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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세귀환록-149화 (149/203)

# 149

현세귀환록

149. 반전(4)

“으아아아악!!!!!! 구, 구양풍!! 으아아악!!!!”

한참을 비명을 지르며 조혁군은 간신히 옆에 있는 구양풍을 불렀지만, 너무 큰 고통 속에 있는지라 채 말을 끝내지도 못하고 또다시 비명 속에 바닥을 굴러댔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조혁군을 바라보는 구양풍의 표정은 경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 검기지경의 마스터를 손가락 한 번 움직이는 것으로 이런 상태로 만들어버리는 유리엘의 마법에 공포를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 조혁군의 붕괴는 점점 더 진행되었다. 손과 발을 시작으로 지금은 팔뚝과 종아리까지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조혁군의 고통은 더 커졌다.

“아악!!!! 악!! 나, 나를 죽여줘!! 아아악!!! 어서!! 으아악!!”

조혁군이 조금 전 하고 싶은 말은 그것이었다. 너무 큰 고통을 피하기 위해 자신을 죽여주길 바라고 있는 것이었다.

그제야 구양풍은 조혁군이 원하는 것을 알아채고 검을 뽑아 조혁군의 숨통을 끊어주려 하였다.

하지만 그 뜻은 이룰 수 없었다. 유리엘의 말이 들려오면서 그의 숨통이 먼저 끊어졌기 때문이었다.

“넌 삐뚤어졌지만 그래도 근본적으로 충성심이 있는 녀석이니 한 번에 보내주지.”

콰앙!

폭음과 함께 구양풍은 직경 2미터 정도의 구덩이를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다른 혈마단원들과는 달리 시체마저 사라진 것이었다. 단주를 포함한 혈마단 전체의 최후였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림맹의 해결사 노릇을 하던 혈마단은 이렇게 제대로 된 시체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이 혈마단원들은 분명 불쌍한 인생들이었지만 지금도 몸뚱이만 남긴 채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조혁군에 비하면 그들의 최후는 행복했다고 할 수 있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머리통만 남았는데도 죽지 않고 꺽꺽거리는 비명을 지르던 조혁군 역시 먼지로 변해서 혈마단이 간 길을 따라갔다.

* * *

“어서 뚫어라!!”

짙은 송충이 눈썹과 부리부리한 호랑이 눈을 한 독고패가 거친 말투로 자신의 옆에 있는 마법사 복장의 50대 동양인에게 외쳤다.

“그, 그게…….”

“왜! 뭐가 문제인 것이야? 마장(魔將) 너도 마스터급이라는 7서클 마법사이지 않느냐? 저 정도 방어 마법 쯤은 파훼할 수 있어야지!”

지금 독고패 일행의 앞에는 직경 5미터 정도 되는 반원형의 짙은 회색 구체가 놓여 있었다. 바로 엘리아가 펼친 방어 결계였다.

독고패의 거친 질책에 마장이라 불린 중년인은 쩔쩔매며 그에게 대답했다.

“이, 이 마법은 현재까지 알려진 방식의 마법이 아닙니다. 그래서 시간이…….”

독고패의 급한 성정은 우물쭈물하며 마장의 대답을 기다릴 수 없었다. 그는 다시금 화를 내며 마장의 말을 끊고 되물었다.

“그래서! 얼마나 걸린다는 것이냐!!”

“그, 그게…… 지금 당장 파훼하기는 힘들 것…….”

“뭐라?”

독고패가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짙은 눈썹을 하늘로 추켜올리자 마장은 서둘러 자신의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저, 저 정도의 마법을 오래 유지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디멘션 게이트의 방식으로 허차원을 열어 결계를 펼친 것 같은데, 장기간 펼친다면 차원 유리의 문제도 있어서…….”

“내가 지금 마법 이론 따위를 듣고자 하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

독고패의 고함에 움찔하면서 마장은 더 빠르게 말을 하였다.

