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
현세귀환록
122. 전투(1)
밤의 도시인 라스베이거스는 낮에는 구경할 만한 곳들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보통 관광객들은 인근 아웃렛에 방문해 쇼핑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강민 일행은 이곳까지 와서 굳이 쇼핑을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다음 날이 밝자 헬기를 이용한 그랜드캐니언 관광으로 일정을 잡았다.
그랜드캐니언 관광은 이례적으로 같이 온 스페셜팀의 요원들도 같이 했다. 지금까지 여행에서 스페셜팀의 요원들은 숙소에서 머물러 있었는데 이번에는 같이 가는 것이었다.
이번 여행에 따라온 스페셜팀의 요원들은 총 8명이었다. 말론도와 스티븐을 제외한 모든 인원이 함께하는 것이었다.
말론도는 혹시 모를 긴급 상황에 대비하고 이번에 새로 받은 왕웅과 박세주의 교육을 위해서 남은 것이었고, 스티븐은 장태성 실장의 경호를 위해서 남았다. 즉, 필수적인 인원을 제외한 모든 인원이 함께하는 것이었다.
최강훈이 여행을 하기 전에 이번 일에 대해서 개략적인 설명을 해주었다. 악명 높은 다크 스타와 싸운다는 말에 스페셜팀의 멤버들은 여행 내내 긴장한 모습으로 있었다.
실전에서는 지금까지의 훈련과는 달리 자칫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위험이 있었다.
지금 그랜드캐니언으로 가는 헬기 안에 앉아 있는 요원들의 표정은 무겁게 굳어 있었다. 그랜드캐니언에는 다크 스타의 세 보스 중의 한 명이 자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였다.
그들이 이 여행에 따라온 목적인, 실전을 경험할 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우와, 진짜 대박이야, 대박! 엄마, 엄마! 저기 저거 봐요!”
“그래, 정말 멋지구나.”
강서영은 그랜드캐니언의 절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수차례 자신의 감동을 표현했고, 한미애도 멋진 광경이라는 것에 동의했다.
콜로라도 강의 침식작용으로 만들어진 이 그랜드캐니언은 그 엄청난 규모와 정교한 아름다움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게 해주는 절경 중의 절경이었다.
강민과 유리엘을 제외한 일행들은 이 그랜드캐니언의 엄청난 절경에 절로 감탄을 표하고 있었다.
심지어 긴장하고 있던 스페셜팀의 요원들도 이 광경을 보고는 조금 뒤에 있을 실전 생각을 잠시 잊고, 자연의 위대함을 감상하였다.
다만 강민과 유리엘은 이보다 더 엄청난 경관들을 많이 보아왔던지라 그리 큰 감흥은 없었다.
원래 헬기 투어는 헬기로 오면서 구경을 하고 잠시 내려서 휴식을 한 뒤 다시 헬기를 타고 돌아가는 단순한 일정이었지만, 강민은 헬기를 하루 종일 빌렸기 때문에 일행은 그랜드캐니언에 내려서 간단한 트래킹까지 했다.
트래킹을 하는 동안도 강서영의 딱 벌어진 입은 닫힐 줄을 몰랐다. 수억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연이 빚어낸 최고의 절경이다 보니, 그 켜켜이 쌓인 시간에 경외감이 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 수도 있었다.
두어 시간을 넘게 그랜드캐니언을 돌면서 구경을 하고 나자 아무래도 한미애가 체력적으로 조금 힘들어 보였다. 그래서 강민은 일행을 휴게실로 이끌었다.
“어머니, 서영아. 여기서 잠시 쉬고 있어. 우리는 잠시 할 일이 있어서 다녀올게. 한두 시간 정도면 될 거니까 혹시 일 있으면 연락하고. 시아는 여기 어머니와 서영이하고 같이 있어.”
“알겠어. 얼른 다녀와.”
강서영은 오늘따라 유난히 굳은 경호원들의 표정에서 이미 뭔가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강민의 말에 별다른 질문 없이 알겠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정시아는 같이 가고 싶었지만, 누군가는 이 둘을 지켜야 했기에 아쉬움을 감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중 한미애는 다소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강민에게 물었다.
