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
현세귀환록
145. 추격(3)
“하압!”
“하!”
동시에 기합성을 지르며 순식간에 지근거리로 다가선 둘의 대응은 달랐다. 검(劍)과 권(拳)의 간격 차이 때문이었다.
검을 쓰는 백강호에 비해서 권을 주공으로 하는 조혁군은 좀 더 가까운 간격이 필요하였다.
백강호가 푸른 불길을 머금은 듯한 자신의 검으로 조혁군의 상단을 노리며 베어가는 동안, 조혁군은 불덩이 그 자체와 같은 붉은 주먹으로 백강호의 검을 튕겨내며 백강호의 가슴 안쪽으로 뛰어들었다.
쾅~!
폭음이 터져 나왔다. 조혁군이 백강호의 가슴팍으로 뛰어들며 날린 권격을 어느새 돌아온 백강호의 검이 막아낸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간격은 조혁군에게 유리하였다. 당연히 이를 알고 있는 백강호는 뒤로 물러서 자신의 간격을 찾으려고 하였는데, 조혁군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물러서려는 백강호를 쫓으며 연속적인 권격을 펼쳤다. 마치 이번 기회에 승부를 바로 결정지으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쾅쾅쾅쾅쾅!
조혁군은 맹호광란(猛虎狂亂)의 식으로 좌우 주먹을 번갈아 뻗으며 백강호를 가격했는데, 아직도 자신의 간격을 찾지 못한 백강호는 간신히 방어를 굳히고 공격을 받아내고 있을 뿐이었다.
‘으윽…… 허초인 줄 알았는데, 바로 실초로 전환해서 연환공격을 하다니…….’
아직 경험이 부족한 백강호는 조혁군의 처음 공격을 견제공격과 같은 허초로 생각했는데, 조혁군은 그런 백강호의 생각을 읽었는지 그 허초(虛招)를 바로 실초(實招)로 전환하여 승기를 잡아갔던 것이었다.
‘이대로라면 오래 버티지 못해. 어서 간격을 잡아야 할 텐데…….’
백강호는 조혁군의 파상공세를 자신의 검과 함께 호신기(護身氣)를 펼쳐서 간신히 막아내고 있었지만, 호신기는 마나 소모가 무척이나 큰 기술이었다. 잠깐이면 몰라도 장시간 펼칠 수 있는 기술은 아니었다.
하지만 조혁군의 공격은 끊길 줄을 몰랐다. 한 번 잡은 승기를 놓치지 않는 노련한 모습을 조혁군은 보여주고 있었다.
맹호광란세의 연환 공격으로 백강호를 수세에 몰아넣은 조혁군은 이어지는 공격으로 노호출동(怒虎出洞)의 식을 선택하였다.
노호출동은 성난 호랑이가 동굴을 뛰쳐나가듯 타오른 기세를 이어갈 수 있는 공격식이었는데, 상대방을 수세에 몰아넣었을 때 결정타로 종종 사용하는 수법이었다.
다만 아직 백강호는 조혁군의 공세가 바뀌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조혁군의 주먹이 백강호의 옆구리를 노리고 들어오자, 백강호는 지금까지처럼 오른손에 든 검을 자신의 몸쪽으로 돌려 조혁군의 주먹을 막아나갔다.
팡~!
여태까지와는 다른 소리였다. 조금 전까지는 공방에 엄청난 경력이 담겨 있어 숫제 폭음과 같은 소리가 났는데, 지금은 가볍게 퉁겨내는 소리가 났다.
“……!!”
순간적으로 백강호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온몸에 두른 호신기를 강화했다. 그리고 집중력이 고도로 올라감에 따라 전장의 시간이 천천히 흐르기 시작했다.
초월의 영역에 들어선 것이었다.
초월의 영역에 든 백강호는 자신의 머리통을 향해서 날아오는 조혁군의 주먹을 볼 수가 있었다. 조금 전의 공격은 전형적인 허초였던 것이었다.
