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세귀환록-114화 (114/203)

# 114

현세귀환록

114. 사냥(2)

이 헌터는 부잣집 아가씨들이 이능력자 경호원 한 명을 믿고, 마물 사냥을 구경하는 것쯤으로 치부한 것이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마일즈에게는 나름 강한 마나가 느껴졌지만, 강서영에게는 미약한 마나만이, 마지막으로 정시아에게는 아무런 마나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즉, 그가 정시아의 실력을 읽을 정도의 실력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다만, 뒤에 서 있는 마일즈의 실력이 만만치 않아 보였기에 완전히 무시하는 발언을 하지는 않았다.

반면 녹색 전투복의 헌터팀은 정시아를 다소 경계하는 듯한 모습으로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아래에서 마주친 위장복 헌터가 정시아가 다크레드 카드의 소유자라는 것을 무전으로 알려준 것 같았다.

그리고 굳이 그 정보를 블랙 타이거팀에게는 알려주지 않은 것 같았다.

두 팀 간의 미묘한 신경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시아는 강서영을 공터의 한쪽으로 안내하여 구경하기 좋게 자리를 잡았다.

그런 정시아의 모습에 이야기를 나누던 블랙 타이거의 헌터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더니, 강서영 일행에게서 신경을 끄고 곧 나타날 웜홀에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정시아와 말을 나눈 30대 중반의 텁석부리 헌터가 리더였는지, 블랙 타이거의 다른 멤버들도 그가 강서영 일행에게 관심을 끊자 웜홀이 나타날 공간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블랙 타이거팀은 C+급 2명, C급 2명 및 D급 1명으로 이루어진 팀이었다. 이능력자들의 능력이 많이 향상된 지금도 C+급은 이능 세계에서 꽤 인정받는 능력자 등급이었다. 즉, 이들은 나름 정예 헌터인 것이었다.

C+급 두 명은 마물의 사체를 가공한 보호대와 검으로 무장하고 있었고, 나머지 멤버들은 현대적인 마나 장비로 무장한 상태였다. 리더로 보이는 텁석부리는 당연히 C+급이었다.

반면 녹색 전투복의 헌터들은 C+급 1명, C급 2명 및 D+급 2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우선권을 블랙 타이거팀에서 가져갔음에도 녹색 전투복의 헌터들이 기다리는 이유는 블랙 타이거팀에서 마물이 버거워 우선권을 포기하는 경우, 우선권을 승계받아 마물을 잡기 위해서였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웜홀 알림 앱에서 보이는 웜홀 색이 짙은 붉은 색으로 변했다. 웜홀이 발현될 시간이 임박해진 것이다.

휘이이이잉-

과연 웜홀 알림 앱에서 예측한 시간이 맞았는지 허공에서 갑작스럽게 커다란 검은 구멍이 생기더니 태풍과도 같은 바람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웜홀이 열린 것이었다.

웜홀이 열리자 헌터들은 스마트폰을 다 집어넣고, 마물의 등장을 대비하며 무기를 고쳐 들었다.

기다림은 길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웜홀을 뚫고 키가 5m 정도 될 것 같은 곰 형태의 마물이 등장했다.

마물은 곰과 비슷한 형태였지만 실제 곰과는 전혀 달랐다. 가장 큰 차이는 마물을 둘러싸고 있는 외피가 털이 아니라, 갑주와 같은 딱딱한 껍질이라는 점이었다.

번들거리는 껍질이 그 여간 단단해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아직 완전히 마나 충돌이 없어진 것은 아닌 듯 그 갑주 위로는 붉은 스파크가 약하게 튀고 있었다.

쿠아앙!

웜홀을 통과한 마물은 마나 충돌에 고통을 느끼는지 포효를 내질렀는데, 아직 완전히 정신을 차리지는 못하고 있었다.

곰 형태의 마물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인지 마물의 등장하자마자 텁석부리 중년인이 외쳤다.

“아머드 베어(Armored bear)!!”

지난 1년여 간 유니온에서는 현상금을 걸고 마물에 대한 정보를 취합했고, 그렇게 모인 마물에 대한 정보를 매뉴얼로 만들어 헌터들에게 제공하였다.

정보를 몰라서 불필요하게 희생되는 경우를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 매뉴얼은 지금도 여전히 업데이트되고 있었다.

때문에 텁석부리 장년인은 처음 보는 마물이었지만 마물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텁석부리의 옆에 있던 대머리 중년인도 매뉴얼을 보았는지, 그의 말을 받았다.

“아머드 베어라면…… 지금 우리가 가능하겠습니까?”

