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세귀환록-99화 (99/203)

# 99

현세귀환록

099. 구출(3)

유리엘이 손가락을 튕기자 어느새 네 명은 도쿄 인근에 위치한 치료 센터의 입구에 나타나 있었다.

과거 허공에 나타났을 때 최강훈이 당황했던 것을 고려했는지, 이번에는 한수강을 배려하여 바닥과 가까운 곳에 나타났다.

하지만 그런 배려에도 한수강은 엉거주춤하며 엉덩이를 바닥에 찧을 뻔했다. 물론 무투형 이능력자인 그는 재빠르게 자세를 잡아서 그런 추태를 보이는 것은 피하였다.

센터 앞에 나타난 강민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거 재미없는 짓을 하는데?”

뜬금없는 강민의 말을 유리엘은 바로 알아들었다.

“그러네요. 느껴지는 마나 성향을 보니 악인(惡人)뿐만 아니라 선량한 사람들도 있는 것 같은데 말이에요.”

최강훈과 한수강은 둘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당연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만, 마스터의 경지인 최강훈은 센터의 지하 부분에서 자신의 감각을 가로막는 무언가가 있다는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최강훈의 느낌처럼 치료 센터에는 결계가 펼쳐져 있었다. 건물 전체를 둘러싼 결계가 아니라 건물 지하만 막고 있는 결계였다.

마스터 급의 능력자라 할지라도 특수한 능력이 없다면 결계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인지까지는 알기가 힘들었다.

물론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과 결계를 뚫어내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최강훈 정도의 마스터라면 결계는 뚫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뚫기 전에는 그 속을 볼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강민은 이곳에 나타나는 순간 결계 아래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이 정도 수준의 결계로는 강민의 탐색을 막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탐색 능력과는 무관하게 강민은 치료 센터 깊숙한 곳에서 울리는 영혼의 단말마가 강렬하게 느껴졌다.

유니온의 결계는 모든 것을 은폐하며 제대로 기능하고 있었지만, 영혼의 통곡까지는 막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결계를 설치한 자조차 그런 것이 있는지 모르고 있었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강민과 유리엘은 영혼의 울부짖음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런 이유로 강민의 미간이 찌푸려졌던 것이었다.

영혼의 통곡은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들을 수가 없었다. 정신과 육체가 견딜 수 없는 극한의 고통을 주었을 경우에나 들을 수 있는 울림이었다.

이 정도 크기의 영혼의 통곡이라면 그 당사자는 죽기만을 바라고 있을 것이었다. 영원한 안식이라는 죽음만이 그가 바라는 유일한 바람일 것이다.

과거 수천 년간 그 일을 겪어보았던 강민은 그런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강민의 목소리가 유례없이 차가워졌다. 순간적으로 주위의 마나조차 얼어붙는 듯한 느낌이었다.

“차원이 교차할 때까지는 두고 보려고 했더니 이거 안 되겠군. 이따위 짓을 하다니 말이야. 유리, 벤자민 마나 파문은 기억해 뒀지?”

한 번 본 사람의 마나 파문을 잊을 리 없는 유리엘이었지만, 강민은 확인 차 한 번 더 물어봤다.

“당연하죠. 어떻게 하려고요?”

“여기로 불러와 줘. 지금껏 본 벤자민의 성향상 이런 짓을 할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는데, 한번 확인해 봐야겠어.”

“알겠어요.”

강민이 스스로의 성취를 자신할 수 있게 된 이후 마나 성향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에 오류는 없었다.

그리고 그가 판단한 벤자민은 다소 외골수적이고 아집은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이 정도의 일을 벌일 정도로 악한 성향의 사람이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한 번 더 확인해 보려고 한 것이다.

한수강은 지금 강민과 유리엘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지금 당장에라도 센터로 돌진하여 유키를 구해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현장의 주재자는 강민이었다. 도움을 받는 처지에 그가 하는 일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 * *

벤자민은 유니온 본부에 마련된 자신만의 연구실에서 실험을 하고 있었다.

부총재의 위치에 있지만 벤자민은 아직도 활발하게 연구를 하였고, 실제로 많은 성과를 내고 있기도 했다.

