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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세귀환록-126화 (126/203)

# 126

현세귀환록

126. 추격(2)

엘리아가 기가 찬다는 얼굴로 제우스에게 쏘아붙이려 할 때였다.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직접 보고 판단해 봐. 어때? 괜찮은 것 같아?”

기척도 없이 갑자기 나타난 사람은 강민과 유리엘이었다.

엘리아와 제우스는 놀라서 목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았는데, 그사이에 제우스는 유리엘의 얼굴을 본 건지 헤벌쭉한 얼굴로 말했다.

“와우. 대단한데? 이런 미녀라니. 엘리아, 왜 말 안 했어.”

“제우스!”

제우스의 반응에 기가 찬 엘리아는 제우스의 이름만 한 번 외치고는 말을 잇지 못했는데, 유리엘이 재미있다는 듯 대꾸했다.

“내가 좀 대단하지? 호호호.”

“그래, 대단하네. 어때? 옆에 있는 비실비실해 보이는 놈보다 내가 훨씬 나을 듯한데 말이야. 이건 보통 무기가 아니거든.”

제우스는 허리를 쭉 내밀면서 말했는데, 가운만 걸치고 있던 그의 중요 부위가 도드라져 보였다.

민망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런 것으로 민망해하기에는 유리엘이 살아온 날이 너무 길었다.

“훗, 그 정도로 자신 하는 거야? 약하잖아.”

“뭐? 약해? 그럼 옆에 동양놈보다 내가 못하다는 거야?”

“하하하하. 너 정말 재미있구나. 민, 어때요? 한 번 보여줘요. 호호호.”

오랜만에 유리엘은 큰 웃음을 터뜨리며 강민에게 짓궂은 표정으로 말했다.

“참나, 유리. 보여주긴 뭘 보여줘.”

“진짜 네놈이 나보다 더 크다는 거야?”

자신의 성적 능력을 자신하고 있는 제우스였기 때문에, 자신보다 체격도 작은 강민이 자신보다 중요 부위가 더 크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계속 이어지는 제우스의 말에 강민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거 참, 별 이상한 놈을 다 보겠군. 네 목숨보다 그런 것을 묻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건가? 김빠지는군.”

확실히 강민과 유리엘이 처음 등장할 때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는데, 제우스와의 대화가 진행되며 그런 긴장감이 사라져 버렸다.

“뭐 어때요? 오랜만에 저런 캐릭터를 만나서 한 번 웃어봤으면 됐죠. 호호호.”

“뭐 그건 그렇지.”

오랜만에 유리엘의 큰 웃음을 들은 것만으로도 이렇게 방문한 보람은 있었다. 하지만 웃음은 웃음이고, 그것 때문에 살려둘 생각은 없었다.

저기 얼빠진 얼굴로 서 있는 엘리아야 마나 성향을 보아서 완전한 악인처럼 보이지는 않았으나, 여기 제우스는 골수까지 악인이었다.

아직도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는 세 구의 시체만 보아도 별다른 이유 없이도 손쉽게 사람을 죽이는 그런 악인임을 알 수 있었다.

“어이, 비싸게 굴지 말고 나랑 한 번 해보자고. 한 번 하고 나면 천국이 지상에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거야. 흐흐흐.”

아직 강민이나 유리엘이나 기세를 개방하고 있지 않고 있었기에 제우스는 둘의 무서움을 모르고 있었다.

“처음엔 재미있었는데, 이젠 식상하군.”

“그러게요. 간만에 면전에서 이렇게 말하는 캐릭터를 봐서 신선했는데, 이젠 뭐 다른 차원의 귀족이나 왕족들과 뭐 다름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들보다 노골적이고 직접적으로 말해서 신선하다는 생각이 들었나 봐요.”

“그러게. 이제 치워도 되겠지?”

“네. 말은 안 해도 기분 나빴나 봐요, 민? 호호.”

이런 상황이 오랜만이라 그런지 유리엘은 여전히 재미있어하면서 강민에게 이야기했다.

“내 여자에게 그런 말을 하는데 어찌 기분이 좋겠어? 다만 유리가 재미있어하니 잠깐 두고 본 거야. 언제든 누구든 내 여자에게 그렇게 말하면 기분이 나쁠 거야.”

내 여자라는 말에 유리엘은 가볍게 강민의 허리에 손을 두르고 머리를 어깨에 기댔다. 그리고 나지막이 말했다.

“그렇죠. 언제나 민은 그런 남자였죠.”

유리엘의 말에 강민은 아무 대답 없이 그녀의 어깨에 손을 둘러 감싸 안았다.

