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6
현세귀환록
156. 시작(1)
석 달 일정으로 잡고 시작했던 가족들과의 여행은 그 두 배의 시간인 6개월이 넘어서야 모두 끝났다. 늦여름에 시작했던 여행을 봄이 되어서야 마친 것이었다.
그 사이 한국의 정세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새로운 대통령이 뽑혔고, 새로운 국회가 구성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국의 혼란은 그치지 않았다.
새로운 대통령은 강민의 예상대로 충청도를 지역구로 하는 3선 의원인 윤강민 의원이 되었지만, 새로운 국회는 예상과는 달리 부패한 기득권층에서 다시 의석의 삼 분의 일 이상을 가져가 버렸기 때문이었다.
강민이 현직에 있던 부패한 기득권층을 모두 쓸어버렸지만, 그것은 현직에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것뿐이었다. 은퇴하였거나 한발 물러서서 배후에 있던 부패한 기득권층들은 아직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 기득권층들은 여론몰이하는 것에 탁월했다. 비록 국가적인 여론은 아직 장악하지 못해 대선을 가져오는 것에는 실패하였지만, 지역구별로 각개전투를 할 수 있는 총선에서는 어느 정도 지역 여론을 장악하여 다시금 상당수의 의석을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이런 이유들로 인하여 기득권을 청산하고 개혁을 원하는 진보진영과 자신들이 가진 기득권을 어떤 방식으로든 유지하려는 보수진영이 매일같이 충돌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러나 지금 강민의 집 정원에는 그런 세상의 어지러움과는 동떨어진 평화로움만이 감돌고 있었다. 마치 옛 신선들이 머물렀다는 도원향(桃園鄕)과도 같아 보이는 모습이었다.
따사롭게 내리쬐는 햇살 아래서 강민은 마당의 평평한 정원석에서 눈을 감고 정좌를 하고 앉아 명상을 하고 있었고, 유리엘은 집채만 한 크기의 다차원 입체 마법진을 점검하고 있었다.
이런 평화로운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갑작스럽게 유리엘이 점검하던 마법진에서 강렬한 빛이 터져 나오더니 정원 전체를 가득 채우던 마법진이 일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유리엘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제 다 끝났네요. 휴…… 이 세계의 정령력이 약하다 보니 생각보다는 좀 더 걸렸네요.”
유리엘의 말에 명상을 하던 강민이 천천히 눈을 뜨며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그래? 그럼 이제 시작할 수 있는 거야?”
“네, 그렇지?”
뒤의 질문은 강민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서 한 것이었는데, 그때 마법진이 사라진 자리의 허공에 반투명한 미녀의 형체가 드러나더니 그녀의 물음에 대답하였다.
[네, 유리 님!]
미녀의 목소리는 고막을 타고 들리는 소리가 아니라 뇌에 직접 전달하는 것과 같은 울림을 주는 방식의 목소리였다.
어쨌든 그렇게 허공에 나타난 반투명한 미녀를 바라본 강민은 다소 놀란 듯한 표정으로 유리엘에게 물었다.
“이 형체와 이 목소리는…… 제니아야?”
강민의 놀람을 짐작했다는 듯이 유리엘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강민에게 대답했다.
“놀랬죠? 제니아를 베이스로 만든 인공정령이에요. 아무래도 지금 시동할 시스템까지 관리할 정령을 만들려다 보니 제니아급의 힘은 있어야 할 것 같아서요.”
“어쩐지. 마나 위성의 관제 정령을 만드는 것이 늦다 싶었더니 제니아를 만들려고 그랬었구나.”
“처음에는 제니아를 생각한 것은 아닌데, 중간에 지금 구현할 시스템을 생각하다 보니 제니아만 한 선택지가 없더라구요.”
“흠…… 그렇지만 그 녀석은 너무 천방지축이었잖아.”
유리엘은 강민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렇긴 하죠. 하지만 지금 만들 시스템을 관리하기에는 그 녀석만 한 정령이 없어요. 성향이나 가진 힘이나.”
“흐음. 힘은 정령왕에 육박하는 힘을 가졌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그 녀석의 성향은…….”
“호호호. 무슨 걱정을 하는지는 알겠는데, 지금 보여줄 시스템에서는 제니아 같은 타입이 더 나을 거예요.”