“혹시 그 사냥인가 하는 걸 하는 거야? 위험하지는 않고?”
유니온에서 이능에 대한 정보를 일반에 공개했기 때문에, 한미애 역시 이제 이능 세계에 대한 약간의 지식은 있었다.
그래서 지금 강민이 마물을 사냥하는 것 정도로 짐작하며 물은 것이었다. 한미애도 마물 사냥이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일 그녀가 강민의 무력을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이런 질문을 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강민의 무력을 잘 몰랐다.
아니, 강민의 무력을 알았더라도 항상 자식 걱정을 하는 어머니의 심정으로서는 걱정했을 수도 있다.
자식이 아무리 대단한 능력을 지녔다고 하더라도 어머니의 눈에는 자식은 언제나 지켜줘야 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강민은 그런 그녀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서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뭐 일종의 사냥이지요. 위험한 것은 아니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런 강민의 표정에서 다소 걱정을 던 것인지 한미애 역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조심해서 다녀오렴.”
* * *
강민과 유리엘을 포함한 일행은 빠른 속도로 그랜드캐니언 깊숙이 내려갔다. 유리엘의 순간 이동 마법이면 빠르게 움직일 수 있을 테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가는 동안 몸을 움직이며 굳은 몸을 풀어주며 고조된 긴장감 역시 풀어주기 위해서였다. 유리엘이 이미 GPS로 장소를 알려주었기 때문에 일행의 움직임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행은 그랜드캐니언 사우스림의 협곡 아래에 도착했다. 유리엘이 GPS로 찍어준 곳이었다. 하지만 이곳에는 별다른 인기척은 없었다. 그랜드캐니언의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웅장한 협곡의 모습만이 있을 뿐이었다.
긴장하며 도착한 곳에 아무것도 없자 성질이 급한 리키가 작게 툴툴거리며 말했다.
“여기가 맞나? 내 눈에만 아무것도 안 보이는 건가?”
작게 말한 것이지만 모두가 능력자인 상황에서 그의 말을 듣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
다만, 스페셜팀에서 말론도를 제외하고는 제일 강자인 리키였기에 다른 팀원들이 그를 질책할 수는 없었다. 그나마 비슷한 실력의 앤디만이 리키에게 한마디를 하였다.
“조용히 하고 있어, 리키. 분위기 파악 좀 해.”
“내가 뭐? 네 눈에도 아무것도 보이지…… 윽…….”
다크 스타의 세 보스는 마스터급을 상회하는 무력이라 들었기에 최강훈조차 긴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리키가 주제도 모르고 떠드는 모습에 최강훈이 암암리에 기파를 쏘아 내어 주의를 시켰다.
이미 최강훈과의 대련에서 이런 기파 공격을 많이 받아보았기에 리키는 최강훈이 주의를 시켰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금세 입을 다물었다. 대련 때도 이런 주의를 무시했다가 혼쭐이 난 경험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움찔하는 리키의 반응에 다른 멤버들도 최강훈의 응징이 있었음을 깨닫고 내심 고소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리키의 행동으로 인하여 긴장감이 팽팽했던 분위기가 약간은 누그러졌다.
조금 전까지 긴장감에 온몸이 굳어 있던 스페셜팀의 멤버들은 이제는 적당한 긴장감을 갖고 그들의 실력을 모두 발휘할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이었다.
쿵!
어느 정도 분위기가 정리된 듯하자 강민이 가볍게 발을 굴렀다. 그리고, 발을 구른 지점을 중심으로 강대한 마나가 퍼져 나갔다.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 나가는 마나의 파장은 협곡의 전면에서 약간의 저항을 받는 듯하였으나, 얼마 버티지 못하고 부서지고 말았다.
파삭!
이능력자만 느낄 수 있는 결계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어? 결계가 있었네? 신기하네. 이질적인 마나 흐름도 없었는데 말이야.”
벌써 최강훈의 주의를 잊어버린 건지 리키는 다시금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멤버들도 어느 정도 동의를 하는지 몇몇은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아는 상식에서 결계는 이질적인 마나 흐름을 보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결계를 뚫지는 못하더라도 결계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아무런 흔적도 없는 수준 높은 결계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이런 수준 높은 결계를 발 구름 한 번에 파훼하는 것이 더 신기할 테지만 그들은 그것까지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결계가 깨지자 협곡의 전면에 커다란 동굴이 보였다. 파여 있는 형태로 볼 때 자연적으로 형성된 동굴은 아닌 것 같았다.
