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
현세귀환록
118. 흑성(4)
다크 스타의 복면인들이 다 죽고 나자, 앉아서 쉬고 있던 텁석부리와 박 팀장이 일어나 최강훈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였다.
“감사합니다. 은, 은인이 아니었다면 그간 모아둔 돈도 못 쓰고 죽을 뻔했군요. 하하하. 저는 블랙 타이거의 리더, 아, 이제 리더라고 하기도 힘들겠군요……. 팀원들이 다 저리 되고 말았으니. 어쨌든 리더였던, 왕웅이라고 합니다.”
최강훈을 호칭할 말이 애매하였는지, 잠시 멈칫하던 왕웅은 생각 끝에 은인이라는 호칭으로 최강훈을 지칭하며 말했다. 왕웅의 말이 끝나자 박 팀장도 이어서 감사 인사를 하였다.
“저 역시, 팀원을 다 잃은…… 그린 드래곤의 리더였던 박세주입니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최강훈은 인사를 받으며 자신의 이름도 밝혔다. 하지만 최강훈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최강훈이라고 합니다. 일단 제 일행들을 보고난 후 다시 이야기 나누시지요.”
일행이라는 말에 왕웅은 반색하며 말했다.
“일행? 저기 저분들과 일행이셨군요. 아! 그렇다면 저분들의 요청으로 이곳까지 오신 것이었군요.”
“맞습니다.”
최강훈이 그의 말이 맞다 하자, 왕웅이 박세주에게 으스대듯 말했다.
“거봐, 내가 뭔가 대책이 있을 거라고 했지? 하하하.”
“그래, 너 잘났다.”
조금 전까지 생사를 넘나드는 전투를 치룬 탓인지 둘의 관계는 서로 반말을 해도 어색하지 않는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원래 알던 사이였지만 이제는 전우가 된 것이었다.
좀 더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둘을 놔두고 최강훈은 정시아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수……고했어.”
“수고는 무슨. 누나는 좀 어때?”
정시아는 아까 전 최강훈이 보인 박력에 아직 주눅이 들었는지 다소 말을 얼버무리며 말했다. 하지만 최강훈은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평소처럼 말을 받았다.
그런 최강훈의 모습에 정시아는 한숨을 놓으며 방금 전보다는 편히 말하기 시작했다.
“아직 정신은 안 들었는데, 별문제는 없을 것 같아.”
“일단 유리 누님께 데려가자. 누님이라면 해결해 주시겠지.”
최강훈이 알기에 유리엘이 못하는 것은 없었다. 강민이 ‘절대(絶對)’라는 말로 수식이 가능하다면, 유리엘은 ‘전능(全能)’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그럼 저들은 어떻게 할 거야?”
자리를 옮기자는 말에 정시아는 저 멀리 있는 왕웅과 박세주를 보며 말했다.
“음…… 어차피 동료들도 다 저리 되었으니, 스카우트를 해볼까?”
“스카우트?”
“그래. 안 그래도 스페셜팀에 새로운 활력이 필요하기도 했고 말이야.”
“아…….”
정시아와 말을 마친 최강훈은 망설임 없이 왕웅과 박세주에게 다가가 스카우트 제의를 하였다.
그런데 최강훈의 생각과는 달리 둘은 그 제의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간 그레이 울프로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던 그들은 어딘가에 소속된다는 것은 그리 탐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스페셜팀의 일원이 된다면 마스터의 경지에 있는 최강훈에게 배울 수 있다고 하자 그들의 눈빛은 달라졌다.
특히 왕웅의 경우는 사부도 없이 책자로만 무공을 배운 경우라 제대로 된 스승의 지도가 절실했다.
더 이상의 제의는 필요 없었다. 둘은 스페셜팀의 연봉 및 근무 조건 등은 들어보지도 않은 채 무조건 받아들인다고 대답했다.
어차피 돈은 지금도 상당히 저축해 놨고, 지금 이 아머드 베어의 사체만 팔아도 꽤나 돈이 될 것이었다. 돈보다는 배움에 대한 기회가 그들에게는 더 큰 가치였다.
결국 신변을 정리하고 다음 주부터 KM가드로 출근하는 것으로 합의를 하고 그들과 헤어졌다.
* * *
“유리 누님, 서영이 누나는 괜찮을까요?”
“그래, 체내 마나를 바로잡고 정화 마법을 써뒀으니 괜찮을 거야. 한숨 자고 나면 별문제 없을 거야.”