대머리 헌터가 그렇게 물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일반적으로 아머드 베어는 개체에 따라 C급에서 C+급으로 판단되지만, 외장갑이 두터워 무투형 근접 타격 계통의 이능력자에게는 B급과도 같은 마물이었기 때문이다.

메뉴얼에 의하면 아머드 베어는 마법과 같은 속성 공격에 다소 약한 대신 단순 물리적 공격에는 엄청난 내구성을 가지고 있는 마물이었다.

블랙 타이거팀은 모두가 마나를 기로 바꾸어 사용하는 무술가 출신으로 이런 아머드 베어에게 취약한 헌터 그룹이었다.

이런 점을 대비하기 위해서 거금을 들여 마나 라이플을 구매하였지만, 그 역시 속성이 부여된 라이플은 아니었기에 아머드 베어에게는 적합한 무기는 아니었다.

B급 이상의 샤이닝 소드라면 아머드 베어의 외장갑을 뚫을 수 있을 것이나, 블랙 타이거의 리더조차 아직 C+급 밖에는 되지 못했기에 전반적으로 보아서 블랙 타이거팀이 잡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 분위기를 읽었는지 얼굴에 흉터가 있는 청년 역시 리더에게 물었다.

“팀장님, 저기 그린 드래곤 애들한테 도와달라고 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텁석부리의 리더 헌터 역시 그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잠시 고민하다가 팀원들에게 물었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아머드 베어는 우리의 힘만으로는 잡기 힘들다. 저쪽과 연합하는 건 어떠냐?”

다른팀원들도 상황을 알아차렸는지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긍정을 표시하였다. 팀원들의 의사를 확인한 텁석부리는 그린 드래곤의 리더에게 말했다.

“박팀장, 같이 하는 건 어떻소? 어차피 우리가 우선권 포기하고 물러난다 해도 그쪽의 힘만으로는 잡기 힘들 것 같은데 말이오.”

그린 드래곤의 리더인 박 팀장은 텁석부리의 제안에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좋소. 어차피 저 녀석은 우리 같은 무술가에게는 쥐약인 놈이니 그렇게 합시다. 그럼 처분은 관행대로 하는 거죠?”

“당연하지요. 시작부터 같이 하니 처분은 관행대로 50 대 50이오.”

양팀 간에 합의가 이루어져서 이제는 10명의 헌터가 마물을 상대하게 되었다. 헌터들이 이야기하는 동안, 아머드 베어 역시 어느 정도 정신을 차렸는지 자신의 주위를 둘러싼 헌터들을 노려보았다.

선공은 블랙 타이거의 텁석부리 헌터였다. 그는 다람쥐처럼 재빠르게 아머드 베어의 하단으로 빠져서 검격을 넣었다.

전신이 딱딱한 껍질로 둘러싸인 아머드 베어에게 그나마 취약한 부분이 바로 배 부분이었다.

다른 곳은 짙은 검은색인 것에 비해 배 부분의 껍질 색은 진한 회색 정도의 색으로 다소 차이가 있었는데, 지금 텁석부리는 그곳을 노리고 공격한 것이었다.

쾅!!

이미 샤이닝 상태로 들어간 그의 빛나는 검은 아머드 베어의 휘두르는 왼손을 피해서 정확하게 배를 가격했다.

그 최초의 공격이 들어간 후 텁석부리는 연속 공격을 날렸지만 아머드 베어에게 남겨진 상처는 크지 않았다. 흠집과도 같은 칼자국이 몇 군데 남겨졌을 뿐이었다.

배 부분이 약하다고는 하지만 그 역시 아머드 베어의 껍질이었다.

그러나 공격은 텁석부리 혼자가 아니었다. 블랙 타이거팀과 그린 드래곤팀의 다른 헌터들이 시간 차로 파상공세를 펼쳐 나갔다.

공격이 진행되면서 흠집은 더 많이 생겼고 수차례 누적해서 공격이 적중되는 곳의 껍질은 점차 파여 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아머드 베어는 방어력은 높았지만 움직임은 다소 느린 편으로 공격을 피하기가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지금도 이리저리 휘두르는 손과 꼬리를 피해 모든 헌터가 공격을 가하고 있었다.

한참 동안 공격이 지속되었고, 이대로라면 시간은 걸리겠지만 큰 어려움 없이 아머드 베어를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아머드 베어에게도 한 수가 있었다. 그런 한 수가 없었다면 근접 공격자들의 악몽으로 불리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아머드 베어는 잠시 눈을 빛내는 것 같더니 처음의 포효와는 다른 거칠고 높은 고주파 음을 발했다.

끄어어--!

고주파음이 발현되자 텁석부리는 재빨리 일행들에게 외쳤다.

