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세귀환록-142화 (142/203)

# 142

현세귀환록

142. 반격(4)

노인의 목소리에는 분기가 가득하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정황으로 보아 대통령을 수호하는 집단임이 분명하였는데 자신들의 임무를 다하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이어지는 말에도 여전히 그 분노는 서려 있었다.

“잡아라! 생포하도록!”

무슨 목적으로, 무슨 수를 써서 결계까지 뚫고 대통령을 저격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들을 잡아야 배후를 캐낼 수 있을 것이라 노인은 생각하고 있었다.

젊어 보이는 강민과 유리엘의 독단적인 판단에 의해서 대통령을 시해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분명히 배후가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경험에서 오는 지혜가 쌓일 수 있는 것과 동시에, 경험으로 인한 고정관념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노인은 보여주고 있었다.

노인의 말에 따라서 노인을 제외한 네 명의 이능력자가 신속하게 강민과 유리엘에게 접근하였다.

40대 중년인 한 명만 일하고 있었는지 검은색 정장 차림에 경호원용 리시버, 권총 무장의 경호원 복장을 하고 있었고, 나머지 세 명은 그야말로 자다가 뛰쳐나온 듯한 차림새였다.

하지만 분노로 타오르는 눈빛만은 네 명이 모두 똑같았다.

40대로 보이는 이능력자가 2명, 30대로 보이는 이능력자가 2명이었는데, 30대와 40대가 한 명씩 짝을 이루어 각각 강민과 유리엘에게 다가갔다.

모두가 검을 주력으로 쓰는지 한 손에는 1미터가 넘어 보이는 장검을 들었고, 그 장검들은 이미 다 샤이닝 상태에 들어가 있어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공중전은 지상전과는 차이가 컸다. 우선 바닥에 강하게 발을 디딜 수 없어서 진각을 통한 힘의 증폭이 매우 어렵다는 점부터, 바닥으로 꺼질 수 있어 지상전에 비해 좀 더 입체적인 움직임을 보일 수 있다는 것 등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이런 공중전에도 많은 연습이 되어 있는지 어색하지 않은 움직임으로 강민과 유리엘의 상단과 하단을 합공해 갔다.

“하압!”

“차앗!”

각자의 기합성을 내뱉으며 40대 중년인은 강민의 우하단에서 좌상단으로 올려 베기를 하였고, 30대 장년인은 반대로 좌상단에서 우하단으로 공격을 시도했다.

이 공격은 그들이 피나는 연습을 했던 연계기의 시작이었다. 만일 강민이 이 공격을 피한다고 해도 끝이 아니었다.

이어지는 연계기에 따라 어느 곳 하나 치명상을 남기고서야 공격은 멈출 것이었다. 다만, 생포하라는 노인의 지시에 따라서 한 번에 생명을 거둘 수 있는 공격은 자제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그들의 자만이고 오만이었다.

카앙-!

그도 그럴 것이 강민이 자신을 향해서 공격해오는 좌우의 검을 오른손과 왼손으로 각각 잡아 버렸기 때문이었다. 검이 잡혀버렸기에 당연히 연계기 자체를 시도할 수가 없었다.

“이익!”

두 이능력자는 강민에게 잡힌 검을 빼내려고 용을 썼지만 바위에 꽂힌 엑스칼리버라도 되는 듯 그들의 검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강민이 약간 힘을 주자 꽈드득 하는 소리가 나며 그들의 검은 중단에서부터 부러지고 말았다.

순식간에 애검(愛劍)을 잃어버린 두 명의 이능력자는 황망하다는 표정으로 강민을 보며 신음성과 같은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어, 어떻게…….”

“일단 저 노인과 이야기를 해야겠군. 저기서 쉬고 있지.”

강민은 쉬라는 말과 함께 순식간에 움직이더니 부러진 검을 들고 있는 두 이능력자의 목을 가볍게 툭툭 쳐냈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경력은 가볍지 않았는지 가벼운 그 손짓에 이능력자들은 의식을 잃어버렸다.

이능력자들이 의식을 잃자 마법기에 주입되는 마나가 끊겼고, 그들은 바닥으로 자유낙하를 시작하였다.

그런 그들을 강민은 허공섭물(虛空攝物)의 식으로 다시 한번 가볍게 손을 휘둘러 가까운 건물 옥상으로 옮겼다.

