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세귀환록-132화 (132/203)

# 132

현세귀환록

132. 악마(1)

단호한 강민의 말에 벤자민은 제대로 대꾸를 하지 못하고 같은 말만 반복하였다.

-그렇지만…….

“분명히 알아둬. 위원회는 너희 유니온의 상위 단체인 것이지, 모든 이능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야. 아, 그리고 참고로 말하자면 엘리아는 나를, 아니, 정확히 말해 유리를 따르기로 했으니까 그렇게 알아둬.”

엘리아가 살아 있다는 강민의 말에 벤자민은 놀라워하며 되물었다.

-네? 엘리아는 죽은 것이 아니었습니까? 다크 스타 중에서 엘리아가 이끌던 리벤지가 해체되며 흩어져서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만…….

“내가 네게 모든 걸 보고해야만 하는 것인가, 벤자민?”

-아, 아닙니다.

“어쨌든 엘리아 역시 내 식솔이 되었으니 알아두라고. 괜한 짓 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미리 말하는 거야.”

-……혹시 제우스도 살아 있는지요?

벤자민은 엘리아가 살아 있다는 말에 혹시나 싶어 제우스의 생사를 물었다.

“아, 그놈은 죽었지. 그놈은 본질이 악한 놈이더군. 죽어서 마나의 품으로 돌아갔으니 그놈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어.”

-그나마 다행이군요. 그럼 탁천군은 처음 계획하신 대로 처리하실 생각이신가요?

“굳이 그놈을 살려둬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군.”

-그럼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벤자민과의 전화를 끊은 강민에게 유리엘이 부드럽게 물었다.

“탁천군을 처리할 생각인가요?”

“아까도 말했지만 굳이 살려둬야 할 이유를 모르겠군. 하나하나 간섭할 마음은 없지만, 이왕 손쓰기로 마음먹은 이상 이놈까지는 끝내 버리려고 해.”

“그래도 마스터급일 텐데 차원 통합이 되고 나면 나름 쓸 만한 전력이지 않을까요?”

처음부터 카오틱에빌을 처리하지 않았던 이유가 이것이었다. 원래부터 간섭하지 않으려는 생각도 있었지만, 이계와의 차원 통합 후에는 어차피 이런 능력자들이 인류의 전력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이런 악인들에 대한 제재를 할 생각 자체를 하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있음으로 해서 오히려 더 많은 혼란과 희생이 발생하였고, 그들이 그것을 의도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강서영까지 그들의 일에 휘말리면서 그들을 처리할 생각으로 이번 여행에 나서게 된 것이었다.

이런 사실을 다 알고 있는 유리엘이 다시금 이런 말을 꺼내는 이유는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다크 스타가 투항함으로써 이제 그런 혼란은 없어질 것이고, 굳이 해치우지 않더라도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그들이 인류의 전력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강민의 생각은 유리엘과 조금 달랐다.

“글쎄, 아무런 타격 없이 자신의 세력을 갖고 유니온으로 들어온다면 향후 분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을까? 내리는 소나기는 피한다고, 지금은 숙이고 들어오지만 기존의 세력이 있으니 얼마든지 다크 스타 같은 조직을 또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야.”

“하긴 그것도 그렇네요. 만약 한창 이계와의 전투 중에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 그런 조직을 만든다면 어쩌면 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겠어요.”

“그렇지. 어차피 그런 성향을 가진 놈들이니 그럴 가능성이 더 높을 수도 있겠지. 어쩌면 처음부터 그런 조직을 만들지 못하게 했었으면 오히려 분란이 더 적을 수도 있었겠어.”

“그것은 모를 일이죠. 그렇게 되면 위원회의 독주체제가 될 것인데, 지금처럼 이능력자들이 양산되는 시대에 그런 체제를 반대하는 세력이 또 나오지 않았겠어요? 다크 스타 같은 조직이 그런 불만을 흡수하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지요.”

“음…… 힘을 가진 집단이 올바르게 그 힘을 쓰는 일은 드무니,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네.”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생각에 잠긴 강민을 바라보던 유리엘은 가볍게 말을 건넸다.

“이왕 마음먹은 것 지금 바로 처리해 버릴까요?”

탁천군을 처리하자는 이야기였다. 마치 식사를 하러 가자는 듯 편한 말투였다. 그들에게 탁천군을 처리하는 것은 그 정도 수고일 뿐이었다.