“어쨌든 그리 오래 버틸 결계가 아니고 만일 외부에서 공격을 가한다면 저 결계는 더 빨리 풀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번의 대답은 마음에 들었는지 독고패는 올라갔던 눈썹을 다시 내리며 마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조금 전에 강기로 공격했는데도 결계를 없애지 못했지 않느냐?”

엘리아가 마법을 펼친 직후 독고패는 권강(拳?)으로 결계를 직격했었다. 하지만 자신의 강기는 마치 결계에 흡수되기나 한 듯이 사라져 버렸기에 지금의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그, 그랬지요. 허차원은 무한한 공간이지만 저년이 열 수 있는 공간은 제한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 제한된 공간에서 허용할 수 있는 마나 한도가 다 찬다면 저 결계는 흩어져 버릴 것입니다. 극히 비효율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분명 결계 유지 시간을 줄일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렇군.”

마장의 대답을 들은 독고패는 고개를 돌려 뒤에서 대기하고 있는 3명의 수하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들은 한국으로 파견 나간 권왕 조혁군을 제외한 나머지 사천왕이었다.

“너희들도 들었지? 전력을 다해 공격해서 어서 저 결계를 파훼하라!”

“네!”

“알겠습니다. 맹주님.”

“그렇게 하지요.”

조혁군이 그렇듯 나머지 사천왕 역시 검기지경의 마스터였다. 특히 마지막에 대답한 검왕 남궁백은 사천왕 중에서도 가장 강한 자로서 검강지경을 엿보고 있는 강자였다. 그는 아직까지 검강을 얻지 못했지만 사천왕 중에서, 아니, 무림맹을 통틀어 검강지경에 가장 근접한 마스터였다.

그렇기에 이들의 공격이 범상치 않을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독고패의 명령에 검왕, 도왕 그리고 장왕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매서운 공격을 반구형의 방어 결계에 가하기 시작하였다.

샤아악! 파앙! 휘이익!!

날카로운 검기(劍氣)와 묵직한 장풍(掌風), 이글거리는 도기(刀氣)들이 엘리아가 펼쳐놓은 방어 결계에 쏟아졌다.

그러나 독고패가 뿌린 강기마저 흡수시킨 방어 결계이다 보니 이들의 공격 역시 결계에 타격을 주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마장의 말에 따르면 사라졌다고 해서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조금 더 공격한다면 오래지 않아 결계를 파훼할 수 있을 것이었다.

세 명의 사천왕이 적극적으로 결계에 공격을 퍼붓는 사이 흰머리에 흰 수염을 하고 있는 노인이 독고패에게 다가왔다.

노인은 중국식 장포(長袍)에 금빛 용머리가 양각되어 있는 비녀로 윤기 나는 흰머리를 깔끔하게 고정시켜 놓았는데, 청수해 보이는 모습이 마치 신선과도 같은 풍모를 보였다.

그렇게 독고패의 옆에 선 신선풍의 노인은 탐스러운 흰 수염을 쓰다듬으며 독고패에게 말을 건넸다.

“맹주, 계획에 차질은 없겠소? 이럴 줄 알았으면 나만 나설 것이 아니라 원로원의 엉덩이 무거운 늙은이들도 같이 데려오는 것인데 말이오.”

“하하하. 아닙니다, 원주님. 저희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이렇게 원주님께서 나서주신 것만으로도 천군만마(千軍萬馬)를 얻은 것과 진배없지요. 허허허.”

독고패와 이야기를 나누는 노인은 원로원주 하극도였다. 그리고 하극도는 전대 무림맹주이기도 했다.

독고패는 하극도를 대함에 있어서 무척이나 조심스러웠는데, 전대 맹주여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그 무공 역시 독고패가 완벽한 승리를 자신할 수 없을 만큼 고강한 수준이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무력에 절대적인 자신감을 보이는 독고패로서는 다소 의외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독고패의 나이가 60대인 것에 반해 하극도는 이미 한 세기를 넘게 살아온, 즉 100살이 넘는 나이였기에 세월의 흐름에 따라 깊어지는 무공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생사결을 펼치면 자신이 이길 수 있을 것이라 독고패는 자신하고 있었다.

