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세귀환록-139화 (139/203)

# 139

현세귀환록

139. 반격(1)

삐익~!

조용한 장태성 실장의 방에 인터폰 소리가 울리더니 비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실장님, 홍보팀장 대기하고 있습니다.”

사전에 약속된 만남은 아니었지만 장태성은 그가 무슨 일로 왔는지 짐작이 갔다. 그렇기에 장태성은 지체 없이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출입을 허락했다.

“들어오라 하세요.”

들어오라는 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문이 열리며 홍보팀장 박흥대가 들어왔는데, 그의 손에는 신문이 한 부 들려 있었다.

“실장님, 또 기사가 났습니다. 이거 대놓고 우리 그룹을 목표로 작업이 들어온 것 같은데요?”

“저기 보시게나.”

장태성은 오른손을 들어 전면을 가리켰고,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 있는 60인치 벽걸이 티비에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뉴스를 전하는 아나운서 옆에 떠 있는 참고 사진에는 KM그룹의 본사 전경이 떠올라와 있어서 뉴스가 KM그룹과 관련되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붉은 원피스를 단정하게 차려입은 여자 아나운서는 침착한 목소리로 뉴스를 전하였다.

-이번 KM그룹 금품 로비를 수사 중인 서울지검 특수부는 어제 전 KM그룹 본사에서 압수한 회계장부 등을 정밀 분석하는 한편, 임의 동행한 직원 3명에 대해 오늘 새벽까지 강도 높은 조사를 벌인 뒤 귀가 조치 했습니다.

검찰은 이들이 가칭 KM드림시티 조성 과정에서 경기도청 관계자 등에게 사업지 인근의 부지 매입에 도움을 주는 대가로 건축 인허가나 토지 계약 등에서 특혜를 받은 혐의를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들은…….

아나운서의 말이 이어졌지만, 장태성 실장은 리모컨을 들어 티비를 꺼버려서 뒷말을 들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 정도 소식만으로도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충분히 전해졌다.

“이런…… 신문뿐만 아니라 KBC도 보도하기 시작했군요.”

“그래, KBC뿐만 아니라 YTV나 채널S 같은 종편 채널들도 대대적으로 방송 보도를 하고 있지. 종편 채널들은 이번 일뿐만 아니라 예전에 발생했던 민원들까지 엮어서 우리 그룹을 아주 부도덕한 그룹처럼 몰고 가더군.”

“종편 채널 방송은 저도 봤습니다만 공영방송이라는 KBC까지 이렇게 나설 줄은 몰랐네요.”

박흥대 홍보팀장의 말에 장태성은 당연하다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차피 한통속이지 않은가. 정권 실세가 우리 그룹을 노리고 있는 것 같아.”

“휴…… 우리 그룹이 궤도에 오른 뒤로는 언론 보도 해명자료 한 번 낸 적이 없는데, 이번에는 제대로 걸린 것 같군요.”

“그래, 감사팀에 물어보니 이번에 조사받은 직원들은 전혀 걸릴 것이 없다던데, 확실히 표적 수사 같아.”

“당연하지요. 창립 초기에 회장님께서 그룹의 간부들에게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깨끗하게 사업을 해서 존경받는 기업이 되자고요. 그 말씀을 어기고 몇 차례 관례대로 했던 간부들은 모두 해임되었지 않습니까? 지금 남아 있는 간부나 상급 직원 중에서는 불법행위를 할 직원들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 하지만, 이렇게 정권에서 우리 그룹을 찍어서 괴롭힌다면 어떻게든 걸릴 것이야. 법이라는 것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같은 것들이 많으니 말일세.”

“휴…… 그래서 걱정입니다. 최대한 법을 지키고 민원 소지가 없게 업무를 하도록 지시를 하였지만, 실장님 말씀처럼 그런 사안도 충분히 가능하니 말입니다. 그건 그렇고, 회장님은 뭐라고 하시던가요?”

“글쎄, 사안의 심각성을 모르시는지 그냥 정도대로 대응하라고 하시는군.”

그 말에 박흥대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조심스럽게 장태성에게 입을 열었다.

“음…… 지금까지 회장님을 지켜본 바로는 심각성을 모르신다기보다는 경영철학이 그러신 것 같습니다. 막말로 회장님의 재력이라면 정권의 탄압으로 회사에 손실이 가더라도 별로 개의치 않으실 것 같고요.”

