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세귀환록-154화 (154/203)

# 154

현세귀환록

154. 정리(1)

“의장님! 큰일 났습니다!!”

메르딘의 방으로 연결된 이동 마법진에 나타난 회색 로브를 입은 60대의 대머리 마법사가 호들갑을 떨면서 메르딘에게 다가왔다.

화려한 백색 로브를 입고 고풍스러운 원목 테이블에 앉아 서류에 서명하던 메르딘은 깃털펜을 놓고 황급히 다가온 대머리 마법사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오. 하디우스 탑주.”

“무, 무림맹주가 죽었다고 합니다!”

뜻밖의 충격적인 소식에 메르딘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치듯이 물었다.

“뭐라구요? 다시 한번 말해보시오. 정말 무림맹주, 그러니까 독고패 맹주가 죽은 것이 확실한 것이오?”

“네, 확실합니다. 무공을 배우기 위해서 무림맹에 파견 나갔던 파르돈에게서 온 연락입니다.”

파르돈에게 나온 정보라는 말에 그 정보의 신뢰성을 확인한 메르딘은 털썩 자리에 앉으면서 말했다.

“파르돈이? 허……. 도대체 언제 그런 것이오?”

“아직까지 정확한 시간까지는 알 수 없으나 일단 어제 그런 것으로 추정됩니다. 더군다나 무림맹주뿐만 아니라 사천왕이라 불리는 마스터급의 고수들도 다 같이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허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무림맹주는 그랜드 마스터의 고수인데, 대체 누가 그를 죽였다는 말이오? 흉수까지 밝혀졌소?”

“내부적으로는 약간 쉬쉬하는 분위기지만 퍼니셔라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메르딘은 어느 정도는 예상한 듯 흉수가 퍼니셔라는 것에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퍼니셔라면…… 결국 무림맹주가 일을 벌였던 것이었군. 그런데 퍼니셔가 그 정도의 강자였단 말인가? 아, 혹시 퍼니셔의 상태는 확인되었소? 어느 정도 부상을 입었소?”

당연히 부상을 입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메르딘은 다시 물었다. 하지만 하디우스의 대답은 메르딘의 기대와는 달랐다.

“그, 그게…… 퍼니셔는 멀쩡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랜드 마스터와 싸웠는데 퍼니셔가 멀쩡하다는 사실에 메르딘은 다소 의아해하는 눈치였다.

“멀쩡하다고? 지금 같이 여행을 하는 가족과 일행들도 멀쩡한 것이오?”

“네, 의장님께 오기 전에 퍼니셔에 관한 사항을 확인해 보니 모두가 멀쩡한 상태로 일행과 함께 홍콩에 입국한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홍콩? 어제까지 세부에 있다고 하지 않았소?”

“홍콩의 출입국 기록에 퍼니셔 일행의 기록이 나타났습니다. 다만 전용기가 출입국 기록보다 더 늦게 도착한 것으로 보아 비행기를 이용한 것이 아니라 공간 이동으로 움직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디우스는 올림포스에서 고위직, 특히 정보를 다루는 백탑의 탑주였기에 메르딘은 그에게 퍼니셔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였었다. 즉, 하디우스 역시 퍼니셔가 강민임을 알고 있는 상태였다.

“허…… 그렇다면 퍼니셔가 독고맹주를 압도했다는 것인가? 아, 혹시 전투가 벌어진 곳의 대지의 기억은 확보했소?”

“시도는 해봤지만…….”

“해봤지만?"

“그게…… 대지의 기억이 대부분 소실되어 버린 상태였습니다. 아무래도 전투가 격렬했는지 수용할 수 있는 한계 이상의 큰 마나 폭발이 발생한 것 같습니다.”

하디우스의 말에 메르딘 역시 수긍이 가는지 고개를 끄덕였지만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복원에 대해서 물었다.

“하긴, 그랜드 마스터간의 대결이니……. 그렇다면 복원은 힘들겠지?”

역시나 하디우스의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아무래도 힘들 것 같습니다. 다만 전투가 벌어진 곳의 모습은 여기 있습니다.”

