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세귀환록-108화 (108/203)

# 108

현세귀환록

108. 소문(4)

[민, 역시 반성은 없네요.]

[애초에 마나 성향을 보니 그럴 것 같았어. 저열한 속물근성과 왜곡된 자기애를 가진 타입이군.]

[그러게요. 그런 성향을 내부적으로만 갖고 있다면 문제 될 것은 없지만, 자신보다 나은 사람들에 대한 질투와 파괴적 욕구를 풀어내는 고약한 성품까지 있으니. 언젠가는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도 다치게 할 타입이네요. 어떻게 할 건가요? 소멸은 좀 과한 것 같고…….]

어차피 강민은 법적으로 처벌할 생각은 없었다. 법적으로 처벌해 봤자 기껏해야 벌금형 정도였다.

물론 파면 역시 가능할 것이나, 그녀의 외모나 학벌 정도면 얼마든지 다른 직장을 구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렇기에 강민은 근본적인 징벌을 생각하고 있었다. 다만 유리엘과 마찬가지로 강민 역시 소멸은 그녀가 저지른 잘못에 비해 너무 무거운 징벌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 정도까지 할 필요는 없지, 그냥 속물근성과 왜곡된 자기애의 원천을 없애버리자. 외모에서 주는 호감을 비호감으로 바꿔 버리면 될 것 같은데.]

[호감을 비호감으로라……. 저주면 간단하긴 한데……. 음…….]

저주 마법이면 그녀를 보는 사람들이 그녀가 마치 괴물처럼 느껴지게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된다면 회사 생활은 물론이고 일상생활마저 불가능할 것이었다.

어쩌면 죽는 것보다 못한 삶이 될 수도 있었다. 아마 정신병으로 자살해 버릴 가능성이 컸다.

결과적으로 여기서 소멸시켜 버리는 것보다 더 지독한 처벌일 수도 있었다.

분명 잘못을 저질렀고 벌을 받아야 할 것이지만, 저주는 다소 과한 징벌이라는 생각에서 잠시 유리엘의 망설임이 있었다.

생명의 존중과 같은 의미는 아니었다. 단순히 필요의 문제였다.

만일 신애린을 소멸시킬 필요가 있었다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처리해 버렸을 테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그녀를 망설이게 한 것이었다.

그런 그녀의 생각을 읽었는지 강민이 유리엘에게 말했다.

[아르테 차원에 있던 신성 마법을 사용한다면 괜찮지 않을까?]

[아르테! 아, 딱 좋네요. 호호, 징벌을 생각하다 보니 그쪽으로는 생각을 못 했네요.]

강민이 말한 마법은 과거 있던 차원에서 성직자들이 주로 쓰는 마법으로 내적 아름다움을 밖으로 표출하는 마법이었다.

사실 그 성직자들은 그것이 마법인지 몰랐다. 교단의 세례를 받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상시적으로 적용되는 마법이었기 때문이었다.

파문을 당하거나 신을 버리지 않는 이상은 신의 의지가 그 마법이 유지되도록 하였다.

그래서 아르테 차원의 성직자들은 신심이 깊을수록 모두에게 호감을 주는 외모를 가질 수 있었다.

지금 강민이 말하는 것은 이것을 역이용하는 것이었다. 그 마법을 통해서 지금 신애린 내부의 마나 성향이 외적으로 드러난다면 그녀의 모습은 추하게 느껴질 것이었다.

저주와 같이 괴물처럼 보이는 것은 아닐 것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비호감을 자아내는 기질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

신성 마법이다 보니 저주처럼 과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신애린이 왜곡된 마음을 먹고 있긴 했지만, 강간, 살인 등을 저지르는 범죄자와 같이 구제받지 못할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기에, 상종 못 할 끔찍한 사람 정도로까지는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었다.

다만, 마법이 발현된다면 그녀가 지금껏 외모로 인해서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부정될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지금 그녀의 마음 상태라면 호감보다는 비호감을 줄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마법은 상시적으로 작용하고 있으나 만일 그녀가 개과천선을 한다면 다시금 본연의 화려한 외모로 주위 사람에게 호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상태를 본다면 그렇게 되기란 요원할 것 같았다. 여전히 저열한 시기심이 그녀의 마나 성향에 잘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정을 내린 유리엘은 신애린이 알아차릴 수 없게 마법을 시전했다.

