신의 앞으로 끌어당긴 강민은 아까보다 더욱더 격렬하게 백무성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퍽퍽퍽퍽퍽퍽!
허공섭물 때문에 빨랫줄에 걸린 빨랫감처럼 공중에 매달린 백무성에게 강민은 마치 이불을 털듯이 폭풍 같은 연타를 날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대각선사 역시 어떻게 상황이 이렇게 변하였는지 어리둥절할 뿐 감히 끼어들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백무성이 광검을 펼친 이후 강민에게 잡혀서 저렇게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몇 초 남짓이었다.
“그, 그만하게! 이제 되었지 않은가!”
친우가 처참하게 두들겨 맞고 있는 모습을 보고 대각선사는 서둘러 강민에게 외쳤다. 사실 조금 전 백무성이 했던 행동을 생각하면 강민의 이 구타는 별것 아닌 것일 수도 있지만, 당황한 대각선사는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다.
대각선사의 말에도 강민이 그만두지 않고 계속해서 백무성을 두들기자, 참다못한 대각선사가 직접 나서려고 하였다. 하지만 이어서 들려오는 유리엘의 말에 대각선사는 몸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선사님, 지금 민은 백 가주를 치료하고 있는 것입니다.”
“치료?”
“느끼셨을지 모르겠지만, 백 가주는 지금 심마에 완전히 장악당한 상태지요.”
유리엘이 심마를 언급하자 대각선사는 깜짝 놀라며 반문했다.
“심마라니!”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조금 전 백무성과 대화를 나눌 때 분명 사이한 기운이 느껴졌었다.
그 뒤로 이어진 충격적인 발언들 때문에 사이한 기운에 대한 생각을 잊어버렸었지만, 분명 상서롭지 않은 기운의 발현을 느꼈었다.
‘그게 심마가 발현하는 것이었던가…….’
대각선사가 뭔가 짐작이 간다는 듯한 표정으로 생각을 하고 있자 유리엘이 말을 덧붙였다.
“골수까지 파고든 심마를 뽑아내려면 심마를 자극하여 완전히 발현시킨 후 저렇게 제마봉(制魔棒)으로 두들기는 것이 가장 좋죠.”
사실 저렇게 두들기지 않고도 심마를 뽑아낼 수가 있긴 하였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골수 깊숙이 파고든 심마의 잔재까지 빼내기는 힘들고, 그런 잔재들이 나중에 본성과 결합하여 본성 자체가 변해 버릴 수 있다는 위험성도 있었다. 결국 유리엘의 말처럼 이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유리엘의 말까지 듣자 대각선사도 더 이상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머릿속에는 다른 생각들로 가득 찼다.
‘무성은 검강지경의 경지를 뛰어넘어 광검지경에 도달했다 했는데, 지금 저자는 그런 무성을 어린아이 다루듯이 쉽게 다루다니, 도대체 저자의 능력은 어디까지라는 말인가……. 역시 천기가 가리키던 자가 저자가 맞는가 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