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
현세귀환록
130. 투항(2)
“독고 맹주라…… 그래 오랜만이긴 하군. 이 전화로 통화한 지도 벌써 3년은 넘은 것 같은데 말이야.”
-5년이 다 되어가지요.
“허…… 그리되었나? 어쨌든 이 전화로 통화를 시도한 것을 보니 단순히 안부 전화는 아닌 것 같은데…….”
-우리가 안부 전화를 할 사이는 아니지 않습니까. 독고 맹주님.
위원회의 위원과 다크 스타의 수장이 안부 전화를 할 사이가 아닌 것은 명확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둘 사이에 뭔가가 있었는지 탁천군의 말에 독고 맹주의 입에서 왠지 모를 한숨 소리가 나오더니 잠시의 침묵이 흘렀다. 그러나 이내 독고 맹주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그의 말에 동의하며 물었다.
“휴……. 그렇지. 그럼 무슨 일인가?”
-한 번 만나 뵙고 싶습니다.
“만나고 싶다라? 무슨 의도인지 물어봐도 되겠나? 이제는 우리가 그냥 한 번 만날 사이가 아닌 것은 자네가 더 잘 알 테니 말일세.”
독고 맹주의 목소리에 잠시 뜸을 들이던 탁천군은 이내 말을 이었다.
-……다크 스타를 포기하려 합니다.
“뭣이! 그게 사실인가?”
독고 맹주는 탁천군의 말에 놀랐는지 고함과도 같은 큰 소리를 내며 사실 여부를 확인했다.
-네, 사실입니다. 맹주님도 아시다시피 엘리아와 제우스가 죽고, 그들의 조직 역시 다 궤멸되었지 않습니까? 저 혼자서 버티는 것도 무의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탁천군의 말에 뭔가를 잠시 생각하던 독고패는 금방 생각을 마쳤는지 말을 이었다.
“흐음…… 잘된 일이군. 정말 잘된 일이야. 그럼 우리 무림맹으로 들어올 것인가?”
-일단은 제 조직을 갖고 유니온의 소속으로 있지요. 아, 물론 불법적인 조직은 다 정리할 생각입니다. 유니온에 들어가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겠지요.
“그래, 그렇지. 알겠네. 내가 위원장에게 임시 위원회 소집을 건의하지. 위원회에서 통과된다면 자네의 복권 역시 이루어질 것이야. 불법적인 조직들을 다 포기한다면 내 생각엔 큰 무리가 없을 듯하네.”
-그렇다면 저야 다행이지요. 좋은 소식 기다리겠습니다. 맹주님.
* * *
“그래서 독고 맹주님은 그자를 포용하자는 말씀인가요?”
“그렇소, 의장. 안 그래도 최근 웜홀이 폭증하고 있어서 인력을 다른 곳에 사용하기도 힘든데, 굳이 항복하겠다는 자를 내칠 필요는 없지 않겠소?”
무림맹주 독고패의 의견에 동의하는지 위원회의 몇몇 위원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물론 반대의 의견도 있었다. 은빛 갑옷의 60대 중년 기사였다.
“하지만, 애초에 본성이 악한 사람을 단지 항복한다는 그의 말만 믿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다시는 그런 조직을 만들지 못하도록 하는 금제(禁制)가 필요할 것입니다.”
금제라는 말에 또 다른 위원 몇몇은 이 의견에 동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금제를 한다는 말에 인상을 찌푸리던 독고패는 기사의 말이 끝나자마자 반박을 하였다.
“베드로 단장. 어느 정도 수준의 금제를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금제를 한다고 하면 항복이 아니라 결사항전을 할 수 있지 않겠소? 그렇게 된다면 피해가 만만치 않을 것이오.”
“그것은…….”
“내 말 좀 더 들어보시오. 게다가 그들이 이판사판의 마음으로 일반인에게까지 피해를 입히기 시작한다면 지금 우리 위원회에서 추진하는 이능력자들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는 일에도 큰 차질이 있을 것이라는 말이오.”
“음…….”
첫 번째 근거에는 반박하려던 베드로도 두 번째 근거에는 어느 정도 수긍을 하는지 바로 반박을 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반대를 하는 사람은 베드로만이 아니었다. 파라오 가면을 쓴 위원 역시 반대 의견을 말한 것이었다.
“독고 맹주님의 의견도 충분히 고려되어야 하는 점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다만, 이능 세계에 큰 해악을 끼친 자를 단지 항복한다고 그냥 받아주는 것은 차후에 나쁜 전례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는 의견이 나오자 반색하며 덧붙여 말했다.
