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
현세귀환록
113. 사냥(1)
웜홀에 대한 정보는 일반 세계에만 영향을 준 것은 아니었다. 이능의 세계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마물의 사체는 큰돈이 되었다. C급 마물만 해도 최소 10억 이상의 가치가 있었고 D급의 마물은 1억가량, E급만 해도 천만 원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마물 사냥을 하는 것은 무척 힘들었다. 마물을 상대할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마물을 발견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고정 웜홀에서는 다소 빈번하게 마물이 출현하였지만, 그 고정 웜홀은 대부분 이능 집단에서 소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일반 이능력자가 접근하기는 무척 힘들었다.
그렇다고 랜덤 웜홀을 찾아다닐 수는 없었다. 랜덤 웜홀은 언제 어디서 발현되는지 미리 파악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최근에는 랜덤 웜홀의 등장 빈도가 무척 높아지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그것을 찾는 것은 힘들었다.
하지만 웜홀 알람 앱이 등장하며 상황은 바뀌었다. 일반인용 앱에는 단지 웜홀 발현에 대한 경고 및 발현까지의 시간만 나타날 뿐이었지만, 유니온의 멤버용 앱에는 웜홀의 등급까지도 표시되고 발현 장소 역시 좀 더 구체적으로 나타났다.
더 이상 고정 웜홀에만 초점을 맞출 필요는 없었다. 랜덤 웜홀만 찾아다녀도 얼마든지 사냥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마물의 숫자뿐만 아니라 마나 충돌이 적어지면서 마물 사체의 질 또한 무척 좋아졌다. 마물 사체에 남는 마나의 양이 무척 많아졌던 것이었다.
물론 마나의 양이 많아졌다는 이야기는 마물의 능력이 커졌다는 이야기와 의미가 상통했다.
그래서 예전에는 C등급 능력자면 C등급 마물을 잡는 것에 그리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지만, 지금은 같은 등급을 혼자서 잡기는 힘들게 되었다.
C등급 마물을 잡으려면 최소 서너 명의 C등급 능력자가 필요했고, 혼자서 잡으려면 B등급이나 B+등급은 되어야 할 정도로 마물의 능력이 올라갔다.
이렇게 마물 사체의 공급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수요와 공급 법칙에 의해 사체의 가격이 떨어져야 했지만, 사체의 질이 오르면서 과거의 가격이 유지되었다.
어차피 마나 무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마물의 사체나 마정석이 필요했고, 최근 이능력자가 폭증하면서 마나 무구의 수요 역시 급격히 늘어났기에 마물 사체 가격은 오히려 오르기까지 했다.
유니온 역시 이런 마물 사냥을 적극 권장하였다. 어차피 기존의 세력들로 전체 웜홀을 커버할 수가 없었다.
급증하는 웜홀을 모두 잡아내기 위해서는 유니온에 속해 있지 않은 그레이 울프나 신규로 각성하는 이능력자들을 활용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유니온에서 마물 사체를 적극적으로 매입하며 그들이 마물 사냥꾼이 되도록 하였다.
유니온에 등록만 한다면 모두 유니온 멤버용 앱을 사용할 수 있게 하여 진입장벽 또한 크게 낮추었다.
유니온에서 별로 인정받지 못하던 이능력자나 이능력으로 해결사나 용병 등을 하던 그레이 울프는 이제 마물 사냥꾼이 되어서 큰돈을 벌러 나서는 경우가 많이 생겼다.
돈 때문에 카오틱에빌이 된 이능력자까지 마물 사냥꾼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일명 몬스터 헌터라는 직업이 생기게 되었다.
이것이 모두 유리엘이 만든 웜홀 탐색기 덕분에 생긴 일들이었다. 가히 문명의 흐름을 바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 * *
강서영이 탄 차량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멈추었다. 그렇지만 웜홀 발현지에 다다른 것은 아니었다. 웜홀의 발현지는 산속에 있었기에 차량으로 갈 수가 없었기에 멈춰섰던 것뿐이었다.
“어떡할까요, 언니? 한 1㎞는 더 가야 할 것 같은데 들어가 볼래요?”
“음, 별로 위험하지 않다면 가보고 싶기는 한데…….”
그간 TV 프로그램을 통해서 마물을 보았지만 호기심 많은 그녀의 성격상 한 번쯤은 실제로 보고 싶었다.
