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세귀환록-125화 (125/203)

# 125

현세귀환록

125. 추격(1)

뜻밖의 공간 이동에 유리엘은 절로 감탄사를 내며 말했다.

“호오. 이 방식은 공간 좌표를 직접 활용하는 방식이 아니라 허(虛)차원을 통해서 이동하는 방법이네요. 이곳에서 이런 방식을 볼 줄은 몰랐는데 말이에요.”

“잡으러 갈까?”

허차원까지는 탐색의 범위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강민은 걱정하지 않았다. 여마법사가 여기서 도망쳤다 하더라도 허차원에 계속 머물러 있을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허차원에서 오래 머물렀다가는 설령 그랜드 마스터급이라 해도 영혼마저 소실되어 버릴 것이었다. 허차원에 머물기 위해서는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나 홀로 오롯이 설 수 있는 능력은 되어야 최소한의 자격을 갖추었다 할 수 있었다.

조금 전 여마법사는 당연히 그 정도 능력을 가진 것으로는 보이지는 않았기에 당연히 잠시간의 통로 정도로만 허차원을 사용했을 것이었다.

물론 그녀의 능력으로 보아선 그것도 대단했지만, 조금 전의 파동으로 보아 그것은 수련을 통해 갈고닦은 능력은 아닌 것 같았다. 그녀의 혈통이나, 영혼에 새겨진 힘과 비슷한 종류의 것을 사용한 것 같았다.

그렇기에 더더욱 허차원에 머무를 자격이 없음을 알고 있는 강민은 스스럼없이 그녀를 잡으러 가자는 이야기를 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이미 그 여마법사가 나타난 곳을 파악했는지 유리엘이 강민의 말을 긍정하며 대답했다.

“그러죠. 어차피 가야 할 곳으로 이동했네요. 다른 보스가 있는 곳요. 그리 멀지 않네요.”

“인근의 다른 보스라면, 멕시코 시티군.”

그랜드캐니언에서 멕시코 시티라면 인근이라고 하기는 힘든 거리지만 둘에게는 지척인 거리였다.

“네, 일단 강훈이를 깨워서 여기를 정리하죠.”

말을 마친 유리엘을 손가락을 튕겼고, 그 소리에 반응이나 하는 듯 최강훈은 벌떡 일어났다.

“헉!”

외마디 신음성과 함께 일어난 최강훈은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어디에도 여마법사의 시체가 보이지 않자. 유리엘을 향해 물었다.

“누님, 그 마법사는 이미 처리하신 겁니까?”

최강훈의 물음에 유리엘은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도망쳤어. 그래서 민과 같이 잡으러 가려고.”

“네? 도망요?”

지금까지 만난 마법사들은 공간 이동으로 도망치려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유리엘의 좌표 동결에 의해서 그 뜻을 이루는 경우는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도망쳤다고 하니 최강훈이 놀라서 되묻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래, 보통 녀석들과는 다른 방법을 썼네. 일단 가서 잡아 오려고. 그리 나쁜 성향은 아닌 것 같이 보였는데 왜 다크 스타 같은 걸 만들었는지도 물어보고 말이야.”

유리엘의 말이 끝나자 강민이 이어 말했다.

“일단 네 부상은 치료했으니 넌 여기 팀원들을 데리고 숙소로 돌아가거라. 난 유리와 함께 일을 해결하고 갈 테니. 어머니와 서영이한테는 네가 말 좀 잘해주고.”

부상을 치료했다는 말에 최강훈은 그제야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는데, 화염 광선을 직격당했던 상체가 옷만 소실되었을 뿐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치료해 주셨군요. 감사합니다, 누님. 아, 어머님과 서영이 누나한텐 잘 말씀드릴게요. 형님.”

최강훈과의 대화도 끝나자 유리엘이 강민에게 물었다.

“민, 그럼 갈까요?”

“그래.”

바로 이동하려다가 저 멀리 보이는 아이언 골렘을 발견한 유리엘이 말했다.

“아, 저건 제가 가져야겠네요. 구식이지만 나름 참고할 만한 마나 패턴도 있으니 말이에요.”

유리엘의 말과 함께 주인을 잃고 멀뚱히 서 있는 아이언 골렘의 위에 아공간의 입구가 열리더니 엄청난 흡입력으로 아이언 골렘을 빨아 올렸다.

아이언 골렘은 버둥거리며 흡입력에 저항하려 하였으나 헛수고였다. 이내 아이언 골렘을 빨아들인 아공간의 입구는 나타났던 것과 마찬가지로 사라져 버렸다.

