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세귀환록-146화 (146/203)

# 146

현세귀환록

146. 반전(1)

심복의 기합성이 터져 나온 시점은 백강호가 천룡투심(天龍偸心)의 식으로 조혁군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려는 찰나였다.

갑작스러운 기합성에 백강호는 황급히 뒤쪽으로 기감을 보내 상황을 파악했다. 하지만 아직 조혁군에 대한 공격을 멈춘 것은 아니었다.

백강호의 기감에는 혈마단원의 공격 외에도 생각지도 못한 공격에 당황하는 이유성의 모습이 잡혔다. 복천의 다른 중년인들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여 이대로라면 이유성의 목숨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찰나에 가까운 시간이었지만 백강호의 심경은 복잡하였다. 지금 끌어올린 천룡투심을 이용한다면 이유성을 살릴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동작이 큰 공격을 지금 상대하고 있는 조혁군이 아닌 다른 곳에다 한다면, 그 틈새를 노린 조혁군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당해 자신의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었다.

내적 고민은 길었지만 실제로는 눈 깜빡할 시간보다도 짧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백강호의 성향상 그가 내릴 결론은 어쩌면 당연하였다.

결국 백강호는 자신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었지만 당장 이유성을 살리기 위해서 모아둔 검기를 자신의 뒤쪽으로 날렸다.

휘익-! 파슥!!

엄청난 내력이 실린 공격이다 보니 천룡투심은 이유성을 공격하는 혈마단원의 몸통을 두 조각으로 나눌 뿐만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아름드리나무까지 같이 베어 버리고 말았다.

우지지지직, 쾅!!

아름드리나무는 수령이 수백 년은 되어 보이는 커다란 나무였지만 마스터의 검기를 이길 정도의 단단함은 갖고 있지 못하였다.

백강호의 공격에 나무는 절단면에 따라 미끄러지듯이 서서히 움직이다가 이내 굉음을 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나무가 쓰러져서 커다란 소리를 내는 동안 한 번의 폭음이 다시 들려왔다.

콰앙!!

조혁군이 백강호를 가격하는 소리였다. 한껏 마나를 두른 공격이라 나무가 쓰러지는 것과 비슷한 크기의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

백강호가 예상한 대로 조혁군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줄곧 수세에 몰려 있어 지금도 자신에게 날아올 공격을 방어하고자 한껏 기를 드리우고 있었는데, 갑자기 백강호가 다른 곳을 공격하자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백강호의 왼쪽 옆구리를 가격하였다.

공격적인 천룡투심을 사용하느라 방어할 기조차 거의 남아 있지 않았기에 조혁군의 공격은 백강호에게 치명적이었다.

스스로를 정정당당한 무예인이라 생각하는 조혁군이지만, 그는 구양풍의 말처럼 현실적인 면이 있었다.

만일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다시 이런 기회를 잡기 힘들 것이라는 판단에 조혁군은 망설이지 않고 백강호를 공격했던 것이었다.

“형님!!!”

조혁군의 치명적인 일격에 정신마저 가물가물해진 백강호는 이유성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어렴풋이 들으면서 마지막까지 잡고 있던 의식을 놓고 말았다.

이유성 때문에 이렇게 되었지만, 백강호는 마지막까지 이유성을 생각하고 있었다.

‘아, 내가 쓰러지면 유성이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있었지만 어쨌든 조혁군이 이겼고, 백강호가 패했다. 그 말인즉슨 백강호의 생각대로 이유성 일행의 목숨도 풍전등화의 처지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목숨이 풍전등화에 다다른 사람은 이유성 일행뿐만이 아니었다. 여기 또 위기에 처한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한수강과 한수아였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백강호가 자른 아름드리나무가 유리엘이 펼친 은신 결계의 핵이었다. 그 나무가 베어지면서 은신 결계가 깨어졌던 것이었다.

유리엘은 은신의 성능을 높이기 위하여 결계의 핵에 저 나무를 사용하였었다. 즉, 은신 결계의 마나를 자연기(自然氣)에 동화시켜 결계의 마나가 외부로 드러나지 않도록 하였는데, 저 나무가 베어지면서 은신 결계가 파훼되어 버린 것이었다.

