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
현세귀환록
141. 반격(3)
한미애와 강서영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강민 역시 유리엘과 심어를 나누었다.
[어때?]
사전 맥락 없이 묻는 질문이었지만, 유리엘은 강민의 의도를 바로 이해하였다. 둘 사이의 교감이 그런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었다.
[예상대로 지저분한 수작들을 부리고 있네요. 여기 봐요.]
지금 유리엘은 뇌물 수수에 대한 영상이 나왔던 정치인들을 마나 위성을 통해서 전방위적으로 감시하고 있었다.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것은 잠깐 집중하여 하루 이틀 정도의 정보를 찾는 것보다 심력 소모가 컸지만,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하다는 부분에서는 충분히 감수할 만한 수고였다.
유리엘은 강민만 보고 들을 수 있는 영상을 띄워서 정치인들의 행태를 강민에게 보여줬다.
KM TV를 당장 압수수색 해서 방송을 중단하게 하자고 고함치는 정치인부터,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며 자신이 한 말은 농담이었다는 국회의원, 초조한 표정으로 향후 대책을 논의하는 검찰까지, KM TV의 동영상은 마치 기득권이라는 벌통에 돌을 던진 것과 같은 효과를 내고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네. 지금 자료도 다 저장 중인 것이지?]
[그래요. 그런데 언제 처리할 거예요?]
처리한다는 것은 목숨을 앗아간다는 의미였다. 법률적으로 보면 뇌물 수수는 적게는 몇백 정도의 벌금, 많게는 몇 년의 징역에 그칠 일이었지만 강민은 이번 기회에 부패한 기득권 세력을 모조리 정리해 버릴 생각이었다.
현대의 기준으로 보면 과한 처사였다. 현실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살인마 취급을 받을 일이었다.
하지만 강민의 기준은 법에 있지 않았다. 수만 년 동안 쌓아온 자신만의 기준이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판단에 살인이 필요하다면 수백 명이 아니라 수만, 수천만도 척결할 수 있었다.
실제로 과거 한 차원에서는 타락한 세상의 재생을 위해서 하나의 문명을 청산해 버린 일도 있었다. 당시 문명 청산으로 죽은 사람이 억 단위가 넘었으니, 지금 고작 몇백 명을 처리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거나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지금 강민은 망설이는 것이 아니라 기회를 보고 있는 것이었다.
[어느 정도 분위기를 만들고 하려고 해. 당장 처리한다면 혼란만 가중될 테니 말이야.]
[문명화되었다는 것이 이런 점은 불편하네요. 시민의식이 자리 잡지 않은 봉건사회에서는 압도적인 힘만 보이면 편하게 진행될 텐데 말이에요.]
[그렇지. 문명 자체를 청산해 버릴 것이 아니라면 이 사회의 분위기를 맞춰주는 것도 좋겠지. 2차 자료 정도만 오픈하고 나면 그들을 처리하더라도 큰 혼란을 막을 수 있을 거야.]
유리엘의 영상은 1차로 끝날 계획이 아니었다. 이들의 분주한 대응 장면이 담긴 2차 영상까지 배포할 계획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그들의 추악한 모습이 더 극명하게 드러날 것이고, 이후 그들이 죽는다고 하더라도 일반 시민들이 천벌로 느낄 가능성이 컸다.
물론 일시에 사회 지도층의 대부분이 사라진다면 한국 정부는 엄청난 혼란에 빠질 것이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강민과 유리엘은 그에 대한 대응까지 준비하고 있었다.
[벤자민이 제 역할을 해주겠죠?]
[그래, 생각보다 한국 정부와 유니온 사이의 연결고리가 튼튼하더군. 마물에 대해서 알려진 후로 마물 대응처를 만들 때 유니온에서 꽤나 도움을 준 것 같더라고. 고위층까지도 상당히 교감이 진행된 것 같았어.]
[뭐 그게 아니더라도 벤자민이 미국 정부를 움직인다면 쉽게 일이 풀릴 것 같은데요? 이 나라는 미국의 영향력이 큰 나라니 말이에요.]
[그렇지. 하지만 계엄령을 내린다는 것은 쉽게 판단할 사안이 아니니 신뢰할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것은 중요하겠지.]
[그나마 차기 군 통수권자가 신망 있고 깨끗한 국방부장관이라 이번 일이 더 편하게 진행될 수 있을 것 같네요.]
