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세귀환록-98화 (98/203)

# 98

현세귀환록

098. 구출(2)

한수강은 복수를 한다는 목적만 생각했지, 자신이 그곳에서 어떻게 생활하며 어떤 식으로 복수 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순간적인 감정으로 막연히 넘어온 것이었다. 알량한 성취를 얻은 것에 대한 자신감도 한몫했을 것이었다.

더군다나 한국에서 환전해 온 수중의 돈이 떨어지니 먹고 살길도 막막하였다. 그렇게 자신감이 깨지고 나니 현실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던 그에게 한 줄기 구원의 동아줄이 내려왔다. 유키였다.

식당에서 일본어가 서툴러 우물쭈물하는 한수강을 재일교포 2세였던 유키가 도와주는 것으로 그와의 인연을 시작했다.

당시 20살 대학생인 유키는 한수강이 한국인임을 알게 된 후, 자신 역시 부모님이 한국 사람인 재일교포라며 반가워하며 그를 도와주었다. 그리고 그 친절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둘이 친해진 이후 한수강이 유키에게 왜 그렇게 처음 본 사람에게 친절했냐고 물어보니, 유키는 죽은 동생이 생각나서 그렇다는 말을 했다.

한수강은 몰랐지만 당시에 유키는 각성자로 유니온 소속의 요원이었다. 불을 다루는 권능이 있는 유키는 C등급의 능력자였다.

물론 그녀가 한수강이 이능력자인 것을 알고 그에게 접근한 것은 아니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한수강을 보고 죽은 동생이 떠올라 그를 도와준 것뿐이었다.

하지만 둘이 함께 시간을 보내며 한수강이 무투형 마나 적합자로 마나를 다룰 줄 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녀는 그에게 유니온 일본 지부에서 같이 일하는 것을 권유했다.

그리고 한수강은 그 제의를 받아들였다. 어차피 힘을 기르고 복수를 하기 위해서라도, 여기 일본에서 적응하고 수련할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유니온에 들어가서도 유키는 하나부터 열까지 한수강을 도와주었다. 언어부터 적응 및 훈련까지 그가 마치 친동생인 것처럼 돌봐주었다.

1년간의 훈련 이후 한수강은 정식 요원이 되어 유키와 함께 십수 차례 이상 임무를 수행하였는데, 1년여 전 한 임무를 수행하던 중 유키가 크게 다치고 말았다.

상처는 너무 깊었고, 유키는 간신히 목숨만 부지하여 식물인간 상태로 유니온의 치료 센터로 옮겨졌다.

유니온에서는 당연히 요원들에 대한 치료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었다. 목숨을 걸고 하는 임무가 많다 보니 그런 시스템이 없다면 요원들이 충실히 임무를 수행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유키 역시 그 치료 시스템으로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식물인간이 된 후 1년 동안 아무런 차도가 없었다.

한수강은 요원으로서 받는 월급과 수당을 합쳐 이능 마켓에서 포션이나 영약들을 구매해 유키의 치료를 위해 사용했으나, 유키는 차도가 없이 식물인간의 상태로 유니온이 마련한 치료 센터에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두 달 전 치료 센터에 갔던 한수강은 센터 소속 의사 및 연구원들이 나누는 대화를 스쳐 지나가듯 들을 수 있었다.

연구원들은 실험자들의 데이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얼핏 유키의 이름이 나와서 자신도 모르게 집중해서 듣게 되었다.

그들은 D급이나 E급의 하급 능력자였기에 B급인 한수강이 숨어서 듣는다는 사실도 모르는 채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들의 대화를 통해서 이곳은 치료 센터라고 이름은 붙어 있지만 사실은 치료보다는 이능력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실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교적 가벼운 부상이나 생명에 지장이 없는 팔, 다리 등의 손실에 대한 부상은 센터에서 치료했다.

하지만 큰 상처를 입어 재기가 불가능하거나, 혼수상태나 식물인간 등 의식이 없는 환자들은 환자가 아니라 실험체로 여기며 각종 실험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수강은 분노했지만 이제는 분노에 따라서 바로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그런 과거와 같은 애송이가 아니었다.