스페셜팀의 멤버들은 자신들로서는 손도 대지 못했던 아이언 골렘이 저렇게 사라지는 것에 몇몇은 놀라는 표정을, 몇몇은 당연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스페셜팀의 기색을 느꼈는지 유리엘은 그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 꺼내서 수련 상대로 쓰게 해줄 테니 너무 아쉬워하지 마. 그럼 나중에 보자고.”

딱!

유리엘이 손가락을 튕김과 동시에 둘의 모습을 사라졌다. 사라져 버린 둘의 자리를 잠시 바라보던 최강훈은 스페셜팀을 향해 외쳤다.

“다들 아공간 주머니에 준비해 뒀던 옷으로 갈아입어. 괜히 어머님과 서영 누나 놀라게 하지 말고.”

최강훈에 말에 역시나 넉살 좋은 리키가 말을 받았다.

“지금 모습은 이사님이 제일 심합니다만. 흐흐.”

리키의 말처럼 최강훈은 상체의 옷이 전부 날아가 버렸고 하체의 바지 역시 상당 부분 유실된 상태였다.

“흠흠. 그래, 나도 갈아입을 테니 서둘러. 그리고 다들 알겠지만 이번 전투는 명백한 전멸이다. 나를 포함해서 말이야.”

최강훈의 갑작스러운 총평에 다들 침울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뒤에 나온 마법사는 몰라도 골렘 정도는 처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효율적으로 싸우지 못하는 바람에 진혈 각성까지 하고도 반 이상의 골렘이 남은 상태에서 모두 아웃당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 역시 여마법사에게 당했기 때문에 스페셜팀의 멤버들을 심하게 질책하지 못하였다. 자신도 잘못했는데 다른 이를 지적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여튼 진혈 각성의 후유증으로 몇 달간은 제대로 힘쓰기도 힘들 테니, 내일 비행기를 잡아서 한국으로 돌아가. 말론도에게 이야기해놓을 테니까 지금보다 한층 더 강도 높은 훈련은 각오하고.”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누님이 가시면서 하신 말씀대로 누님 귀국하시는 대로 아까 전 아이언 골렘과 수련할 것이야. 그때도 지금처럼 맥없이 나가떨어진다면 더 이상의 배려는 없다. 훈련이 지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

최강훈의 단정적인 말에 스페셜팀 멤버들은 두려움에 떨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스페셜팀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최강훈은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나도 귀국하고 나면 한 단계 높은 훈련을 해야지. 특히 마법사를 상대로한 전투를 염두에 두고 수련해야겠어.’

* * *

가로세로 족히 30미터는 되어 보이는 커다란 방에는 40대 정도로 되어 보이는 건장한 몸을 가진 중년의 백인이 세 명의 여성과 알몸으로 뒹굴고 있었다.

이미 여러 차례의 정사를 치렀는지 두 명의 여성은 넓은 침대의 한쪽에 나가떨어져 있었고 마지막 여성과의 일을 마무리하는 중이었다.

그때 방의 한구석에서 공간이 흐려지는 듯한 현상이 발생하더니 한 명의 인영이 튀어나왔다.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정사를 치르던 중년인은 몸을 돌려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누구냐!”

“제우스!”

“허. 엘리아, 당신이었군. 그런데 어떻게 이곳까지 들어온 것이지? 공간 좌표를 왜곡하는 결계까지 쳐놨었는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위원회에서 엄청난 놈들을 동원하기 시작했어!”

다급한 엘리아의 말에도 느긋하게 알몸의 여성을 떼어낸 제우스는 가운을 걸치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이야기했다.

“엄청난 놈들? 기껏해야 마스터급 아니야? 엉덩이 무거운 그랜드 마스터급들이 나설 일은 없을 것 같은데, 그것보다 어떻게 결계를 뚫고 들어온 건지나 설명해 봐. 그 이야기가 설명되지 않는다면 다른 이야기로 넘어갈 생각은 없으니까.”

지금 제우스에겐 언제 싸울지 모르는 엄청난 놈들에 대한 이야기보다 어떻게 엘리아가 공간 좌표 왜곡 결계를 뚫고 이곳까지 왔는지가 더 중요했다.

현재는 같은 다크 스타의 수장이지만, 과거에 그와 엘리아는 서로 경쟁을 하던 사이었다. 만약 엘리아가 마음대로 공간 좌표 왜곡을 뚫고 다닐 수 있다면 준비가 안 된 자신을 급습하여 암살을 시도할 수도 있기 때문에 어떻게 결계를 뚫고 공간 이동을 한 것인지를 듣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급하게 피해서 이곳까지 오다 보니 그런 점까지는 생각하지 못한 엘리아는 내심 자신에 대해 책망하며 입을 열었다.

“휴…… 내가 연금의 일족인 것은 알지? 그리고 우리 일족이 공간에 대한 능력이 특출한 것도 알 거야.”