어쨌든 하극도와 원로원은 은퇴 이후 무림맹의 행사에 전혀 나서지 않고 있었는데, 이번 일은 우연찮게 독고패와 마주친 하극도가 그를 따라나서며 이루어진 일이었다.

괜한 너스레를 떠는 독고패의 말에 하극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럼, 여기까지 왔는데 밥값은 해야겠지. 잠시 사천왕을 물려주시오.”

“굳이 원주님까지 나설 필요는 없으신데…….”

“아니요. 맹주의 계획대로라면 그 퍼니셔라는 자가 오기 전에 그자의 가족들을 확보해야 제대로 된 협상을 할 수 있지 않겠소? 같이 있는 여마법사가 순간이동 마법도 곧잘 한다고 하니 어서 가족을 잡아야겠지요.”

“그렇다면 저도 같이…….”

“허허. 맹주는 나중에 웜홀 탐색기를 받고 나면 그놈을 상대해야지요. 나름 검강지경의 고수라고 하던데 힘을 아끼시오.”

독고패는 하극도의 말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사천왕을 불러 자리를 비키게 하였다. 하극도와 방어 결계 사이에 방해할 것이 모두 사라지자 그는 허리춤의 검을 자연스럽게 뽑아 들면서 천천히 결계로 걸어갔다.

지이잉-

하극도의 손에 들린 검에 맑고 영롱한 빛을 뿌리는 푸른빛의 기둥이 덧씌워졌다. 검강이었다. 하극도의 검강은 마치 푸른빛의 자수정과도 같은 아름다운 광채를 뿌렸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 속에 담긴 강대하고 광포한 힘은 작은 산을 가를 수 있을 만큼 강대한 것이었다.

결계 앞에 선 하극도는 마치 검무(劍舞)를 추듯이 검강이 서린 검을 흐느적거리면서 휘둘러댔다.

처음에는 사천왕의 공격 때와 마찬가지로 결계는 모든 공격을 다 흡수하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결계의 짙은 회색이 서서히 옅어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마장은 반색하여 독고패에게 외쳤다.

“맹주님! 보십시오! 결계가 옅어지고 있습니다!!”

“나도 눈이 있어. 호들갑 떨지 말고 결계가 깨어지면 퍼니셔의 가족들을 신속히 확보해!”

“네, 맹주님!”

마장에게 말을 하면서도 독고패의 시선은 하극도의 검무에 집중되어 있었다.

‘썩어도 준치라더니, 은퇴한 지 꽤 지났는데 무공에 대한 열정은 여전한가 보군. 힘 대 힘으로 대결하면 충분히 내가 이길 수 있겠지만, 무리(武理)만으로 따지면 특정 부분에서는 저 영감이 더 높다 할 수 있겠는걸?’

검강지경의 독고패의 시선에도 하극도의 몇몇 움직임은 불가해(不可解)한 부분이 있었다. 자신보다 낮은 경지의 움직임을 놓칠 리가 없으니 모든 부분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일부분에서는 하극도가 독고패보다 낫다 할 수 있을 것이었다.

독고패가 자신을 집중해서 지켜보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극도는 검무에만 집중하였다. 그렇게 하극도의 공격이 이어지면서 엘리아의 결계는 회색빛을 거의 다 잃어버리고 결국 결계 내부의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 완전히 파훼된 것은 아니었지만 파훼되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 같았다. 반투명해진 결계 안에는 총 다섯 사람이 있었다. 당연히 강민의 가족과 일행들이었다.

결계 안의 모습은 처참하다고 할 수 있었다. 먼저 최강훈과 정시아는 이미 정신을 잃은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는데, 둘 다 전신에 성한 구석이 없었다.