유리엘의 따뜻한 체온이 강민의 손안에서 느껴졌다. 지금 나누는 것은 체온만이 아니었다. 서로의 영혼도 감정도 같이 나누며 잠시간의 침묵을 지켰다.

몇만 년이 지나도, 아니, 몇십만, 몇백만 년이 지나도 강민의 여자는 유리엘뿐이었다. 그리고 유리엘 역시 그럴 것이었다. 영원을 같이 하는 영혼의 동반자가 바로 둘이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감정이 담뿍 담긴 충만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 그것을 깨고 들어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하, 이거 무슨 개수작이야!”

제우스였다. 그는 갑작스러운 둘의 애정행각에 열이 받은 듯, 온몸에서 전기 스파크를 튀기며 말했다.

강민은 그의 말 때문에 유리엘과의 교감이 깨지자, 아쉽다는 어투로 그녀에게 말했다.

“후, 저놈은 이제 치울게.”

“그래요. 지워 버리죠.”

강민은 마치 앞에 있는 쓰레기를 치우는 것처럼 가볍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제우스가 어처구니없다는 투로 맞받아치며 밧줄 같은 번개를 쏘아냈다.

“치우긴 뭘 치워! 내가 널 구워 버릴 테다.”

파스스스스-!

눈 깜짝할 사이에 번개 줄기가 강민을 덮쳤다. 강민에게 날아가는 번개 줄기를 보며 제우스는 순간적으로 아차 하는 생각을 하였다.

잘못하다가는 유리엘 역시 그 번개 줄기에 휩쓸려 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생각에 서둘러 번개 줄기를 다른 곳으로 틀려고 했는데, 이미 번개 줄기는 강민의 앞에서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어, 어떻게…….”

뜻밖의 일이었다. 번개를 다루게 된 지 벌써 수십 년이 되었지만, 그의 번개 줄기가 이렇게 사라져 버린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랜드 마스터급의 이능력자도 막거나 피한 적은 있어도 이렇게 사라지게 하지는 못했었다.

“이익!”

뜻밖의 상황에 당황한 제우스는 좀 더 출력을 올려서 번개 줄기를 쏘아냈다. 아까 전의 줄기가 빨랫줄과 같은 굵기였다면, 이번에는 팔뚝만 한 굵기의 두꺼운 번개 줄기였다.

제우스는 더 이상 유리엘이 휩쓸리는 것은 생각지도 않고 한껏 출력을 올렸다.

파츠츠츠츠-!

하지만 여전히 번개 줄기는 강민의 앞에서 어디로 사라졌는지 없어져 버렸다. 어리둥절해 있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던 유리엘이 말했다.

“번개의 정령 같은 녀석이네요.”

“그래, 이 정도 전격량이라면 최상급 정령과도 맞먹을 만하겠는데?”

“그러게 말이에요. 그리고 전격량뿐만 아니라 성격도 폭급한 것이 번개의 정령을 닮았네요. 일렉스 기억나죠?”

“아, 기억나지. 길들여서 디아나한테 줬던 녀석 맞지?”

“네, 그 녀석요. 그래도 일렉스는 악한 성향까진 아니었는데, 지금 이놈은 안 되겠네요.”

강민의 앞에서 계속 번개 줄기가 사라지자 제우스 역시 심각함을 느꼈는지, 체내의 마나를 한껏 끌어올려 전력을 다한 공격을 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 그러면서 옆에 서 있는 엘리아를 힐끗 보았다.

엘리아는 강민과 유리엘이 나타난 이후로 마나 회복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어느 정도 마나의 회복이 되었는지 아까 전보다 한결 나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엘리아, 공격이다! 으하합!!”

지금까지 제우스는 오른 손바닥만 내밀어 번개 줄기를 쏘아냈는데, 이번에는 양손을 모아서 전면으로 뻗치며 기합성을 내질렀다.

제우스의 기합과 함께 그의 양 손바닥의 전면에는 사람의 몸통만 한 번개 줄기, 아니, 이젠 번개 기둥이라고 할 만큼 굵직한 번개가 쏘아져 나갔다.

엘리아 역시 제우스의 신호를 듣고서는 화염 광선을 시전했다. 최강훈에게 사용했던 인페르노 블라스터에 비해서는 다소 약한 위력이었지만 지금 할 수 있는 한도에서는 최선의 공격을 가한 것이었다.

파파파팍!

화아아아악!