동굴이 드러나자 최강훈은 얼굴을 굳히고 스페셜팀에게 손짓을 하였다. 동굴로 진입하자는 신호였다.
일단 오늘 일의 주재자는 최강훈이었다. 결국은 강민이나 유리엘이 나서야 하겠지만, 강민이 스페셜팀의 실력을 보자고 했었기 때문에 최강훈이 스페셜팀을 리드하여 앞으로 나섰다.
우-웅-!
동굴 입구까지 10여 미터가 남은 상황에서 협곡 전체에 갑작스러운 마나 유동이 발생하였다. 그 마나 유동과 함께 협곡 여기저기에 있던 거대한 암석들이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스톤 골렘이었다.
“호오, 여기서 골렘은 처음 보네요. 그리고 마나 패턴의 전개 양상을 보니 요즘의 마나 흐름과는 상당히 다르네요.”
“그러게 말이야. 그렇지만 나름 체계가 잡혀 있는 방식인 것 같은데?”
“네, 마나의 안정성을 보니 그래도 몇 세대에 걸쳐서 연구된 것 같아요.”
강민과 유리엘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 20여 기의 스톤 골렘이 몸을 일으켰다. 아마 결계가 파훼되면 작동되도록 연동이 되어 있는 것 같았다.
골렘의 크기는 모두가 동일하지는 않았다. 작은 것은 3미터 큰 것은 10미터에 육박하기도 하였다. 그중 5미터 정도 되는 검은색 골렘이 눈에 띄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 검은색 골렘만 철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언 골렘이었다.
아이언 골렘이 다른 골렘들을 컨트롤 하는지,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자 스톤 골렘들이 육중한 몸을 움직이며 강민 일행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쿵.
“이렇게 느려서 어디 마물 한 마리라도 잡겠어?”
갑자기 골렘이 나타나는 것에 다소 놀랐던 리키였지만, 느릿느릿한 골렘의 움직임에 코웃음을 치며 골렘을 비웃었다.
지금 골렘의 모습을 보면 일반인들도 뛰어서 피해갈 수 있을 정도로 느린 움직임이었기에 리키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골렘이 내포하고 있는 마나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최강훈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었다.
다가오는 골렘을 보면서 최강훈은 손짓을 통해 스페셜팀을 준비시킨 후, 대형을 지시했다.
“타입은 대형, 진형은 5번!”
“네!”
힘차게 대답한 스페셜팀의 멤버들은 3명은 전면에 서고 5명은 그들을 뒤에서 받쳐주는 방식으로 대형을 형성했다.
특히, 5명의 백업 멤버들은 아공간 주머니에서 마나 머신건을 꺼내 들어 원거리 공격을 준비했다.
이윽고 최강훈은 가장 앞에서 일행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5미터 크기의 스톤 골렘에 대한 공격을 지시했다.
“공격!”
최강훈의 공격 지시에 후방의 5명이 가지고 있던 마나 머신건에서 불을 뿜었다.
타탕! 타타타탕!
마나 머신건은 굉음을 내며 전방에 있던 골렘에 적중하였다. 일반 머신건이라면 상처도 나지 않을 것이었지만, 약하지만 마나를 머금고 있는 마나 머신건이다 보니 골렘의 표면에 상처를 주며 돌가루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골렘의 내구력이 상당한지 치명적인 공격이라 할 수는 없었다.
우웅- 우웅-
마나 머신건의 공격에도 일행을 향해 느릿느릿 다가오던 스톤 골렘은 갑자기 들려온 아이온 골렘의 웅웅거리는 소리에 갑자기 기세가 달라졌다.
그리고 기세가 달라졌다고 느낀 것과 동시에 골렘의 움직임이 신속하게 변했다.
쿵쿵쿵쿵!
앞서 있던 골렘뿐만 아니라 다른 골렘들까지 거의 차량에 맞먹는 속도로 일행에게 덤벼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