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세귀환록-150화 (150/203)

# 150

현세귀환록

150. 응징(1)

독고패에게 냉랭하게 말을 던진 강민은 우선 최강훈, 정시아, 엘리아를 향해 가볍게 손을 저었다.

치명적인 내상과 외상으로 기식이 엄엄한 일행들을 살리기 위한 치유의 손길이었다. 유리엘처럼 완벽한 치유가 되도록 할 수는 없었지만, 강민 역시 웬만한 치명상은 경상 정도로 완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지금 강민이 사용하는 방법은 크게 보면 추궁과혈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내공의 고수들이 자신의 기로써 환자의 기를 적당히 자극하고 안정시켜 치유하는 것처럼, 강민의 마나 역시 그들의 몸을 돌면서 들끓고 있는 그들의 마나를 안정시키고 상태를 회복시킬 것이었다.

강민이 마나를 보낸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지만, 강민의 마나가 벌써 제 역할을 하는지 최강훈과 정시아, 엘리아의 안색은 빠르게 안정되어갔다.

아직 의식을 찾지는 못했지만, 안색으로 보아 심각한 상황은 벗어난 것처럼 보였다.

이제 일행 모두의 안전을 확보한 지금, 강민에게 남은 것은 적에 대한 응징뿐이었다.

조금 전 하극도의 경우에는 광체화로 직격해 버려서 아무런 고통도 없이 그냥 부스러져 갔지만 여기 남아 있는 독고패와 그 일행은 달랐다. 강민의 분노를 정면으로 받아야 할 것이었다.

강민의 냉엄한 눈초리를 받고 있는 독고패 일행은 아직까지 경악과 당황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극도의 죽음이 너무도 비현실적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극도는 전대 맹주로 무림맹에서도 독고패와 비등한 수준의 강자였는데, 조금 전의 죽음은 그런 강자의 죽음치고는 너무도 허무하였다. 그래서 지금도 하극도가 죽은 것이 아니라 환술(幻術)을 사용해서 몸을 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그나마 맹주인 독고패는 재빠르게 상황 판단을 하고 있었다.

‘퍼니셔의 무력이 애초에 예상했던 무력 수준을 훨씬 능가하는군. 하극도 원로원주가 한 방에 저렇게 될 정도라면 나도 감당하기 힘들겠는데, 그렇다면…….’

힘 대 힘으로 붙으며 하극도를 이길 확률이 팔 할 이상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독고패였지만, 자신이 압도적으로 승리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종이 한두 장 차이의 격차였다.

물론 그 격차도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기에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지만, 이할 정도의 패배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 자체가 하극도와 독고패 자신의 실력이 그리 차이 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반증일 것이었다.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한 독고패는 자신의 뒤에 있는 사천왕에게 심어(心語)를 날렸다. 단순 전음은 저 정도 강자라면 충분히 엿들을 수 있을 것이기에 굳이 전음을 이용하지 않고 심어를 사용한 것이었다.

[대답하지 말고 듣기만 하라. 일단 내가 저자와 대화를 하며 시간을 끌겠다. 그사이에 어떤 식으로든 저놈의 뒤쪽에 있는 가족들을 확보하라! 그들만 인질로 삼을 수 있다면 애초에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다 얻어낼 수 있을 것이야. 필요하다면 수라격노(修羅激怒)를 펼쳐서라도 저놈을 잠시나마 묶어둘 테니 그 순간을 노려라!]

대답은 없었지만 독고패의 전음을 들은 사천왕들의 기파가 안정되기 시작했다. 하극도의 비현실적인 죽음 이후 사천왕들도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당황하고 있었는데, 독고패가 방향을 지시해 준 것이었다.

독고패가 말하는 수라격노는 일종의 격혈공으로, 자신의 전 내공을 태워 잠시간의 폭발적인 힘을 얻는 방식의 무공이었다. 독고패와 같은 검강지경의 강자가 사용한다면 그야말로 미증유(未曾有)의 거력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머리를 굴리고 있는 독고패와 그 일행들에게 강민은 가볍게 한마디 던졌다.

