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
현세귀환록
103. 징벌(2)
“어떠냐, 퍼니셔? 이제는 대화해 볼 만한 상태가 되었는가? 지금이라도 대화를 한다면 흔쾌히 환영하지. 다만 그대들에 대한 대접은 처음보다는 못할 거야. 그래도 살아남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닌가? 하하하.”
앤더슨은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앤더슨의 말에 강민이 앞으로 나서려고 하였다. 하지만 유리엘의 목소리가 강민을 잡았다.
“민, 이번엔 내가 할게요. 저 코어에 담긴 항마력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네요.”
유리엘의 말에 강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났다.
자신감에 찬 앤더슨은 그런 둘의 모습을 보며 비웃듯이 말했다.
“누가 먼저 나서고말고 할 상황이 아닐 텐데. 하하. 둘 다 한 번에 덤비지 않으면 안 될걸?”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상황이 딱 지금 앤더슨의 모습이었다. 인식 장애 마법 때문인지 앤더슨은 그녀의 역량조차 제대로 재지 못하고 있었다.
앤더슨이 짐작하는 것처럼 유리엘은 마법을 주로 사용하는 마법사였다. 하지만 무투 능력만 하더라도 이미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조차 훌쩍 뛰어넘은 지 오래였다.
지금 앤더슨을 처리하기 위해 나선 것은 순전히 그녀의 호기심 때문이었다.
유리엘은 우선 기초적인 마법으로 앤더슨에 대한 공격을 시도했다. 일종의 테스트였다.
유리엘은 웃고 있는 앤더슨을 향해 손을 내저었고, 그 손짓에 수백 개의 조그만 마법 화살이 앤더슨을 향해 날아갔다.
“매직 미사일? 수만 많다고 계란으로 바위를 깰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유리엘의 마법을 본 앤더슨은 코웃음을 쳤다. 물론 아무리 낮은 서클의 마법이라도 한 번에 수백 개의 매직 미사일을 펼치는 것은 대단한 것이지만, 그래 봤자 낮은 서클의 마법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매직 미사일들은 앤더슨의 항마력에 막혀 그의 1m 전방에서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유리엘의 표정은 전혀 변화가 없었고, 다시 손을 저어 이번에는 수천 개의 마법 화살을 만들어냈다.
조금 전의 10배 가까이 되는 물량에 앤더슨은 잠시 움찔했지만 여전히 여유가 있는 모습이었다. 매직 미사일 정도로는 자신의 항마력을 통과해서 타격을 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곧 유리엘의 마법 화살들이 앤더슨에게 날아들었다. 이번에도 역시 그의 항마력에 막혔지만, 아까와는 달리 마법 화살들은 그의 전방 50㎝ 정도까지는 다가갔다.
항마력이 물량에 어느 정도 먹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항마력을 이기고 앤더슨에게 타격을 주지는 못했다.
“훗, 매직 미사일 정도로는 안 된다…… 니까…….”
자신감 있게 외치려던 앤더슨은 제대로 말을 끝맺지 못했다.
하늘에는 아까의 열 배 정도 되는 몇만 개의 매직 미사일이 빽빽하게 떠올라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투명한 성질의 매직 미사일이 아니었다면 하늘이 어둡게 보일 정도로 많은 숫자였다.
이 매직 미사일에 사용된 마나의 양만 쳐도 7서클 마법을 훌쩍 넘을 정도였다. 하지만 유리엘은 이런 마법을 만드는 데 일체의 영창이나 수인, 심지어는 시동어조차 없었다.
단지 손짓 한 번이었다. 수인이라 하기에도 민망한 몸짓이었다.
마법 화살의 물량 공세에 잠시 움찔한 앤더슨이었지만 이내 표정을 풀고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까 전처럼 방심하지 않고 항마 무구에 마나를 불어넣는 것이었다.
앤더슨이 마나를 불어넣음에 따라 낀 장갑 손등의 붉은 돌의 색이 더 강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윽고 허공에 떠 있는 수만 개의 매직 미사일은 앤더슨을 향해 날아갔다. 그 모습은 마치 수십 정의 기관총을 난사하는 것과 같았다.
파파파파파파팍!
하지만 강화된 항마력 때문인지 여전히 유리엘의 매직 미사일은 앤더슨의 항마력을 뚫지는 못했다. 결국 모든 매직 미사일은 앤더슨의 30㎝ 전방에서 다 막히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보던 앤더슨은 더 기세등등해 하면서 말했다.
“이 정도로는 안 돼. 이번엔 내 차례다.”
매직 미사일 샤워가 끝나자마자 앤더슨은 순식간에 유리엘과의 거리를 좁히며 날아갔다.
그의 오른 주먹에는 활활 타오르는 푸른 불길을 머금어져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엄청난 온도가 느껴지는 불길이었다.
