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
현세귀환록
115. 흑성(1)
헌터들의 사냥을 지켜보던 강서영은 너무 큰 충격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마물 사냥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헌터나 마물 관련 방송에서도 말은 헌팅이 어렵고 위험한 것처럼 하면서도, 그들이 하는 말과는 다르게 너무도 손쉽게 마물을 사냥하고는 하였다.
방송에서는 웜홀이 열리고 마물이 튀어나오면 서너 명의 헌터가 달려들어 몇 분 지나지 않아 마물을 도륙하고 사체에서 마정석을 꺼냈다.
약간의 부상은 있었지만, 누구도 생명이 위험할 만한 큰 부상을 당하는 경우는 없었다. 헌터가 죽는 경우는 더더욱 없었다.
그랬기에 그녀는 지금처럼 마물에게 헌터가 죽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위험하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위험할 것이라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보통 TV에서 방송되는 마물 사냥 영상은 일반인들의 마물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커지지 않도록, 유엔과 유니온, 각국 정부에서 일부러 손쉽게 사냥한 장면만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C급, B급 헌터가 E급, F급 마물을 잡는 것이니 어려움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일반인들은 마물 사냥을 마치 아프리카 초원의 사자를 사냥하는 것과 비슷한 것처럼 여기고 있었다.
이능이라는 총과 같은 무기만 있다면 별로 위험하지 않은 그런 사냥처럼 말이다.
강서영 역시 그런 일반인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 이능을 배우고 현재 E급 이능력자이기는 했지만 아직 그녀 스스로는 이능력자라는 자각이 없었다.
실제로 이능 세계에 대한 정보도 그리 많지 않았다. 더군다나 마물 사냥이나 헌터에 대한 정보는 더 없었기에 이번 마물 사냥을 보고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아, 어, 어떻게 저런…….”
이제 사냥은 끝났지만 아직 강서영은 헌터들이 죽었다는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일반인이 자신의 눈앞에서 한 번에 세 명이나 죽는 것을 볼 일은 거의 없었다. 그것도 마물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것을 본다는 것은 일반인으로서는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정시아는 강서영의 그런 반응에 다소 의아해하다가 이내 이유를 짐작했다. 강서영이 이런 쪽에 내성이 없다는 것을 잠시 간과했던 것이었다.
정시아는 과거 살아남기 위해서 사람들을 살해하기도 했고, 서로 죽고 죽이는 그런 상황을 종종 보아왔다.
따라서 이 정도로 충격을 받을 리 없었으나, 강서영은 그야말로 평범한 보통 사람이었다. 충격을 받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시아가 강서영을 달래 주기 위해서 말을 걸려고 하는 찰나, 갑자기 복면을 쓴 괴인 집단이 이곳에 들이닥쳤다.
블랙 타이거와 그린 드래곤의 헌터들은 이 괴인들이 사냥이 끝난 줄도 모르고 이곳의 마물을 사냥하기 위해서 온 다른 헌터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대변이나 하듯 텁석부리 헌터가 달려오는 괴인들에게 말을 건넸다.
“이미 이곳의 마물 사냥은 끝났소. 다른 곳을 알아보시오.”
하지만 괴인들은 대화를 나눌 의도가 없었다. 이미 검과 도, 심지어는 쇠사슬과 같은 무기를 빼 들고 문답무용으로 헌터들을 공격해왔다.
쏴--악! 팟-!!
“으악!!”
비교적 괴인 집단과 가까이 있던 헌터 한 명이 날아오는 쇠사슬에 팔이 감겼다가 쇠사슬이 회수되며 팔이 찢겨 나갔다. 괴인이 자신을 공격할 것이라 추호도 생각하지 않았는지 무방비로 있다가 당한 일격이었다.
이 일격을 본 그린 드래곤의 박 팀장이 팀원들과 블랙 타이거의 헌터들에게 외쳤다.
“헌터가 아니야! 다크 스타다!”
다크 스타라는 말에 헌터들의 안색이 변했다.
괴인들의 검은 복면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검은 복면의 이마 부분에 양각으로 검은 별이 수놓아져 있었다. 검은 복면에 검은 별이라 자세히 보지 않는다면 알아보기는 힘들었다.
그 별을 본 헌터들 중 누군가가 외쳤다.
“헉! 진짜 다크 스타다! 어서 유니온에 연락…… 커, 컥!”
“기훈아!!”
유니온에 연락 운운한 헌터는 말을 마치지도 못했다. 그의 말을 들은 다크 스타의 복면인이 쇠사슬이 연결된 낫을 쏘아내어 그 헌터의 목에 꽂았던 것이었다.
