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세귀환록-110화 (110/203)

# 110

현세귀환록

110. 회의(2)

의장은 벤자민이 보고한 내용을 토대로 차원 교차에 대한 내용을 위원들에게 설명하였다.

의장의 설명이 끝나자 지금까지 가만히 듣고만 있던 은빛 갑옷에 검붉은 망토를 걸친 중년의 백인이 입을 열었다.

“의장님은 이 이야기의 신뢰도를 어느 정도 수준으로 보십니까?”

“사실 길어야 5년이라는 시간까지는 모르겠으나, 나 역시 마나의 성질이 미묘하게 바뀌고 있는 것에 의아함을 느끼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차원 교차에 대한 이야기는 꽤나 신뢰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소.”

“음…….”

“그리고, 퍼니셔가 지적한 대로 최근에 비슷한 마물의 출현 빈도가 급격히 높아졌다고 하오. 무수한 차원 중에서 특정 차원과 연결 빈도가 높아진다는 것은 그 의견을 뒷받침해주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의장의 말에 동의하는지 여기저기서 고개를 끄덕이는 위원들이 많았다. 그런 위원들의 모습을 보며 의장은 말을 이었다.

“또한, 최근 유니온에 가입한 각성자의 숫자가 같은 기간에 대비하여 5배가 넘었소. 우리 올림포스에서도 기존 마법사들의 역량이 눈에 띄게 상승한 것은 물론이고, 새롭게 마법사가 된 회원의 숫자도 꽤 늘었소. 다른 곳들 역시 그랬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어떠시오?”

의장이 좌중을 보며 물어보자, 대부분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위원회의 위원이라고 하지만 각 단체의 수장이기도 한 그들은, 자신들의 단체에 속한 이능력자들의 세부적인 숫자까지는 말해줄 수 없었다.

그러나 의장의 말이 맞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자신의 의견을 보였다.

“역시 다들 비슷한 상황인 것 같구려. 어쨌든 이 차원 교차에 대한 말은 상당히 신뢰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소. 문제는 교차된 차원에서 나타나는 마물이겠지. 안 그래도 지금 웜홀의 발현 빈도가 비정상적으로 많다는 것은 다들 인지하고 있으실 것이오.”

웜홀의 발현 빈도 이야기에 쿠르타를 입은 중년인이 말을 받았다.

“맞습니다, 의장님. 사실 최근에는 놓치는 웜홀도 있어 유니온의 협조를 얻을까 생각 중입니다.”

일본의 경우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보통 위원회의 멤버가 있는 지역에서는 유니온의 세력은 크지 않았다. 관례상 이능 세계에 대한 우선권 역시 유니온보다는 위원회 멤버가 가져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쿠르타를 입은 중년인은 이런 관례를 무시하고 유니온의 협조를 얻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허, 그 정도요? 리그베다도 정예 요원들이 꽤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호트리께서 약한 소리를 하시는 것 아니오?”

의장의 말에 호트리는 쑥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고정 웜홀이야 충분히 지켜내는데 최근 들어 우후죽순처럼 발생하는 랜덤 웜홀까지 완전히 커버하기는 힘든 상황입니다. 아무래도 절대적 면적이 있으니 지금의 인력으로는 다소 버거운 것도 사실입니다. 다만, 의장님 말씀대로 신규로 수행에 나서는 적합자들이 많고, 기존의 수행자들의 실력 또한 빠르게 오르고 있으니 퍼니셔가 말한 5년 안에는 안정권으로 돌아갈 수 있을 듯합니다.”

호트리의 말에 파라오 가면이 말을 받았다.

“웜홀의 증가만이 문제가 아니지요. 최근 나타나는 마물은 E등급, 아니, F등급의 마물조차 하루 이상 살아남는 것 같더군요. 과거에는 F등급 같은 마물은 한 시간도 채 버티지 못하고 마나 충돌에 사라져 버렸는데 말입니다.”

파라오 가면이 자신의 말을 거드는 것 같자, 호트리는 반색하며 말했다.

“제사장님의 말이 맞습니다. 그게 문제지요. 예전 같으면 저등급 마물이 나오는 이런 랜덤 웜홀은 신경 쓸 필요도 없었는데, 이제는 저등급 마물조차 상당한 시일을 살아남으니 랜덤 웜홀까지 다 챙겨야 해서 더 힘든 것 같습니다.”