“허허. 이거 자네가 나보다 회장님을 더 잘 아는구만.”

“아. 제가 괜한 말을…….”

장태성의 말을 질책으로 받아들인 박흥대는 송구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하려 하였지만, 장태성의 의도는 그것이 아니었다.

“아니야 아닐세. 자네를 탓하는 것이 아니야. 내 생각이 짧았던 것 같군. 예전에 사업할 때가 생각나서 내가 너무 그때를 떠올렸던 것 같네. 자네 말처럼 회장님의 재력이라면 이런 상황쯤이야 아무것도 아닐 텐데 말일세.”

그제야 장태성의 말을 이해한 박흥대는 같이 웃음을 지으며 그의 말을 받았다.

“그렇지요. 정권에서 아무리 우리를 괴롭혀도 우리가 정도만 지킨다면 그들이 어쩌겠습니까? 하하하.”

“그래, 그렇지. 허허허.”

박흥대의 자신 있는 말투와 웃음에 장태성 역시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검찰에서 수사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짓는 웃음이었다.

* * *

“어떻소, 유 회장? 정보는 좀 찾았소?”

요즘 현승의 회장실에는 다른 누구보다 구양풍의 출입이 잦았다. 지금도 구양풍은 손님용 응접 테이블에 발을 올리고 거만한 자세로 유현승에게 물었다.

그런 구양풍이 못마땅하였지만 유현승의 입장에서 그런 표시를 낼 수는 없었다. 잠시간의 침묵으로 불만을 표시한 유현승이 그의 질문에 대답하였다.

“……아니오. 검찰의 수사 내용을 살펴보았지만, 웜홀 탐색기에 대한 정보는 일체 없었소. 아니, 웜홀 탐색기뿐만 아니라 KM그룹 자체에 이능과 관련된 부분은 전혀 없었소. KM그룹이 아니라 강민 개인이 별도로 운용하는 것 같소.”

“그렇다는 말이지……. 그럼 그룹을 압박하는 일은 어떻게 되었소?”

“우선 김지인 총장에게 KM그룹을 철저히 수사하라고 별도로 부탁하였고, 이홍철 대표와도 따로 만나서 KM이 시장질서를 문란하게 한다고 제재할 수 있는 법안 제정을 요청하였소.”

“검찰총장과 여당 대표라…….”

“그리고 언론 쪽으로도 전방위 압박을 하는 중이오. 우리 현승 산하의 고려일보, STV뿐만 아니라 KBC나 매일신보에도 관련 자료를 흘리고 데스크에 압력을 넣고 있소. 이런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바는 다 하고 있소이다.”

유현승은 정치권, 검찰, 언론까지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사실 이런 압박은 현승에도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정치권이나 검찰이나 이렇게 하나를 받으면 하나를 줘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고, 행여 이런 사실이 알려진다면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유현승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역시 유 회장에게 맡기길 잘했군. 의미가 있고 없고는 우리가 판단할 테니 유 회장이 거기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소. 그건 그렇고, 강민 회장과 그의 지인들에 관한 정보 수집은 어디까지 진행되었소?”

구양풍의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유현승은 300페이지 정도 되는 보고서를 가지고 가서 그에게 건넸다.

“여기 있소. 강민과 그의 가족들, 그리고 지금 그와 관련 있는 인물들까지 모두 조사한 보고서요.”

유현승이 건넨 보고서를 한참 동안 훑어보던 구양풍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좋군. 일단 계속해서 일을 진행하여 주시오. 사안에 진전이 생기면 즉각 보고하고 말이오. 그럼 수고하시오.”

구양풍은 방금 받은 보고서를 들고 유현승의 방을 나섰다. 이렇게 구양풍이 자리를 비웠지만 유현승이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었다. 그의 옆에는 두 명의 혈마단원이 경호원의 복장으로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회장실 안까지 경호원을 둔다는 것은 비상식적인 일이지만 지금 상황에선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탈출구를 찾아야 하는데…… 휴…… 이대로 끌려가기만 하다가는 이번 일이 끝나고 살해당할 것이 불 보듯 뻔하지. 변화의 실마리가 필요한데 말이야.’

옆에 있는 감시자들 때문에 어디에 의논조차 하지 못한 채 속으로만 생각을 삼키는 유현승이었다.