유리엘의 마법은 신애린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머리 위로 살며시 내려앉았다.

신성 마법을 모태로 한 마법이라 따스한 기운을 품고 있었는데, 신애린을 뜻밖의 따스함에 잠시간 어리둥절하였다.

그리고 마법이 걸렸다는 것을 확인이나 시켜주듯, 지금까지 절로 호감이 생기던 신애린의 모습이 한눈에도 비호감으로 변했다.

이목구비 등의 외모는 그대로였지만, 왠지 밉살스러워 보였고 가까이하기 싫어 보였다.

마법이 걸린 것을 확인한 강민은 신애린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알겠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처음이라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나가도 좋습니다.”

강민이 용서해 준다는 식의 말을 하자 신애린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모든 것이 자신의 생각대로 되었기 때문이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 * *

별일 없이 이번 일이 마무리되어 기분 좋게 부서로 돌아온 신애린은 자리에 앉아 업무를 시작했다.

‘오늘은 여비 지급만 처리하면 별다른 일은 없으니까. 퇴근하고 홍보팀에 김 대리랑 술 한잔할까?’

최근 홍보팀에 있는 김형식 대리가 그녀에게 작업을 걸어왔다. 처음에는 그리 뛰어나지 않은 외모의 김형식에게 별로 관심이 없었으나, 다른 선배에게 듣기에 부친이 강남에 빌딩을 가지고 있는 알부자라는 말에 약간 관심이 생겼다.

어느 정도의 재산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퇴근 후에 자리를 만들어 볼까 생각하는 신애린이었다.

학창시절에는 이른바 로열패밀리를 꿈꾼 그녀였지만,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했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그녀가 로열패밀리를 만나는 것은 드라마 같은 상황이 현실화되거나 로또에 당첨되는 것만큼 어렵단 것을 인정하였다.

결국 직장 생활 3년 만에 재벌 2세나 3세를 노리는 처음 목표에서 소위 말하는 부잣집 아들 정도로 눈이 낮아졌다.

이번에 김형식은 그런 그녀의 커트라인에 들어오는 인물이었다. 물론 강남에 있는 빌딩이 클 때의 이야기였다.

이런 생각에 빠져 있는지라 신애린 주위에서 그녀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지금 그녀의 주위 사람들은 의아함을 더 많이 느끼고 있었다. 단적으로 옆에 앉아 있는 김광석 과장만 하더라도 회장실에 다녀오기 전까지의 그녀 모습과 지금 그녀의 모습이 달라져서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외모가 달라졌다기보다 풍기는 분위기나 기질이 달라졌다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었다.

‘이상하네. 아까 전까지 그렇게 예뻐 보이던 애린 씨가 지금은 왜 이렇게 재…… 수 없어 보이지?’

노총각인 김광석은 신애린에게 마음이 있었고, 그녀의 업무에 대해서 대부분 도와주고 있었다.

처음에는 부담스러워 했던 신애린도 지금은 당연한 듯 김광석에게 업무를 떠넘기고 있었다.

만일 후임에게 자기의 업무를 떠넘긴다면 욕먹어 마땅한 일이겠지만, 선배가 나서서 후임의 업무를 도와주는 것은 미담 사례라 할 수 있었다.

물론 김광석이 흑심이 있어서 도와주고 있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오늘따라 김광석은 그녀가 업무 협조를 부탁하는 데 들어줄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았고, 심지어는 짜증마저 났다.

처음에는 그런 자신의 모습에 의아함을 느끼던 김광석은, 한동안 가만히 생각하다가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아! 내 콩깍지가 벗겨진 것이군. 그래, 3년을 이렇게 노력했는데 소용없다면 콩깍지가 벗겨질 만도 하지. 어차피 신 대리는 나한테 관심도 없는데 잘됐네.’

공교롭게도 김광석이 결론을 내린 직후, 신애린이 또 다른 업무를 부탁했다.

“김 과장님, 출장비 점검하는 것 좀 도와주시지 않겠어요? 제가 엑셀을 잘 다룰 줄 몰라서요.”