사전에 준비한 것인지 하디우스는 품에서 주먹만 한 수정구를 꺼내어 마나를 주입했고, 잠시 푸른빛을 발하던 수정구는 세부 해변가의 처참한 모습을 3D 영상처럼 메르딘의 전면에 펼쳐놓았다. 해변가는 융단폭격을 맞은 것처럼 사방이 초토화가 되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메르딘은 잠시 아무 말 없이 생각에 잠겼다. 하디우스 역시 메르딘의 생각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굳이 입을 열지 않았다.

그렇게 둘 사이에는 잠시간의 침묵이 흘렀다. 오 분여의 시간이 지났을까. 생각을 정리한 듯 보이는 메르딘이 눈을 빛내며 하디우스에게 말했다.

“이제 이능계의 질서가 크게 바뀌겠군.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무림맹주를 아무런 피해 없이 해치웠다는 것은 그보다 한 등급 위의 강자라는 말이겠지. 우리 식으로 말한다면 10서클에 도달하였을지도 모르겠소.”

“10서클!!!”

10서클이라는 말에 하디우스는 경악한 표정으로 외쳤다. 그만큼 마법사들에게 10서클은 전설적인 경지였다.

과거 올림포스를 창설했던 칼로파만이 10서클에 도달하였을 뿐, 그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10서클을 밟아보지 못하였다.

현재 메르딘 역시 그랜드 마스터와 동급인 9서클의 마법사일 뿐이었고, 10서클로 가는 길은 아직 감조차 잡고 있지 못한 상태였다.

“우리 올림포스의 포지션을 재고(再考)해봐야겠소. 향후 우리 올림포스는 퍼니셔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될 것이오. 앞으로 이능 세계는 퍼니셔 중심으로 돌아갈 것이니 말이오.”

“그, 그 정도입니까?”

“그렇소. 9서클과 10서클의 차이는 7서클과 9서클의 격차보다도 훨씬 더 큰 차이가 나는 것이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겠지.”

이제야 메르딘은 강민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를 내렸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메르딘은 모르고 있었지만 강민은 독고패의 기억을 읽었기에 이미 메르딘의 생각과 발언들을 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의 생각이 늦었다는 것을 알려주기나 하는 듯 올림포스를 감싸고 있는 방어 마법진이 크게 흔들리더니 엄청난 마나 파장을 내면서 사라져 버렸다.

비단 방어 마법진뿐이 아니었다. 은신 마법진, 마나집적 마법진, 공간 이동 마법진, 탐색 마법진 등 삼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쌓아온 올림포스 본진을 감싼 마법진의 총화(總和)가 일순간에 다 날아가 버린 것이었다.

“헉! 이게 무슨 일이오?”

정보를 다룬다는 백탑의 탑주 하디우스였지만, 지금 이 상황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더듬거리며 메르딘에게 허둥지둥 대답했다.

“그, 글쎄요. 외부의 고, 공격 아닐까요?”

“누가 우릴 공격한다는 말인가?”

“저, 저도 잘…….”

은신 마법진이 있긴 하였지만 이능 세계의 실질적인 수장이나 마찬가지인 올림포스이기에 많은 이능력자들은 올림포스의 위치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올림포스를 공격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올림포스를 적대한다는 것은 이 세상의 마법사 전체와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었다.

현재 알려진 거의 대부분의 마법은 올림포스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일부 올림포스 소속이 아닌 마법사들의 독창적인 마법들도 있지만, 그 마법조차 근간은 올림포스의 마법인 경우가 많았다.

이런 것이 가능한 것은 올림포스는 정당한 대가만 지불한다면 올림포스에서 탈퇴하는 것에 큰 제한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독립을 원하는 마법사들은 새로운 마법이나 마법 이론 등을 제공하고 올림포스를 떠나는 경우가 간혹 있었고, 그렇게 올림포스에서 탈퇴한 마법사들이 따로 제자를 두는 경우, 그들은 올림포스 소속은 아니나 그 마법의 근간은 올림포스라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마법사들은 누구나 자신의 뿌리가 올림포스라 생각하고 있었다.

무림맹이 강대한 무력을 자랑한다 할지언정, 세상에 미치는 영향력만을 따지면 올림포스의 십분의 일도 되지 않았다.

무인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력과 마법사가 세상에 미치는 영향력은 그 파급력에서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무적(無敵)이라 할 만한 올림포스의 본진이 공격받은 것은 올림포스가 제대로 모습을 갖춘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적이 무슨 방법을 썼는지 탐색 마법진까지 파훼되어 버려 지금 적이 몇 명인지, 무슨 공격을 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메르딘은 순간적으로 당황했지만, 그는 이미 산전수전을 다 겪은 9서클 마법사였다. 즉각적인 임기응변에 나섰다.