지금의 권격은 여태까지의 연환식과는 다른 공격이었다. 조혁군의 주먹에 맺힌 권기(拳氣)를 볼 때 연환식을 막는 것처럼 저 공격을 막는다면 큰 피해를 입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조혁군의 주먹을 본 백강호는 자신 역시 승부수를 띄울 때가 왔다고 판단하였다. 저 공격이 아니더라도 어차피 백강호는 지금의 수세에서 벗어나야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승산이 없었다. 그렇기에 다소 무리가 되더라도 단전을 자극하여 전신의 마나를 강렬하게 끌어 올렸다.
“하아압!!”
기합성과 함께 백강호는 우측으로 한 발자국 움직였다. 조혁군이 펼친 주먹의 궤적을 아슬아슬하게 벗어나는 한 걸음이었다.
백강호의 지금까지 움직임으로서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공격이라, 분명 막을 것이라 생각했던 조혁군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놀라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한 걸음 움직이는 동시에 백강호의 검격이 펼쳐졌기 때문이었다.
천룡낙뢰(天龍落雷)의 식이었다. 하늘의 용이 번개를 뿌리듯 푸른 검기를 머금은 백강호의 검이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졌다.
엄청난 경력을 품고 있는 백강호의 검세를 본 조혁군 역시 다급해졌다. 자신 역시 노호출동의 공격을 하느라 자세가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극도로 집중력이 올라간 조혁군은 공격했던 방향으로 몸을 던지며 바닥을 구르는 것으로 백강호의 공격을 피해내었다.
콰아아앙!!
결국 백강호의 공격은 바닥을 때리고 말았다. 하지만 의미 없는 공격은 아니었다. 자신의 간격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백강호가 수세에 몰린 가장 큰 이유는 조혁군의 간격에서 싸웠기 때문이었다. 백두일맥 내에서도 검의 천재라고 불렸던 백강호가 자신의 간격을 찾은 이상 조금 전과 같은 일방적인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굴욕적으로 바닥에 굴러 공격을 피했던 조혁군이 다시 일어나 자세를 잡았는데, 그가 채 간격을 좁히기도 전에 백강호의 검세는 이미 조혁군에게 도달해 있었다.
비룡섬광(飛龍閃光)의 쾌검식이었는데, 조혁군의 미간을 노리고 날아드는 검세를 조혁군은 간신히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며 피해냈다.
하지만 공격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받았던 공격을 모조리 되돌려 주는 것처럼 백강호의 검세는 조혁군을 매섭게 몰아치고 있었다.
전황이 변하는 것 같자 주변에서 이 둘의 대결을 지켜보는 이들의 표정도 같이 바뀌었다.
조혁군이 승기를 잡았을 때만 하더라도 구양풍의 표정은 자신만만했고, 혈마단 역시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대결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구양풍의 표정은 매우 찌푸려져 있었고 심각해 보였다. 만일 조혁군이 백강호에게 진다면 자신들의 목숨도 장담하지 못할 수 있었다.
물론 지더라도 치명상을 남긴다면 자신들이 마무리할 수 있었다. 문제는 백강호가 별다른 상처 없이 살아남는 경우였다.
그 경우가 된다면 모든 계획이 다 흐트러질 수 있었다.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굳은 표정으로 고민하던 구양풍은 자신의 심복에게 전음을 날렸다.
[조 대주가 힘들 것 같다. 나무를 등지고 있는 꼬마를 공격해서 저놈의 신경을 돌려라.]
[단주님. 그렇게 했다가 조 대주님이 분노를 어떻게 감당하시려고…….]
[분노는 무슨 분노!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려면 승기를 잡았을 때 이기던가! 어차피 조 대주도 현실적인 인간이야. 표면적으로는 화를 내겠지만 속으로는 고마워할 거야.]
[그렇지만…….]
구양풍의 지시에도 심복은 망설이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자신이 나서서 대결을 방해한다면 조혁군이 그 원흉을 찾아서 처벌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구양풍은 심복이 망설이는 이유를 당연히 파악하고 있었다. 일개 단원이, 그것도 평소에 조혁군이 경멸하는 단원이 그의 일을 방해한다면, 그의 성정상 엄벌을 내릴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분노가 크다면 죽음으로 처벌할 수도 있었다.
그 때문에 구양풍은 심복을 달래며 다시 한번 전음을 날렸다.