지금도 항마력이 있는 마나 무구의 부작용을 좀 더 개선할 수 있는 술식을 짜고 있었는데, 생각처럼 잘 풀리지는 않았다.

“아. 이 술식만 계산대로 된다면 지금 부작용을 반 이하로 떨어뜨릴 수 있을 텐데.”

직접 가르치는 5서클의 제자도 있었지만, 지금 이 술식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실험적 성격이 강하였기에 제자 없이 일단 혼자서 연구 중이었다.

유리엘이 펼친 인식 장애 마법을 연구하는 것은 올림포스만이 아니었다. 벤자민 역시 대지의 기억을 통해서 인식 장애 마법을 연구하고 있었는데, 이번의 술식도 그 인식 장애 마법에 쓰인 술식 중 일부를 차용해서 만든 것이었다.

한참을 더 마나 패널에 룬문자와 각종 도형으로 술식을 짜 넣던 벤자민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렇게 하면…… 마나 활성화가…….”

푸시식~

하지만 벤자민의 바람과는 달리 마나 술식을 부여한 테스트용 마나 패널은 김빠지는 소리와 함께 타버리고 말았다.

“흐음…… 생각보다 쉽지가 않군.”

한참 동안의 실험에도 성과가 없자 그는 잠시 쉬기 위해서 의자에 앉아 이미 식어버린 커피가 든 머그컵을 들었다.

식어버린 머그컵에 약한 화염 마법을 일으켜 커피를 데운 벤자민은 적당한 온도가 되자 천천히 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 순간, 갑자기 벤자민의 몸 반경 2미터 정도에 강한 마나장이 펼쳐졌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느닷없이 펼쳐진 마법이었다.

“어엇!”

하지만 그 역시 닳고 닳은 마법사였다. 결계가 펼쳐진 이곳에 어떻게 마법사가 잠입하여 자신에게 마법을 거는지 모르겠지만, 이대로 호락호락 당할 수는 없었다.

벤자민은 서둘러 퀵 스펠을 펼쳤고, 그에 따라 이내 평소에 저장해 둔 보호 마법들이 그의 주위를 감싸며 발동했다. 동시에 자신만의 마나장을 일으켜 주위에 펼쳐진 마나장을 중화시키려고 하였다.

마법사 간의 대결에서 상대방의 마나장에 장악되었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의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떤 마법사가 펼친 마나장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마나장은 주위의 마나장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벤자민은 최선을 다해 마나장을 중화시키고 이곳을 빠져나가려 했지만 그 마나장은 요지부동이었고, 마나장의 인력에 의해서 자리를 피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위잉~ 위잉~ 위잉~

벤자민의 노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둘러싼 마나장은 점점 강해졌다.

마나장에 서린 마법 술식까지는 읽지 못했지만, 마나장의 패턴 자체는 익숙했다. 순간 이동 마법이었다.

“어, 어떻게…….”

대응 마법진이 없다면 무생물일지라도 순간 이동을 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S급이라 불리는 7서클은 되어야지 대응 마법진 없이 물건을 순간 이동 시킬 수 있었다.

하물며 사람을, 그것도 이 흐름에 극렬히 저항하고 있는 6서클의 마법사를 강제적으로 순간 이동 시킨다는 것은 벤자민의 상식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9서클 대마법사라고 해도 지금 이 상황이 가능한 것인지 의문스러울 따름이었다.

지금도 벤자민은 마나장에 강력히 저항하며 이곳을 빠져나가려 하였지만, 마나장에 있는 인력은 점점 더 강해져서 지금은 움직이기조차 힘들었다.

잉~ 잉~ 잉~

마나장은 전자기기의 울림과도 같은 소리를 내면서 천천히 구(球)의 중심으로 줄어들면서 공간을 좁히더니 갑자기 급속히 작아지며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아, 안 돼!”

그리고 벤자민의 외마디 외침과 함께 마나장은 사라졌다. 물론 그 속에 있던 벤자민도 마나장과 함께 사라졌다.

* * *

“허, 헉! 대체 누구냐!”

자신이 원하지 않는 순간 이동은 처음인 벤자민은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자마자 또 다른 퀵스펠을 통해서 공격 준비를 마쳤다.