그리고 목에 꽂혔던 낫은 복면인에게 되돌아가며 기훈이라 불린 헌터의 상반신을 세로로 갈라버렸다. 낫이 지나간 상반신은 이내 쩍 벌어지며 엄청난 양의 피를 쏟아냈다.
“아…….”
그 모습을 보던 강서영은 외마디 신음을 내더니 쓰러지고 말았다. 너무도 충격적인 장면을 연이어보다 보니 그녀는 심리적으로 무척 흔들리고 있었는데, 기훈이 죽는 모습은 오늘 그녀가 본 장면 중 가장 끔찍한 모습이다 보니 결국은 정신을 놓고 말았던 것이었다.
“언니!”
강서영이 쓰러지는 것을 본 정시아는 서둘러 그녀의 맥과 숨을 확인했는데, 충격에 의한 단순 기절인 것을 알고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퍼퍼퍽! 챙! 채챙-! 쾅-! 쾅!
다크 스타의 괴인 중에서는 마법사도 있는지 화염구 같은 마법 또한 헌터들에게 날아왔다.
헌터들은 분전(奮戰)하였지만 결과적으로 다크 스타의 일방적인 압승이었다.
인원만 해도 3명이 죽고 7명만 남은 헌터 일행에 비해 8명인 다크 스타가 더 많았고, 실력 또한 헌터들에 비해서 그들이 월등히 좋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다크 스타는 8명이 다 나서지도 않았다. 고작 5명이 나서서 7명을 압도했던 것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남은 헌터는 블랙 타이거의 리더 텁석부리와 그린 드래곤의 리더 박 팀장 밖에 없었다. 그사이 다른 헌터들은 모두 주검으로 변해 버렸다.
헌터의 불문율을 어기며 자신의 눈앞에서 살육이 벌어지는 것을 본 정시아는, 직접 나서서 이 살육을 막고 싶었으나 섣불리 현장으로 뛰어들 수가 없었다.
그 이유는 8인의 다크 스타 중에서 살육에 나서지 않는 3명 때문이었다. 그녀에게는 강서영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기에 강서영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함부로 그녀의 곁을 떠날 수 없었다.
만일 별 볼 일 없는 상대라면 강서영을 건들기도 전에 그들을 해치워 버릴 수 있었겠지만, 지켜보는 3명 중에 가운데 있는 한 명은 거의 그녀와 대등해 보이는 마나를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계속 상황 변화만 주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었다. 팀장 두 명을 제외한 나머지 헌터들이 모두 주검이 되는 동안, 다크 스타의 괴인들은 한 명도 죽지 않았던 것이었다. 단지 크고 작은 상처만 몇 군데 입었을 뿐이었다.
서로 등을 맞대고 다섯 명의 다크 스타를 상대하던 박팀장과 텁석부리는 이제 죽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7명으로도 이기지 못한 그들을 두 명이 이기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다크 스타의 괴인들은 그들을 이제 다 잡은 물고기라 생각하는지, 서둘러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장난치듯 둘의 주위를 빙빙 돌았다.
잠시 전투가 소강상태가 되자 박 팀장이 갑자기 정시아를 바라보고 외쳤다.
“도와주시오! 어차피 다크 스타는 목격자를 남기지 않지 않소! 우리가 죽고 나면 결국 그쪽도 타깃이 될 것이오!”
박팀장의 갑작스러운 말에 텁석부리는 의아해하며 그에게 물었다.
“누구보고 그러는 거야, 박 팀장! 저기 경호원보고 하는 말인가? 어차피 저 경호원 혼자서 어쩔 수 있는 상황이 아니지 않은가!”
“경호원이 아니라 저기 단발머리 소녀보고 하는 이야기일세. 겉보기는 저렇게 보이지만, 저 소녀는 다크 레드 카드의 헌터야!”
“뭐, 뭐라고! 다, 다크 레드라면…….”
박 팀장의 말에 텁석부리 헌터는 깜짝 놀라 순간적으로 정시아를 돌아볼 뻔했다.
다섯 명이나 되는 적이 둘러싼 상황에서 한눈을 팔았다가는 목숨을 잃을 것이 뻔해 보이는 상황이었기에 꾹 눌러 참았지만, 곁눈질이 가는 것까지는 막을 수가 없었다.
박 팀장의 말에 정시아도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말이 맞았기 때문이었다. 더 이상 상황을 지켜본다고 해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저 둘이 죽고 나면 더 어려운 상황이 될 것이었다. 승부를 내야 할 때였다.
