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세귀환록-138화 (138/203)

# 138

현세귀환록

138. 공격(2)

-저희 고문 변호사들의 인맥을 통해서 수사 결과를 알아보고, 필요하다면 개별적인 접촉을 하는 등의 대응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괜찮습니다. 죄가 있다면 벌을 받을 것이고, 없다면 별일이 없겠지요.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

-그래도…… 정권에서 작정을 하고 그룹을 공격한다면 없던 죄도 만들어지지 않겠습니까? 그간 우리 그룹이 너무 정치권에 무심했던 것도 있으니 적당히 약을 치는 것도…….

이미 오랫동안 사업을 해왔었고, 실패도 맛보았던 장태성 실장으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오히려 지금까지 너무 정치권에 무관심했던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정도로 크게 사업을 한다면 정치권과 연관될 수밖에 없는 사이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상하게도 KM그룹은 그런 쪽으로는 무관심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장태성 실장은 지금의 상황을 올 것이 왔다고 판단하고 그에 맞는 대응을 이야기한 것이었다.

하지만 강민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장 실장님. 아직도 그런 생각입니까? 그런 것은 필요 없으니 정도대로 일을 추진하세요.”

-정도대로라면…….

“조금 전 말씀 드린 것처럼 죄가 있으면 벌을 받는다는 말이죠.”

-회장님,그건 너무 정석적으로 생각하시는 것 아닐까요?

정석적이라는 표현은 순화시켜서 말한 것이고, 장태성은 지금 강민이 너무 순진한 것 아니냐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강민이 나이가 어려서 판단을 그르친 경우는 없었지만, 이번 경우에는 장태성이 느끼기에 강민이 정치권의 생리를 너무 모르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정권에서 악한 마음을 먹는다면 일개 회사인 KM그룹은 충분히 어려워질 수 있었다. 그렇기에 다른 대기업들은 사전에 충분히 실세 정치인들과 공무원들과의 접점을 만들어놓고 관리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강민은 여전히 완고했다. 장태성의 말을 못 알아들은 것은 아니지만 그런 이유로 자신의 판단을 바꿀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정도대로 했는데도 계속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생각이 있습니다. 그러니 정도대로 대응하세요.”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데 아랫사람인 장태성이 강민에게 더 이상 이 부분에 대해서 말할 수는 없었다. 결국 장태성은 내키지 않았지만, 강민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네. 알겠습니다, 회장님. 나중에 별도로 결과보고 하겠습니다.

“네, 수고하세요.”

전화를 끊은 강민에게 옆에 있던 유리엘이 물었다. 유리엘은 전화기에서 흘러나오는 장태성의 목소리를 다 들을 수 있었기에 그녀에게 별도의 설명은 필요 없었다.

“탈세와 로비라니, 무슨 일일까요?”

“글쎄, 처음의 황금거래는 유니온에서 알아서 처리했을 테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이고, 그 이후로는 별다른 건이 없을 건데 말이야. 로비도 지시한 바가 없고 말이야.”

KM그룹은 강민이 깨끗한 기업을 목표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런 불법적인 일을 일체 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런데 이런 수사라니 뭔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졌다.

유리엘 역시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 먼저 강민에게 물어보았다.

“한 번 알아볼까요?”

“그래, 한 번 알아봐 줘. 갑자기 이러는 게 뭔가 있는 것 같네.”

둘의 대화를 신중하게 듣고 있던 엘리아는 최강훈에게 잠시 쉬어가자고 말을 전했고, 그렇게 카오산 로드를 걷던 일행은 한낮의 더위를 피한다는 명목으로 길거리에 있는 펍(PUB)에 들어갔다.

넓은 테이블에 앉아서 열대과일 음료를 시키는 동안 유리엘은 잠시 눈을 감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5분여가 지나자 시켰던 음료가 나왔고, 그걸 알기라도 한 듯이 유리엘은 감았던 눈을 떴다.

그런 유리엘을 보고 있던 강민은 다른 일행이 걱정하지 않도록 심어로 그녀에게 물었다.

[오래 걸렸네. 무슨 일이야?]

5분이면 오래 걸렸다고 하기에는 짧은 시간이지만, 강민은 그녀의 능력을 알고 있었다. 그녀의 능력이라면 순식간에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 정도 시간이 걸렸다는 것은 뭔가가 있다는 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유리엘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강민에게 대답했다.

[이거 참. 복잡하게 엮여 있네요. 꽤 시간을 넘겨 가며 찾았는데 뿌리까지는 못 찾았어요. 뿌리까지 뒤져보려면 시간도 시간이지만 마나 위성의 마나를 상당히 써야겠는데요?]

마나 위성은 엄청난 정보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장치였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다.