평소 같으면 당연히 나서서 도와준다고 말할 김광석에게서 뜻밖의 말이 나왔다.

“신대리, 회사에 온 지 3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그거 하나 제대로 못 해서 되겠어? 그리고, 요즘은 대학생들도 다 다루는 엑셀인데 뭐 한다고 그것도 못 해? 혼자 공부해서 점검해 봐!”

“아, 네…….”

신애린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녀만을 바라보던 순둥이 김광석의 질책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뭐야? 김 과장 오늘 왜 이래? 팀장한테 깨지기라도 했나? 아니, 깨졌다고 해도 나한테 이럴 사람이 아닌데? 뭐지?’

그녀의 당황은 이제 시작이었다. 팀장에게 간단히 결제받으러 갔을 때도 면박을 당했다.

“신 대리! 이게 뭔가 이런 공문에 오탈자라니. 내가 몇 번 수정해 줬더니 그걸 당연하게 아는 거야 뭐야? 저번에 지적했으면 이번에는 당연히 고쳐와야 할 거 아냐!”

“죄송합니다. 팀장님…….”

매월 나가는 간단한 공문이다 보니 저번 달의 공문을 복사해서 붙이다가 일어난 실수였다.

그렇지만 팀장 역시 신애린에게는 한없이 자상하기만 했었고, 이 정도 실수로 이런 면박을 주는 것은 과했다.

신애린은 오늘따라 이상하다는 생각만 자꾸 들었다.

‘일진이 사나운가……. 아침에 일은 잘 풀렸는데 왜 이러지?’

신애린은 팀원들도, 다른 팀의 직원들도 협조를 안 해주는 전례 없는 힘든 하루를 보냈다.

퇴근 시간까지도 일진이 사납다고 생각하며 아까 메신저로 약속을 잡은 김형식을 만나러 나갔다.

김형식은 그녀에게 잘 보이고 싶었는지 강남에서도 비싸기로 유명한 일식집에 예약을 해두었다.

퇴근 시간이 맞지 않아 그가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는 동안에도 불친절한 택시기사 때문에 또다시 기분이 상한 그녀는 일식집에 들어가서 김형식의 이름을 댔다.

신애린이 안내를 받아 김형식이 있는 방으로 들어간 순간 그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어, 어서 와요. 애린 씨.”

반기려고 하던 표정이 굳어져서 어색해진 표정이었다.

“아, 네. 김 대리님.”

역시 분위기는 이상했다. 몇 주간 그녀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했던 김형식이였지만 오늘은 왠지 틱틱거리며 툴툴거렸다.

식사 내내 유쾌하지 않은 분위기가 이어져 2차는 가지도 못하고 1차에서 끝이 났다.

원래대로라면 당연히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줬을 김형식은 급한 약속이 있다면서 먼저 차를 몰고 가버렸다.

“아! 진짜! 오늘 왜 이래!!”

신애린의 수난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가족들마저도 그녀를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

한국대를 나와 KM그룹에 들어간 신애린은 가족들의 자랑이었다. 더군다나 예쁜 얼굴까지 가졌으니 그야말로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재원이었다.

언제나 그녀에게 자상하고 자애롭게 대해주던 어머니였는데, 그리고 그녀의 말이라면 뭐든 따라주던 동생이었는데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어머니는 오늘따라 그녀에게 트집을 잡았고, 동생은 말끝마다 말대꾸했다.

회사 사람들은 물론이고 가족들까지 자신을 좋지 않게 대하는 모습을 보이자, 그녀는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 속풀이를 하고 싶어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 역시 그런 반응이었다.

더 이상 그녀에게 호의를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껏 그녀가 살아왔던 세상과 전혀 다른 세상에 있는 것만 같았다. 호의로 가득 찬 세상에서 적의로 가득 찬 세상으로 온 세상이 변한 것 같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신애린은 스트레스성 위염까지 생겼다. 그렇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았고 지속되는 스트레스에 약을 먹어도 낫지 않았다.

그리고 그 스트레스가 심해져 위염이 위궤양으로 번졌다. 결국 그녀는 휴직계를 내고 입원을 하고 말았다.

그녀가 자신의 모습을 직시하고 마음을 고쳐먹지 않는 이상, 신애린에게 더 이상 호감을 느끼고 나타날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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