[군 통수권이 국방부 장관에게까지 올 정도로 지도부가 썩었다는 방증이기도 하겠지]
군 통수권은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고유 권한인데, 대통령이 유고 시 국무총리가 그 직무를 대행하고, 국무총리까지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에는 기획재정부장관이 겸임하는 부총리, 교육부장관이 겸임하는 부총리로 권한이 내려온다.
이들까지 직무를 할 수 없다면 각 부의 장관들에게 그 권한이 오는데, 국방부장관은 미래창조과학부, 외교부, 통일부, 법무부 다음의 순위였다.
즉, 국방부장관 위로는 다 뇌물수수 등의 부정부패를 저지르고 있었다는 말이었다.
[그럼 계획대로 계엄을 선포하고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를 당겨서 진행하게 할 거죠?]
[그래, 지금 같은 시대에서 불법적으로 권력을 쥔 세력은 오래 인정받지 못할 테니 어서 빨리 합법적인 정부를 세워야겠지.]
일시에 사회 지도부가 사라진다면 치안 공백부터 정책 공백 등 엄청난 후폭풍이 밀려올 것이었다.
강민은 그런 상황을 막기 위해서 일시적인 계엄령을 생각하고 있었다. 사회 혼란을 막기 위해 계엄을 진행하고 최대한 빨리 선거를 통한 합법적인 정권을 세우려는 것이었다.
물론 지금 차기 군 통수권자가 될 국방부장관은 이런 일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유니온과 충분히 사전교감이 되어 있기 때문에 김세훈 지부장이 언질을 주고 미국 정부에서 영향력을 행사해준다면, 충분히 강민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 될 것이었다.
[혹시 그가 욕심을 부릴 가능성은 없을까요?]
[지금까지 지켜본 바로는 그럴 가능성은 낮을 것 같지만, 만일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 역시 처리해 버리면 되지.]
[대통령은 누가 될까요?]
[글쎄, 윤강민 위원이 되지 않겠어? 그 29명 중에서는 가장 인지도도 있고 3선까지 한 의원이잖아. 나름 가치관도 확실하고 말이야.]
지금 한국의 여론은 뇌물을 받지 않은 29명의 국회의원을 민족대표 29인이라 부르면서 치켜세우고 있었다.
특히 윤강민 의원은 충청도를 지역구로 한 3선 의원인데, 독립투사의 손자라는 타이틀을 갖고 의정활동을 왕성히 하여 꽤나 인지도가 있었다.
[어떻게 될지 궁금하네요.]
[유리는 당분간 다른 정치인들도 조사를 해줘. 현직에 있지 않더라도 그런 뿌리가 있으면 이번 기회에 다 잘라버려야지.]
강민과 유리엘이 생각하는 부분은 청소까지였다. 굳이 현실 세계의 배후까지 될 생각은 없었다. 충분히 배후가 될 수 있었지만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였다.
유니온의 배후로서 벤자민만 움직이면 각국의 정부들에게 원하는 바를 다 얻어낼 수 있는데, 굳이 한국 정부 하나의 배후까지 할 이유는 없었다.
[그러고 보면 벤자민도 시류에 대한 판단이 빠른 것 같네요.]
[아무래도 우리의 무력을 직접 목격했으니 그렇겠지. 그래도 잠시나마 갈등은 했잖아. 상임위원이라는 자들은 벤자민의 능력으로는 무력을 가늠하기 힘들다는 말이겠지.]
[그러니 시류에 대한 판단이라고 말한 거죠. 벤자민의 입장에서는 나름 모험을 한 것이잖아요.]
지금 벤자민은 겉으로는 위원회의 지시를 받지만 실제로는 강민의 하수인이나 마찬가지였다.
강민이 위원회를 곧 처리할 것이라고 벤자민에게 이야기했고, 벤자민은 고민 끝에 강민을 따르기로 한 상황이었다.
[하긴, 그의 입장에서는 그렇겠군. 뭐 그 결과로 그가 그렇게나 소망했던 위원회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니 할 만한 모험 아니었을까?]
[나쁘게 보면 위원회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서 우리의 손아귀로 떨어졌으나 그에게는 마찬가지일 수도 있겠죠.]
[지금까지 유니온의 일에 전혀 개입하지 않았는데 그렇게까지 생각할까?]
[호호호. 그건 모를 일이죠.]
