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
현세귀환록
151. 응징(2)
“으으…….”
두개골까지 꿰뚫린 치명상이었지만 아직 독고패의 숨은 끊어지지 않았다. 엄청난 고통에 독고패는 차라리 자신의 숨이 끊어지길 바랐겠지만, 강민이 말했듯이 독고패는 강민에게 줘야 할 것이 있었다.
강민은 독고패의 두개골을 뚫고 그의 뇌까지 도달해 있는 자신의 손가락에 서서히 마나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강민이 손가락에 마나를 불어넣는 것과 동시에 독고패의 몸은 감전이나 된 듯이 격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또한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독고패는 몸을 떨면서 엄청난 비명을 질러댔다.
“으악!!!!! 으아악!!! 아악!!!!”
지금 강민은 단순히 고통을 주기 위해서 독고패의 뇌에 손가락을 박아 넣고 마나를 쏘아 내는 것은 아니었다. 독고패의 뇌와 상단전을 장악함으로써 영혼과 신체에 새겨진 기억을 읽어내고 있는 것이었다.
독고패 그 자신조차 잊어버린 무의식에 잠든 기억까지 읽어내기 위해서는 뇌에 자극을 줄 필요가 있었는데, 그 자극은 사람이라면 버티기 힘든 지옥의 고통이었다.
이렇게 뇌를 직접 자극하여 기억을 얻어내는 방식은 강민이 좋아하지 않는, 정확히 말하면 다소 꺼리는 방식이었지만, 강민을 제대로 자극한 독고패는 강민이 선호하지 않는 방식까지 사용하게 하였다.
사실 이 방식을 통해서 몇 사람의 인생을 읽어낸다면 차원 이동을 해서 적응하는 것이 무척이나 간편할 것이었다. 인생 자체를 흡수하는 것이기 때문에 즉시 차원에서 활동할 수 있는 지식을 갖출 수 있는 괜찮은 방법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강민은 이 방식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먼저 이 방식으로 기억을 읽어낸다면 피시술자는 엄청난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뇌에 자극을 주어 모든 기억을 되살려내서 읽어내는 것이기에 대부분의 사람은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죽어버리는 경우가 더 많았다. 아무에게나 사용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피시술자가 죽는 것이 문제라면 지금처럼 악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을 문제였다.
악인의 기억을 읽어낸다면 망각을 모르는 강민의 기억 속에 악인의 인생이 남는다는 또 다른 소소한 문제가 있지만, 수만 년을 살아온 강민에게 몇십 년, 길어야 백십수 년에 그치는 악인의 인생은 아무런 영향을 주지는 못하였다. 그것조차 보기가 싫다면 보기 싫은 악인의 기억만을 별도로 분류하여 봉인해 버린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런 문제는 강민이 이 방식을 싫어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아니었다.
강민이 이 수법을 선호하지 않는 주된 이유는 바로 강민 스스로가 이런 방식의 피해자였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강민이 최초 웜홀에 빠져 차원 이동을 한 뒤 악룡 카이우스에게 잡혔을 때, 카이우스는 수천 년의 시간 동안 강민의 신체에 무수히 많은 실험을 가했다.
그 실험 중에서는 뇌에다가 직접 시행했던 실험도 많이 있었다. 지금 강민이 사용하는 방식도 그 당시의 자신이 직접 겪었던 수법 중의 하나였다.
따라서 누구보다도 이 고통을 잘 안다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방법을 사용하면 당시 자신의 힘들었던 과거 상황이 연상되었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의식적으로 사용하기를 꺼렸던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의 독고패는 강민을 너무 자극했다. 자신을 기만하고 가족을 노리는 만행을 저질렀기에 강민이 평소라면 사용하지 않았을 수법까지 사용하게 만들었다.
“으아아악!!!!! 으아악!!!!!”
강민의 마나에 따라서 독고패의 비명은 계속 이어졌다. 벌써 독고패의 어린 시절부터 무공을 연마하던 청년기, 무림맹에 투신하여 활약하던 시절 등은 다 읽었고, 지금은 중년이 지나 무림맹주가 된 이후의 기억을 읽고 있었다.
