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세귀환록-112화 (112/203)

# 112

현세귀환록

112. 공개(2)

지금 이야기하는 것은 KM재단에서 저번 달 발표한 10만 명 이상 수용 가능한 700만 평 규모의 보육 시설 설립에 관한 건이었다.

이곳은 단순 보육 시설이 아니라 보육원에서 유치원부터, 초, 중, 고등학교, 심지어는 대학교까지 다 소화 가능한 작은 교육도시를 건설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대규모 사업이었다.

사회에서 버림받은 아이들이 다시 사회에 진출할 때까지 모든 것을 다 해준다는 취지였다.

토목 공사와 상부 시설의 건설만 하더라도 5조 원 이상 규모의 사업으로 가히 국가적인 사업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 정도 규모의 자금을 투입하는 사업치고는 기대 수익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KM재단에서는 크게 복지, 장학 및 의료 세 분야에 집중하여 사업을 운용하고 있었다.

그중 의료 재단이야 수익성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라도 최소한의 운영이 가능한 수익 구조가 나오지만, 이런 보육 사업은 이야기가 달랐다.

학비를 받거나 지원금을 받는 것이 아니라면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행동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기업에서 이런 보육 사업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대부분은 기금을 조성해 기금에서 나오는 이자를 매년 쪼개 장학금을 지급하는 형식의 장학 사업을 추진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마스터 플랜상 고등학교까지만 무상 지원이고, 대학교는 학자금 대출의 형태로 진행되어 향후 사회에 진출하여 월급을 수령할 때 갚아나가는 등의 디테일은 있지만, 기본적으로 KM재단에서 내세운 청사진에서는 버림받은 유아나 아동에 대해서 영유아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는 모든 것이 무상이었다.

의식주부터 여가 활동까지 모든 것을 무료로 제공해 준다는 것이 이번 KM복지 재단의 마스터 플랜이었다.

지금 석진일은 이것의 진위를 묻고 있는 것이었다. 보육 시설은 명목상의 이야기이고 KM에서 진정 노리는 것은 그 명목을 토대로 부동산 투기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지금껏 부드럽게 대응하던 강서영이 공격적으로 나오는 것에 뜨끔한 것인지 석진일 역시 한 발 물러서며 이야기했다.

“아, 제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시각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저도 마스터 플랜은 생각했지만, 사실 일반적인 시선에서 보면 그 계획은 기업에서 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지 않습니까? 국가에서 진행한다 하더라도 재원 조달 등의 문제로 힘든 사업이다 보니 그런 말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저희도 주위의 우려 섞인 시선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벌써 토목 공사도 마무리 작업 중이고 이제 상부 시설을 올릴 계획입니다. 우선 영유아 시설부터 건설하기로 하였으니 빠르면 내년부터 1천 명 정도의 버림받은 영유아를 저희 기관에서 수용 가능할 것입니다. 향후에는 점점 규모를 늘려 1만 명 정도까지도 받을 생각이고요.”

“정말 대단하고 대담한 계획이네요. 부디 KM재단에서 처음 생각한 계획대로 되길 저 역시도 바랍니다. 오늘 대담은 여기에서 마치겠습니다.”

대담을 마치고 스튜디오를 벗어나자 깔끔한 정장 차림으로 서 있는 정시아가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사장님.”

“에이, 둘이 있을 때는 말 편하게 하라니까.”

강서영의 말에 정시아는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네, 언니. 근데, 방송하시는 거 보니 완전 멋져요. 말도 매끄럽게 잘하시고요.”

“그래? 지금은 좀 익숙해져서 괜찮은데 처음에는 엄청 떨었어. 호호.”

강서영이 KM재단의 이사장으로 취임한 이후 정시아가 그녀의 비서 겸 경호를 맡기 위해서 함께 하고 있었다.

이는 강민의 지시라기보다는 정시아의 요청에 따라 이루어진 일이었다.

몇 년 전에 이미 A+급에 오른 정시아는 이후 지속적으로 수련을 하였지만 가시적인 성과는 크게 없었다.

매너리즘에 빠진 것인지 단순 수련의 반복으로는 S급에 도달하는 것은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쯤, 정시아는 최강훈이 KM가드의 이사로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소식은 들은 정시아는 자신도 KM그룹에서 일을 하고 싶다고 강민에게 말을 하였다.