앤더슨은 불길을 이용한 장거리 공격도 가능했지만, 마법사가 근접전에 약하다는 상식을 바탕으로 근접전을 펼치기 위해서 다가갔다.
번개같이 날아온 앤더슨의 주먹이 유리엘의 머리를 노리고 들어왔고, 유리엘은 자연스럽게 슬쩍 뒤로 물러서서 피하려고 했다.
앤더슨의 주먹은 헛손질에 그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 앤더슨은 그녀를 향해 왼손을 펼쳤다. 염동력이었다.
앤더슨의 손짓에 따라 유리엘의 몸이 무언가에 잡힌 듯 덜컥 멈추는 것 같았다. 회심의 미소를 지은 앤더슨은 유리엘에게 불 주먹을 휘둘렀다.
퍼~엉!
하지만 앤더슨의 주먹은 목적을 다 하지 못하였다. 그의 주먹은 무언가에 가로막힌 듯 보였다. 그녀에게는 이미 보호 마법이 펼쳐져 있었던 것이었다.
“이 정도쯤이야!”
쾅쾅쾅쾅!
유리엘의 보호 마법에도 앤더슨은 좌우 주먹에 불을 머금고 유리엘의 보호막을 가격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장갑의 붉은 돌은 더 붉은 빛을 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녀의 50㎝ 앞에서 막혔던 앤더슨의 주먹은 붉은 돌의 빛이 강해지기 시작하면서 점점 더 유리엘 가까이 다가갔다.
보호막이 점점 약해져 간다는 것을 느낀 앤더슨은 더 강한 힘으로 보호막을 가격했다.
반면 유리엘은 그런 앤더슨의 공격에 반격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런 유리엘의 모습에 앤더슨은 그녀가 자신의 염동력에 막혀 도망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이 기회에 어서 빨리 그녀를 전투 불능의 상태로 만들고자 했다. 뒤에 서 있는 두 명의 남자들이 끼어들기 전에 마법사인 유리엘을 해치워야 좀 더 편하게 전투를 치를 수 있겠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지옥의 화염과도 같은 푸른 불길을 머금은 앤더슨의 주먹이 수십 차례나 유리엘의 보호막 위로 떨어졌다. 이제 몇 번만 더 하면 앤더슨의 주먹이 그녀의 얼굴에 가격할 것만 같았다.
그때였다.
콰-앙!
번개같은 발길질이 앤더슨의 복부를 향해 내질러졌고, 앤더슨은 미처 반응하지도 못하고 그녀의 발에 차이고 말았다.
발차기에 담긴 경력이 엄청났는지 앤더슨은 수십 미터가 날아간 이후에나 간신히 몸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
‘어, 어떻게…… 아무런 기척도 못 느꼈는데? 마법사가 이 정도 체술이라니……. 마스터인 내가 느끼지도 못할 공격이라니…….’
앤더슨은 발차기에서 받은 충격도 충격이지만, 마법사인 유리엘이 체술을 사용했다는 것에 더 놀랐다. 그것도 자신이 알아차릴 수도 없을 정도로 신속한 움직임이었다.
앤더슨을 멀리 날려 버린 유리엘이 말했다.
“대강 어느 정도의 항마력인지는 알겠네. 생각보다 항마력의 수준이 좋은데? 아무래도 그 장갑에 있는 돌이 꽤나 상급의 코어인가 봐. 아무튼 이제 됐으니 그만하자.”
딱-!
유리엘이 손가락을 튕기자마자 앤더슨은 불의 구체에 휩싸였다.
앤더슨의 반경 1미터 정도를 감싼 불의 구체는 맹렬히 타오르며 그의 몸까지 같이 불살라 버리려 하였다.
앤더슨은 갑작스러운 마법에 순간적으로 놀랐으나 화염 마법이었기에 그렇게 긴장하지 않았다. 화염은 자신의 주 종목이었기 때문이었다.
‘화염 마법이라니, 아까의 공격으로 내가 화염 이능력이 있다는 것도 알 텐데. 그것도 모를 정도로 멍청한 건가? 후훗.’
앤더슨을 감싼 화염 구체는 엄청난 온도로 달아올랐지만 앤더슨은 여유롭게 불의 기운을 운용하여 그 여파를 막아냈다.
하지만 점점 더 그 온도는 올라갔고 종내에는 자신이 견디기 힘들 정도의 온도까지 올라갔다.
‘으윽…… 뭐지? 이 정도 온도라니…….’
단순히 실제적 온도만 높은 것이라면 얼마든지 견딜 수 있는 앤더슨이었다. 실제로 마스터급의 능력자인 그는 수천만 도가 넘는 핵폭탄을 견디는 실험에서도 살아남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온도가 높은 것이 아니라 마나의 불꽃이었다. 물리적 파괴력만 따지면 핵폭탄보다는 떨어질 것이나, 이능력자에게는 핵폭탄보다 무서운 공격이었다.