“그렇게 이리저리 머리 굴릴 것 없어. 네놈들의 운명은 정해져 있으니까.”

강민의 도발적인 말에도 독고패는 섣불리 대응하지 않았다. 다만 짙은 눈썹을 한 번 꿈틀거림으로써 불편한 심기를 표현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국에 있던 네놈이 어떻게 이곳까지 날아온 것이냐? 그리고 원로원주를 그렇게 만든 것은 마법이냐 무공이냐?”

독고패의 질문은 강민의 대답을 바라고 던진 질문은 아니었다. 물론 독고패에게 최선은 강민이 친절히 대답을 해주는 것이었지만, 대답이 아니라 답변에 대한 거부 의사만 밝혀도 이런저런 이야기로 시간을 끌 속셈이었다.

하지만 강민의 대답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굳이 시간 끌려고 그래도 소용없다. 오늘은 네놈들의 그 헛짓거리에 호응해 주고 싶은 마음이 없으니 말이야.”

“뭐? 무슨 말이냐!”

강민은 두 번 말하지 않았다. 말 대신 가볍게 오른손을 하늘로 들어 올렸다.

“아까와 같이 쉽게 보내주진 않을 테니 재주껏 살아남아 봐.”

“무슨 소……리…….”

독고패는 다시금 말꼬리를 잡으려 하였지만, 자신과 사천왕의 하늘 위에 느껴지는 엄청난 마나 유동에 말을 채 마치지도 못하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에는 수천 개의 반투명한 검이 마치 허공에 고정된 것처럼 나타나 있었다. 유형화되어 나타난 검강이었다.

마법과도 같이 나타난 수천 개의 검강은 강민의 손이 수직으로 내리그어짐과 동시에 마치 수천 명이 동시에 화살을 쏘는 것처럼 바닥을 향해 떨어졌다.

쾅쾅쾅쾅쾅쾅쾅!!!!!!

수천 개의 검강이 떨어지는 것은 전폭기 수백 대의 융단폭격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실제로 전쟁이 벌어진 것처럼 엄청난 굉음이 한동안 넓은 백사장에 울려 퍼졌다.

한참 동안 울리던 폭음이 그쳤을 때는 검강 때문에 발생한 먼지구름 덕분에 바로 앞에 있는 사람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시야가 가려져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마스터 이상의 경지에 올라 있었기에 이런 먼지구름에 시야를 제한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뭉게뭉게 피어오른 황토색 먼지구름 속에서 강민이 다시 손을 내저었다. 마치 풍계 마법이라도 사용한 것처럼 강민의 손짓에 따라 먼지구름은 흩어져 사방으로 날아가 버렸고, 그렇게 먼지구름이 걷힌 백사장에는 독고패와 사천왕, 그리고 시체로 추정되는 고깃덩어리 하나의 모습이 보였다.

검강지경에 있는 독고패는 경미한 생채기를 제외하고는 큰 상처 없이 양호한 모습이었는데, 나머지 부하들의 모습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전신에 상처를 입은 채 왼팔이 사라진 상태인 검왕 남궁백이 그중 가장 나은 상황이었다.

그를 제외한 사천왕 중 도왕은 사지가 꿰뚫려서 말 그대로 목숨만 실낱같이 간신히 잇고 있었는데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그리고 장왕은 이미 온몸이 검강에 관통당하여 마치 고깃덩이처럼 다져져 벌써 목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이 장왕의 시신은 너무도 처참하여 지금 모습만 본다면 생전에 누구였는지 확인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머지 한 명에 비하면 이 장왕조차 낫다고 할 수 있었다. 적어도 장왕은 시신이라는 것은 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장으로 추정되는 마지막 한 구의 시체는 전신이 박살 나고 흩어져 버려서 다 끌어모아서 한 구의 시체로 만들기조차 힘든 상황이었다.