물론 방송에서 나오는 마물은 흉측하고 위협적으로 보였다. 실제로 방송 아나운서나 출현하는 헌터들도 마물이 위험하다고 일반인들은 웜홀의 발현을 알게 된다면 즉각 현장을 피하라고 언급하였다.
하지만 정작 방송 영상에서는 헌터가 손쉽게 마물을 처리하기에 일반인이 마물에 대해 느끼는 두려움은 그리 크지 않았다.
거기다가 이능 세계 기준으로도 상당히 강하다고 알고 있는 정시아까지 있다고 생각하자, 강서영도 호기심을 억누르지 않고 밖으로 나섰다.
“위험하지는 않다니까요, 호호. 주차하고 올라가 봐요.”
강서영이 가고 싶다면서도 재차 망설이자 정시아는 대수롭지 않은 일인 것처럼 말하며 그녀를 이끌었다.
결국 강서영 일행은 길가에 차량을 주차하고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500m 정도 산을 타고 올라가자 녹색 계통의 군용 위장복과 비슷한 옷을 입은 남자가 일행의 길을 막고 외쳤다.
“이곳 10분 뒤에 마물이 출현합니다. 위험하니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남자는 총기를 들고 무장을 하고 있었는데, 그 총은 일반적인 소총이나 수렵용 총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특유의 마나 파장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마나 라이플로 보였다.
일반인이었다면 위협을 느낄 수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강서영 일행은 일반인이 아니었다.
강서영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거리고 있을 때, 정시아가 위장복 사내의 말에 대답도 하지 않고 품에서 조그만 카드를 꺼내 사내에게 보였다.
그녀가 꺼낸 카드는 신용카드와 비슷한 크기의 카드로 특이하게 검붉은 색을 띠고 있었다.
사내는 카드를 알아보았는지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헉! 다크 레드 카드라니……”
“알았으면 길을 비켜줘요.”
“아, 예!”
정시아의 말에 위장복 사내는 허둥지둥 길을 비켰다. 강서영은 정시아의 카드를 처음 보았는지 사내를 지나쳐 올라가면서 그녀에게 물었다.
“시아야, 그 카드 뭐야? 신분증 같은 거야?”
“네, 언니. 유니온에서 인증하는 헌터 카드에요.”
“헌터 카드? 너 헌터였어? 그럼 마물도 잡아본 거야?”
정시아가 이능력자인 것은 알았지만 마물을 잡는 헌터인 줄은 몰랐기에 강서영은 놀라며 말했다.
그런 그녀의 반응에 정시아는 별것 아니라는 말투로 대답하였다. 사실 그녀에게는 별것이 아니기도 하였다.
“네, 언니. 가끔 휴일에 수도권 인근을 돌면서 심심풀이로 잡아봤어요.”
“그래? 와…… 마물은 TV에서나 나오는 거로만 생각했는데, 직접 잡았다니……. 대단하네. 어느 등급까지 잡아봤어?”
“B등급까지요. A등급 이상은 랜덤 웜홀에서 보기가 힘들어서 아직 A등급 마물은 본 적이 없네요.”
지금은 동 등급의 마물을 잡기 힘들다는 정설이 있지만, 정시아는 자신 있었다. 정 위급한 상황이 된다면 진혈을 깨우는 방법도 있었다.
“그렇구나…… 아까 다크 레드 카드라던데 그거 많이 높은 거야?”
“일단 마스터 급이 받을 수 있는 블랙 카드를 제외하고는 가장 높은 카드예요.”
“그래? 그럼 강훈이는 블랙 카드를 받았나? 전에 들어보니 마스터에 올랐다고 하던데.”
“네, 강훈 오…… 빠는 저번에 블랙 카드를 받아놨지요.”
유니온에서 발급하는 헌터 카드는 기존의 이능력 등급과는 약간 다른 측면이 있었다.
기존의 이능력 등급은 마나의 보유량 및 순간적인 마나 발현량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비전투 능력자 역시 등급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헌터 카드는 마물과의 전투를 벌일 수 있는 전투 요원, 하다못해 전투 지원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인원에 한하여 발급되는 카드였다.
