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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세귀환록-102화 (102/203)

# 102

현세귀환록

102. 징벌(1)

벤자민의 생각이 길어지는 것 같자, 강민이 주의를 환기시켰다.

“일단 총재부터 처리하지. 어차피 이대로 놔둘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야.”

총재를 처리한다는 말에 벤자민이 물었다.

“여기는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당연히 폐쇄해야겠지.”

“그럼 저들은……”

4명의 C급 변종 뱀파이어는 아직도 기절한 상태였지만, 흰 가운의 연구원들과 B+급의 노란 머리 변종 뱀파이어는 정신을 차리고 있는 상태였다.

자신들의 처분이 결정되는 상황이다 보니 강민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강민은 잠시 그들을 둘러보다가 말했다.

“이 정도 일을 벌였다면 이런 상황 올 경우도 각오했다는 것 아닌가?”

강민의 말을 들은 연구원들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그리고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노란 머리 뱀파이어는 비상구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렇지만 이미 결정을 내린 강민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영혼의 고통이 무엇인지 느끼면서 사라져라.”

말과 함께 강민은 오른손을 내저었고, 뱀파이어들과 연구원들 모두 손발 끝부터 서서히 가루가 되기 시작했다. 손발이 사라져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크아아아아악!!”

산채로 살을 뜯어낸다고 해도 이 정도의 고통은 아닐 것이었다.

톱으로 뼈를 썰어가도 이 정도의 고통은 아닐 것이었다.

너무도 극심한 고통에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했고, 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그들은 서서히 가루가 되어갔다.

그들의 비명은 머리가 가루로 변해 입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신체의 고통을 넘어서 영혼에 직접 고통을 주는 것이기에 머리가 사라져서 뇌가 없어져도 그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비명조차 없이 마지막으로 덩그러니 남은 몸통이 움찔거리며 마침내 전부 다 가루가 되어서 사라져 버렸다.

모두가 가루로 변했을 때 어디서 불어왔는지 모를 한 줄기 바람에 그 가루마저 흐트러지며 허공으로 사라져 버렸다.

세상에 그들이 존재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남지 않았다.

너무도 비현실적인 죽음이었다. 차라리 얼음덩어리로 만들어 얼려 죽이거나, 숯덩이로 만들어 불태워 버렸다면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었다.

사람이 피 한 방울 나지 않은 채 가루가 되어서 사라졌다는 것은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죽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눈앞에서 그들이 사라졌음에도 한수강은 강민에게 물었다.

“그, 그들은 어떻게 된 것인가요?”

“죽었지. 영혼마저 말살해 버리려다가 옛날에 한 약속이 생각나서 영혼의 코어만은 살려뒀어. 다만 이들은 앞으로 인간으로 전생하기는 힘들 거야.”

한수강은 영혼을 운운하는 강민의 말까지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그들이 죽었다는 것을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천성이 마법사인 벤자민은 조금 전의 현상을 분석하려 하였지만, 그가 파악할 수 있는 한계를 훌쩍 뛰어넘었기에 그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최강훈조차 어떤 원리로 그렇게 되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는데, 벤자민이 알아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유리엘만이 그들이 지르는 영혼의 단말마를 들을 수가 있었다.

“이제 유니온 본부로 가자.”

* * *

유니온의 본부는 미국 볼티모어에 위치하고 있었다.

유니온의 본부 건물은 도심에 위치한 50층 규모의 빌딩이었는데 유니온 그룹 본사와 같은 건물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허공에는 그 건물을 내려다보는 네 명의 인영이 자리하고 있었다. 강민 일행이었다.

굳이 한수강까지 이곳으로 데려올 필요는 없었기에, 한수강은 공간이동을 통하여 유키와 함께 한국으로 보냈다.

따라서 강민과 유리엘을 제외한 나머지 두 명은 벤자민과 최강훈이었다.

“유리, 그 실험 장비들은 왜 챙긴 거야? 그렇게 수준이 높은 것도 아니었잖아.”

유리엘은 조금 전에 있던 실험실에서 실험 장비를 소멸시키려는 강민을 말리고 자신의 아공간에 그 실험 장비를 모두 집어넣었었다.

“아, 수준은 높지 않지만 신선한 아이디어가 몇 가지 있어서 한번 확인해 보려고요. 그건 그렇고 저기 꼭대기 층에 총재가 있는 것 같네요.”

“그래, 근데 꽤나 불안정한 마나 흐름인데?”

“그러게 말이에요. 아무리 각성형이라고 하지만, 마스터급이 이런 마나 흐름이라면……. 음? 알아차렸나 보네요.”