한 명이 말을 꺼내기 시작하자 몇몇이 동조하며 각자의 어려움을 표했다.

아무래도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는데, 먼저 선수를 친 위원이 있다 보니 좀 더 편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 같았다.

한동안 위원들의 이야기를 듣던 의장이 입을 열었다.

“위원님들의 상황은 잘 알겠습니다. 아무래도 올림포스에서 커버하는 지역의 면적이 좁다 보니 이런 상황까지 자세히 알지는 못했군요. 그렇다면 이것이 상황을 개선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군요.”

의장은 말과 동시에 8개의 손바닥만 한 구체를 허공에서 꺼내어 각 위원의 앞으로 보냈다. 뜻밖의 물건을 받은 위원들은 의아해하며 의장에게 물었다.

“의장님, 이게 뭡니까?”

“웜홀 탐색기입니다.”

의장의 말에 호트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어차피 고정 웜홀은 이런 것 없이도 찾을 수…… 아! 랜덤 웜홀도 찾을 수 있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고정 웜홀뿐만 아니라 랜덤 웜홀 역시 출현 세 시간 정도 전에 조기 발견이 가능한 물건입니다. 세 시간이면 웜홀이 출현하기 전에 미리 대기했다가 마물을 잡을 수 있겠지요. 또한 나타난 마물에 대해서도 이 탐색기를 통해 파악할 수 있으니 출현지에서 놓친다 하더라도 대기팀이나 척살팀이 금방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허…… 이런 것까지 개발하다니 올림포스의 기술력은 정말 대단하네요.”

호트리가 감탄하며 한 말에 의장은 쓴웃음을 지으며 위원들에게 말했다.

“안타깝게도 이것은 올림포스의 기술력은 아닙니다.”

“그럼 어디서 이런 물건이?”

“유니온에서 나온 물건이죠. 정확하게 말한다면 이것은 퍼니셔가 제공해 준 정보를 알려주는 단말기에 불과한 물건입니다.”

그랬다. 그들이 받은 탐색기는 유리엘이 만든 마나 위성에서 나오는 정보 중 웜홀에 관한 정보 및 마물에 관한 정보를 수신할 수 있는 단말기였다.

강민에게 차원 교차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벤자민이 가장 우려한 것은 웜홀의 폭증과 웜홀에서 발생한 마물이 장기간 살아남는 문제였다.

특히, 고정 웜홀이야 어느 정도 커버가 되는 상황이지만, 폭증하는 랜덤 웜홀은 수많은 유니온의 멤버로도 다 커버하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벤자민은 유리엘과 대화 중 이런 사정에 대해서 토로하듯이 말했고, 유리엘이 웜홀의 출현 미리 알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말로 벤자민을 놀라게 했다.

그 결과 나온 것이 지금 위원들이 보는 탐색기였다. 원리 자체는 간단했다. 마나 위성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수많은 정보 중에서 웜홀과 마물에 관한 사항을 별도의 마나 파장으로 수신할 수 있는 마나 술식을 부여한 것뿐이었다.

유리엘은 친절히 양산화가 가능하도록 이 세계의 마나 술식으로 재구성하여 벤자민에게 알려주었고, 벤자민은 유리엘의 동의를 얻어서 위원회에도 이 탐색기를 제공한 것이었다.

의장의 간단한 설명을 들은 위원들은 한 번 더 탐색기를 보며 감탄의 표정을 지었다.

위원들의 표정을 본 의장은 탐색기의 사용법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했다.

사용법은 별것 없었다. 지구본 형태의 홀로그램을 움직여 자신이 보려고 하는 지역으로 확대하면 끝이었다.

고정 웜홀을 푸른색의 원으로 표시되었는데 이것이 활성화될 때는 점차 붉은색으로 색이 변한다고 하였다. 랜덤 웜홀의 경우에는 처음에는 옅은 분홍색으로 모습을 드러냈다가 완전히 붉은색으로 변하게 된다면 웜홀이 열리는 것이라고 하였다.

위원들은 한참 동안 탐색기를 시연해 보았다. 그중 파라오 가면을 쓴 제사장이 문득 고개를 들어 의장에게 물었다.

“의장님, 혹시 쇼군 때의 인식 장애 마법은 해제하셨습니까?”