[자네는 걱정하지 마. 내가 지시했다고 사실대로 말할 테니까.]
[아. 그렇습니까? 그러다면야…….]
[조금 있다가 내가 신호를 보내면 저 꼬마 놈을 공격해.]
20대 중반인 이유성은 꼬마라 불리기에는 많은 나이였지만 다소 작은 키에 어려 보이는 외모 때문에 구양풍은 이유성을 꼬마라고 지칭하고 있었다.
구양풍이 심복과 전음을 주고받는 사이, 전황은 조혁군에게 더 힘들게 돌아가고 있었다.
백강호 역시 한 번 잡은 승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가지고 있는 비기(秘技)를 모두 동원하여 조혁군을 공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공의 양이나 전투의 경험은 조혁군이 백강호에 비해 월등히 높았지만, 백강호의 기기묘묘(奇奇妙妙)한 검술에 조혁군은 도무지 수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한동안 조혁군의 수세가 이어지자 구양풍은 심복에게 고개를 움직여 신호를 보냈다. 구양풍의 신호만을 기다리고 있던 심복은 백강호나 이유성 등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서서히 자리를 움직여 공격할 틈을 보았다.
한참 조혁군에게 공격적인 검세를 펼치는 백강호는 이런 움직임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유성과 복천의 중년인들도 백강호의 대결에 집중하느라 혈마단원의 움직임을 눈치채지 못하였다.
조혁군조차 알아채지 못할 만큼 은밀한 움직임이었다.
구양풍과 그 혈마단원 외에는 이번 공격을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러나 보는 눈이 하나, 아니, 둘 더 있었다.
“수강아. 저 아저씨가 저기 저 애 노리고 움직이는 거 아니니?”
“그런 것 같네. 그렇게 된다면 지금 싸우고 있는 검사가 흔들릴 텐데.”
“그, 그럼 우리가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닐까?”
“누나. 저기 저 사람들을 둘러싼 사람들 하나하나가 나 못지않은 실력자야.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아.”
“그러면 어떡해…….”
“우리로선 어쩔 수 없을 것 같아.”
조혁군과 백강호의 대결, 그리고 혈마단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는 눈은 바로 한수강과 한수아였다.
마스터 간의 대결에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마나 파장에 유키의 치료를 위해 지리산에 자리를 잡고 있는 한수강과 한수아가 무슨 일인지 싶어서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다만 지금 이곳은 유리엘이 펼쳐놓은 은신 결계가 있었기 때문에 누구도 둘이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은신 결계는 보호 결계와는 달리 방어력은 없지만, 그 결계가 보호하고자 하는 대상은 타인의 인식에서 완전히 숨겨주는 이능이 있었다.
물론 일반적인 은신 결계라면 백강호나 조혁군과 같은 마스터들이 그것이 펼쳐져 있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었다. 즉, 누가 있는지는 모르더라도 은신 결계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유리엘이 펼쳐놓은 결계는 달랐다. 설령 마스터라 하더라도 전문적인 탐지능력이 있는 마스터가 아니고서야 그 결계의 존재 자체도 파악하기 힘든 결계였다.
그래서 이들과 다소 떨어진 곳에 있는 한수강과 한수아는 강 건너 불구경을 하듯이 저들의 대결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한 혈마단원의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한수아가 입을 열었던 것이었다.
아무래도 약자로 보이는 무리에 호감이 갔던지 한수아는 백강호 일행을 도와주길 바랐지만, 한수강의 말처럼 그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한수강과 한수아가 안타까워하는 것도 모르는 채 백강호의 공격은 더 과감하게 이어졌다.
전투가 길어지면 조혁군을 처리하더라도 이곳을 빠져나갈 힘이 모자랄 수 있었기에, 약간 무리가 되더라도 힘을 비축한 상태로 조혁군을 쓰러뜨리기 위해서 위험을 무릅쓴 공격을 하는 것이었다.
조혁군이 완전한 수세에 몰려서 패색이 짙어지자 구양풍은 결단을 내렸다. 다시 한번 고갯짓을 하여 심복에게 신호를 준 것이었다.
구양풍의 마지막 신호를 본 심복은 과감하게 이유성에게 공격을 날렸다.
“하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