표면적인 이유로는 최강훈도 일하는데 자신도 일하고 싶다는 것이었지만, 실제 이유는 매너리즘에 빠진 수련에서 잠시 벗어나 일상적인 생활을 하면서 객관적인 입장에서 다시금 수련에 대한 감을 잡기 위해서였다.

강민 역시 그녀의 그런 바람을 읽고 강서영이 KM재단의 이사장으로 갈 때 정시아를 그녀 옆에 붙여준 것이었다.

이후 약간의 시행착오는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타인의 분위기를 잘 읽는 정시아는 빠르게 비서 업무에 익숙해졌고, 지금은 큰 어려움 없이 비서직을 수행하고 있었다.

사실 비서 업무라는 것이 모시는 사람의 성향에 따라서 업무 난이도의 고하(高下)가 정해지는 것인데, 그런 점에서 강서영은 매우 모시기 쉬운 상사였기 때문에 그녀를 수행하는 비서 업무 역시 매우 쉬운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정시아가 비서 업무를 하는 것에는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강서영 일행이 방송국 건물을 벗어나 주차장에 대기하고 있던 차량에 탑승하자, 강서영이 정시아에게 물었다.

“근데 시아야, 다음 일정은 뭐야?”

이제는 비서 업무도 제법 익숙해졌는지, 앞자리에 앉은 정시아는 수첩을 열어서 강서영의 다음 일정을 살폈다.

“KM드림시티 건설 현장 방문이 있어요.”

KM드림시티는 아까 대담에서 말한 보육 사업의 프로젝트명이었다. 가히 자그마한 도시라고 할 만한 공간이 건설되기에 시티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었다.

“아, 그렇지. 근데 공정률은 얼마나 되었다고 해?”

“아까 언니가 대담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토목 공사는 거의 끝났대요. 유리 언니가 설계도면대로 지반을 한 번 다듬어주셔서 토목 공사는 별문제가 없었고요. 이제 바로 상부시설 건축공사에 들어가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구나. 아무래도 상부 시설까지 마법으로 한 번에 올리는 건 좀 그렇지?”

“네, 유리 언니라면 충분히 가능할 테지만, 아무래도 주위 시선이 있으니까요. 토목 공사야 사람들이 잘 모르니 마법으로 시행해도 괜찮았지만, 건물 같은 걸 마법으로 올린다면 너무 표시가 나잖아요.”

이제는 강서영 역시 이능 세계에 대해서 상당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

강민과 유리엘을 제외하고라도, 주위에 최강훈과 정시아, 그리고 한수강과 유키까지 많은 이능력자가 있었고, 강민 역시 더 이상 그녀에게 감추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가 알고자 하는 한 자세히 내용을 설명해 주었고, 지금은 그녀 역시 유리엘에게 마법을 배우고 있었다.

다만, 열의를 갖고 전력으로 노력하는 수준은 아니었고, 단지 호기심의 해소 차원으로 가볍게 배우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녀 스스로도 자신의 역량을 파악하고 있었기에 마법을 배우는 것에 큰 욕심을 내지 않아서 진전은 빠르지 않았다.

그렇다 해도 몇 년간 마나 집적진으로 마나가 쌓여 있었기에, 큰 노력 없이도 1년 만에 1서클을 마스터하고 2서클에 입문한 상태였다.

강서영과 정시아를 태운 차량이 서울을 벗어나 경기도로 진입하였다. 30여 분 정도만 더 이동하면 건설 현장이 나올 것이었다.

대규모의 토지를 매입하여 사업을 진행하는 터라 사업 현장까지는 인적이 드문 길을 한참이나 달려가야 했다.

그리 좋지 않은 노면에도 고급 세단 차량임을 알려주기라도 하는 듯 큰 흔들림 없이 부드러운 주행이 이어지고 있었다.

삐, 삐, 삐.

현장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차량에 설치된 내비게이션에서 경고음이 울리며 안내 음성이 나왔다.