유리엘의 말이 끝나자마자 일행 앞으로 마나 유동이 발생하더니 50대 중년인이 나타났다. 앤더슨 총재였다. 순간 이동을 사용해서 일행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앤더슨이 사용한 방식은 마법이 아니라 초능력에 가까운 이능의 발현이었다.

“누구시오? 정문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허공에 나타나신 것을 보니 좋은 일로 오신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오.”

앤더슨은 갑작스러운 마나 유동 때문에 이곳에 나타났지만, 유리엘의 인식 장애에 막혀 벤자민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앤더슨이 등장하자마자 일본의 일을 따지려고 했던 벤자민은, 그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자 약간 어리둥절했다. 그러다 그것이 인식 장애 마법 때문임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앤더슨은 마스터에 오른 인물이었다. 마스터급에 올랐다는 것은 그만큼 마나 이해도나 마나 민감도가 높다는 의미였다.

그렇기에 약간은 노이즈가 있지만 오랫동안 함께하여 익숙한 마나 파문을 느낄 수 있었다.

“음…… 이 파문은……. 응? 벤자민?”

앤더슨은 몇십 년을 같이 지낸 벤자민의 마나 파문을 알아차렸던 것이었다.

유리엘이 완전히 마나 파문을 변조하거나 숨겼다면 모르겠지만, 파문을 약간 흐리기만 한 상태라 앤더슨은 어렵지 않게 벤자민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근데 얼굴이……. 아, 인식 장애 마법! 벤자민, 대체 무슨 일이오! 왜 당신이 이 괴인들과 함께 이 자리에 있는 것이오? 그것도 인식 장애 마법까지 쓰고 말이오!”

말을 하면서도 앤더슨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알아차렸다면 더 이상 인식 장애는 유지되지 않을 것인데, 여전히 벤자민의 얼굴을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앤더슨이 자신을 알아보자 벤자민은 원래 하려던 말을 하기 위해 앞으로 나서며 외쳤다.

“앤더슨! 치료 센터의 지하에서 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이오! 정녕 비약을 만든다고 우리 요원들을 희생시키고 있었소!”

앤더슨은 벤자민의 말에 약간 놀란 듯했다가 이내 표정을 굳히고 대꾸하였다.

“어떻게 그곳을 발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소. 우리 유니온이 위원회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조치였소. 그 요원들의 희생을 통해서 우리 유니온이 우뚝 설 수 있게 될 것이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당신도 잘 알잖소!”

벤자민은 대를 위한 소라는 말에 발끈하며 맞받아쳤다.

“또 그 대를 위한 희생 운운하는 것이오? 그 크고 작음은 누가 결정하는 것이오!”

“어차피 그들은 재기하기 힘든 요원들 아니오. 재활 비용을 들이며 비용을 투입하는 것보다 그들을 활용해서 유니온의 전력을 강화할 수 있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소?”

“이렇게 당신 멋대로 정해놓고 요원들을 희생시킨다면, 앞으로 누가 우리 유니온을 위해서 목숨 바쳐 일하겠소!”

“당신만 입을 다물면 모르겠지. 벤자민, 지금도 늦지 않았소. 저 괴인들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저 치들이 당신을 현혹시켰나 보군요. 나와 함께 저들을 처리합시다.”

“허…….”

벤자민은 앤더슨의 뻔뻔함에 할 말을 잃었다.

앤더슨은 벤자민과 한참을 대화를 나누었지만 지금도 그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자, 무언가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마스터에 오른 자신을 이렇게까지 속일 수 있는 인식 장애가 있나 하는 의문 끝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이 정도 인식 장애라면…… 퍼니셔?”

앤더슨이 자신들의 정체를 알아차리자 유리엘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거 다운그레이드를 하든지 해야겠네요. 이곳의 수준이 하도 낮아서 자기네들이 알아보지 못하니 죄다 우리를 떠올리잖아요. 호호.”

퍼니셔인 것을 인정하는 유리엘의 말에 앤더슨은 흠칫 놀라더니 이내 표정을 굳히고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무슨 이유로 이렇게 오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집무실에서 이야기를 나눠보심이 어떻습니까? 분명 만족할 만한 이야기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앤더슨은 전부터 퍼니셔를 영입하려 하였기에, 좋은 상황에서 만난 것은 아니었음에도 웃으면서 말을 건넸다.

대화를 통해서 상황만 잘 풀리면 큰 전력을 획득할 수 있었기에 애써 좋은 분위기를 만들려 하였다.

하지만 앤더슨의 말에 대한 대답은 유리엘이 아니라 앞에 있던 벤자민에게서 나왔다.