현재의 실시간 정보를 찾는 것에는 절대적이라 할 만큼의 정보를 제공하고 소모되는 마나도 거의 없었지만, 과거의 지나간 정보를 찾아내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이는 마나 위성의 데이터가 특정 매체에 저장되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사실 마나 위성은 지구 상의 모든 정보를 대상으로 감시하다 보니, 특정 저장 매체에 정보를 저장해 놓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다.

하루, 아니 한 시간에 벌어지는 일에 대한 정보만 저장하더라도 그 정보의 양은 엄청날 것이었다. 그런 정보를 담으려면 엄청난 용량의 저장 공간이 필요하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정보 중에서 의미 있는 정보는 극히 일부분이었다. 대부분 풀벌레의 소리나 파도나 구름의 움직임처럼 저장할 가치가 없는 정보가 대부분이라는 이야기였다.

이런 이유로 마나 위성의 정보는 매체에 저장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지구의 마나장에 정보를 흘려보내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흘려보낸 정보는 처음에는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을 것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거대한 마나장에 희석되어 찾기가 힘들어질 것이었다.

그나마 마나 파장이 큰 이능 세계의 정보는 좀 더 오랜 시간 형태를 유지할 것이지만, 단순한 자연현상이나 마나가 없는 일반인들의 일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희석되어 사라져 버릴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이렇게 희석되어 버린 정보를 찾기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유리엘의 능력이라면 그 마나장을 뒤적여 하루나 이틀 정도로 단기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정보를 찾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다만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이 일주일 이상으로 시간이 길어지면 마나 소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이미 희석되어 버린 정보를 조합하여 원 상태로 돌리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었다.

비유하자면 이렇게 시간을 거스르며 정보는 찾는 작업은 유리컵을 박살 낸 다음 원래의 형태로 돌리는 작업이라 할 수 있었다.

지나간 지 얼마 되지 않은 정보는 상대적으로 큰 조각을 갖고 있어 원상태로 돌리기 힘들지 않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조각이 잘게 부스러져 원래대로 돌리는 것이 힘든 것과 마찬가지였다.

만일 한 달 이상을 거슬러 올라간다면 몇 개의 마나 위성은 마나 충전을 위해서 임시적인 휴지기에 들어가야 할 정도 마나 소모가 심한 작업이었다.

[그래? 일단 파악한 것만 말해줘. 필요하면 그때 더 찾아보지.]

[일단 파악한 것으로는 이번 압수수색의 배후에는 현승이 있는 것 같아요.]

갑자기 나온 현승이라는 이름에 강민은 의아한 듯 유리엘에게 되물었다.

[현승? 현승이 왜?]

[지금 현승은 혈마단이라는 조직에 점거당한 상태예요. 그리고 혈마단의 배후에도 누가 있는 것 같은데, 그 이상 찾으려면 시간을 좀 들여야 할 것 같아요.]

[배후라…… 배후가 있다면 결국 그 배후와 연락하겠지, 굳이 마나와 심력을 소모해서 찾을 필요까진 없어. 그리고 어느 정도 각이 나오잖아. 직접 나서는 게 아니라 현승을 장악해서 KM그룹을 건든다면 말이야.]

유리엘의 간단한 상황설명만 듣고도 강민은 어느 정도 배후를 짐작하였다. 유리엘 또한 강민의 반응에 그들이 추측된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렇군요. 직접 나서지 않는다는 말은 퍼니셔를 알고 있다는 말인데, 그래도 건든다라……. 대강 윤곽이 나오는데요? 위원회 쪽이겠죠?]

이능을 가진 능력자가 직접 나서지 않고 다른 사람을 앞세운다는 말은 강민이 누군지 알고 있다는 의미였다. 즉, 강민에게 자신들의 정체가 드러나길 꺼린다는 말이었다.

사실 이능 세계에서 퍼니셔는 상당히 유명한 이름이었다. 블랙 카드를 가진 최강훈이 일반 세계에 이름난 것보다 더 유명하다고 할 수 있었다.

최근에 벌어진 다크 스타의 수뇌부들을 처리한 것까지는 알려지지 않았을지 몰라도, 일본의 절대 강자인 쇼군과 헤이안을 한 번에 처리한 것은 엄청나게 유명한 사건이었다.

그 때문에 이능계의 상위권 조직이나 능력자들 사이에서는 퍼니셔는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KM그룹에 접근하여 공세적인 입장을 취한다면, 정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그렇지. 퍼니셔임을 알고 있는데 이렇게 자극한다는 것은 우리가 두렵지 않다는 것일 텐데, 그래도 직접 나서지 못한다는 것은 뭔가 우리에게 아쉬운 것이 있다는 것이겠지. 결국 우리가 제공하는 웜홀에 대한 정보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을 가능성이 크지.]

[위원회 전체의 생각일까요?]