“뭐 유리가 그렇게 생각한다면야.”
강민의 우려를 확신이 담긴 대답으로 불식시킨 유리엘은 그녀를 만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덧붙여 설명했다.
“걱정하지 말아요, 잘할 거니까요. 만일 이 차원에 정령력이 충만했다면 굳이 제니아가 아니라 적합한 성향을 가진 기존의 정령을 승급하는 식으로 해서 계약을 해버렸겠지만, 여긴 너무 정령력이 부족해서 지성을 가진 정령 자체가 없더라고요.”
“그렇긴 하지. 마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정령력은 더 부족한 곳이니.”
“네, 그래서 아예 새로이 정령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기존의 정령을 베이스로 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죠.”
유리엘의 말에 이해했다는 표정으로 강민은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렇군. 그럼 복원은 몇 퍼센트 정도 수준으로 된 거야?”
“정령력이 너무 빈약해서 마법진으로 몇 년간 끌어모았지만 60% 선에 그치네요. 그렇지만 장기적으로 정령력을 자가 흡수할 수 있도록 설계해놓았으니 시간이 지나면 복원율은 더 올라갈 거예요.”
“60%라고 해도 웬만한 최상급 정령은 훨씬 상회하는 수준이겠군.”
“그렇죠. 제니아였니까요. 호호호.”
“성격도 가져온 거지?”
“네, 성격은 필요해서 가져왔지만, 그때의 기억까지 주입해놓지는 않았어요. 거기까진 불필요한 것 같아서요. 이곳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억으로 대체해 놓았지요.”
그때의 기억은 없다는 그녀의 말에 강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나마 다행인가? 어쨌든 제니아라니 전혀 의외인걸. 난 디온이나 패드론 정도를 생각했는데 말이야.”
“걔네들은 너무 고지식한 면이 강해서 단지 마나 위성을 관리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지금 구현할 시스템에는 맞지 않아요. 그리고 그 녀석들을 베이스로 해서 관제 정령을 만들려고 했다면 이미 벌써 만들었겠죠.”
“하긴, 그 녀석들은 제니아의 힘에 비하면 별것 아니니.”
“그래요. 어쨌든 여기 인사해요. 제니아, 이리 오렴.”
유리엘은 반투명한 제니아를 바라보며 이야기했고, 지금껏 강민과 유리엘의 대화를 옆에서 듣고만 있던 그녀는 유리엘의 말에 우아한 걸음걸이로 다가왔다.
제니아는 푸른 이브닝 드레스를 입은 백금발 미녀의 모습이었는데, 반투명한 상태로 다가오는 모습이 마치 3차원 입체영상을 보는 것과도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렇게 강민의 앞에선 제니아는 오른손을 가슴에 올리고 정중한 자세로 강민에게 인사를 하였다.
[반갑습니다, 강민 님. 제니아라고 합니다.]
정중한 제니아의 인사에 뜻밖이라는 표정의 강민은 인사를 받는 대신에 유리엘을 돌아보며 물었다.
“제니아의 성격을 가져왔다고 하지 않았어? 지금 모습을 보면 아닌 것 같은데?”
“호호호. 그 녀석 아직 낯가리는 거예요. 조금 지나면 안 그럴걸요? 전에도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잖아요.”
“그런가…… 어쨌든 반가워, 제니아. 앞으로 잘 부탁할게.”
[제가 더 잘 부탁드려야죠. 강민 님.]
강민과 제니아가 인사를 나누는 동안 유리엘은 또 다른 마법진을 전개하였다. 조금 전의 마법진에 비해서 규모는 작았으나 그 속에 담긴 마나는 훨씬 크다고 할 수 있었다.
유리엘은 5미터 정도의 허공에 마법진을 그리는 것을 시작으로 그 마법진에 대응하는 마법진을 2미터 정도 위에 다시 그리고, 그 둘을 감싸는 정방형의 마법진을 그렸다.
그리고 다시 구(球) 형태의 마법진, 삼각뿔 형태의 마법진 등 십수 개의 마법진을 중첩하여 처음 마법진을 만든 공간에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이미 많은 연구를 거듭했는지 그녀의 움직임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그렇게 마법진이 완성되어 가며 마법진들 사이의 마나 교류가 발생했고, 미약한 빛과 함께 웅웅거리는 소리가 나며 시동 전의 전조현상이 발현하였다.
