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세귀환록-140화 (140/203)

# 140

현세귀환록

140. 반격(2)

쾅!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어떻게 그런 영상들이 찍히고 저렇게 방송될 수 있는 거야!! 말을 해보게, 홍보수석!”

최영근 대통령은 책상을 내려치며 고함을 질렀다. 대통령 수석비서관 회의에 참석한 수석들은 대통령의 고함에 다들 고개를 숙이며 말을 잇지 못하였다.

다만 대통령에게 지목된 홍보수석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그게…… 화, 확인해 보겠습니다.”

“확인은 무슨 확인! KBC 보도 건으로 돈은…….”

최영근 대통령은 홍보수석이 뇌물을 받은 건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다가 입을 닫았다. 거기에는 자신도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찌 된 것이 수석비서관 중에서 돈을 받지 않은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대통령 역시 같은 부류였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자기 얼굴에 침을 뱉는 행동이었기 때문이었다.

“흠흠. 어쨌든 어떻게 그런 영상이 찍혔고 보도까지 되었는지 확실히 밝혀주시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민정수석!”

“네, 대통령님.”

“일단 뇌물 수수에 대해서는 나조차 자유로울 수 없으니 넘어가고, 앞으로의 대응에 대해서 말해봅시다. 앞으로 어떻게 진행해야 할 것 같소?”

수석비서관 중 국민 여론 및 민심 동향을 파악하고 법률 문제 보좌하는 민정수석에게 이 질문이 나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임채민 민정수석은 이미 답변을 준비하고 있었다.

“일단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소극적인 해명이고, 다른 하나는 적극적인 대응이지요.”

“소극적인 해명부터 설명해 보시오.”

“우선 법률적으로 보면 불법하게 취득한 사진이나 영상에 대해서는 증거능력이 없으므로 이 사안만으로 형사 고소는 당하지 않을 것이지만, 정치적 책임은 피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쩌자는 것이오!”

“이번 영상을 면밀히 분석해 본 결과 대부분이 2주에서 3주 안에 찍힌 것 같습니다. 가장 최신의 것이 이틀 전이고 가장 오래된 것이 3주 정도 전이니 말입니다. 그 말은 실제로 금품을 수수하는 장면이 찍힌 것은 거의 없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금품을 직접 수령한 것을 찍은 것은 50여 건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다 전화 통화나 대화에서 금품 수수를 인정하는 식의 영상이었지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어떻게 하자는 것이오! 변죽 그만 울리고 본론을 이야기해 보시오.”

민정수석은 내심 성격 참 급하다며 혀를 차면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직접 금품을 수수한 장면이 나온 사람들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아닌 사람들은 그냥 친한 지인들과의 대화에서 농담처럼 한 말이라 우기는 것이지요.”

“허어. 고작 그거요? 그게 통하겠소?”

“물론 처음부터 통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일단 그렇게 프레임을 잡고 각종 언론을 동원해서 물타기를 하고 사전 작업을 통해서 법적으로도 그런 식의 판결을 받아낸다면 큰 문제 없이 넘어갈 가능성이 크겠지요.”

“흐음…….”

“어차피 야당 의원들도 대부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정치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에는 크게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현재 국회는 여당인 대한국당과 야당인 민주혁신당, 이 두 개의 큰 정당이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총 300명의 국회의원 중 대한국당이 155명의 국회의원을 가지고 있어 총원의 과반수가 넘었고, 민주혁신당이 130명의 국회의원을 갖고 있었다.

나머지는 15석은 군소정당들이 나눠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 일에서 자유로운 국회의원은 전체의 10%도 안 되는 29명밖에 없었다. 대다수의 국회의원이 관련이 있기 때문에 민정수석의 말처럼 정치적인 합의는 당연히 이루어질 것이었다.

하지만 고민하는 대통령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민정수석의 대답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대통령의 표정을 읽었는지 민정수석은 두 번째 안을 이야기하였다.

“그럼 적극적인 대응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렇지. 다른 방법은 뭐요?”