몇십 초 지나지 않아서 독고패의 전반적인 인생을 대부분 읽어내고 비교적 최근의 기억이 강민의 뇌리에 읽히기 시작했다.
그 기억에는 독고패가 어떻게 강민을 기만해서 이곳까지 왔는지의 상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그 자신의 기억이기에 그 순간순간에 독고패가 어떠한 감정이었는지까지도 자세히 나타나 있었다.
‘이런 방법이었군.’
독고패가 강민의 부재를 틈타 이곳까지 온 방식은 어찌 보면 너무도 간단했다. 우선 무림맹의 산하 단체인 천하그룹의 인공위성을 통해서 강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일반적인 인공위성이라 유리엘의 마나 위성처럼 음성까지 잡아내거나 건물 안을 투시하여 볼 수는 없었지만, 출입국 기록 및 현지 탐문 등을 동시에 진행하여 충분히 강민의 행적을 따를 수 있었다.
천하그룹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거대 재벌 그룹으로, 건설, 기계, 화학 등의 일반적인 사업 영역부터 우주개발 및 방위산업에 관련한 부분까지 전방위적 사업 영역을 가지고 있는 기업체였다.
그런 거대 기업인지라 그룹의 자체적인 인공위성망도 가지고 있었고, 상급 기관인 무림맹은 당연히 그것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인공위성을 통해서 강민과 그 가족들을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있던 무림맹은 갑작스러운 강민의 순간 이동을 포착했다.
실내에서 했다면 알아차릴 수 없었을 것이나 이번의 순간 이동은 야외에서 일어났기에 포착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물론 사라진 것을 포착한 것이지 어디에 나타났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사실 강민이 사라지는 순간을 목격한 것이 그때가 처음도 아니었다. 위성으로 감시한 이후 강민은 몇 차례 야외에서 순간 이동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어 다시 나타날 때까지 닭 쫓던 개가 지붕을 바라보는 것처럼 기다려야만 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런 상황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구양풍으로부터 신호가 왔다.
그 신호는 자신의 위치를 확인해달라는 긴급신호였다. 보통은 긴급한 지원을 요청할 때 사용되는 신호기이기에 황급히 위성으로 확인해 보니 구양풍이 있는 자리에 강민이 나타났던 것이었다.
보통은 지원을 요청하는 신호기였지만 당시 구양풍이 신호기를 사용한 것은 그런 이유는 아니었다.
구양풍은 독고패의 의도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애초에 자신에게 내린 임무 자체가 강민을 압박할 수 있는 건수를 잡는 것이기에, 당시 강민이 가족과 떨어진 상황이 강민의 가족을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판단하고 신호기를 사용한 것이었다.
물론 그리되면 강민의 분노를 산 구양풍은 살아남기 힘들 수 있었다. 하지만 독고패의 충실한 심복이었던 그는 애초에 독고패를 위해서 목숨까지 바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시간을 끌어준다면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 강민이 자신을 놓아두고 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도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죽음을 각오하고 한 행동이었다.
어쨌든 독고패 역시 그런 구양풍의 의도를 읽고 바로 행동에 들어갔었다. 중간에 하극도를 만나 동행한 것은 다소 의외의 일이었지만, 한 치의 시간 낭비도 없이 즉각 세부로 이동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
베이징에서 마닐라로 이어진 공간이동 마법진을 사용하는 것은 물론, 마닐라에서 바로 세부로 이동하기 위해서 마장까지 동행했다.
마장은 무림맹에서 시도한 마법사 육성 프로젝트의 첫 결과물과도 같은 마법사였다. 오래전부터 마법사의 필요성을 느낀 무림맹은 올림포스에 무공을 배울 기회를 제공하는 대가로 자신들도 마법을 배울 기회를 제공받는 협약을 체결하였다.
그 협약을 통해서 마법을 배운 마법사들이 몇 명 더 있었지만 7서클 마스터에 오른 것은 마장이 유일하다고 할 수 있었다.
비록 강민의 강기 공격에 허무하게 죽어버렸지만 독고패 일행을 순식간에 세부로 데려온 것만 하더라도 그는 임무를 다 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세부로 도착한 독고패 일행의 이후 행적은 나중에 최강훈과 엘리아 등에게 물어도 모두 알 수 있는 일들이었다.