“다행이네요. 그런데 누님, 혹시 서영 누나가 저를 호출할 수 있는 마법기를 만들어주실 수 있으신가요?”
최강훈은 강서영이 괜찮다는 말에 곧장 아까 전 생각해둔 마법기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유리엘은 최강훈의 심정을 바로 이해하고 긍정적인 대답을 주었다.
“무슨 마음인지 알겠어. 그래, 서영이가 가진 마법기에 그런 기능을 추가해둘게. 네게도 그 마법기와 연동되는 소환석을 줄 테니까 가지고 다니고.”
“감사합니다. 누님.”
“아, 대신 소환할 때 네가 저항하면 마법이 깨지니까 소환석의 마나 파장을 파악하고 있어. 보통 무의식중에 이질적인 마나가 침습하면 저항하기 쉬우니까 말이야. 당연히 서영이 능력으로 널 강제로 소환하긴 힘들 테고.”
“알겠습니다. 누님.”
역시 최강훈의 생각대로 유리엘은 전능했다. 그녀에게 불가능한 일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유리엘과의 대화를 마치자 이번에는 강민에게 말을 걸었다.
“형님, 다크 스타를 그대로 두실 생각이십니까?”
강민은 최강훈의 말에 대답도 않고 무심히 그를 바라보았다.
심연과도 같은 깊은 강민의 눈을 얼마간 마주하니 마치 끝을 알 수 없는 밤하늘을 보는 것과 같은 경외감이 들었다.
최강훈 그 자신도 마스터의 경지에 올라서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었지만, 여전히 강민의 실력은 어느 정도에 있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아니, 마스터에 오르기 전에는 막연히 짐작했는데, 그 자신이 마스터에 올라보니 과거의 짐작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를 깨닫고 부끄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그런 최강훈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민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그래, 넌 어떻게 하였으면 좋겠느냐?”
“서영 누나가 피해를 입을 뻔했지 않습니까? 어떤 식으로든 응징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이미 헌터가 된 최강훈은 다크 스타의 행태들은 잘 알고 있었지만, 그가 직접 나서서 해결할 생각까지는 하지 않고 있었다. 유니온도 있고 위원회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강서영이 피해자가 될 뻔한 일이 벌어졌으니 상황은 달라졌다 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다크 스타와 은원(恩怨)이 없는 무관한 사이었다면, 이제부터는 그들과 해결해야 하는 원(怨)이 생긴 것이었다.
“응징이라……. 어느 정도의 수준을 생각하는 것이냐?”
문득 최강훈은 과거 이와 비슷한 대화를 나눴다는 생각이 들었다. 헤이안을 처리할 때도 어느 정도까지 복수를 할 것인지 강민이 물어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때의 생각이 난 최강훈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을 했다.
“모든 다크 스타의 인원을 처리할 수는 없겠지요. 다만, 핵심 수뇌부라도 처리하여 그와 같은 사상을 가진 이능력자들이 단체를 이루는 것 정도는 막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어차피 다크 스타만 처리하면 카오틱에빌 성향의 대형 이능 단체는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지 않겠습니까?”
사실 다크 스타는 설립 된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조직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다크 스타라는 이름이 생긴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 세부 구성원들은 과거부터 악명이 높던 카오틱에빌의 멤버들이었다.
지난 1년간 위원회에서는 대대적으로 카오틱에빌 조직에 대한 숙청을 시작하였고, 많은 카오틱에빌 조직들이 위원회의 척살단에 의해 스러져갔다.
위원회의 공격 전까지만 해도 위원회와 카오틱에빌 간에는 어느 정도 공존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는데, 갑작스러운 위원회의 태도 변화에 카오틱에빌 조직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위원회의 공격에 유명 카오틱에빌 단체들의 1/3 이상이 사라지고 나자 카오틱에빌 조직들도 위기감을 느끼고 공동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공동으로 대응한다 해도 위원회의 조직적인 공격에 흩어져 있던 카오틱에빌 조직들은 버티기가 힘들었고, 결국 2/3 이상의 조직들이 사라지고 나자 공동 대응으로는 힘들고 단일한 하나의 조직이 되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그리하여 살아남은 카오틱에빌 중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세 단체를 중심으로 대부분의 카오틱에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단체가 다크 스타였다. 이렇게 다크 스타는 카오틱에빌 이능력자의 마지막 남은 별이 되었다.
