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세귀환록-136화 (136/203)

# 136

현세귀환록

136. 장악(2)

A+급 무술가인 구양 단주가 처리할 수 없다면 답은 하나였다. 아니나 다를까. 구양 단주의 입에서 독고패가 생각하는 대답이 나왔다.

-그렇습니다. 마스터입니다. 특이한 것은 많아 봐야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정도로 어린 나이라는 것입니다. 그 마스터가 나온 이후로 천왕의 잔당을 처리하는 것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극민이 죽고 난 이후로 한국에 마스터라면……. 아. 그렇지 최근 블랙 카드를 받은 최강훈이라는 자가 있었지. 그자도 나이가 얼마 되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자인가? 음? 그자는 지금 퍼니셔와 함께 움직이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독고패의 말을 듣고 있던 구양 단주에게서 나왔다.

-최강훈은 아닙니다. 일을 착수하기 전에 한국에 있는 마스터에 대해서 파악해 보니 이극민 사후에 현재까지 한국에 알려진 마스터는 최강훈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에 대해서는 확실히 숙지하고 있었습니다만 이번에 그 젊은 마스터는 확실히 최강훈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최강훈은 지금 각국을 돌면서 여행을 다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블랙 카드를 사용해서 각 나라에 출입국을 하다 보니 출입국 심사가 편리하다는 장점은 있지만, 이렇게 행적이 드러난다는 단점도 있었다.

“그래? 순간 이동을 통해서 잠시 한국에 들어왔을 수도 있지 않은가?”

독고패는 마법에 능통한 유리엘이 최강훈을 순간 이동으로 한국에 들여보내 주는 경우를 생각하여 반문하였다. 하지만 이어지는 구양 단주의 말에 독고패도 최강훈이 아니라는 구양 단주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순간 이동이라,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렇지만 이번 경우에는 확실히 최강훈은 아닙니다. 제가 최강훈이 전에 마물을 사냥했던 영상을 구해서 확인하였는데, 그가 쓰는 무공과 이번에 만난 그 마스터의 무공은 확연히 달랐습니다.

“흐음. 그렇다면야…… 그렇다면 대체 누구지? 유니온에 등록되지도 않았다는 것이지?”

-네, 비밀리에 북경에 연락해서 유니온의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해 보았지만, 그쪽에서도 모르는 눈치더군요.

카오틱에빌로 알려진 혈마단이 직접 유니온의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북경의 무림맹 본단에 연락했다는 이야기였다.

뜻밖의 상황에 잠시 생각을 가다듬다가 독고패는 말을 이었다.

“마스터라, 그렇다면 사천왕 중에 한 명을 보내…… 음.”

독고패는 말을 마치지도 않은 채 생각에 잠겼다. 구양 단주와 대화를 하는 동안 머릿속에 하나의 아이디어가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퍼니셔가 이능 세계에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는 말은 일반 세계와 이능 세계를 구분해서 활동하고 싶다는 것이군. 아니, 일반 세계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겠지. 이능 세계에서는 위원회의 위원이 될 기회도 저버리고 일반 세계에서 대기업을 운영하는 것을 보면 말이야.’

구양 단주와의 전화를 끊지도 않은 채 독고패의 생각은 계속 이어졌다.

‘그렇다면 이능 세계에서의 압박보다 일반 세계에서의 압박이 더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겠는데? 그래, 그렇지. 그러면 지금 의뢰를 받았다는 현승을 이용해서 퍼니셔를 압박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겠군. 현승은 오랫동안 한국의 정계와 재계를 좌지우지했다고 하니 퍼니셔에 대한 정보를 얻기도 더 좋고 말이야.’

생각을 정리한 독고패는 구양 단주에게 명했다.

“구양 단주, 현승을 장악하는 것은 어떻소? 가능하겠소?”

갑작스러운 독고패의 말에 구양 단주는 빠른 속도로 머리를 굴리더니 입을 열었다.

-현승에 자체 경호 단체와 그레이 울프 출신의 용병들이 몇 있긴 하지만 장악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장악이라면 어느 정도 수준을 원하시는 것입니까?