[글쎄, 혈마단이라는 것을 보니 일단 무림맹은 끼었을 것 같은데…… 그게 전체일지는 모르겠네. 뭐 상관은 없잖아. 어차피 이놈들을 처리하고 나면 꼬리가 드러날 것이고, 꼬리를 당기다 보면 몸통이 나오겠지.]

강민의 말을 듣던 유리엘은 갑자기 생각났다는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이번 기회에 이능 세계뿐만 아니라 일반 세계도 좀 정리하는 건 어때요?]

[일반 세계?]

[이런 식으로 정권의 압력이 들어오면 아무리 대기업이라도 흔들릴 수 있잖아요. 특히 이번 같은 경우는 드림시티를 그 도구로 이용해서 KM그룹을 압박하고 있는데, 나중에 서영이가 알게 된다면 꽤나 마음고생 할 것 같아요. 자책할 수도 있고.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하려면 한 번 정리하는 것도 좋지 않겠어요?]

드림시티는 강서영이 야심차게 추진한 사업인데 이 사업을 목표로 정권이 흔들기를 시도한다면, 유리엘의 말처럼 강서영은 충격을 받을 가능성이 컸다.

애초에 KM그룹을 창립한 이유가 강서영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였는데, 그룹으로 인해서 그녀가 충격을 받게 할 수는 없었다.

강민 역시 유리엘의 말이 타당성이 높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흐음, 유리 말이 맞겠어. 서영이처럼 여린 아이는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크지. 그래, 이번 기회에 일반 세계도 한 번 정리해 버리자.]

[이거 오랜만에 재미있는 놀이를 하겠는데요? 천천히 즐겨봐요. 호호.]

[음…….]

위원회 전체와 상대하더라도 둘에게는 그저 놀이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강민의 반응이 석연치 않았기에 유리엘은 궁금해하며 강민에게 물었다.

[왜 그래요?]

[아. 만일 위원회를 다 처리하고 나면 나중에 차원 통합에서 지구인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위원회를 처리하는 것은 강민에게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을 처리해 버린다면 나중에 있을 차원 통합에 대응하기가 힘들어질 것이었다.

애초에 다크 스타의 처리를 망설였던 것도 그런 이유였는데, 위원회는 그런 다크 스타보다 훨씬 중요한 존재로 그런 존재들을 처리해 버린다면 향후 대응이 더 힘들 수도 있었다.

[하긴, 그것도 그렇네요. 우리가 있는 동안은 큰 문제들은 처리해 줄 것이지만 길어야 백 년이니까요. 우리가 계속 이곳에 있을 것도 아니고 말이죠.]

[그렇지. 그런 상황에서 이능 세계의 중심축이나 마찬가지인 그들을 다 처리해 버린다면 지구인들이 버틸 수 있을까?]

사실 한미애와 강서영이 죽은 후엔 크게 미련이 있는 차원은 아니지만, 그래도 고향 차원이었다. 그렇기에 강민은 지구를 살릴 수 있으면 살렸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흐음, 뭐 어머님과 서영이가 마나의 품으로 돌아가고 나면 다른 차원으로 떠나기 전에 그쪽 차원으로 넘어가서 한 번 싹 정리해 버리고 가면 안 될까요?]

[그 생각도 해봤는데, 그래 봤자 임시방편일 것 같아. 어차피 차원 통합이 되면 안정기에 들어설 때까지는 차원장이 얇아질 것이니 그쪽 차원을 정리한다고 해도 또 다른 차원들로부터 오는 마물을 막을 수가 없을 것이잖아.]

[그렇긴 하네요. 뭐 그런 마물들은 마나 충돌 때문에 오래 머물지는 못하겠지만, 양 차원의 마스터급 이상의 능력자들이 다 정리되어 버리면 짧은 시간에도 막대한 피해가 생길 수 있으니 말이에요.]

[결국은 그런 상황을 버틸 기초 체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지.]

[기초 체력이라…….]

유리엘의 말을 끝으로 잠시간의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그녀가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이 났는지 웃으며 강민에게 말했다.

[아, 괜찮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호호. 이 방법이면 기초 체력은 확실히 생길 것 같아요.]

[어떤 방법이야?]

[아직은 구상 단계니까 조금 구체화되면 말해줄게요. 이 방법은 아직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방법이라서요. 호호호.]

[유리가 그렇게 말하니까 더 궁금하네. 하여튼 기대할게.]

[기대해도 좋을 거예요. 제 생각대로 된다면 우리가 가더라도 충분히 자생력을 가질 수 있을 테니 말이에요.]

유리엘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녀는 강민이 진심으로 신뢰하는 유일한 한 사람이었다. 그녀가 장담한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결과물이 나올 것이기에 강민은 유리엘의 말에 한 치의 의구심도 갖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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