“반경 3㎞ 안에 웜홀이 발현될 예정입니다.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발현까지 예상되는 시간은 20분, 오차 범위는 5분입니다.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내비게이션은 운전기사가 경고창을 닫을 때까지 지속적인 경고음을 울렸다.

내비게이션의 경고에 휴대전화를 꺼내든 정시아는 익숙한 듯 앱을 작동시켜 웜홀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더니 강서영에게 말했다.

“언니, 앞쪽에 웜홀이 뜨려나 봐요.”

“그래? 이야기로만 들었지 웜홀 발현은 처음 보네. 신기하다. 등급은 뭐야?”

“C급 정도라네요. 어때요? 구경해 볼래요?”

“구경? 내가 구경해도 될까? 위험하지 않을까? 마물은 위험하다던데…….”

강서영이 아는 마물이라고는 뉴스나 다큐 등 티비에서 본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티비에서는 그런 마물들을 극도로 위험한 존재로 나타내고 있었기에 마물을 본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 주변에는 가히 괴물이라고 할 만한 능력자들이 즐비하여 있지만, 강서영이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일이 드물었기에 일반인에 가까운 그녀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호호, 위험하긴요. C급이면 저 혼자도 충분히 잡는 걸요. 뭐.”

“그래? 그럼 한 번 가 보자. 매번 TV에서 나올 때마다 궁금했거든. 실제로 어떤지 말이야.”

“그래요, 언니. 들었지, 마일즈? 웜홀 쪽으로 가자.”

“네, 실장님.”

강서영의 차량은 운전하는 기사 역시 이능력자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과거 정시아의 클랜원이였고 현재는 KM가드 스페셜팀의 멤버 중 한 명이었다.

다만 과거의 관계와 상관없이 지금은 강서영의 운전기사였고, 정시아가 강서영의 비서 실장이었기에 그녀에게 실장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였다.

6개월 전 유엔에서는 엄청난 이야기를 세상에 공개했다. 웜홀의 존재와 타 차원에서 발현하는 마물의 존재에 대해서 밝힌 것이었다.

단지 그 존재만 밝혔다면 일반 세계에는 패닉이 일어났을 것이기에 그 마물을 막을 수 있는 이능에 대한 정보도 일부 공개했다.

정보 공개의 루트는 유엔이었지만, 실상은 유니온에서 정보를 공개한 것이었다. 그리고 유니온은 단순히 정보만 공개하지 않았다.

유니온에서는 현재 급증하는 각성자와 마나 적합자를 잡기 위해서 정보 공개와 동시에 이능에 대한 자질이 생겼는지 판단하고 싶다면 각국의 유니온 지부를 찾아오라고 공표했다. 이능력자로서의 자질을 테스트해 준다고 말이다.

일반 세계에 대한 경고와 잠재력 있는 이능력자 모집의 두 가지 토끼를 한 번에 잡고자 한 것이었다.

이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일반 세계에는 큰 혼란이 있었다.

이능력자들이 일반인들을 지켜준다고는 하지만 지금까지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인류를 위협할 수 있는 존재들이 나타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일부 사이비 종교에서는 종말에 대한 이야기도 빈번하게 나왔다.

하지만, 각국의 정부는 사전에 유엔과 유니온에서 들은 이야기가 있었기에 그 혼란을 빠른 속도로 잠재웠다.

어차피 사회의 최고위 지배층에서는 이미 이능에 대한 정보가 있었기에 그 혼란의 여파는 적을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유니온에서 웜홀에 대한 알림 앱을 공개하여 모두가 웜홀의 발현 정보를 알 수 있게 하였다.

유니온은 앱에 관한 소스 코드까지 모두 공개하고 비상업적으로 쓴다면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앱 공개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웬만한 휴대전화나 내비게이션 등에는 모두 웜홀 알림 앱이 기본으로 들어 있었다.

즉, 일반인들은 마물을 피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또한, 유니온에서는 마물에 대한 두려움을 희석시키기 위하여 이능력자들이 마물을 처리하는 영상을 적극적으로 공개했다.

이로써 일반인에게 웜홀 및 마물 출현에 따른 위험이 거의 사라졌다.

때문에 일반인의 소요는 사라졌고, 그들은 이런 마물과 이능에 대해서 마치 다른 세상의 일처럼 여길 수 있게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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