“적극적인 대응은 우리가 주로 하듯이 북한을 이용하는 것이지요.”

“북한?”

“이번 사안을 북한의 공작으로 몰아세우고 북한의 핫라인을 통해서 약간의 도발을 일으키는 방법입니다. 어차피 우리나라에서는 안보가 최우선 아닙니까? 북한의 도발이 가시화된다면 이런 정치적인 이야기는 힘을 잃을 것입니다. 저번에 북한에 송금하기로 한 달러도 좀 남아 있으니, 그것을 주면서 요구한다면 북한도 거절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번 의견은 마음에 들었는지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든 대통령은 민정수석과 다른 수석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일단 두 가지 방법으로 다 가 봅시다. 어떻게든 이번 일을 무사히 덮어야 하오. 대선이 몇 달 안 남았소. 그리고 대선이 끝나고 나면 곧 총선이오. 어서 분위기를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잠시 말을 멈춘 대통령은 수석비서관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바라보더니 말을 이었다.

“큰일을 하려면 돈이 필요한 것은 뭐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니 내 거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소. 대신 이번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 지어서 우리 당이 차기 정권을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오. 그래야지 은퇴한 뒤 말년에 청문회 같은 곳에 불려 다니지 않겠지. 물론 나를 포함해서 말이오. 그러니까 잘 부탁합니다.”

이미 레임덕이 시작된 대통령이었지만 이번 일 자체에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정치인이 그 리스트에 올라와 있어 이번 일을 덮기 위해 여야가 함께 나설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었다.

대통령은 내심 모두가 걸려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양 눈을 가진 마을에서는 외눈박이가 비정상이겠지만, 외눈박이 마을에서는 양 눈을 가진 것이 비정상이지. 다들 뇌물을 받았으니 이번 일은 별 탈 없이 넘어가겠군. 누가 이번 일을 꾸몄는지는 모르겠지만, 멍청하군. 여당과 야당을 구분해서 일을 꾸몄다면 몰라도, 이런 식으로라면 네 생각대로 되진 않을 거야.’

* * *

태국 코사무이에 있는 K호텔의 프리미엄 럭셔리 풀빌라는 강서영과 한미애의 입을 쩍 벌어지게 할 정도로 호화로웠다.

소수의 부유층을 노리고 만든 풀빌라다 보니 크지는 않았지만, 내부 시설과 서비스는 그야말로 최상급이었다.

이 풀빌라에서 묵고 있는 강민 일행은 지금 메인 풀장에 나와 각자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그중 선베드 아래에서 잠시 누워 일광욕을 즐기는 강민에게 핑크색 3피스 수영복을 예쁘게 차려입은 강서영이 슬쩍 다가와서 말을 건넸다.

“오빠.”

“응?”

“회사가 시끄럽다고 하던데 한국에 들어가야 하는 거 아냐?”

스마트폰을 갖고 있었기에 그녀 역시 KM그룹이 검찰 수사를 받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다만 한미애가 걱정할까 봐 표시를 내지는 않았는데, 지금 한미애가 유리엘을 대동하고 음료를 주문하러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기회를 노려 강민에게 물어보는 것이었다.

“시끄러운 건 회사보다 정치권이겠지.”

“하긴 그렇지. 그렇게 많은 사람이 뇌물을 받고 비리를 저지를 줄이야. 그런 사람들이 사회 지도층이라는 것이 우습기도 하네. 특히 한상천 의원은 정말 실망이야.”

지금 한국에선 KM그룹의 수사 이야기는 이슈도 아니었다. 실제로 그룹 수사는 지지부진한 상태였고, 지금 정치, 언론, 경제계를 포함해서 한국의, 아니, 세계의 모든 시선이 이번 KM TV의 권력층 비리 보도에 실려 있었다.