“만족? 아직도 분위기 파악이 안 되나 보는군. 지금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는 당신을 축출하기 위해서야. 대화 같은 걸 나눌 상황이 아니라고!”

앤더슨은 벤자민의 말을 무시하고 유리엘에게 다시 말했다.

“그곳에서 무얼 보셨는지는 알겠지만, 그들에게는 희망이 없었습니다. 유니온이라는 큰 단체를 이끌기 위해서는 가끔은 불가결한 희생이 필요하지요.”

“그래요, 가끔은 불가결한 희생이 필요하지요.”

유리엘이 자신의 말에 동조하자 앤더슨은 얼굴에 화색을 띠며 그녀의 말을 반겼다.

“맞습니다! 역시 마스터급의 강자라서 그런지 생각의 폭이 넓으시군요. 어떻습니까? 내려가서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눠보시는 것이?”

벤자민은 갑작스러운 유리엘의 말에 당황했는데, 그녀의 이어지는 말을 듣고서는 역시 그렇지라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다만, 이번에 불가결한 희생은 총재 당신이니 그것 역시 받아들여 주면 좋겠군요. 일본에서 그들이 그랬듯이 말이에요.”

유리엘의 말에 앤더슨은 표정을 굳혔다. 저런 말을 한다는 것은 협상은 결렬되었다고 봐야 했다.

잠시 주위를 살펴 일행들을 확인한 앤더슨은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인식 장애에 가려서 확실한 실력은 파악할 수 없었으나 과거 헤이안에서 나타난 퍼니셔의 무력을 생각해 보면 단신으로 맞서기는 두려운 것이 사실이었다.

본부로 돌아가 S팀을 불러야 할 것 같았다. 그들과 함께라면 퍼니셔도 충분히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

앤더슨은 생각과 동시에 본부 집무실로의 순간 이동을 시도하였으나 자신의 몸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두세 번 더 시도했지만 소용없었다.

당황하는 앤더슨의 모습을 본 유리엘이 말했다.

“아, 공간 이동은 안 되니 헛수고하지 마세요. 반경 1㎞ 안의 공간 좌표를 동결했으니 말이에요.”

유리엘의 말에 앤더슨은 놀라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허, 공간 좌표 동결이라……. 벤자민, 용의주도한데? 언제 그런 준비까지 했지? 설치는커녕 발동하는 것도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다니 말이야.”

앤더슨은 당연히 사전 준비를 통해서 자신을 잡기 위한 함정을 팠다고 생각했다. 비슷한 경험이 있는 벤자민은 그것이 아님을 알았지만 굳이 그의 말을 정정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도 당당한 앤더슨의 모습이 의아했다. 앤더슨 또한 퍼니셔의 무력을 알고 있기에 그가 혼자서 상대하기는 무리라는 것 역시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수작으로 나를 잡겠다고 생각했나, 벤자민? 어떻게 퍼니셔와 연이 닿아서 이곳까지 데려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날 너무 호락호락하게 본 것 같군!”

벤자민은 여전히 앤더슨이 가진 자신감의 원천을 찾지 못했지만, 강민과 유리엘은 대강 짐작이 갔다. 그리고 지금 그 자신감의 원천 중 하나가 드러났다.

앤더슨이 품에서 장갑을 꺼내 착용했던 것이었다.

갑자기 느껴지는 마나의 반발력에 벤자민은 놀라서 소리쳤다.

“이건! 항마 무구! 어, 어떻게?”

거의 매일 같이 앤더슨을 보았던 벤자민이었지만, 앤더슨이 항마 무구를 착용하고 있는지는 몰랐었다.

항마 무구의 제작과 분배 등은 모두 자신이 담당한 부분이었기에, 벤자민은 누가 그 무구를 가졌는지 전부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인원에 앤더슨은 없었다.

“내가 잡은 마물을 내가 쓰는 것이 뭐가 그리 놀랄 일인가, 벤자민?”

확실히 지금 앤더슨이 발동한 항마 무구는 자신이 제작한 것은 아니었다.

앤더슨이 착용한 항마 무구는 벤자민이 만든 것과는 달리 검은 장갑 형태의 무구였는데, 장갑의 손등 부분에 호두알만 한 크기의 붉은 돌이 인상적이었다.

벤자민은 몰랐지만 당시 잡은 마물의 머리 박혀 있던 항마의 핵이 이 붉은 돌이었다. 이를 앤더슨이 별도로 챙겨놓은 것이었다.

앤더슨이 내뿜고 있는 항마력은 S1팀 모두가 전력으로 내뿜는 항마력을 능가할 정도의 위력이었다.

그 위력에 벤자민은 자신도 모르게 허공에서 한걸음 정도 뒤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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