한 번의 공격에 마스터급 세 명이 전투 불능이 되어버렸다. 두 명은 죽었고 다른 한 명도 곧 죽음을 맞이할 것이니 전투 불능이라기보다는 죽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었다.

더 이상 시간을 끄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독고패는 빠르게 남궁백에게 심어를 보냈다.

[검왕! 내 지금 바로 수라격노를 사용할 테니 너도 잠력을 격발해서라도 퍼니셔의 가족을 반드시 잡아라! 그것만이 우리의 살길이야. 우리가 저놈을 과소평가했어. 전 위원회가 힘을 합쳐서 잡아야 했었는데……. 어쨌든 내가 수라격노를 쓰는 동시에 너도 바로 행동에 들어가라!]

심어를 마친 독고패는 강민이 추가 공격을 하기 전에 재빨리 기맥의 흐름을 바꾸어 수라격노의 식으로 기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수라격노가 운용되며 독고패의 전신은 터질 것처럼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수라격노가 독고패의 전신에 운용되는 시간은 몇 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온몸이 붉게 변한 독고패는 별다른 말도 없이 자신의 솥뚜껑만 한 손에 엄청난 양의 강기를 드리우고 강민에게 공격을 가하기 위해 바닥을 미끌어지듯 스치며 경공을 펼치기 시작했다.

독고패의 독문무공은 수라파천장(修羅破天掌)이었다. 수라파천장은 정교한 식(式)보다는 강대한 힘의 무공이었는데 수라격노까지 사용한 독고패의 수라파천장은 평소보다도 몇 배나 되는 엄청난 경력을 품고 있었다.

강민의 공격을 염두에 두었는지 갈지(之)자로 재빠르게 움직이며 강민에게 접근한 독고패는 수라파천장 중 수라참격(修羅斬擊)의 식으로 한꺼번에 강민의 머리와 옆구리를 공격해나갔다.

그런 독고패의 모습을 가소롭게 바라보던 강민은 그의 마지막 공격을 가만히 서서 받아주었다.

콰앙!!

독고패의 공격은 엄청난 힘을 머금고 있었지만, 당연히 강민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독고패가 노리는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독고패는 남궁백에게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서 강민을 공격한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강민을 공격하려는 듯한 모습으로 독고패를 뒤따른 남궁백은 독고패의 공격을 강민이 막아내자, 후속타를 넣는 것 대신에 강민을 빠르게 지나쳐 갔다. 아까 전 심어로 이야기한 것처럼 강민의 가족을 노리는 것이었다.

그런 남궁백의 뒷모습을 본 독고패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수라금나(修羅擒拿)의 수법으로 강민의 팔을 봉쇄하려 하였다. 오랫동안 붙잡고 있을 수는 없겠지만 남궁백이 강민의 가족들을 생포하는 잠시간만이라도 잡을 수 있다면 자신에게도 승산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며 독고패는 신속히 금나수법을 펼쳤다.

하지만 수라금나를 사용하는 독고패의 눈에 비웃는 듯한 강민의 표정이 잡혔다. 분명 긴급하고 당황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강민의 눈은 차가웠고 입꼬리는 웃는 듯하여 자신을 비웃고 있는 것만 같았다. 독고패의 뇌리에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으아아아악!!!!”

그 생각이 맞았음을 증명이나 하는 듯 강민의 가족들을 노리고 뛰어간 남궁백에게서 처절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독고패의 눈에 들어온 남궁백은 강민의 가족을 5미터 정도 앞에 둔 상태에서 학질에 걸린 것처럼 벌벌 떨며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마치 거미줄에 걸린 나비처럼 앞으로 나아가지도, 뒤로 피하지도 못하면서 한동안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의 비명을 질러대더니 바닥으로 털썩 쓰러졌다.

남궁백은 단순히 몸만 쓰러진 것이 아니었다. 그대로 목숨을 잃은 것이었다.

독고패의 상식으로는 조금 전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아, 자신이 공격하려 했다는 것도 잊은 채 독고패는 더듬거리며 강민에게 물었다.