“그건 알고 있지.”

“그래, 그것까지 안다면 설명은 쉽겠군. 우리 일족의 능력을 일깨운 자는 공간 좌표를 사용하지 않고 허차원을 이용해서 공간을 이동할 수가 있어.”

“뭐? 그런…….”

제우스의 우려를 미리 파악했는지 엘리아는 서둘러 말을 이었다.

“아, 네가 무슨 걱정을 하는지 알고 있어. 그렇지만 걱정하지는 마. 이 방법은 긴급 탈출기 정도로밖에 사용하지 못하니 말이야.”

“무슨 의미지?”

“이 방법을 사용하면 체내의 전 마나가 다 소진되고 말아. 그러니까 추가적인 전투를 벌일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지.”

엘리아의 그 말에 제우스는 재빨리 엘리아의 상태를 스캔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말처럼 그녀의 체내에는 거의 마나가 없는 상태였다.

의도적으로 마나를 감출 수도 있겠지만, 비슷한 수준인 자신에게 완전히 마나를 감추기는 힘들 것이라는 생각에 그녀의 말을 믿을 수 있었다.

“뭐, 그렇다면야…….”

안도하는 제임스를 보며 엘리아는 말을 이었다.

“당연히 이 일은 비밀이야.”

“당연하지. 이런 정보를 밖으로 흘리고 다닐 만큼 내 입이 가볍진 않다고. 아, 그런데 여기 다른 입들이 있군. 그러면 안 되지.”

다른 입이라는 건 조금 전까지 정사를 나누던 세 명의 여성을 칭하는 것이었다. 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세 여성은 갑작스러운 제임스의 안 된다는 말에 나쁜 예감이 떠올랐다.

그리고 나쁜 예감은 어긋나지 않았다. 제임스가 세 줄기 번개 줄기를 쏘아내어 그녀들을 구워 버렸기 때문이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그녀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세 덩이의 숯으로 변하고 말았다.

“이러면 됐지?”

“잔인한 건 여전하군.”

“잔인? 한 번에 보내주니 자비로운 것 아닌가? 크큭.”

사실 엘리아의 말은 진실은 아니었다. 허차원을 이용한 공간 이동에는 분명 페널티가 있었지만 그런 식의 페널티는 아니었다.

‘현재 마나가 소진되는 것이 아니라 총 보유 가능 마나가 줄어드는 것이지만, 거기까지 말할 필요는 없겠지.’

무술가로 따지면 단전의 크기가 줄어드는 것이 이 방법의 진정한 페널티였다.

그리고 어찌 보면 총 보유 마나가 줄어드는 것이 현재 마나가 소진되는 것보다 더 큰 페널티라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 방법을 사용하기 어렵다는 것은 진실이었다.

그러나 필요한 상황이라면 제우스의 우려처럼 허차원 공간 이동을 통해서 암살을 꾀할 수는 있었다.

제우스가 엘리아를 경계하듯이, 엘리아도 제우스를 경계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모든 진실을 이야기해 주지 않은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녀의 거짓말이 통할 수 있는 것이, 조금 전 최강훈과의 대결에서 인페르노 블라스터를 과하게 운용하다 보니 마나가 거의 다 소진되어 버렸기 때문에 제우스는 그녀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 네 말은 이미 그놈들이랑 한 판 붙고 도망쳤다는 것인가?”

“그래…….”

도망쳤다는 말에 엘리아는 잠시 발끈한 기분이 들었지만 분명 도망친 것을 부인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긍정의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누군지 몰라도 대단한데? 8서클에 오른 마법사를 도망치게 만들다니 말이야.

“장담하건대, 너도 혼자서 상대하긴 힘들 거야.”

“과연 그럴까?”

“네 능력에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것은 좋지만 과신하지는 마. 나만 해도 정상적인 상태라면 네게 지지 않을 자신은 있으니 말이야.”

“그렇다고 이길 자신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아니, 지금 네 상태라면 내가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

제우스의 마지막 말과 동시에 그의 온몸에서 번쩍거리는 전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마치 그의 이름이 제우스인 이유를 보여주는 듯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그리고 다시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번개 줄기를 옮기기 시작했다.

“크윽……. 비록 지금 내가 마나를 다 소진했지만, 나도 비상시에 쓸 수 있는 수단 정도는 가지고 있으니 너무 자극하지 마. 그리고 지금 우리끼리 이럴 때가 아니야. 우리 둘이 힘을 합쳐도 그 년을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안 드니까 말이야.”

“그 년? 여자였어? 예뻐?”

예쁘냐고 묻는 제임스의 말에 엘리아는 일순간 할 말을 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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