“말 그대로 장악이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무력은 다 제거해 버리고 우리의 꼭두각시로 만드는 것이지. 다만, 여기서 무림맹이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해 주시오.”

현승을 장악하는 일은 철저히 혈마단의 독단적인 일로 행해야 하는 일이었다. 무림맹이 드러난다면 위원회에서의 입장이 곤란해질 수도 있었기에 하는 당부의 말이었다.

-당연한 말씀이십니다. 절대 무림맹이 드러나는 일은 없도록 하겠습니다. 꼭두각시라면 가족들을 인질로 잡고, 유현승 본인에게는 우리 단원들이 먹는 지옥환(地獄丸)을 조절해서 먹이면 될 것 같습니다. 다만…….

“다만?”

-그런 식으로는 오랫동안 장악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왜지?”

독고패의 질문에 구양 단주는 조심스럽게 답했다.

-행여 그들이 유니온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면 힘들어지지 않겠습니까? 저희 입장에서 유니온과 전면전을 벌일 수도 없고 말입니다.

“유니온과의 접촉을 못 하게 막으면 되지 않을까?”

-당연히 저희가 감시는 하겠지만, 지금까지 살펴본 결과 현승의 회장이나 사장은 유니온의 한국 지부장과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장악한 이후 일방적으로 만남을 거부하다 보면 유니온의 의심을 살 수도 있고, 결국 그쪽에서 알아보지 않겠습니까?

타당한 가정이었다. 단기적으로는 핑계를 대어 접촉을 막을 수 있겠지만, 길어진다면 이상함을 느낀 유니온에서 충분히 알아볼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겠군.”

독고패가 자신의 의견에 동의하는 듯하자, 구양 단주는 자신감 있게 말을 이었다.

-수뇌부를 꼭두각시로 만드는 것보다 차라리 빠르게 현승그룹을 해체시켜 저희 천하그룹으로 편입시켜 버리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구양 단주는 독고패가 현승을 집어삼키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여 해체 후에 편입을 권하였지만, 그룹을 해체하는 것은 독고패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건 안 돼.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은 현승그룹 자체가 아니라 현승이 한국의 언론계나 정계에 가진 영향력이 필요한 것이야. 해체해서 편입한다면 그런 영향력을 가지기는 힘들겠지.”

-영향력이면 우리 천하그룹을 움직이시거나 아니면 중국 정부를 통해서도 가능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우리의 정체가 드러나겠지.”

-아…….

독고패는 구양 단주에게 자신의 계획을 간단히 알려주었다. 실제 일을 처리할 사람은 구양 단주이기에 자신의 의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독고패는 퍼니셔가 웜홀 탐색기를 제공한 것부터, 그 때문에 퍼니셔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음을 알려주었다. 또한 퍼니셔가 KM그룹의 회장인 강민이라는 사실과 강민이 퍼니셔임을 감추고 일반 세계에 더 초점을 두고 움직인다는 점도 언급했다.

그래서 자신이 이능계가 아닌 일반 세계에서 강민의 약점을 잡으려 한다는 것과 그것을 위해서 현승을 삼키려고 한다는 등의 개괄적인 계획에 대해서 구양 단주에게 설명했다.

독고패의 설명을 듣고 나자 구양 단주는 이해했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그랬군요. 퍼니셔가 한국인이었다니……. 어쨌든 맹주님의 의도는 잘 알겠습니다.

“나 역시 자네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겠네. 그렇다면 유니온에서 알아차리기 전에 서둘러 목적을 달성하는 것으로 해야겠군. 일단 현승을 장악하면 다시 연락을 주게나.”

-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의뢰는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조금 전에 말씀하시던 사천왕님은?

“어차피 의뢰주를 처리할 것인데 굳이 의뢰 완료에 연연할 필요는 없겠지. 음…… 그래도 굳이 분란의 소지를 남겨둘 필요는 없을 것 같군. 혁군에게 말해둘 테니 자네가 잘 안내해서 처리하도록 하게나.”

-혁군이라면 권왕(拳王) 말씀이시군요. 권왕 조혁군이라면 그 애송이 마스터 정도는 문제없겠지요. 잘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조만간에 본단에서 보세.”

