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
현세귀환록
107. 소문(3)
장찬영은 갑작스러운 강서영의 말에 어안이 벙벙했다.
“회, 회, 회장님이 네 오빠라고?”
“응, 말 못 해서 미안해. 비밀로 하고 다녔거든.”
“허…….”
장찬영은 말을 제대로 잇지도 못하였다. 너무나도 뜻밖의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장찬영의 모습에 강서영은 간단히 상황을 설명하였다. 장찬영은 그녀의 말에 다소 섭섭하기는 했지만, 상황 자체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역시 과거 자신이 태성그룹의 자제임을 알고 태도를 달리한 친구들이 많이 있었기에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근데 세나는 알고 있어?”
“그게…… 세나는 알고 있어. 근데, 세나는 오빠한테 말하고 싶어 했는데, 나랑 우리 오빠가 부탁해서 그런 거니까 뭐라고 하지는 말아줘.”
김세나 역시 알고 있다는 사실에 장찬영은 좀 더 섭섭한 기색을 보였지만, 이내 납득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마지막 말에는 더 이상 그 섭섭함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장 실장님도 알고 계셔.”
“뭐? 아버지도?”
* * *
장찬영은 장태성에게 자신에게 말해주지 않은 것을 따지러 갔지만, 그럼 모든 회사 일을 그에게 말해줘야 한다는 것이냐는 꾸지람만 듣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사적인 일로도 보일 수 있었지만 어찌 되었든 업무상에 취득한 보안등급이 필요한 정보였다.
장태성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보안을 지켜야 할 필요가 있는 사항이었고, 그것은 아들이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원칙주의자인 장태성다운 행동이었다.
이후 강서영은 퇴근할 때까지 급한 업무에 대해서는 장찬영에게 인수인계했고, 부서 사람들에게는 몸이 안 좋아서 1주일간 휴가를 낸다고 말했다.
그리고 오늘도 몸이 좋지 않아 오후 반차를 내고 먼저 들어간다고 했다. 주위에서는 당연히 그녀가 소문 때문에 쉬는 것이라고 판단을 했다.
하지만 그녀의 퇴근 후 10분 만에 상황은 달라졌다. 회사에 공고가 났기 때문이었다.
공고문의 내용은 두 가지였다. 기획실 대리 강서영의 의원 면직 및 KM재단 이사장 교체의 건이었다. KM재단 이사장은 김유리에서 강서영으로 교체한다고 공고가 났다.
당연히 회사는 난리가 났다. 강민의 지시를 통해 강서영의 정체에 대한 함구령 역시 풀었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강서영이 강민의 동생이라는 사실이 전 회사에 퍼져 나갔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마다 강서영의 이야기가 나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10층의 휴게실에서도 강서영 사건을 주제로 뒷담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야, 너 그 이야기 들었어? 기획실 강 대리가 회장님 동생이라며?”
“그래, 나도 이야기 들었어. 그럼 그 소문은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되기는 뭐가 어떻게 돼? 새빨간 거짓말인 거지. 지금 들리는 이야기로는 완전히 반대 상황이라던데?”
“반대 상황이라면?”
“최 이사가 강 대리를 꽂아준 것이 아니라, 강 대리가 최 이사를 꽂아준 거라고.”
“아…… 그럴 수도 있겠군.”
“그럴 수 있는 게 아니라 그렇다더라. 강 대리가 발령 난 것을 보고 최 이사가 직접 이야기했다는 말도 있더라고.”
“그래? 허…… 참. 회장님 동생이 왜 그리 오랫동안 일반 직원으로 있었던 거지?”
“난들 알겠냐. 아무튼, 이번에 소문을 주도적으로 옮긴 사람들은 몸 좀 사려야겠어. 감사팀이 조사 중이라는 말도 있더라고.”
안경을 낀 중년인이 감사팀의 조사라는 이야기를 하자 같이 이야기를 나누던 곱슬머리의 중년인이 곤란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 이런…….”
“뭐야? 자네도 그 소문을 옮긴 거야?”
“아, 아니…… 그, 그게…….”
“그게 뭐? 설마 진짜 그런 거야? 어이구. 어쩌려고 그랬나, 이 사람아.”
“아니, 그냥 메신저에 루머가 들어왔기에 알던 사람들한테 몇 번 전달 정도만…….”
“그게 옮긴 거지 뭔가. 어휴……. 아무튼 조심하게 분위기가 좋지 않아. 회장님께서 벼르고 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더라고.”