최강훈은 오른팔과 왼쪽 다리가 기형적으로 꺾여 있었고, 단전 부분이 시커멓게 변해 무공을 잃을 수도 있는 치명상을 입었음을 알 수 있게 하였다.

정시아 역시 마치 교통사고를 당한 듯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는데, 숨 쉬는 것조차 힘든지 숨을 쉴 때마다 몸을 움찔거렸다. 둘 다 살아 있는 것이 용한 상태라 할 수 있었다.

유일하게 정신을 차리고 있는 엘리아는 결계의 가운데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는데 처참한 모습은 비슷했다.

입에서 선혈을 토해냈는지 입가를 비롯한 그녀의 가슴팍은 자신이 토해낸 피로 붉게 얼룩져 있었다. 그 토해낸 피에 그녀의 하얀 블라우스가 피로 물들어 지금은 숫제 검붉은 블라우스를 입은 것처럼 보였다.

이미 한계에 도달하여 흩어지려는 결계를 무리해서 붙잡고 있는 것인지 지금도 하극도의 검무가 결계를 공격할 때마다 엘리아는 입에서 울컥울컥 선혈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나마 멀쩡한 것은 한미애와 강서영이었다. 둘은 편안한 표정으로 잠들어 있었는데, 표정으로 보아하니 지금 주변 상황을 미처 알기도 전에 잠이 든 것처럼 보였다.

결계 안의 상황이 보이면서 하극도 역시 엘리아의 결계가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부드럽고 여유롭던 검무에서 기세를 바꾸어 자신의 검에 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마치 푸른빛 수정처럼 투명하던 하극도의 검강이 기가 집중되면서 불투명한 파란 유리처럼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느 정도 기가 모인 것 같자, 하극도는 별다른 식(式)도 없이 검강으로 엘리아의 결계를 직격하였다.

콰~~앙!!!!!

하극도의 검격이 떨어짐과 동시에 결계 안의 엘리아는 울컥울컥 피를 토해내는 그 전까지와는 달리, 마치 분수를 뿜어내듯 전면으로 피를 토해내더니 의식을 잃고 앞으로 털썩 쓰러졌다. 엘리아가 쓰러지면서 당연히 결계도 사라졌다.

그 모습에 자신이 할 일을 마쳤다는 듯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던 하극도가 뒤를 돌아 독고패를 보고 입을 열었다.

“맹주. 이제 이자들을 잡으…….”

말을 하던 하극도가 갑작스럽게 든 이상한 느낌에 말을 마치지도 않은 채 기이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무언가가 온몸을 휩쓸고 지나간 듯한 느낌이었다.

온몸을 통과한 이상한 느낌이 무언지 몰라 무심코 왼손을 펴서 확인하려는데, 그 순간 하극도의 왼손이 모래처럼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렇게 흘러내리는 것은 왼손뿐만이 아니었다. 하극도의 몸 전체가 천천히 모래처럼 흘러내리기 시작하였다.

“어? 어…….”

한 세기를 넘게 살아와서 많은 경험을 했다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하긴, 자신의 몸이 모래처럼 흘러내리는 그런 느낌은 한 세기가 아니라 두 세기를 산다고 해도 느낄 수 있는 종류의 경험은 아니었다.

그런 특이한 경험을 지금 하극도는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마지막이었다.

하극도는 얼마 되지 않는 모래와 같은 흔적만을 남긴 채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잠시 후 그 모래조차 불어오는 바람에 모두 흩날려 사라져 버렸다.

하극도가 세상에서 지워진 그 자리 뒤에는 갑자기 나타난 한 사람의 뒷모습이 보였다. 마치 순간 이동을 한 듯 갑자기 나타난 사람이었다. 그는 한국에서 날아온 강민이었다.

굳은 표정으로 천천히 돌아선 강민은 그 경악스러운 상황에 입도 다물지 못하는 독고패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을 건넸다.

“이제 대가를 치를 시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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