“마비 음파다! 고막을 막아!!”

이미 수차례 등장했던 아머드 베어였기에 이 마비 음파에 대한 대책도 있었다. 하지만 그 대책이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마법사가 있다면 좀 더 나은 대비가 되었을 것이나 지금 이곳에는 마법사가 없었다.

텁석부리의 말에 일행들은 기를 움직여 고막을 보호했다. 만일 지속적으로 이 음파에 노출된다면 고막이 터지는 것은 물론이고 뇌마저 곤죽으로 변해 버려 죽음에까지 이를 수 있는 무서운 공격이었다.

그렇지만 고막을 보호했다고 해도 완전히 이 공격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고주파 음에 저항하느라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졌던 것이었다.

물론 아머드 베어 역시 음파를 발현하는 동안은 움직이기 힘들어서 당장 위험한 것은 아니었지만, 문제는 음파 공격이 끝나는 시점이었다. 바로 지금처럼.

퍼억!

음파 공격이 끝나고 아머드 베어는 바로 움직일 수 있었으나, 헌터들은 그 후유증이 남았는지 전과 같은 움직임이 나지는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블랙 타이거의 한 헌터가 아머드 베어의 오른손 공격에 가격당했다.

피한다고 피했지만 음파 공격의 후유증 때문인지 기민하게 움직이지 못하여 맞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공격은 치명적이었다. 머리 반쪽이 으스러져 버렸다.

곰과 같은 큰 발에 머리가 날아가서 피가 터져 나오는 장면은 일견 비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하였다.

“진환아!!”

덥석부리는 죽은 헌터의 이름을 외쳤지만 그를 돌보러 갈 수는 없었다. 아머드 베어가 아직도 형형한 눈을 빛내며 또 다른 헌터들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료 한 명이 당하고 나니 블랙 타이거 헌터들의 기세가 바뀌었다.

지금까지는 서로 눈치를 보느라 몸을 사리는 공격이 많았지만, 이제는 다소간의 상처를 입더라도 한 방 한 방 제대로 된 공격을 아머드 베어에게 넣고 있었다.

아머드 베어 역시 계속되는 공격으로 수차례 피해가 누적되었는지 두꺼운 껍질이 뚫려 녹색의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전투는 삼십여 분이 넘도록 지속되었다. 헌터들의 공격이 매서웠지만 아머드 베어는 만만치 않았다.

아머드 베어의 고주파 공격에 블랙 타이거 헌터 한 명과 그린 드래곤 헌터 한 명이 더 희생되고 나서야 아머드 베어를 쓰러뜨릴 수 있었다.

이미 죽은 세 명의 헌터를 제외하더라고 나머지 헌터들도 멀쩡하지는 않았다.

샤이닝 소드를 만들지 못하는 D급의 헌터들은 근접전을 벌이지 않고 마나 라이플로 견제만 하였기에 큰 상처는 없었으나, 전투에 직접 참여한 다른 헌터들은 하나같이 크고 작은 상처를 입고 있었다.

특히, 블랙 타이거의 리더인 텁석부리는 가슴팍이 쩍 갈라진 중상을 입었었다.

마물의 사체로 된 고가의 보호대가 없었다면 상반신 전체가 날아갈 만한 강력한 공격을 맞은 덕분이었다.

“팀장님이 구해주지 않았다면 저도 진환이처럼 될 뻔했네요. 감사합니다. 팀장님.”

“감사는 무슨……. 죽지나 마라. 팀원 또 구하기 귀찮으니 말이야.”

텁석부리는 대머리 헌터의 인사에 쑥스러운 듯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대머리 헌터는 텁석부리의 상처를 보며 물었다.

“그런데 상처는 좀 괜찮으십니까?”

그 말에 자신의 상처를 보았는데 이미 지혈을 하고 포션을 부어놓은지라 상처는 많이 아물어 있는 상태였다.

“보시다시피 비싼 포션이 그 값을 하네. 이 상처만 아녔어도 마무리는 내가 하는데…….”

텁석부리는 마무리 운운하면서 아머드 베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쓰러진 아머드 베어는 혼자 있지 않았다. 그린 드래곤의 박 팀장이 쓰러진 아머드 베어 위에 올라타 있었다.

비록 쓰러졌지만 아직 완전히 숨통이 끊어지지 않았기에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 위해서 그 위로 올라간 것이었다.

결국 박팀장은 십수 차례 공격을 가하여 결국 자신의 검을 아머드 베어의 목에 박아넣었다.

목에 검이 박힌 채 잠시 움찔거리던 아머드 베어는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더 이상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사냥이 끝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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