이미 현승의 자료집을 다 확인한 구양풍은 한수강과 한수아의 모습을 보고 한눈에 둘의 정체를 바로 알아차렸다. 더군다나 한수아는 구양풍이 그토록 찾아 헤매었던 사람이기에 모를 수가 없었다.

“앗! 너희들은!!”

현승이 국가적 규모의 비리에 연루되고 난 이후 현승을 통한 KM그룹의 압박은 의미가 없어졌다.

아니, 한국 사회 전체가 혼란스러운 와중이라 정재계, 언론계 등의 일반 세계에서 퍼니셔를 압박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어졌다 할 수 있었다.

따라서 구양풍은 현승에서 받은 자료집을 토대로 강민의 가족이나 지인을 확보하여 압박하는 식의 플랜B 형태로 전략을 수정하였다.

하지만 그 방법도 어려움이 따랐다. 강민의 유일한 아킬레스건이라 할 수 있는 가족들은 강민과 몇 달째 같이 여행 중이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현승의 자료집에 따르면 가족들 외에 강민에게 압박을 줄 수 있을 만큼 친분이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다만 거의 없다는 말은 하나도 없다는 말은 아니었다. 가족은 아니지만 가족처럼 지내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최강훈, 정시아, 한수아 등이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중 최강훈과 정시아는 지금 강민과 같이 여행을 하고 있기에 해당 사항이 없었고, 친분이 있는 사람 중에서 지금 강민과 같이 있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 한수아였다.

한수아는 가족은 아니지만 벌써 몇 년째 같은 집에서 살면서 후견인으로서 친동생처럼 돌보아주고 있다고 하니 잡을 수 있다면 강민을 압박할 수 있는 최적의 수단이었다.

더군다나 이 한수아는 마스터인 최강훈이나 A+급인 정시아와는 달리 무력이 없는 일반인으로 보여 현실적으로도 그녀만 한 선택지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의 소재를 찾기 위해서 서울, 아니, 한국 전체를 이 잡듯이 뒤졌지만 어디로 숨었는지 그녀의 위치조차 알 수가 없었다.

출입국관리소를 통해서 해외 출입기록까지 확인하여 분명 한국 내에 머무르고 있다고 판단하였는데, 아직까지 그녀의 소재를 파악할 수 없어 구양풍은 꽤 좌절한 상황이었다. 한수아마저 확보하지 못한다면 독고패가 시킨 일을 제대로 완수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렇게 스스로 압박을 받던 구양풍은 우선 원래 목표였던 복천의 씨를 말리기 위해서 움직였다. 일단 하나라도 일을 마무리 짓고자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런 생각으로 사전에 파악해둔 복천의 근거지인 이 지리산으로 그들을 치러 온 것이었는데, 뜻밖에 이곳에서 한수아를 만나니 구양풍으로서는 하늘이 도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이곳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잘 되었어. 맹주님의 지시를 드디어 이행할 수 있겠군.’

짧은 시간에 생각을 정리한 구양풍은 서둘러 혈마단원들에게 지시를 하였다.

“1조, 2조는 신속하게 움직여서 저 둘의 신병을 확보하라! 죽여서는 안 된다. 반드시 생포하라!”

백강호와 이유성 일행을 둘러싸고 있던 혈마단 중 10명의 혈마단원이 구양풍의 지시에 따라서 한수아와 한수강에게 날듯이 뛰어갔다.

은신결계가 깨어진 후 구양풍이 한수아를 생포하라는 지시를 내리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순식간이라고 할 만큼 짧은 시간이었다.

아직 한수강과 한수아는 은신 결계가 깨어진 것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혈마단원들이 둘에게 뛰어오자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둘은 서둘러 뒤로 물러나려 하였지만, 한수아는 무공을 모르는 일반인이었기 때문에 물러나는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었다.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었다.

* * *

“어? 음…….”

“왜 그래, 유리?”

모던한 스타일의 검은색 비키니를 입고 선베드 위에 누워 선탠을 하던 유리엘은 뭔가를 느꼈는지 갑자기 상체를 일으키며 경호성을 내었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옆에 누워서 같이 망중한을 즐기고 있던 강민도 일어나며 그녀에게 무슨 일인지 물었다.