즉, 이능력 등급이 높다고 해서 헌터 카드의 등급이 높은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일반인이라 해도 마물의 마정석을 가져온다면 카드를 발급해 줬기에 이능력자만이 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아무리 마나 무구를 이용한다 하더라도 일반인이 상대할 수 있는 마물에는 한계가 있어, 높은 등급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지만 헌터가 되는 것에는 제한이 없었다.
“블랙 카드는 몇 명이나 받은 거야?”
“글쎄요. 유니온에서 정확하게 공개하지 않아서 확인할 수는 없겠지만, 전 세계를 다 합쳐도 그리 많지는 않을 거예요.”
정시아의 말에 강서영의 표정이 저절로 밝아졌다. 자신의 남자가 능력이 있다는 이야기를 싫어할 여성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야기하며 산을 오르다 보니 어느새 웜홀 알림 앱에서 지정한 곳에 가까워졌다.
육안으로는 웜홀 발현에 대한 아무런 조짐도 볼 수가 없었지만, 앱에서 보이는 색깔이 점점 짙어지고 있어 웜홀의 발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아까 전의 위장복 사내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이곳에는 이미 먼저 온 헌터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미 10여 명의 헌터가 대기하고 있었는데, 모두 같은 복장은 아니었다. 5명은 검은 계통의 전투복이었고, 나머지 5명은 녹색 계통의 전투복이었다. 옷차림을 보니 아까 본 위장복의 사내는 녹색 전투복의 팀원인 것 같았다.
강서영 일행이 나타나자 검은 전투복의 헌터 중 가장 뒤쪽에 있던 헌터 한 명이 일행을 발견하고 외쳤다.
“여기 우선권은 우리 블랙 타이거팀에게 있소!”
웜홀 알림 앱이 등장하고 헌터 제도 등이 만들어진 지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아 모든 것이 체계화되어 있지는 않았다.
체계화되어 있지 않다는 말은 그만큼 허점이나 불합리한 점도 많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사냥을 끝낸 마물의 사체를 훔쳐가는 경우도 있었고, 사냥 이후에 더 큰 힘을 앞세워 사체를 강탈하는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는 사냥 중간에 뒤통수를 쳐서 헌터를 죽이는 경우도 벌어지곤 했다.
유니온에서는 웜홀 알림 앱을 공개하고 헌터 시스템을 만든 이유는 이런 약육강식의 세계를 조장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차원장의 통합 전에, 아니, 마나장의 통합 전에 좀 더 많은 이능력자를 양성하고 일반 세계와 이능 세계 간의 자연스러운 통합을 위해서 만든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범죄행위가 성행한다면 이능력자 양성은커녕 범죄자의 양산이 될 뿐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그래서 그런 일이 벌어질 경우, 큰 비용을 들여서라도 대지의 기억을 읽어 들여 범죄를 저지른 헌터를 끝까지 추적하여 처벌했다. 그리고 그런 처벌에 대해서도 이능 세계에 공개하였다.
몇 차례 그런 처벌이 행해지자, 이런 뒤치기 등의 불법적인 행태가 상당히 줄어들었다. 그러면서 점차 헌팅 시스템의 체계가 잡혀 나가기 시작했다.
유니온에서 별도의 시스템을 만들지 않아도, 헌터들이 스스로 체계를 세워나갔던 것이었다.
그중 가장 먼저 생긴 불문율이 웜홀에 먼저 도착한 순서대로 우선권을 주는 방식이었다. 이 우선권이 설정되면서 많은 문제가 사라졌기 때문에 대부분의 헌터가 이 불문율을 따랐다.
지금 이 헌터는 그 우선권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내 강서영 일행들의 차림새를 보고 다시 말을 이었다.
“아, 일반인이군.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기는 조만간 마물이 나타날 지역이오. 길을 잘못 들었다면 어서 물러나시오.”
마물을 만날 것에 따른 긴장감이었는지, 강서영 일행의 옷차림이 등산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음에도 그들을 단지 일반인으로 여겼다.
그래서 그런지 이어지는 정시아의 말에 어처구니가 없어서 실소가 나왔다.
“어차피 헌팅이 아니라 마물을 구경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니, 너무 신경 쓰지 마시길.”
“구경? 허…… 마물 사냥이 애들 장난인 줄 아나……. 아무리 경호원을 데려왔다고 해도 그렇지. TV가 마물 사냥을 너무 쉽게 보게 했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