-그 말씀은……. 아, 혈마단은 청산하는 것입니까?

독고패의 조만간에 보자는 말의 뉘앙스에서 뭔가를 느낀 구양 단주가 반문했다.

“그렇지. 의뢰주를 집어삼키니 당연히 그 이름으로는 다시 의뢰를 받기 힘들지 않겠나?”

독고패의 말처럼 의뢰주를 삼켜버린 집단에 의뢰를 맡길 조직은 없을 것이다. 물론 압도적으로 의뢰주가 강하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의 행동이 알려진다면 신뢰의 문제 때문이라도 혈마단에 의뢰를 주지는 않을 것이었다.

-제가 당연한 것을 여쭈었군요. 어쨌든 청산한다 생각하니 시원섭섭하군요.

“이번에는 좀 길었지? 5년을 생각한 것을 10년 가까이 했으니 말이야. 수고 많았네.”

무림맹은 벌써 수차례 이런 혈마단과 같은 조직을 운영해 왔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무림맹인 만큼 이런 조직을 희생시키면서 해야 하는 임무도 종종 있었고, 그런 일 이후에는 단을 해체하고 다른 사람들과 다른 이름으로 새로운 단을 구성해오고 있었다.

-아닙니다. 좋은 경험이었지요. 혹시 차기는 생각하신 것이 있으십니까?

“차기라…… 북궁호가 어떨까? 자네 생각은 어떤가?”

-호야라면…… 괜찮지요. 충분히 자기 몫을 할 녀석입니다.

“그래. 그래서 그 녀석을 쓰려고 해. 아, 이번 단원 중에서는 쓸 만한 녀석이 있던가?”

-네. 다섯 명 정도는 맹원으로 받아들여도 될 것 같습니다.

“다섯 명이라……. 그래 단을 청산할 때 잘 조치하도록 하게나.”

-네,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하게나.”

-네, 맹주님.

단을 청산하고 나면 어차피 기존에 단원들을 쓸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그간 검증되었던 단원들은 신분을 세탁하여 공식적인 맹원으로 받아들이고, 검증에서 탈락한 단원은 당연히 비밀의 엄수를 위해 몰래 처리해 버렸다. 무림맹의 비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었다.

* * *

이능 세계에서 혈마단은 그렇게 세계적인 조직은 아니었다. 동북아, 동남아 정도의 동아시아를 무대로 활동하는 소수 정예의 청부조직 정도로 알려져 있었다.

물론 실제로는 더 큰 역량을 발휘할 수 있었지만, 너무 크게 이름이 나면 오히려 활동하기가 더 힘들어지기 때문에 혈마단은 딱 알려진 정도의 역량만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현승이 혈마단을 고용해서 복천을 상대할 때에도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지금 현승의 회장실에는 구양 단주를 비롯한 세 명의 혈마단원이 회장실을 점거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회장실의 문 앞에는 경호원으로 보이는 두 명의 검은 정장 남성이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당황해하는 유현승 회장의 앞에는 구양 단주와 혈마단원이 여유롭게 서 있는 모습이었다.

유현승 회장의 표정은 차갑게 굳어 있지만 떨리고 있는 손을 보니 긴장하고 있음이 역력히 드러났다.

유 회장은 자신이 긴장하고 있음을 감추려고 하는지 큰 목소리로 그들의 정체를 물었다.

“네, 네놈들은 대체 누구냐!”

“음? 허허, 이거 참 아직 우리가 누군지 모르는 건가? 의뢰가 유 회장 지시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뭐 어쨌든 아직 모르겠다면 정식으로 내 소개를 하도록 하지. 나는 혈마단의 단주인 구양풍이라고 하네.”

“혈마단! 아니, 혈마단이 왜…….”

“아, 우리 단의 이름을 아는 것을 보니 유 회장도 알고 있었나 보군.”

유현승 회장이 직접 지시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들인 유태우에게 들어서 혈마단을 고용한 사안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전개가 가능할 것이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놀라움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의, 의뢰비가 부족한 것이오? 그, 그렇다면 추가 비용을 더 주겠소.”

유현승은 긴장으로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구양풍에게 간신히 말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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