“하긴 회장님 동생의 일이니…….”
“그러게 말이야. 조심 좀 하지 그랬어. 강 대리, 아니, 이사장님 평소 평판을 봤으면 헛소문이라는 걸 알았을 텐데 말이야.”
여기저기서 위와 같은 대화가 퍼져 나갔다. 전의 소문을 접했고, 그 소문을 믿었던 사람들은 부끄러움을 느꼈고, 그 소문을 퍼뜨린 사람들은 혹시나 자신에게 불이익이 오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특히 그 인사 발령 공고를 본 직원 중 한 직원의 안색이 파랗게 변했다. 총무팀의 신애린 대리였다.
신애린과 강서영의 관계는 신애린이 일방적으로 강서영을 싫어하는 관계였다.
강서영은 단지 입사 동기 정도로 신애린을 생각하며 그녀에 대한 별다른 감정이 없었으나, 신애린은 강서영을 무척이나 싫어하고 있었다.
그 감정은 연수원 때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그녀가 마음에 두었던 장찬영이 강서영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애린이 몇 차례나 접근했지만 강서영에게 마음을 둔 장찬영은 그녀의 고백을 거절했었다. 물론 장찬영은 강서영이 아니었더라도 신애린과 만날 마음은 없었지만, 신애린은 그것까지는 알지 못하였다.
어쨌든 그때부터 신애린은 강서영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다만, 지금까지는 서로 다른 부서에 있어 그간 엮일 일이 별로 없었다. 신애린이 강서영을 싫어하는 감정은 짝사랑과도 같은 혼자만의 일반적인 감정이었다.
그런데 저번 주 자신이 그렇게 싫어하는 강서영이, 신임 최강훈 이사의 여자 친구라는 사실을 알게 된 신애린은 큰 충격을 받았다.
과거 자신이 노리던 장찬영이 김세나와 사귀는 것을 알게 됐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큰 충격이었다.
임원의 아들과 만나는 것과 임원과 만나는 것은 격이 달랐다. 더군다나 그 젊은 임원이 회장의 피후견인이라는 것은, 그 사람만 잡는다면 그야말로 그녀가 꿈꾸던 로열패밀리가 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녀가 싫어하는 사람이 그녀가 그토록 원했던 상류층 남자를 잡아 로열패밀리가 될 그런 기회를 가졌다는 사실에 신애린은 질투를 넘어서 증오감까지 생겼다.
그래서 저지른 일이었다. 인터넷에 글을 올리고 사내에 친한 사람들을 통해서 소문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신애린, 그녀가 소문의 최초 유포자였다.
그런데 오늘 공고를 보고, 뒷이야기를 들어보니 자신과 비슷한 부류라고 생각한 강서영이 사실은 정체를 숨긴 로열패밀리였다는 것에 신애린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이번 소문을 감사팀이 조사한다는 소식에 신애린은 손마저 벌벌 떨렸다.
‘감, 감사팀에서 조사한다고? 어, 어떻게 하지……? 어차피 소문의 원천을 찾다 보면 나인 것을 알게 될 텐데……. 어떡하지……? 아! 인터넷에서 봤다고 우기자!’
인터넷에 올린 글 역시 자신이 쓴 글이지만, 신애린을 그것을 부인할 생각이었다.
‘아, 근데 요즘은 IP 추적 같은 기술로 누가 쓴 글인지 알 수 있다고 하던데……. 어떡하지?’
이리저리 생각하던 신애린은 눈을 빛내며 방법을 찾았다.
‘그래, 지영이한테 부탁하자. 동생이 언니의 말을 듣고 도와주려고 했다고 한다면 별다른 말을 하지 않을 거야. 어차피 지영이는 미성년자라 크게 처벌을 받지도 않을 거고. 그래! 이 방법이면 빠져나갈 수 있을 거야!’
신애린이 생각한 방법은 아직 고등학생인 친동생에게 부탁하여, 그녀 대신 동생이 인터넷의 글을 작성했다고 말하게 하는 것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신애린이 회사에서 생긴 일들을 동생에게 이야기했다고 꾸미는 것이 첫 번째 단계이고, 동생이 언니 몰래 이런저런 이야기를 엮은 뒤 소문을 만들어 인터넷에 올렸다고 하는 것이 두 번째 단계였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로 언니인 자신이 동생이 쓴 글인지 모르는 채, 인터넷에서 그 글을 보고 그것을 사실로 오인하여 회사에 퍼뜨린 정도로 꾸미는 것이 그녀의 시나리오였다.