“그럴까? 그래, 생각난 김에 처리해 버리지.”

“그래요. 그럼 그 자리에 있나 볼까요.”

유리엘은 탁천군의 위치를 다시금 확인해 보았는데, 전에 있던 곳에서 이동했는지 그 자리에서 그의 모습은 확인되지 않았다.

“아. 이동했나 보네요. 잠시만요.”

잠시만이라는 말과 함께 유리엘은 말을 멈추고 사전에 파악했던 마나 패턴을 통해 탁천군의 행적을 찾았다.

“어디 보자…… 아. 여기에 있네요. 여기가…… 중국 사천성의 성도 인근이네요.”

“성도? 얼마 전까지 해남에 있더니, 그 사이 거기까지 올라갔군.”

“그러게요. 그럼 가요.”

“강훈이한테는 잠깐 자리 비운다고 말해줘.”

“그럴게요.”

말을 마치자마자 유리엘은 손가락을 튕겼고, 둘의 모습은 배 안에서 사라졌다.

* * *

사천성 성도에서 조금 떨어진 산자락 아래에는 큰 규모의 저택이 한 채 있었다. 마치 부잣집의 별장과도 같아 보이는 저택은 그 큰 크기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풍광과 썩 잘 어울려 보였다.

평소에는 별다른 손님이 없어 고즈넉한 분위기를 내는 저택에는 오늘따라 평소에 보이지 않았던 사람이 한 명 와 있었다. 바로 탁천군이었다.

탁천군은 저택 별관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는데 손님으로 왔다는 것을 보여주기나 하는 듯, 깔끔하게 차려입은 중국 전통 복식이 인상적으로 보였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약간 긴장한 탁천군이 잔에 든 차를 다 마시고 나니 옆에 서 있던 미모의 여성이 다시 잔을 채웠다. 그녀의 행동이나 복장으로 보아 시중을 들기 위해서 있는 것 같았다.

잔에 차오르는 차에 시선을 두던 탁천군은 흘낏 시계를 한 번 보더니 여성에게 말을 건넸다.

“맹주님이 오실 시간은 아직 멀었는가? 정오에 뵙기로 했는데 벌써 한 시가 넘었어.”

하지만 그 여성은 말단이거나 아니면 임무가 단지 시중만을 드는 것이었는지, 갑작스러운 탁천군의 질문에 당황하며 답을 하였다.

“아. 그, 그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단지 손님을 모시라는 말씀만 전달받아서…….”

“흠. 하긴 자네에게 물어볼 건 아니군. 여튼 자네 윗사람이 있으면 맹주님이 언제쯤 오시는지 확인 좀 부탁하네.”

“네, 알겠습니다.”

여성이 탁천군의 요청을 받고 밖으로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뒤에서 또 다른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유리엘이었다.

“한가롭네, 별장에서 티타임이라니.”

기척도 없이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탁천군은 놀라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누구냐!”

“우리가 누군지 말해도 모를 것 같으니 넘어가고, 네 이야기나 해보자. 그래, 투항했다며?”

투항했냐는 물음에 탁천군의 머릿속은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지금 내가 투항한 것을 아는 사람은 위원회와 유니온 정도인데…… 위원회라면 오늘 맹주님하고 같이 왔을 것이니 아닐 것이고, 그럼 유니온? 유니온에는 이 정도 인물은 없을 것인데, 누구지…….’

탁천군의 그런 모습을 보며 유리엘이 웃으며 말했다.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네. 누군지 궁금해서 그런 거지? 이름을 말해서는 모를 것이고, 제우스를 처리한 사람이라면 우리가 누구인지 알려나?”

제우스 이야기를 들으니 탁천군은 머리가 번뜩였다.

“제우스! 그, 그럼…….”

“역시 알고 있지? 그럼 우리가 왜 여기까지 왔는지도 알겠지?”

제우스를 처리한 사람이 여기까지 온 것이라면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건 자신이 여전히 타깃이 되어 있다는 말이었다. 그 생각에 탁천군은 더듬거리며 서둘러 말을 이었다.

“아…… 아니, 나, 나는 이미 투항을 했소! 위원회에서 아무런 이야기도 듣지 못한 것이오?”

그 말에는 유리엘이 아닌 강민이 답을 하였다.