제사장의 질문에 의장은 다시금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쉽게도 아직이오. 물론 그것을 연구하면서 내부적으로는 많은 성과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아직 해제하지 못했음은 자명한 사실이지요. 퍼니셔의 그 말처럼 하늘 밖에 하늘이 있음을 절감했소이다. 이 탐색기 역시 어떠한 원리를 통해서 웜홀의 출현을 미리 알 수 있는지 본인의 능력으로는 파악하기 힘들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군요.”

의장의 한탄 섞인 말에 위원회의 분위기가 순간 숙연해졌다. 이능 세계를 장악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는 위원회의 위원들이었고, 그중에서도 위원회의 의장은 다른 상임위원들과 함께 독보적인 존재였다.

특히, 마법에 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다고 하는 이 의장이 파악하기 힘든 마법을 쓴다는 것은 퍼니셔가 정녕 하늘 밖에 하늘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당연한 제의가 제사장에게서 나왔다.

“이런 것까지 유니온에 제공한다는 것은 퍼니셔가 유니온이나 우리 위원회와 함께할 수 있다는 이야기 아닐까요? 물론 쇼군의 일로 처음부터 좋은 사이는 아니었습니다만, 이런 정보와 기술을 전해주는 것을 보니 화해의 제스쳐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어차피 자리도 비어 있는데 퍼니셔를 위원회의 위원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제사장은 적극적인 모습으로 퍼니셔를 위원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자 하였다. 아무래도 웜홀 탐색기를 무상으로 제공한 퍼니셔에 상당한 호감을 느낀 것 같았다.

그런 제사장의 모습에 의장은 이런 말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 냉큼 대답하였다.

“물론 저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퍼니셔는 전면에 드러날 생각이 전혀 없다고 하는군요. 필요한 경우에만 이렇게 유니온을 통해서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겠다고 합니다.”

“혹시 의장님은 퍼니셔의 정체를 알고 계십니까?”

“아닙니다. 다만 이번에 총재가 되는 벤자민은 퍼니셔의 정체를 알고 있는 듯 보였으나, 밝힐 수 없다고 하더군요.”

“밝힐 수가 없다니요?”

“벤자민이 전한 퍼니셔의 전언에 따르면 그의 정체를 밝히려고 함부로 접근한다면 다시 한번 하늘 밖에 하늘이 있음을 알려주겠다고 말했다고 하는군요.”

하늘 밖에 하늘이 있다는 말은 과거 헤이안을 쇼군을 처리할 때 썼던 말이었다. 즉, 접근한다면 죽음으로 응징한다는 협박이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건방지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지만 아무도 섣불리 그런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이능계를 지배한다고 자부하는 위원회의 멤버들이었으나, 쇼군을 한순간에 척살하고 원리도 알기 힘든 웜홀 탐색기 만든 퍼니셔의 능력을 생각하니 쉽게 상대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것은 비상임위원의 이야기였고 상임위원의 생각은 달랐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생각을 내색하지는 않았다.

의장은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서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어쨌든 퍼니셔의 도움으로 앞으로 웜홀에 대한 대비는 좀 더 확실히 할 수 있겠군요. 다만, 이제 장기적으로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정장 차림의 30대 백인이 장기적이라는 의장의 말에 의아해하며 질문을 던졌다.

“장기적이라니 무슨 말씀입니까?”

“비록 퍼니셔의 도움으로 웜홀의 출현을 알 수 있게 되었기는 하지만 그의 말대로라면 이제 늦어도 5년 후면 마나장이 통합된다고 하지 않았소. 그렇게 된다면 더 이상 마나 충돌은 없겠지요. 마나 충돌이 없다는 말은 이제 마물이 자연 소멸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러니까 행여 놓치는 웜홀이 있다면 마물이 일반인에게 피해를 주는 일도 발생할 것이고, 언제가 될지 모르는 차원장까지 통합된다면 이제 이능 세계에 대해서 일반인에게 감추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 되겠지요.”

의장과 정장 남자와의 이야기를 끊으며 성격 급한 맹주가 말을 꺼냈다.

“당연한 이야기는 그만하고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것이오?”

“참 성격 급하시오. 결론적으로 지금까지는 철저하게 감춰왔던 이능 세계에 대한 노출을 늘려야겠소. 즉, 차원 교차가 발생했을 때를 대비하여 지금부터라도 천천히 일반인들에게 웜홀과 마물, 그리고 이능 세계에 대해서 알려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야 일반인들의 소요를 최대한 막을 수 있을 것 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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