만일 그들이 악한 성향으로 보였다면 굳이 이런 번거로운 방법을 하지 않고 처리해 버렸겠지만, 그들은 그런 성향이 아니었기에 약간의 수고를 들여서 그들을 살려 놓았다.

유리엘 역시 이미 손을 썼는지 그녀를 공격했던 이능력자들을 허공에 굳혀 놓았다.

강민이 처리한 이능력자들과는 달리 아직 의식은 있어 보였지만, 그들은 이미 그녀의 마법에 당해서 눈동자를 굴리는 것 외에는 아무런 움직임을 보일 수 없었다.

유리엘은 강민이 그들을 빌딩의 옥상으로 보내는 것을 보고 그녀 역시 따라서 허공에 굳어 있는 둘을 빌딩 옥상으로 옮겼다.

이 모든 상황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졌다. 노인이 생포하라는 말을 하고 1분, 아니, 30여 초도 채 지나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 노인은 개입하지도 못하고 침중하게 강민과 유리엘을 바라보고 있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는 점도 있었지만, 자신의 제자나 다름없는 4명의 이능력자를 한 명도 죽이지 않았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 듯했다.

노인을 제외한 다른 이능력자들이 전장에서 이탈되고 나서도 강민과 유리엘이 손을 쓰지 않자, 노인은 둘이 대화를 원한다고 판단하였다.

그의 평소 성정 같으면 문답무용으로 손부터 써서 제압하고 이야기를 시작했을 테지만, 마스터에 오른 그로서도 경지를 가늠할 수 없는 둘이기에 일단 대화부터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었고 그 성정 자체를 감출 수는 없었는지 말투는 거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너희들은 누구냐? 네놈들이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알고 있는 것이냐!”

“우리가 무슨 짓을 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대통령을 시해하지 않았느냐! 보아하니 우리나라 사람인 것 같은데, 북한의 사주를 받은 것이냐?”

“북한? 생각하는 수준이 거기까지인가 보군.”

강민의 한심하다는 눈초리는 노인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었다.

“뭐야!”

한심하다는 표정에 분노를 터트리려던 노인은 이어지는 강민의 말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너희는 대통령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었지?”

노인은 마나 안정도로 보아 마스터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였지만, A+급만 하더라도 현실 세계에서는 무적의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 능력을 가지고 가까운 거리에서 대통령을 경호하는 이들이 대통령의 비리를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러나 노인은 강민의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하였다. 잠시간의 망설임 끝에 노인의 입이 열렸다. 그의 목소리는 한풀 꺾인 듯하였다.

“알고 있지만, 국민의 손으로 뽑은 대표이지 않나. 우리 호국회(護國會)가 만들어진 이유는 국가의 수뇌를 지키기 위해서이지, 우리의 판단으로 수뇌를 갈아치우기 위해서는 아니라네.”

그 호국회의 회주인 박일도는 아까 전까지 화를 내었던 것도 잊고 다소 회한에 찬 목소리로 강민에게 말을 이었다.

“최근 경지에 들었음에도 자네와 자네 옆 아가씨의 경지는 가늠조차 되지 않는구만. 하지만 무력이 강하다고 국민이 뽑은 국민의 대표를 자네 마음대로 이렇게 처단해도 되는 것인가?”

박일도의 목소리로 보아서 그 역시 부패한 대통령을 보호한다는 것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부패하였다고 그 스스로 대통령을 처단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애초에 호국회의 창립 목적이 국가의 수장을 지키는 것인데 그것에 반하는 일이었고, 개인의 판단으로 국민의 선택을 뒤집는다는 것도 맞지 않는 일이었다. 현실적으로 접근한다면 대통령이 살해된다면 극심한 사회적 혼란을 겪을 수 있다는 이유 또한 있었다.

이런 이유로 인해 박일도는 다음번에는 국민의 선택이 올바르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강민은 박일도가 아니었다. 박일도의 기준, 아니, 인간이 정해놓은 법과 질서는 강민에게 큰 의미가 없었다.

강민은 스스로 오롯이 서 있는 절대자였다. 모든 일을 정해져 있는 기준이 아니라 그 스스로 정한 기준에 따라서 처리하는 절대자였다. 그리고 지금 강민은 부패한 한국 지도층을 처단하리라 마음을 먹었고, 그대로 행한 것이었다.