“오시리스 제사장께서 중요한 말을 하셨소이다. 적어도 잘못에 대한 반성과 사죄가 이루어진 다음에야 유니온으로 편입시키는 것이 순서에 맞다는 것이지요.”
독고패는 이런 의견들이 답답하다는 어투로 다시금 말을 이었다.
“위원들의 말이야 맞는 말이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완전히 그들을 제압했을 때의 이야기이고,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 않소? 물론 끝까지 간다면 당연히 우리가 그들을 제압할 것이지만, 불필요한 피를 흘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오. 그들이 동귀어진의 방법으로 나오기 전에 평화적으로 마무리합시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공방이 이어지는 것 같자, 의장이 좌중을 정리하며 말했다.
“몇몇 분들의 의견이 확고한 것 같습니다. 일단 표결에 부쳐 보지요. 다크 스타의 투항을 받아들이지 말자는 분은 거수해 주시오.”
투항을 받아들이지 말자는 쪽 거수는 베드로 단장과 오시리스 제사장 둘뿐이었다. 두 명을 확인한 의장은 다시 한번 질문하였다.
“이번에는 투항을 받아들이자는 분들께서 거수해 주시지요.”
의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독고패는 번쩍 손을 들었고, 루시페르의 로드 역시 조용히 손을 들었다. 이 외에도 리그베다의 호트리, 일루미나티의 회주까지 총 네 명이 거수하였다.
총 8인이었기에 과반수가 되기에는 한 명이 모자랐다. 지금까지 거수하지 않은 자는 의장과 흰색 도포를 입은 70대 노인뿐이었다. 노인을 바라보며 의장은 한 번 더 물었다.
“백 가주께서는 이번에도 기권이시오?”
백 가주라 불린 노인은 별다른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시했고 그것을 본 의장이 뭔가를 말하려는 순간, 독고패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의장의 의견은 어떻소? 의장도 기권인 것이오?”
아슬아슬하게 과반이 되지 못하자 아쉬운 표정으로 독고패가 말했고, 의장은 성급한 독고패의 말에 웃으며 대답했다.
“맹주의 그 급한 성정은 나이가 들어도 여전하구려. 안 그래도 이야기하려고 했소. 나 역시 투항을 받아들이자는 쪽이오. 이렇게 되면 이번 안건은 과반수로 통과이지만, 베드로 단장의 의견은 물어봐야겠군. 단장, 어떻소?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오?”
의장이 베드로에게 거부권에 대해 언급하자 그는 잠시 생각을 한 후 대답했다.
“거부권은…… 행사하지 않겠습니다. 여러 위원의 생각이 그렇다면 다소 불만은 있지만 따르도록 하지요.”
베드로의 말이 끝나자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던 독고패는 만족한 듯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감사의 눈빛을 보냈다.
위원장 역시 큰 문제 없이 안건이 마무리되자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허허. 좋소. 이렇게 되면 다크 스타의 투항은 받아들이는 것으로 하지요. 그럼 유니온을 통해서 다크 스타의 투항을 공식화하겠습니다. 그럼 다른 의견 없으시면…… 음? 아담 회주께서 할 말이 있으신가 보군요.”
의장이 회의를 마무리하려 할 때 검은 로브를 둘러쓴 일루미나티의 아담이 손을 들었던 것이었다.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려는 것은 아닙니다만, 지금 엘리아와 제우스를 해치운 것도 퍼니셔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마지막 남은 탁천군이 우리에게 투항했다고 손을 떼라고 한다면 퍼니셔가 말을 듣겠습니까? 다들 아시겠지만 퍼니셔가 우리의 지시를 받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우리 위원회와 퍼니셔는 직접 연락을 하는 사이조차 아닌데 말입니다.”
타당한 의견이었다. 이능 세계의 절대 권력을 유지하던 위원회인지라 지금까지는 그들이 지시하면 당연히 따라왔지만, 퍼니셔는 위원회의 권력 밖에 있는 존재였다. 그들은 이 사실을 잠시 망각한 것이었다.
아담의 지적으로 그것은 인지한 의장은 잠시 생각하였지만, 그 말이 맞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흠…… 연락이야 유니온을 통해서 하면 되겠지만, 회주의 말처럼 그가 우리의 말을 들을지는 의문스럽군요.”
반면 독고패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졌는데, 마지막에 이렇게 걸림돌이 생기자 불쾌한 얼굴로 퉁명스럽게 입을 열었다.