이후, 다크 스타는 무섭게 카오틱에빌들을 흡수하기 시작하였다. 이미 사라진 조직의 살아남은 조직원들도 상당수가 다크 스타로 편입되었다.
그 결과 설립 6개월 만에 과거 카오틱에빌 세력의 거의 절반 정도가 다크 스타 아래로 들어왔다.
물론 독자적인 행보를 벌이는 소수의 조직이 있었으나 이들로는 대세에 영향을 미치기 힘들었고, 결국은 다크 스타와 위원회의 싸움으로 좁혀졌다.
그렇게 창설된 다크 스타는 과거 개별적인 조직과는 성향을 달리하였다. 단합이 되지 않고 개별적인 조직일 때에는 위원회 및 유니온의 공격에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는데, 하나의 조직이 된 이후로는 정예 무력 집단을 편성하여 방어뿐만 아니라 공격까지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번의 공격도 그런 대응의 일환이었다. 위원회와 유니온에서 다크 스타를 견제하고 공격하듯이, 다크 스타에서는 위원회와 유니온에서 권장하는 헌터시스템을 무력화시키기 위해서 공격에 나선 것이었다.
벌써 꽤 많은 헌터들이 이 다크 스타의 공격에 살해당했기에 유니온에서는 긴급 구난팀까지 만들어서 운용하였다. 하지만 신출귀몰하게 헌터들만 살해하고 빠지는 식으로 일을 벌였기에 그 성과는 크지 않았다.
또한 본거지를 쳐서 수뇌부를 잡으려고 해도 과거에 드러났던 본거지는 모두 버리고 숨어버렸기에 잡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최강훈은 유리엘이라면 이 수뇌부들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유리엘은 이미 마나 위성의 세부 스캔 모드를 통해서 숨겨진 다크 스타 본부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었다.
최강훈의 대답에 강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역시 외부의 적이 감당하지 못할 만큼 강해지기 전까지는 내부의 투쟁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군. 나중을 위해서라도 일원화 된 체계를 갖추는 것도 좋겠지.”
다크 스타 역시 이 세계의 이능력자였고, 차원 교차로 마물들이 유입되면 이 세계를 위해서 싸울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존재로 인하여 차원 교차 전까지 이런 소모전 양상이 벌어진다면, 그들이 없는 것이 나을 수도 있었다.
강민이 긍정적으로 이야기하자 최강훈은 반색하며 물었다.
“그럼 그들을 처리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래 수뇌부 정도는 처리하는 것이 이런 소모전을 방지할 수 있는 길일 수 있겠지.”
“그럼…….”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며 최강훈은 지금 바로 순간 이동 할 것이라 생각하며 유리엘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유리엘은 최강훈의 기대에 아랑곳하지 않고 강민을 바라보며 말했다.
“민, 이번에도 서영이가 적잖이 충격을 받은 것 같은데 여행으로 풀어주면 어때요?”
전에도 강서영이 여행에서 기운을 차린 경험이 있었기에 유리엘이 그것을 권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말이 이어졌다.
“굳이 급한 것도 아닌데 바로 순간 이동으로 가는 것보다, 전용기를 통해서 여행하는 겸 해서 같이 가죠. 서영이 기분도 풀어주고요. 어머님도 나가신 지 오래 되었잖아요.”
갑작스러운 유리엘의 제의에 강민이 동의하며 말했다.
“그것도 좋겠군. 그럼 이번 기회에 스페셜팀의 실력도 한번 보자.”
둘의 이야기를 듣던 최강훈은 강민이 스페셜팀을 언급하자 놀라며 반문했다.
“스페셜팀요?”
“그래, 1년간 네가 가르쳤으니 좀 나아졌을 것 같은데. 이제 실전에서 그 실력을 보자고.”
최강훈이 보기에는 아직 부족한 스페셜팀이었지만 언제까지나 대련으로 실력을 키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실전을 병행해야 진정한 실력의 증진이 있을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형님. 이번 여행에 동행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정시아가 한마디 하였다.
“오빠, 나도 가는 거죠?”
정시아는 회사 일을 시작하면서 과거와 같은 반말보다는 반존댓말을 사용하였는데, 그런 그녀가 귀여웠던지 강민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 서영이가 가니 너도 같이 가야 하지 않겠어?”
“당연하죠, 오빠.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