하지만 강민은 이왕 본 김에 그때의 상황까지 같이 살펴보았다.
* * *
“누구냐!”
최강훈은 갑작스럽게 느껴진 이질적인 마나 유동에 경계하며 외쳤다. 유리엘의 자연스러운 마나 유동과는 질적으로 떨어지는 마나 유동이었고, 살짝 감지되는 마나에서 적대감마저 느껴졌기에 그의 경계는 당연한 일이었다.
마나 유동이 끝난 곳에는 6명의 사람이 나타나 있었다. 마법사 복장을 한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중국 전통의 무복을 입고 있었기에 중국에서 온 사람들임을 알 수 있었다.
그중 부리부리한 눈을 가진 독고패가 최강훈과 뒤쪽에 있는 일행들을 한 번 슥 하고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최강훈의 질문과는 무관한 말이었다.
“이곳이 맞군. 수고했다, 마장.”
“수고라 할 것이 뭐 있겠습니까? 맹주님.”
독고패의 치하에 마장은 기뻐하면서도 내색을 하지 않으려 애쓰면서 대답하였다. 그렇게 마장을 한 번 바라본 독고패는 이어서 뒤에 있던 사천왕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어서 잡아라! 퍼니셔가 돌아오기 전까지 저들의 신병을 확보해야 할 것이야. 저기 퍼니셔의 가족들을 제외하고 다른 놈들은 반항하면 죽여도 좋다!”
독고패의 명령에 사천왕들은 신속하게 최강훈과 강민의 가족에게 달려들어 갔다.
그렇게 달려오는 사천왕을 목격한 엘리아는 아직 이들의 등장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한미애와 강서영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전투에 충격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잠재우려고 마음을 먹었다.
둘이 가진 마법기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모르는 엘리아로서는 당연한 조치였는데, 결과적으로 보아도 일반인에 가까운 둘이 피가 튀기는 전투를 보지 않은 것은 둘의 정신을 지킬 수 있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어쨌든 엘리아는 한미아와 강서영에게 긴장 이완 마법과 수면 유도 마법을 펼쳐서 잠재운 다음 소리를 막는 차음(遮音) 결계를 펼쳐서 둘이 깨지 않도록 조치하였다.
사천왕들이 적대감을 숨기지 않은 채 최강훈 등에게 접근하자, 그들이 적임을 분명히 인지한 최강훈과 정시아 역시 그들과 맞서 싸울 태세를 취하였다.
다만, 맞서 싸우려고 마음먹었지만, 최강훈의 표정은 무척이나 어두웠다.
지금 달려드는 세 명만 하더라도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것이 분명하였고, 마법사를 제외하더라도 뒤쪽에 있는 다른 두 명은 마스터의 경지조차 뛰어넘은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정면으로 상대한다면 자신들의 패배가 불 보듯 뻔한 상황이었다.
‘형님과 누님이 오실 때까지 시간을 끄는 것만 생각해야겠어.’
그렇게 생각을 하며 엘리아와 정시아에게도 그런 내용의 전음을 날렸고, 그의 전음을 들은 둘은 고개를 끄덕이며 최강훈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뒤쪽에 있는 노인과 중년인의 전력을 파악할 수 없는 이상 시간을 끄는 것이 최선이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가장 앞서서 달려오는 검왕 남궁백은 최강훈이, 도왕은 엘리아가, 마지막으로 장왕은 정시아가 상대하는 것으로 서로 간의 암묵적인 합의가 이루어졌다.
각자의 상대는 정해졌지만 최강훈이 정시아를 보는 눈에는 걱정이 가득하였다. 최강훈이나 엘리아는 이미 마스터의 경지에 올라서 각자의 상대와 대결하는 것에 나름 자신 있었는데, 정시아는 아직 마스터에 오르지 못했기에 장왕을 상대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최대한 자신이 빨리 상대를 해치우고 정시아를 도와줘야겠다고 마음먹으며 최강훈은 달려오는 검왕을 기다리지 않고 자신 역시 앞으로 뛰어나가며 환도를 뽑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