하지만 유리엘은 이미 생각에 잠겨 있었다. 마나 위성을 통해서 뭔가 확인하는 것 같았다.

생각하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금방 상황을 확인한 유리엘은 강민에게 몸을 돌려 입을 열었다.

“지리산에 있는 은신 결계가 깨어졌네요.”

“지리산이라면 수아와 수강이가 있는 곳 말하는 거지?”

“그래요. 자연기에 동화시키려고 수령이 오래된 나무를 결계의 핵으로 삼았는데 그게 베어졌어요.”

“그래? 누구지?

“짧게나마 시간을 돌려 확인해 보니 벤 사람이 의도한 것 같지는 않은데. 지금 그들이 상대하는 사람들이 현승을 장악했던 혈마단이라는 녀석들이네요.”

“그렇다면 수아와 수강이도 위험한 상황이겠네.”

혈마단에서 KM그룹, 아니, 강민을 노리고 움직인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니, 그들의 앞에 나타난 한수강과 한수아의 처지는 당연히 위험한 상황일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했다.

“그래요. 숙소 인근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어서 이 녀석들이 그걸 구경한다고 나와 있었네요. 그렇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바로 걸리지는 않았을 텐데요.”

은신 결계는 꽤나 넓은 범위에 펼쳐져 있었기에 만일 한수아가 숙소에 머물고 있었다면 구양풍으로서는 은신 결계가 깨어진 이후에도 한수아를 찾기는 요원한 일이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한수아가 전투의 소리를 듣고 그것을 구경하기 위해서 구양풍의 지근거리에 있다 보니 이렇게 딱 걸리게 된 것이었다.

“어쨌든 처리해야겠군. 순서대로 처리하려 했더니 꼭 이렇게 먼저 나서는 놈들이 있단 말이야.”

“그러게 말이에요.”

강민이 혈마단을 그대로 놓아둘 리는 없었다. 이곳의 일정을 마치고 나면 중국으로 넘어가 관광을 할 텐데 그때 무림맹을 처리하고, 모든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하고 나면 마지막으로 혈마단을 처리할 생각이었다.

순서를 지킬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굳이 유리엘에게 불필요한 수고를 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유리엘은 가볍게 행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초장거리 순간 이동은 마법진의 도움 없이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랜드 마스터 경지인 9서클의 대마법사도 마법진의 도움이 없는 초장거리 순간 이동은 상당한 부담이 되는 마법이었다.

물론 유리엘은 그들과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기에 그들이 받는 부담을 느끼는 것은 아니었지만, 강민은 필요하지 않다면 약간의 불편이라도 그녀에게 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움직여야 할 때였다. 그녀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한수강과 한수아의 목숨이 떨어져 버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강훈이를 보낼까?”

“그쪽의 전력이 만만치 않네요. 마스터도 하나 있고, A+급에 A급, B급도 다수 있고요. 그냥 우리가 잠시 다녀오는 것이 나을 것 같아요.”

유리엘의 말에 강민은 이견 없이 그녀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하자.”

“그럼 갈까요?”

유리엘만 가도 충분히 해결 가능한 일이지만 둘은 언제나 일심동체였기에 당연히 같이 움직이려 하였다. 강민 역시 자연스럽게 같이 간다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그래. 강훈이에게 잠시 다녀온다고 말해두지.”

둘이 자리를 비우는 사이 한미애나 강서영을 부탁하는 것이었다. 물론 마법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안전하겠지만, 그런 상황 자체가 안 생기도록 하는 것이 더 좋았기 때문에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강민이 심어를 통해서 최강훈에게 잠시 상황을 말하는 동안, 유리엘은 손을 저어 강민과 자신의 옷차림을 수영복에서 가벼운 트레이닝 복 차림으로 바꾸었다.

이내 상황설명을 마친 강민이 유리엘을 향해 고갯짓하자 유리엘도 마주 고개를 끄덕인 후 늘 그렇듯이 손가락을 튕겼다.

딱!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