“들었지. 하지만, 우리는 위원회 소속이 아닌데 어쩌지?”

“위원회가 아니라면 유니온? 아니, 유니온은 위원회의 산하 기관인데…….”

“둘 다 틀렸어. 우리는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 몸이 아니야. 그러니 네가 위원회에 투항하든 말든 우리의 일과는 무관한 것이지. 투항이라는 아이디어는 좋았는데, 그 대상이 틀렸군.”

강민의 말을 들은 탁천군은 이제야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그럼 날 어, 어떻게 할 생각이오?”

“글쎄, 지은 죄가 많으니 죗값을 치러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죗값이라는 이야기에 탁천군은 더 이상 대화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 스스로가 자신이 저지른 악행을 잘 알고 있었기에 자신의 죗값이라면 죽음밖에 없을 것이었다.

빠르게 판단한 탁천군은 이 자리를 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제우스를 해치운 빛의 검의 주인이라면 자신 역시 감히 상대할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정면 대결보다는 회피를 택한 것이었다.

지금도 도저히 실력을 가늠할 수 없는 강자로 보였기에, 그가 이 자리를 빠져나가려면 보통의 방법으로는 힘들 것이었다.

‘일단 그 방법을 쓰자.’

마음의 결정을 내린 탁천군은 서둘러 품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고, 곧 주머니에서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조그만 나뭇조각을 꺼내었다. 그리고 탁천군은 그렇게 꺼낸 나뭇조각을 바닥으로 던지며 짧게 진언을 외웠다.

“옴!”

바닥에 던져진 나뭇조각은 탁천군의 진언이 읊어짐과 동시에 엄청난 검은 연기를 뿜어내며 방 안을 연기로 가득 채우려고 하였다.

이 연기는 단지 시야만을 흐리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연기가 짙어지며 앞에 서 있는 탁천군의 존재감마저도 옅어지는 것이, 시야 차단과 더불어 기감 차단의 효능까지 있는 연막으로 보였다.

탁천군은 기감의 차단을 통해서 이 자리를 벗어나 이동 술법을 사용하려는 심산이었다. 바로 이동 술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는 시전까지 다소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탁천군의 시도는 단지 시도로 그쳤다. 뿜어져 나오는 연기가 급속히 강민의 손아귀로 모여들어 갔기 때문이었다.

“어, 어떻게…….”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나뭇조각의 연기는 십여 초가 지나자 기세가 줄어들며 서서히 그쳐갔다.

강민의 손으로 빨려 들어간 연기는 그의 손아귀에서 주먹만 한 공의 크기로 압축되어 있었는데, 공 안의 연기는 엄청난 속도로 회전을 하고 있어 마치 줄무늬가 새겨진 것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회전하는 공은 회전과 동시에 압축이 되는지 점점 줄어들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손톱만 한 크기로 변해 버렸다.

완전히 줄어든 연기는 마치 반짝이는 검은색 보석과도 같아 보였는데, 그 연기의 결정을 품속으로 집어넣으며 강민이 말했다.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이게 다인가? 그럼 이제 그만 끝내지. 우리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어서 말이야.”

말을 마친 강민은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동작은 가벼웠지만, 그 손길이 품고 있는 힘은 가볍지 않았다.

강민의 일거수일투족에 초집중하고 있던 탁천군은 그의 움직임이 시작되자마자 황급히 몸을 피했다.

툭.

하지만 최선을 다해 왼쪽으로 몸을 피했음에도 불구하고 탁천군의 오른쪽 팔은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호오. 그래도 마스터라고 그냥 당하진 않네요.”

유리엘이 탁천군의 움직임에 작은 감탄을 하며 입을 열었다. 강민은 말 그대로 가볍게 손을 흔든 것이었지만, 조금 전의 공격은 웬만한 마스터들도 쉽게 피할 수 있는 공격은 아니었다.

물론 탁천군도 팔 하나를 그 대가로 헌납하고 간신히 피할 수 있었지만, 그 정도 피한 것만으로도 칭찬할 만한 일이었다. 만일 그 역시 집중한 상태가 아니라면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는 채 목숨을 잃었을 가능성이 컸다.

탁천군은 남아 있는 왼팔로 서둘러 비어 있는 오른쪽 어깨를 지혈하더니 입을 굳게 다물며 뭔가 결심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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