메르딘은 재빨리 테이블 위를 치우더니 들고 있던 펜으로 간이 마법진을 그렸다. 순식간에 마법진을 완성한 메르딘은 즉각 마나를 불어넣어 새로운 마법진을 활성화시켰다.

마법진이 활성화되는 것으로 보아 적의 공격은 기존의 마법진을 날려버리는 것이지 새로이 그리는 마법진까지 영향을 주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메르딘이 그린 마법진은 간이 탐색 마법진이었다. 우선 올림포스 인근만을 대상으로 탐색하는 마법진이었는데, 간이 마법진이지만 그 유효거리는 3킬로미터에 육박하여 웬만한 적들은 다 탐지가 가능한 마법진이었다.

하지만 마법진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건 3킬로미터 범위 내에는 적이 없다는 의미였다. 그런 마법진의 반응에 의아해하며 메르딘은 가만히 중얼거렸다.

“음? 이럴 리가 없는데…….”

“왜 그러십니까, 의장님? 뭔가가 잘못되었습니까?”

메르딘은 하디우스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은 채, 마법진에 마나를 주입하여 탐색 범위를 넓혀나갔다. 간이 마법진이지만 9서클 마법사인 메르딘 자신이 직접 운용한다면 충분히 더 넓은 범위의 탐색이 가능하였다.

그러나 10킬로미터까지 탐색 범위를 넓혀도 여전히 적대적인 마나 반응은 없었다.

‘적대적 마나가 없다? 그렇다면 내부에서 실험하다 마법진의 핵을 건드렸다는 것인가? 하지만 내가 알기로 그 정도로 큰 규모의 실험은 지금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생각을 정리한 메르딘은 하디우스에게 질문을 던졌다.

“하디우스 탑주. 지금 S급 이상의 마법 실험 목록과 그 내용에 대해 조사해서 알려주시오. 혹시 승인받지 않고 시행한 실험이 있지 않은지도 철저히 조사해야 할 것이오.”

“아! 그런 것입니까? 네. 알겠습니다. 즉시 조사해서 보고 드리겠습니다.”

하디우스 역시 경지에 오른 마법사이기에 조금 전 메르딘이 시전한 마법진이 어떤 마법진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마법진의 시전 이후 지금과 같은 지시가 내려왔다는 것은 메르딘은 이번 사건을 적의 공격이 아니라 내부 실험의 실패에 따른 여파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디우스는 조금 전까지의 황망한 표정을 지우고 한숨 돌렸다는 모습으로 메르딘의 방을 벗어났다.

하지만 메르딘은 하디우스가 나간 뒤로도 여전히 찌푸린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적의 공격이 아니라 내부 실험의 실패라 해도 지금의 손실은 너무나 컸기 때문이었다.

‘허…… 사소한 마법진을 제외하고 초대형 마법진만 해도 10개가 넘는데, 마법진 간의 상호교류와 보완까지 생각하면서 다시 그리려면 족히 10년은 걸리겠구만. 어떤 녀석이 한 실험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뼛속 마나까지 갈아서 마법진을 그리는데 써야겠어! 휴…….’

이미 메르딘의 머릿속에는 외부 공격이라는 생각은 없었다. 내부 실험 실패라고 확신하고 있는 메르딘은 향후 수습을 어찌할 것인지만 고민 중이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뭔가 이질적인 느낌이 들더니 주위에서 느껴지던 올림포스 소속 마법사들의 기운이 다 사라졌다.

‘뭐지? 단체로 공간 이동이라도 한 것인가? 아니야. 공간이동의 마나 패턴은 없었는데? 어떻게 된 것이지?’

이상한 느낌에 메르딘은 탑 아래로 공간 이동을 시도하였으나 공간 이동의 마법은 발현되지 않았다.

“어떻게 된 것이지?”

그때 자신의 뒤에서 들려오는 여성의 목소리가 있었다.

“9서클 마법사라더니 아직도 모르는 건가?”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메르딘은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는데, 그곳에는 만난 적은 없었지만 얼굴을 익히 알고 있는 두 사람이 서 있었다. 바로 강민과 유리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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