“과거 헤이안을 처리했고, 이번에도 엘리아나 제우스를 처리한 것을 보면 그 개인의 무력이 출중하다는 것은 충분히 알겠소. 하지만 그 정도는 우리 상임위원들이면 혼자 나선다 해도 다 가능한 일이지 않소? 그런 일을 했다고 우리 위원회가 일개 개인에게 이렇게 끌려다녀야 하는 것이오?”
“맹주, 그런 무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오. 단적으로 지금 웜홀 경보시스템만 하더라도 퍼니셔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 않소?”
의장이 웜홀 탐색기 이야기를 하니, 독고패로서도 할 말이 없는지 끄응 하는 신음을 내며 입을 다물었다. 독고패가 입을 다물자, 의장이 말을 더 덧붙였다.
“지금은 퍼니셔에게 지시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퍼니셔의 사정을 봐주어야 한다는 말이오. 그런 점에서는 아담 회주의 지적이 정확한 것이지요.”
“그럼 의장의 말은 이대로 우리 위원회가 퍼니셔에게 끌려다녀야 한다는 말이오?”
“다른 것은 몰라도 웜홀 탐색기를 우리가 자체적으로 개발할 때까지는 어쩔 수 없지 않겠소?
둘의 말을 듣고 있던 아담이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의장님 말씀처럼 웜홀 탐색기를 퍼니셔가 계속 가지고 있다면 위원회가 그에게 아쉬운 소리를 할 수밖에 없지요. 최소한 대등한 입장은 되어야 그가 갑작스럽게 탐색기에 관한 정보를 거두는 식의 행동은 하지 못하지 않겠습니까?”
“대등한 입장이라……. 나도 그것을 바라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그의 정체조차 제대로 밝히지 못하고 있지 않소.”
의장의 아쉽다는 듯한 말투에 아담은 한 템포 쉰 후 대답했다.
“……정체는 확인하였습니다.
“뭐요? 어떻게?”
“나름 보안에 힘쓰고 있는 것 같지만, 안에서 새는 정보까지는 어쩔 수 없겠죠. 벤자민의 측근을 통해서 확인하였습니다.”
“호오. 그게 누구던가요?”
“한국에 있는 KM그룹의 회장 강민이었습니다.”
아담의 말을 들은 의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말했다.
“KM그룹? 강민? 아, 과거 연금의 일족이라 추정되는 인물이 아니었던가요? 음? 그 사람은 퍼니셔와 마나 파동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였는데…….”
“저도 그것 때문에 수차례나 확인했는데, 결과적으로 강민에게는 마나 파동 변조 기술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실제로 벤자민이 그런 말을 했다는 증언도 들었구요.”
“허어, 마나 파동 변조까지…….”
“어쨌든 퍼니셔의 정체는 확인되었으니 그를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을 갖추어야겠지요.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겠지만, 지금이라도 그가 마음을 바꾸어 웜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우리 이능 세계에는 큰일이 나지 않겠습니까?”
아담의 말에 동의하는지 독고패 역시 원래도 컸던 목청을 더 크게 높이며 거들었다.
“아담 회주의 말이 맞소. 지금이야 우리에게 호의를 보이고 있지만, 만일 이해관계가 충돌되어 그 정보를 제공하지 않겠다고 해버리면 간신히 구축해 온 시스템 자체가 붕괴해 버릴 것이오.”
절대적인 권력을 갖고 이능 세계와 현실 세계를 주무르던 위원회인지라, 그들의 통제를 벗어나서 그들의 시스템에 위협을 가할 수도 있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지금까지는 그런 퍼니셔의 정체를 알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의 정체를 확인한 만큼 최소한 웜홀 탐색기 정도는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이었다.
이런 생각 자체가 가능한 것은 위원회가 아직은 자신들의 무력에 절대적인 자신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퍼니셔가 웜홀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고, 독특한 방식의 마법 체계를 운용하는 것은 대단하나, 기술력과 무력은 비례하는 것이 아니었다.
다크 스타의 수뇌부를 처리한 것은 퍼니셔의 무력을 어느 정도 대변해주기는 하지만 독고패가 말한 대로 상임위원 정도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 할 수 있었기에, 퍼니셔의 무력을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자신들이 퍼니셔를 누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건 직접 퍼니셔를 대면한 자가 없었기에 가능한 생각일 것이었다. 너무 오랫동안 이능 세계의 절대자로서 군림해오다 보니 굳어진 아집이라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