정시아의 미간이 찌푸려지며 고운 얼굴이 다소 구겨졌다. 이리저리 계산해 봐도 강서영을 지키면서 모두를 상대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자신 혼자라면 진혈을 깨워 어떻게든 할 수 있겠지만, 그사이에 강서영을 노리고 들어온다면 그것까지 막을 자신이 없었다.
결국 생각을 거듭하던 정시아는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스마트폰을 꺼냈다. 사용하기 싫었던 최후의 수단을 꺼내는 것이었다.
뚜- 뚜- 딸칵.
몇 번의 통화음이 울리더니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 유리엘이었다.
-시아니?
“네, 언니. 죄송한데 좀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서영이 언니가 조금 위험한 상황에 있어서요.”
정시아는 강민이나 유리엘에게 이런 부탁을 하기가 싫었다. 자신의 능력이 모자란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자신의 자존심 때문에 강서영이 위험에 처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래? 알겠어. 조금만 기다려.
“네, 언니. 부탁드릴게요.”
구체적인 설명은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알겠다고 했으니 이제는 괜찮을 것이었다. 서울에 있을 유리엘이었지만 정시아는 그녀가 거리에 구애받을 사람이 아닌 것을 알고 있었다.
유리엘이라면 지금 당장 이곳에 강림해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었다.
* * *
“민, 어떡할까요?”
강민과 유리엘은 이미 정시아의 상황을 알고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강서영이 기절하는 순간부터 스크린을 통해서 그녀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동생의 프라이버시가 있으니 모든 상황을 지켜보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신체나 정신에 기준 이상의 충격이 가해지는 상황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그녀의 상황을 알 수 있도록 조치를 해놓았기 때문이었다.
“시아가 약간 무리한다면 혼자 해볼 만하지 않을까?”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그렇겠지요. 그렇지만 지금은 서영이 때문에 신경을 쓰니 스스로 힘들다고 생각해서 연락한 것 같네요.”
“하긴, 시아는 서영이가 절대 위험한 상황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고 있으니…….”
강민 말처럼 강서영은 유리엘이 만들어준 마법기에 의해서 절대적으로 보호받고 있었다. 그랜드 마스터가 나선다고 해도 그녀가 위험해질 상황은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정시아는 강서영이 받고 있는 보호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기에, 자신이 최후의 방패라고 생각하고 그녀를 지키려 하고 있었다.
“그럼 우리가 가 볼까요?”
유리엘의 말에 강민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음…… 강훈이를 보내보자.”
“강훈이를요?”
“자기 여자는 스스로 지켜야지. 안 그래?”
자기 여자라는 말에 유리엘은 웃으며 말했다.
“호호호. 그것도 그렇네요. 민이 날 지켰듯이 말이에요.”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지킨 것이었지.”
“그래도 저는 민이 없었다면 정신을 차릴 수 없었을 거예요.”
“나도 유리가 없었다면 그 오랜 시간을 버텨낼 수 없었을 거야.”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잠시 대화가 끊기고 잔잔한 눈빛만이 둘 사이에서 오갔다.
영혼의 동반자라는 말이 어울리듯 영혼의 교류가 되는 둘은 이런 눈빛 교환만으로도 서로의 생각과 느낌을 잘 알 수 있었다.
짧은 시간의 교류였지만 둘 다 영혼이 충만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면서 만족스러운 미소가 지어졌다.
“그럼 강훈이한테 연락할게요.”
“그래, 이리로 부를 것도 없이 바로 그리로 보내 버리지 뭐.”
“그래요.”
잠시 눈을 감은 유리엘은 과거 최강훈에게 보냈던 것처럼, 심어와 결합된 텔레파시를 보냈다.
[강훈아, 지금 뭐 해?]
[아. 유리 누님이시군요. 지금은 스페셜팀 개인 지도 중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하시는 건 오랜만이네요. 무슨 일입니까, 누님?]
휴대전화가 있는데 그것으로 하지 않고 텔레파시를 보냈다는 것은 뭔가 비밀리에 그리고 즉각적으로 할 일이 있다는 것이었다.
최강훈은 그런 짐작으로 유리엘에게 상황을 물어보았다.
[지금 서영이가 기절한 상태야.]
[네? 기절이라니요?]
[그게 말이야…….]
유리엘은 간략히 강서영의 상황을 최강훈에게 전했다. 강서영의 상황을 들은 최강훈은 분노하며 당연히 자신이 나선다고 했다. 아니, 자신을 꼭 보내달라며 부탁했다.
[그래, 그럼 바로 그리로 보내줄게. 서영이에게 백마 탄 기사가 되어주렴. 호호호.]
[아…… 흠흠. 네, 누님.]
최강훈은 백마 탄 기사라는 말에 비록 텔레파시지만 쑥스러운 듯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