“국민이 뽑은 국가의 대표라……. 각종 매체와 사회 시스템에 의해서 길들여진 국민이, 자신들이 길들여진지도 모르는 채 지도층이 원하는 대로 조건반사적으로 뽑은 대표도 대표로 보아야 하는가?”

“하지만 그것이 민주주의(民主主義)네, 민주주의. 국민이 주인인 나라에서 국민의 선택이 그러하다면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여전히 노인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그 역시 대의민주주의의 단점은 분명히 알고 있지만, 그 한 명이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 국민의 선택이 그러하다면 어쩔 수 없지.”

“그렇지. 그런데 자네는 왜…….”

강민이 자신의 말에 동조하자 박일도는 의외라는 목소리로 반문하려 하였다. 하지만 강민의 말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국민의 선택을 내가 따라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문제이지.”

“뭐?”

“나는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사람이야. 국민의 선택이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면 그들의 선택에 개입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지 않더군. 그래서 이번 기회에 보기 거슬리는 것들을 다 치워 버릴 생각이지. 실제로 그렇게 했고 말이야.”

“다……라면 대통령 하나로 끝이 아니었다는 말인가?”

“그래. 총 832명을 처리하였지. 나중에 필요하다면 더 처리할 수도 있고 말이야.”

“832명? 허어, 그렇게나 많은 사람을…… 단지 뇌물 조금 받았다고 그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은 과하지 않은가? 법적으로 처벌받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자연스러운 물음이었다. 그 역시 마스터급의 능력자라 수천, 수만 명을 살육할 수 있는 무력을 갖고 있지만 그것을 행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인간이라는 자각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강제력 때문이었다.

인간에게는 인간의 법칙이 있다. 법률이 있고 도덕이 있고 규범이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인간으로서 오랜 삶을 살았던 노인은 그런 법률과 도덕에 의해서 이유 없는, 아니, 있다고 하더라도 그 이유가 미약하다면 대량 살인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하지만 부도덕한 인물이나 살인을 거리끼지 않는 살인자들에게는 첫 번째 이유는 크게 의미가 없었다. 그렇기에 필요한 것이 두 번째 이유인 강제력이었다.

일반 세계와 마찬가지로 이능 세계에도 규칙이 있었고, 그 규칙은 유니온이라는 강대한 힘에 의해 지켜지고 있었다.

비록 마스터에 올라서 힘에 자신감은 붙었지만 자신 이상의 강자가 많다는 것은 박일도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이 마음대로 힘을 일반 세계에 뿌려낸다면 분명 유니온의 제재를 받을 것이 분명하였다.

물론 그는 첫 번째 이유 때문에 그런 일을 벌이지 않을 것이지만, 두 번째 이유 역시 그런 살육을 벌이지 못하는 이유는 되었다.

단적으로 첫 번째 이유를 무시하는 카오틱에빌의 집단인 다크 스타 역시 유니온의 강제력에 의해서 스러지지 않았던가. 규칙이 있다면 그것을 지키는 강제력이 있어야 그 규칙은 실효성을 가질 것이다.

문제는 강민은 이 두 가지에서 모두 자유롭다는 것이다.

인간임이 분명하고 한국인이 분명하였지만, 강민이 한국에서 일반인으로 살았던 시간은 20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 시간의 수천 배가 넘는 시간을 생존과 투쟁으로 점철된 시간을 살았다. 물론 수만 년의 시간 중에서 일부는 고도로 문명화된 차원에서 시간을 보낸 적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시간이 약육강식을 벌이는 투쟁의 시간이었다. 그 때문에 강민의 인식은 일반 인간의 인식과는 궤를 달리하였다.

사실 인간의 역사 또한 이렇게 문명화되기 전까지는 약육강식이 당연하지 않았던가. 그런 세상에서 살았던 사람은 지금 문명화된 세상 사람과 다른 인식을 갖고 있는 게 당연할 것이었다.

또한 두 번째 이유 또한 강민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이곳에서 강민을 강제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능 세계에서 강제력을 발휘하는 유니온조차 강민의 하수인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니, 여기서 강민의 판단에 제약을 가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강민은 오롯이 그 자신의 판단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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