그렇게 된다면 회사에 유포한 것은 그녀가 처음이겠지만, 소문 자체에 대한 최초 유포자는 동생이 될 것이었다.
수사를 통해서 누가 쓴 글인지 찾는다 해도 동생은 아직 고등학생으로 미성년자이고 초범이기에 잘못을 뉘우친다고 선처를 구한다면 별다른 처벌 없이 넘어갈 가능성이 컸다.
나이 차가 좀 나는 동생은 자신의 말이라면 다 들어줄 것이기 때문에 부탁을 하는 것은 걱정이 되지 않았다. 물론 동생에게는 다소간의 금전적인 보상을 해줄 생각이었다.
자신의 시나리오에 만족한 신애린은 그제야 얼굴을 펴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 * *
다음 날이 되자 회장실에서 신애린을 부르는 호출이 왔다.
신애린의 생각에는 며칠 더 시간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빨리 호출이 와서 약간 놀라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자신이 빠져나갈 시나리오를 구축한 신애린은 그리 걱정을 하지 않았다.
‘벌써 조사가 끝난 거야? 역시 대기업이네. 휴, 미리 생각해 두지 않았으면 꼼짝없이 잡힐 뻔했네.’
옷매무새를 다듬은 신애린은 노크를 한 후 회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회장님, 신애린입니다.”
집무실의 테이블에는 강민이 앉아 있었는데 신애린이 들어오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강민을 보고 신애린은 본능적인 눈웃음을 지었다.
그런 눈웃음을 남자들이 좋아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강민은 그녀의 웃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신애린을 응접용 소파 자리로 안내했다.
“이쪽으로 와서 앉아요.”
소파에는 이미 유리엘이 자리를 잡고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는데, 외모에 대한 자신감이 넘치는 신애린이라도 유리엘의 압도적인 미모에는 자신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역시, 외모로 회장 사모님이 되려면 저 정도 얼굴은 되어야 하나…….’
여자의 기준을 외모로 판단하는 신애린다운 생각이었다.
신애린이 자리에 앉자 단도직입적으로 강민은 물었다.
“신애린 씨 왜 그런 소문을 퍼뜨렸죠?”
강민의 말에 신애린은 이미 조사를 마쳤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부인해도 소용없다는 것 또한 알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준비해 뒀던 시나리오로 넘어갔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가 그 소문을 만든 게 아니고, 저도 인터넷에서 글을 보고 긴가민가하는 생각으로 친한 사람들에게만 말했는데…… 이렇게 다 퍼질 줄은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신애린은 소문을 퍼뜨리기는 하였지만, 소문의 출처가 인터넷에서 본 글이라는 주장으로 최초의 작성자가 아님을 내세웠다.
“그런가요? 알아보니 그 글을 올린 곳이 신애린 대리의 집인데 어떻게 된 거죠?”
하지만 그녀의 말에 유리엘이 서류 한 장을 내밀었고, 그 자료에는 신애린의 집에 있는 PC의 IP와 게시글의 IP가 동일하다고 나와 있었다.
“네? 어, 어떻게……. 저,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다시 한번 역시 대기업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신애린은 모르쇠로 일관하며 부인했다.
그렇게 강하게 부인하는 모습을 보인 뒤, 혹시라는 말을 시작으로 같이 사는 동생의 이야기를 언급했다.
그리고 강민에게 양해를 구하고 동생과 통화를 했다.
동생과는 이미 어제 말을 맞춰놓았기에 둘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한참의 통화 뒤에 결국 동생이 언니의 말을 듣고 장난삼아 올린 글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전화를 끊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동생이 철이 없어서…… 저도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그런 이야기를 주위에 알려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징계를 주신다면 달게 받겠습니다. 다만 동생은 아직 어리니 제발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죄송합니다.”
신애린은 자신의 잘못과 동생의 잘못에 대해서 용서를 구하며 강민과 유리엘에게 고개를 숙였다. 동생이 어리다는 말로 선처를 부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다만, 고개를 숙여 앞에서는 볼 수 없었지만 신애린의 얼굴에는 계획대로 되었다는 안도의 표정이 나타나 있었다.
하지만 신애린은 강민과 유리엘을 얕잡아 본 것이었다. 둘은 이미 신애린이 소문을 퍼뜨린 것부터 어제 동생과의 대화까지 모두 다 알고 있었다.
고개 숙인 신애린을 보면서 강민과 유리엘은 심어를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