* * *
1차 영상이 공개된 지 1주일 만에 나온 2차 영상은 대한민국에 더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1주일간 영상에 나왔던 지도층 인사들은 자신들의 부정부패 영상에 대해서 변명하기에 급급하였다.
실제로 많은 언론이 그런 인사들의 변명을 기사화하며 그들을 두둔하였고, 심지어 어떤 보수 언론은 KM그룹이 북한의 사주를 받는다는 식의 여론몰이를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2차 영상에서는 그들의 그런 뒷작업을 하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어 더 큰 국민적 공분을 샀다.
몇몇 사람은 국회의사당 앞에서 비리 국회의원 사퇴 시위를 하기도 하였다.
2차 영상이 배포된 지 3일째 되는 날 새벽이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의 하늘 위에는 두 명의 인영(人影)이 떠올라 있었다. 바로 강민과 유리엘이었다.
지금 강민과 유리엘은 지상에서 1㎞ 정도 상공에서 서울 전체를 한눈에 다 내려다볼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총 800명 정도라고?”
“정확하게는 832명이에요.”
“그렇군. 그럼 시작하자.”
강민의 시작하자는 말에 유리엘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바닥을 하늘로 향한 채 오른팔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유리엘의 동작과 함께 그녀의 머리 위에는 조그마한 빛의 공이 나타났다. 처음에는 수박만 한 크기의 빛의 공은 점점 그 크기를 불려가기 시작했다.
어느새 사람 몸보다 커진 공은 시간이 갈수록 더 빠른 속도로 크기를 키워나갔고, 결국 방 하나 정도를 가득 채울 만한 크기까지 커지더니 성장을 멈추었다.
빛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공은 마치 태양이 떠 있는 것과 같은 효과를 주며 주변의 어둠을 몰아냈다.
“이 정도면 될 것 같네요.”
말을 마친 유리엘은 오른팔을 내리고 손가락을 튕겨냈다.
딱~!
손가락의 튕김이 신호가 된 것인 듯 거대한 빛의 공은 순식간에 분열하여 사방으로 흩어졌다. 정확하게 832개의 조각이었다.
여전히 실시간으로 마나 위성을 체크하고 있는 유리엘은 832개의 생명이 꺼져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몇 명은 나름 결계도 펼쳐놓은 것 같지만 수준이 미미해서 모두 처리가 되었어요.”
이능이 공개된 시점에서, 아니, 이능을 아는 몇몇 지도층은 이능이 공개되기 전부터 그들의 신변 안전을 위해 결계를 펼쳐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 정도 결계는 유리엘에게는 종잇장보다 못한 방어였기에 832명 중 빛의 조각을 방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수고했어. 그럼 돌아가자.”
“그래요.”
목적을 달성한 강민과 유리엘은 곧바로 가족들이 머물고 있는 발리의 리조트로 돌아가려 하였다.
하지만 십수 킬로미터 전방에서 빠른 속도로 둘을 향해서 뛰어오는 5명의 이능력자가 강민의 인식에 잡혔다.
“이리로 곧장 오는 것을 보니 우리에게 오는 것 같은데, 저 친구들까지는 맞이하고 가야겠군.”
“오는 방향을 보니까 청와대 쪽에서 출발한 것 같네요.”
지금 그들의 속도라면 1분 정도면 둘이 있는 곳까지 도착할 듯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5명의 이능력자가 둘의 시야에 들어왔다.
빌딩의 옥상을 빠르게 건너뛰며 강민과 유리엘에게 오던 이능력자들은 다들 비행 마법기 정도는 갖고 있는지 마지막 빌딩의 옥상을 박차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다가오는 이능력자들의 면면을 보니 다들 상당한 실력의 소유자였다. 유니온의 기준으로 보면 한 명은 마스터, 2명은 A+급, 2명은 A급의 능력자들이었다.
“저 정도면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전력인 것 같은데요?”
“그러게 말이야. 청와대에서 온 것을 보니 대통령을 수호하는 집단인 것 같군.”
이윽고 둘의 앞에 나타난 5명의 이능력자는 모두 각양각색의 옷차림과 나이대의 인물들이었다.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자는 70대 정도로 보이는 도포 자락의 노인이었고, 가장 적은 자는 30대 정도의 트레이닝 복 차림의 장년인이었다.
도포를 입은 노인이 이 집단의 우두머리였는지 큰소리를 치며 강민에게 말했다.
“네놈들은 누구냐! 네놈들이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알고 있는 것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