번개와 화염의 두 공격은 엄청난 반발 파동을 내며 강민과 유리엘에게 나아갔다. 그 반발 파동에 방 안에 있던 집기류가 휘말려 부서져 날아갔다. 마치 허리케인 속에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강민에게는 소용없는 노력이었다. 엄청난 힘을 머금고 있는 번개와 화염은 마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강민의 지척에 다가가자 아무런 힘을 발하지 못하고 사그라졌다.

둘은 한참 동안 힘을 썼지만 강민에게는 어떠한 타격도 입히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얼마간을 더 버티다 번개 기둥과 화염 광선은 끊어지고 말았다.

“헉, 허억……. 어, 어떻게 이런 일이…… 대체 누구길래…….”

제우스는 여전히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마법사인 엘리아는 어떤 원리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개략적으로는 파악할 수 있었다.

“서, 설마…… 마나 장악을 통해서 술식의 구조를 분해한 것인가……? 그,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는 불가능할 텐데…….”

엘리아가 말하는 것을 보면서 유리엘이 의외라는 얼굴로 그녀를 보며 말했다.

“호오. 그래도 8서클이라고 어떤 식인지 대강 알아차렸나 본데요?”

“그러게, 저기 힘만 센 멍청이하고는 다르군.”

지금 강민이 사용한 방법은 별거 아니었다. 디스펠을 이용한 마법 무효화도 아니었고, 차원문을 여는 방식을 통한 허차원으로 공격을 전이하는 방법도 아니었다.

단지, 마나의 장악력을 높였을 뿐이었다. 제우스가 상단전을 이용하여 번개를 마음대로 다루는 것처럼, 강민은 그 주변의 마나 자체를 마음대로 다루고 있었다.

사실 이것은 특별한 방법은 아니었다. 일정 경지 이상의 능력자가 되면 어느 정도는 자신 주위의 마나를 통제할 수 있었다.

보통 경지 이상의 무술가들이 수화불침(水火不侵)하는 경우가 이런 마나 통제가 발현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다. 술식으로 구현된 마법이나, 마나가 강력하게 결집된 검기 등은 설령 마나를 통제할 수 있는 간격 안에 들어왔다고 해도, 그 마나를 제어하여 공격을 흩어버릴 수는 없었다.

공격자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마나를 간접적인 마나 통제 정도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강민을 이것을 해냈다. 강력한 의지로 마나를 사역하여 시전한 마법 공격과 이능 공격을 단순히 간접적인 마나 통제로 흩어버린 것이었다. 엘리아가 놀라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 그만 끝내자.”

“민, 엘리아한테는 물어볼 것도 있으니 놔둬 줘요.”

더 이상의 공격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느낀 제우스는 잠시 생각을 하다, 강민의 끝내자는 말에 뭔가 결심한 표정을 지었다.

“이것까지 쓰고 싶진 않았지만 어쩔 수 없겠지. 잘 있게나. 앞으로 보지 말았으면 좋겠어.”

말을 마친 제우스는 갑자기 전신이 한 줄기 번개로 변해서 창밖으로 사라졌다. 제우스가 가진 마지막 수단이었다.

번개화는 마치 순간 이동과 같은 능력이었다. 몸 전체를 번개로 변하게 하여 움직이기 때문에 순식간에 지구 어디라도 도달할 수 있었다.

과거 위원회의 그랜드 마스터가 나섰지만 그를 잡을 수 없었던 것도 이와 같은 능력 때문이었다.

물론 번개화는 자주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은 아니었다. 이능 사용에 대한 반동이 컸기 때문이었다. 이 번개화를 쓰고 나면 지속 시간에 따라서 몇 주에서 길게는 몇 달까지 이능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순식간에 지구의 어디라도 움직일 수 있는 번개화는 궁극의 탈출기나 마찬가지인 엄청난 능력이었다.

“허, 이거 참. 번개의 정령과 비슷하다고 했더니 하는 짓까지 비슷하네.”

“호호. 그래도 정령처럼 정령계로 피하지는 않았잖아요.”

“뭐 그렇게 치면 그것보단 낫긴 하네.”

“내가 잡을까요?”

“아니야, 내가 잡지.”

이미 어디로 간지 사라져서 보이지도 않는 제우스를 둘은 너무도 쉽게 잡는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말을 마친 강민의 손에는 어느새 한 자루의 바스타드 소드가 나타나 있었다. 은은한 빛을 내는 검신과 그곳에 새겨진 룬 문자가 평범한 검은 아닌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손잡이 하단의 폼멜의 끝에 달린 주먹만 한 크기의 푸른 보석 또한 엄청난 마력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것을 감상하기도 전에 바스타드 소드는 한순간 엄청난 빛을 내더니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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