이렇게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아직까지 유현승의 눈빛은 살아 있었다.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겠다는 강한 의지가 그의 눈에 실려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실마리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구양풍이 나간 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이한수 기획조정실장이 그 실마리를 갖고 유현승의 방으로 뛰어들어왔다. 유현승에게는 부정적인 내용이었지만 상황이 변화할 수 있는 실마리임인 것은 틀림없었다.

“회장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인가, 이 실장?”

“어서 KM TV를 보시지요!”

이한수의 다급한 말에 유현승은 리모컨을 들어 티비를 켰다. 그리고 익숙하게 채널을 돌려 KM TV로 채널을 맞추었다.

그 채널에는 유현승이 나오고 있었는데, 아래쪽의 자막이 상황을 짐작하게 하였다.

-유현승 현승그룹 회장, 여당 대표 및 검찰총장에 청탁.

어떻게 찍었는지 모르겠지만, TV 화면에는 유현승 회장과 이홍철 대표가 만나는 장면이 또렷하게 찍혀 있었다.

둘의 대화까지도 잡음 하나 섞이지 않고 다 들리고 있어서 어떤 상황인지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이한수의 반응을 보아하니 이미 김지인 검찰총장과의 영상은 지나간 것으로 보였다.

“아니, 어떻게…….”

유현승은 도무지 저 영상이 어떻게 찍혔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저 영상의 화질이나 각도로 보아서는 둘의 측근이 직접 찍지 않고서는 저런 영상이 나올 수가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영상이 끝나고 나자 이한수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유현승에게 말을 하였다.

“회장님, 이번 사안은 역풍이 좀 있을 것 같습니다. 출국금지가 떨어지기 내리기 전에 잠시 해외 지사 방문으로 나갔다 오시지 않겠습니까?”

이한수는 KM그룹에 대한 압박은 알고 있지만 혈마단이 지금 유현승을 압박하고 있다는 것까지는 모르고 있었다. 그랬기에 이런 제안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유현승은 지금 해외로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아니야. 어차피 내가 저지른 일, 내가 수습해야겠지. 그리고 우리가 그동안 뿌려놨던 돈이 한두 푼인가? 이번 기회에 써먹어 봐야지. 허허.”

그러나 이한수는 유현승의 웃음에 마주 웃어줄 수 없었다. 이한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 표정으로 티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회, 회장님……. 저, 저기…….”

“무슨 일이……. 허. 이거 참…….”

문제의 영상이 다 끝난 것이 아니었다. KMTV는 속보와 특별방송이라는 로고를 우측 상단에 달고 다른 영상을 보내기 시작했다.

영상이 나오는 화면의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자막이 흘러나왔다.

-국회의원 271명 뇌물 수수 확인.

이 자막이 나오면서 앵커의 멘트와 함께 뇌물 수수 국회의원 각각의 영상이 짧게 흘러 지나갔다.

직접 뇌물을 받는 현장부터, 뇌물을 받고 공무원에게 압력을 넣는 전화통화 장면, 친구와의 대화에서 뇌물 수수를 인정하는 영상까지 명백한 증거자료가 KM TV를 통해서 흘러나왔다.

주요 부분만 편집하였는지 짧게는 십여 초, 길게는 이삼 분 정도의 영상이었는데 271명이라는 엄청난 숫자의 영상이다 보니 잠깐 잠깐만 흘러 지나가도 4시간이 넘는 분량이었다.

또 그것은 국회의원으로 끝이 아니었다. 국회의원의 뇌물 영상이 끝나자 검찰과 행정부, 사법부의 고위 요인들의 부정부패 영상이 이어서 나왔다.

결국 입법, 사법, 행정부 고위층 인사 중에 부정부패가 있었던 인사는 모두 언급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중에서는 현직 대통령도 포함되어 있었다.

오후 늦게 시작한 방송은 밤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모두 마쳤다. KM TV 뉴스의 앵커는 다소 지친 표정으로 클로징 멘트를 하였다.

-지금까지 국민 여러분들은 많은 정치인이나 사회 지도층 인사가 비리를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을 하시는 경향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생각들에 대해서 자신들은 언제나 깨끗하다면서 믿어달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오늘 그들의 민낯이 드러났습니다. 대선이 불과 4개월, 총선은 8개월 남은 시점입니다. 국민 여러분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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