KM TV에서 만든 다시 보기 사이트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제재 때문에 바로 내릴 수밖에 없었는데, 그 사이에 모든 영상을 저장한 개개인이 해외 서버를 통해서 우회해서 영상을 올리고 있어 이미 관심 있는 대부분의 국민이 이번 영상을 보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강서영도 그중 한 명이었다. 모든 영상을 본 것은 아니었지만 이름별로 구분하여 올라온 영상 중에서 평소에 좋은 이미지로 많은 강연도 하는 정치인에 대한 영상을 보고 많은 실망을 했던 것이었다.

“정치인들이 다 그렇지. 뭐 실망까지 하고 그래.”

“그래도 한 의원은 그렇게 깨끗한 척하더니 받은 돈이 10억이 넘는다며? 참나……. 그런데 그건 그렇고, KM TV에서는 어떻게 그런 동영상을 확보한 거야? 오빠는 알고 있지?”

방송통신위원회에는 익명의 제보자가 제공한 영상이라고 하였지만, 강서영은 강민이 개입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강민이 개입하지 않고서야 입법, 사법, 행정부를 모두 공격하는 그런 영상을 KM그룹의 자회사에서 마음대로 방송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강서영의 질문에 강민은 굳이 숨기지 않고 답을 해주었다. 별로 숨길 것도 아니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래, 유리엘이 만든 위성으로 녹화한 거야.”

“위성이 그런 것도 돼? 방송에 나온 영상을 보니 거의 앞에서 찍은 거나 마찬가지로 나오던데. 그리고 음성도 다 있고 말이야. 위성으로 그게 가능해?”

강서영은 마나 위성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그 기능을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일반 위성을 기준으로 생각하다 보니 내릴 수 있는 평가였다.

“그래, 가능해. 어쨌든 회사 일은 신경 쓰지 마.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말이야. 넌 여행이나 즐기고 있어.”

“알겠어. 여튼 나오기 전엔 망설였는데 이렇게 나와서 세계 일주를 하니 꿈만 같고 너무 좋아. 태국이니 이제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조금 아쉽긴 하다. 헤헤.”

“아쉬우면 한 바퀴 더 돌까?”

강민은 세계 일주를 마치 동네 한 바퀴를 더 도는 것처럼 그녀에게 말했다.

“아니야, 3개월이나 여행했으면 충분하지. 회사 일도 그렇고 드림시티 건이 얼마나 진행되었는지도 궁금하니까 들어가 봐야지.”

“회사 일이야 보고 받고 있잖아.”

“에이, 그래도 직접 보는 거랑 다르지. 아. 아이들 받았을 때 나도 있었어야 했는데 그건 좀 아쉽다.”

지금 KM드림시티는 상당히 진전된 상태였다. 강서영이 드림시티 건설 때문에 여행을 망설이자 유리엘이 특별히 절반 이상의 건물을 올려주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아직은 일반인들의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기에 외부에는 일종의 조립식 건축으로 토목공사와 동시에 시공이 들어가서 거의 완공된 상태로 가져왔다는 식으로 둘러대긴 하였다.

어쨌든 지금 KM드림시티는 계획된 것의 절반 정도가 가동에 들어갔다. 영유아 고아부터 시작해서 초등학생 나이까지 총 만여 명의 인원을 수용하고 있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는 차차 공사가 끝나는 대로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하고 있니?”

어느새 에메랄드빛 음료가 담긴 칵테일 잔을 들고 돌아온 한미애가 강서영을 보고 물었다.

“엄마, 빨리 왔네?”

“안 기다려도 되니까 금방 되더라. 유리가 주문을 해줬어. 근데 여긴 손님보다 종업원이 더 많은 것 같아. 이래서 장사가 되겠니?”

마지막 질문은 강서영이 아니라 강민에게 하는 것이었다. 아들이 아무리 돈이 많아도 허투루 쓰는 것 같으면 걱정이 되는 것이 엄마의 마음이었다.

그런 한미애의 모습에 강서영은 웃음을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히히. 엄마는 그런 걱정하지 말고 즐기기나 하셔!”

“그래요. 어머니, 그런 걱정은 마시고 푹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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