만일 일반적인 마법사가 이 모습을 보았다면 그 전조현상에서 일어나는 마나의 교류만으로도 황홀경을 겪을 수도 있을 만큼 정교하고 아름다운 마나의 흐름이었다.
아공간에서 수백 차례 이상 시뮬레이션을 해본 마법진이다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마법진을 완성한 유리엘은 강민과 이야기를 나누던 제니아를 불렀다.
“제니아, 저 마법진의 중앙으로 들어가. 해야 할 일은 알고 있지?”
[네, 유리 님. 맡겨만 주세요.]
“그래, 믿을게.”
유리엘이 필요한 기억은 모두 주입하여 놓았기에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제니아였지만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잘 알고 있었다.
제니아가 마법진의 중앙으로 날아 들어가자 유리엘은 본격적으로 마법진에 마나를 불어넣으며 주문을 영창하기 시작했다.
“@#%@#$^#$%&$%^& [email protected]#$#$%^$&^^%$%~”
이 차원에 온 이후로 가장 긴 마법 영창이었다. 그렇게 1분 남짓한 긴 마법영창 끝에 유리엘은 기묘한 수인을 맺으며 시동어를 외쳤다.
“리그 디오 알리오스 칸!”
유리엘의 시동어와 함께 마법진에서, 아니, 온 세상에서 강렬한 빛이 터져 나왔다. 그 빛은 마치 창세의 그 순간처럼 세상 전체를 비추며 모든 어둠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물론 그 시간은 너무도 짧은 순간이어서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헛것을 본 것이라는 생각을 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인들의 생각일 것이고 이능력자들은, 수준 낮은 이능력자라 하더라도 마나장이 흔들린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전 세계적인 거대한 마법이었다.
그러나 이런 큰 파장을 발한 마법치고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순간적으로 지구 전체를 빛으로 감쌌을 뿐 더 이상의 변화는 없었던 것이다.
잠시 기다렸지만 여전히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 같자 강민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 아!”
“역시 마나에 민감한 민이라면 말하기 전에 알아차릴 줄 알았어요.”
“그럼 아까 내게도 내려왔던 그 줄이 그것이었군.”
“그래요. 하지만 민 정도의 강자에게 이 마법이 영향을 줄 수는 없으니 그냥 사그라들어버린 것이었죠. 아마 10서클 이상 마법사나 광검지경에 올라온 무인들에게는 이 마법이 영향을 주기 힘들 거예요.”
“그 말은 역으로 말하면 몇 명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이 마법의 영향력 아래 있게 된다는 것이군.”
“뭐, 그렇죠.”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떤 식의 마법인 것이지? 개개인에게 연결되어서 작용하는 방식인 것은 알겠는데 말이야.”
“호호호. 그게 이 마법의 포인트죠. 일단 강훈이에게 연결된 끈을 잡아볼래요?”
평범한 사람이라면, 아니, 조금 전에 말한 10서클 이상의 고위 마법사라고 해도 지금 유리엘이 말한 끈은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강민은 그것이 가능했다.
잠시 최강훈의 마나를 느낀 강민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손을 뻗어 무언가를 집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끈을 잡았으면 우리가 늘 사용하던 마나 보안 해제 패턴을 사용해서 정보를 읽어봐요.”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어. 어떤 마법인지 기대되는데?”
“기대해도 좋을 거예요. 이보다 목적에 적합할 수 없을 테니까.”
유리엘의 대답을 들으며 강민은 자연스레 보안을 해제하고 정보를 읽었다. 그리고 그 직후 강민은 놀랍다는 표정으로 유리엘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설마 이건?”
강민의 놀라움에 유리엘은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지금 강민이 보는 것은 최강훈의 상태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최강훈의 상태창이었다.
[기본정보]
이름 : 최강훈
성별 : 남자
등급 : SB
카르마 포인트 : 0
다르마 포인트 : 0
[능력정보]
신체 능력 : SB / 정신 능력 : SA
마나 능력 : SB / 잠재 능력 : SC
[기술정보]
은하검결(SD) : 32/100
무극심법(AS) : 67/100
황룡검법(AC) : 10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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