“어, 어떻게…… 마, 마법이 펼쳐진 것도 아니었는데…….”

독고패의 덜덜 떠는 모습에 어느 정도 기분이 나아졌는지 강민은 이번 질문에는 대답을 해주었다.

“마법만이 이런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아니지. 무공이 경지에 오르면 이런 것도 충분히 가능하지.”

강민은 쉽게 말했지만, 이는 결코 쉬운 경지가 아니었다. 최소 광검지경 이상이 되어야 시도해 볼 수 있는 방법으로 원영신(元靈身)을 이루고 그것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경지가 되어야 어느 정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었다.

지금 독고패의 수준으로는 설명해줘도 이해하기가 힘들 것이었다. 차라리 마법이라 생각하는 것이 마음이 편할지도 몰랐다.

“무공이라고? 무공으로 그, 그런 것이 가능할 리가…….”

“무공이든 아니든 네놈 따위가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지. 어쨌든 날 건드린 대가는 네놈과 연계된 모든 것에서 받아낼 테니 넌 이만 꺼져라.”

꺼지라는 강민의 말에 섬뜩함을 느낀 독고패는 황급히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단순히 지금 이 순간의 공격을 피하려는 것이 아니라 아예 도주를 생각하고 몸을 날린 것이었다.

벌써 독고패는 강민을 이길 생각은 접었다. 지금까지 보여준 무위만 하더라도 절대 그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일단 이곳을 탈출하면 임시 위원회의 개최를 요청한 후 위원회의 전력을 동원해서 강민을 쳐야겠다고 마음먹으며, 독고패는 빠르게 전장을 이탈하려 했다.

하지만 강민의 손이 유령처럼 독고패의 뒤를 따랐다. 다섯 손가락을 약간씩 구부린 조(爪) 형태의 공격이었는데, 독고패가 아무리 이리저리 뛰어도 이 조는 독고패의 뒤를 따라왔다.

이 공격을 피하지 못한다면 도주도 요원하다는 생각에 독고패의 집중력이 극도로 올라가며 초월의 영역에 들어섰다.

검강지경의 초월의 영역은 검기지경의 그것과는 궤를 달리했다. 검기지경의 초월의 영역에서는 생각과 움직임의 괴리가 컸는데, 검강지경에서는 그 격차가 상당히 줄어 있었다. 여전히 느렸지만 슬로비디오와 같은 상태는 아니었고 약간 답답한 정도였다.

즉, 초월의 영역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움직임을 보일 수 있다는 의미였다.

초월의 영역에 들어온 독고패는 수라보(修羅步)의 수라구변(修羅九變)을 통한 변화무쌍한 이동식과 수라섬보(修羅閃步)의 극단적인 신속함만을 강조한 이동방법을 조합하여 강민의 손가락을 뿌리치려 하였다.

만일 일반인이 보았다면 번개와 같이 빠른 모습에 눈으로 좇아갈 수도 없을 정도의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그런 긴급 회피기동과 같은 움직임에도 강민의 유령과 같은 손은 떨쳐낼 수 없었다.

‘이익!! 일단 여기서 탈출해야 해! 그래야 기회가 생길 것이야! 좀 더 빨리! 좀 더!!!!’

극도로 높아진 독고패의 집중력에 수라격노로 폭발시킨 내력까지 더해서 독고패는 지금까지 보여주지 못했던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움직임을 보이는 자신조차 놀랄 정도로 신속하고 변화무쌍한 움직임이었다.

신출귀몰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던 독고패는 강민의 손가락이 더 이상 자신을 따라오지 못한다는 판단이 들자 수라섬보를 극도로 운용하여 이곳을 벗어나려 하였다.

드디어 벗어났다는 생각에 이제는 되었다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다리에 내력을 더해나갔다.

퍼억!!

그러나 그 순간 뭔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독고패는 마치 그물에 걸린 물고기처럼 허공에서 멈추어버렸다.

그렇게 멈추어버린 독고패의 뒤통수에는 강민의 다섯 손가락이 흉험하게 파고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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