아직까지 아까 전의 보호 마법이 남아 있었기에 이번에는 공격 준비 위주의 퀵 스펠이었다.

분명 강제로 순간 이동을 시켰다면 호의(好意)로써 자신을 대하지는 않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그 마법은 앞에 서 있는 여성이 내저은 손짓 하나에 모두 무효화 되고 말았다. 아무런 영창도 수인도 없이 단지 손짓하나에 벤자민이 발동한 모든 마법은 사라졌다.

이곳으로 순간 이동 되자마자 자리를 피하기 위해 비행 마법을 사용했던 벤자민은 모든 마법이 사라진 상태로 바닥에 엉거주춤 내려섰다.

벤자민은 걸려 있던 마법이 디스펠 됨에 따라 신속하게 다른 마법으로 대응하려고 하였으나 이미 주변의 마나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았다. 마치 마나가 동결된 것 같았다.

“어, 어떻게…….”

대규모 마법진을 통해 마나 동결을 시도했다는 과거의 기록을 본 적은 있었으나 주변에는 마법진의 기운은 없었다.

그리고 최초 강제 순간 이동에 의해 이곳에 넘어왔을 때는 마법을 쓸 수 있었으니, 벤자민은 마나 동결은 그 짧은 사이에 펼쳐진 것이라고 판단했다.

사실 마나가 동결된 것은 아니었다. 유리엘의 의지가 주변의 마나를 장악해서 그녀의 의지로 다른 이의 마나 사역을 막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벤자민이 느끼기에는 마나가 동결된 것과 같았다. 아무리 강한 의지로 마나를 장악한다 하더라도 자유로운 성질의 마나가 조금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이 세계의 마법사를 기준으로 보면 유리엘은 마나 동결보다도 더 대단한 일을 행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무런 마법을 일으킬 수 없게 되자 어느 정도 체념한 벤자민은, 그제야 자신을 부른 사람이 누구인지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의 앞에는 세 명의 남성과 한 명의 여성이 서 있었는데 마법의 기운이 느껴지는 사람은 여성밖에 없었다. 저 여자가 자신을 부른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아는 여자 마법사 중에서 이 정도 마법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여자 마법사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지만 도무지 알 수 없는 얼굴이었다.

머릿속의 어떤 얼굴과도 일치하지 않았다. 아니, 너무도 평범해서 얼굴에서 눈을 떼는 순간 잊어버릴 얼굴이었다.

몽타주를 그리려고 해도 아무런 특징이 없어서 그릴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얼굴. 그 순간 벤자민은 깨달을 수 있었다.

‘인식 장애!’

지금 바라보고 있는데도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한다면 자신의 인식을 가로막고 있는 마법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보통 인식 장애 마법은 두 가지 효과가 있었다.

하나는 사건의 당사자가 아닌 제삼자에게 발생하는 효과였는데, 인식 장애 마법을 펼치면 사람이나 사물, 사건에 대해 관심 자체를 갖지 않도록 해서 옆에서 아무리 큰일이 벌어지더라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효과였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인식 장애를 사용하는 사람과 직접 관계가 있을 경우에 발생하는 효과였다.

인식 장애를 사용하는 직접적으로 엮이는 경우에는 그 사건 자체는 기억할 수 있었다. 대화를 하였다면 대화의 내용은 기억할 수 있었다.

다만, 대화를 나눈 사람이 너무도 평범한 사람으로 보여 돌아서면 그 사람을 떠올릴 수가 없게 되는 효과가 있었다.

사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인식 장애에 걸린 것조차 알 수 없었을 것인데, 벤자민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6서클의 마법사였다.

그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인식 장애에 걸린 것을 알 수 있었고, 그 때문에 그는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이능력자에게는 기본적으로 이 인식 장애에 대한 저항력이 있기에 무의식중에 지나칠 수 있는 첫 번째 효과라면 몰라도 두 번째 효과는 잘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6서클 마법사인 자신조차 이렇게 감쪽같이 속일 인식 장애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떠오르는 이름이 있었다. 몇 년이 지나도록 풀지 못한 인식 장애 마법을 펼친 존재의 이름 말이다.

“퍼니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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