마나 불꽃의 온도는 점점 더 올라갔다. 앤더슨은 지금 이 불꽃에 담긴 마나는 7서클을 넘어 8서클에 육박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8서클 마법이면 자신이 견디기 힘들 것이나 이것은 화염 마법이었고, 그는 화염 이능력자였다.
화염에 특화된 능력을 갖추고 있었기에 이 공격에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은 힘들었다.
‘이대로는 안 돼. 어쩔 수 없다. 비약을 먹어야겠군.’
이미 몇 차례 비약을 먹은 적이 있는 앤더슨이지만, 비약을 먹을 때마다 파괴적인 욕구가 끓어오르는 것이 께름칙해 최근에는 비약을 먹는 것을 자제했다.
하지만 생명이 경각에 달린 지금 이 상황에서 그런 느낌 때문에 비약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앤더슨은 비상용으로 입안에 숨겨뒀던 비약을 깨물어 삼켰다. 비약이 몸속으로 퍼지며 앤더슨은 마치 심장의 소리가 뇌에서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뇌가 심장과 같이 울리는 것처럼 느껴지며 초능력을 주관하는 상단전의 마나가 급격히 풀려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처음 각성을 할 때의 느낌과도 같았다.
마나의 흐름이 격렬해지며 지금껏 견디기 힘들었던 마나 불꽃도 더 이상은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강해진다 하더라도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마저 들었다.
앤더슨의 그런 모습에 유리엘이 강민에게 말을 건넸다.
“호오, 앤더슨이 약을 먹었나 보네요. 역시 처음 본 마나 흐름의 불안정은 저 비약을 먹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건 그렇고 힘의 폭발이 예사롭지 않은데요?”
“그래 봤자 순간이지. 저 순간이 지나고 나면 당분간은 마나를 쓰기도 힘들걸? 마나 흐름도 불안정해 지고 말이야. 뭐 필사적인 상황에서 사용하는 것이니 그건 문제가 아니겠지만, 영혼에 진 얼룩은 지우기 힘들 거야.”
“그렇겠죠. 저 얼룩은 이번 생애뿐만 아니라 내세에도 영향을 줄 테니, 오히려 지금 죽는 것보다 못할 수도 있겠네요.”
“그렇지. 다만 저들은 그걸 모른다는 것이 문제겠지.”
충분히 더 마나 불꽃을 강화하여 앤더슨을 태워 버릴 수도 있었지만, 유리엘은 여기서 더 강화하는 것은 효율이 떨어진다는 생각에 마나 불꽃을 취소해 버렸다.
갑자기 마나 불꽃이 사라지자, 앤더슨은 자신이 마법을 이겨냈다고 판단하고 내심 득의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훗, 공격은 끝인가? 내게 화염 마법이라니 어리석군. 이제 본격적으로 해보자.”
“본격적? 아, 그 약을 먹었을 때의 항마력도 이미 확인했으니, 굳이 본격적으로 갈 필요도 없어.”
“뭐?”
이미 필요한 정보를 다 얻은 유리엘은 더 이상의 드잡이질을 할 필요가 없었다.
“소울 크러쉬.”
웬만하면 시동어조차 발하지 않는 유리엘에게서 오래간만에 나온 마법 시동어였다.
영혼 분쇄의 마법이었다.
유리엘에게 쏜살같이 날아오던 앤더슨이 뭔가에 잡힌 듯 덜컥 허공에 멈춰졌다.
멈춰선 앤더슨의 위아래로 기이한 문양이 떠올랐고, 문양에는 은은한 빛이 서리기 시작했다.
마법에 잡힌 앤더슨은 벗어나려고 힘을 발휘했으나 자신의 위아래에 있는 문양에서 흘러나오는 인력이 너무 강하였기에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더 강한 힘으로 이곳을 탈출하려는 앤더슨에게 갑자기 격통이 밀려들어 왔다.
“으, 으윽……. 으, 으……. 으악!!”
처음에는 약한 신음성을 내던 앤더슨은 이내 온몸을 벌벌 떨며 엄청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으아악! 으악!!!"
마치 귀곡성과 같은 비명을 지르던 앤더슨은, 3분 정도가 지나자 온몸에 힘이 빠진 것처럼 털썩 주저앉으려 하였다.
하늘에 떠 있는 상태라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바닥으로 추락한다는 말이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런 앤드슨에게 더 이상의 생명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영혼 분쇄 마법에 의해 갈가리 찢어진 그의 영혼이 육체를 떠난 것이었다.
유니온이라는 이능 세계의 정부와 마찬가지인 집단을 만들고, 이능 세계의 실질적 주인인 위원회와 싸워나갔던 한 거인의 마지막치고는 허무한 죽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