아마도 유니온에서는 생체 실험을 한다는 증거는 없을 것이었다. 또한 자신이 폭로한다면 오히려 척살조에 의해서 지워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유니온에서 유키를 내주지도 않을 것이지만, 무턱대고 그녀를 빼내 올 수도 없었다.

치유 능력이 없고, 의학적 지식조차 없는 한수강이 무작정 센터에서 그녀를 데리고 나온다면 당장 최소한의 생명 유지조차 못할 수도 있었다.

실험을 위해서든 뭐든 유니온의 치료 센터에 있음으로 해서 최소한의 생명 유지는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실험체로 있기에 언제 어떤 실험으로 인하여 그녀의 목숨이 사그라들지는 알 수가 없었다. 최대한 빨리 그녀를 구해내야 할 것이었다.

한수강은 어떻게든 유키를 구해내고 싶었지만, 아직은 준비된 것이 없었다. 일단 자신의 힘을 기르고 정보를 획득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래야 치료 센터에서 유키를 빼내 올 수 있을 것이고, 향후 유니온 타격대의 손에서도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었다.

두 번째는 그녀가 생명 유지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시설이 필요했다. 혼수상태인 그녀를 집안에 그냥 방치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한수강은 유니온의 손에 닿지 않는 병원들을 알아보고 있었다.

또한, 최상급 포션 및 비약 등을 확보해서 그녀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 또한 찾아보아야 할 것이었다. 전에도 포션 및 비약을 유니온에 제공하여 그녀에게 전달했지만, 지금의 행태를 보아서 그것이 제대로 그녀에게 들어갔으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녀의 상황은 너무도 위험했지만, 섣불리 자신이 나섰다가는 그녀도 자신도 죽게 될 가능성이 더 높았다. 최근 B등급에 올라서 자신 있었지만 그래도 그녀를 빼돌릴 때 쫓아올 추격자들을 생각하면 확신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상황을 봐선 오래 놔둘 수는 없었다. 믿을 만한 병원만 찾으면 바로 구출작전을 펼칠 생각이었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있던 중 이번 임무에서 최강훈을 만났다. 아니, 최강훈이 그를 발견하였다.

만약 최강훈이 그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한수강은 죽고 말았을 것이었다.

한수강의 이야기를 다 들은 강민이 그에게 말했다.

“그래서 네가 원하는 것이 그 유키라는 여자를 데려와서 치료하는 것이냐, 아니면 그런 일을 저지른 유니온에 대한 복수까지인 것이냐?”

어머니와 여동생이 살아 있는 동안만이라도 조용히 살고 싶었는데, 세상은 강민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인연의 인연이 꼬리를 물고 그에게 다가왔다.

이런 부탁들을 그냥 무시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부탁을 해결하는 것에 큰 힘이 드는 것도 아닌데, 단지 귀찮다는 이유로 무시하기엔 그가 만들어온 인연들을 가볍게 여기지는 않았다.

물론 이것은 강민이 마음이 움직일 때의 이야기였다. 인연이라고 해서 모든 일에 대한 도움을 줄 생각까지는 없었다.

“……. 유니온에 대해서 말입니까?

강민의 질문에 한수강은 어리둥절해 하다가 대답하였다. 왜냐하면 유니온 전체에 대한 복수는 생각하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비록 최강훈이 강민에게는 불가능이 없다고는 말하였지만, 한수강의 생각에는 유키를 몰래 빼내 와서 치료하는 것만 생각하였다. 복수까지는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한수강의 말과 표정에서 그의 심경을 짐작했는지, 최강훈이 말을 거들었다.

“민이 형님이 퍼니셔야.”

“퍼니셔?”

“그래, 헤이안의 수뇌부와 쇼군을 처단한 그 퍼니셔라고.”

“아!!!”

한수강의 입에서 외마디 신음성이 나왔다. 일본에 있었던 그는 퍼니셔의 이름에 대해서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일본의 이능계가 뒤집히지 않았는가.

비록 쇼군이 죽을 당시에는 일본에 있지 않았지만 한수강이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었다.

“그, 그럼…….”

“그래. 형님이라면 유니온 전체와 싸워도 이기실 수 있어. 그러니까 네 생각을 말해봐. 참고로, 헤이안이 그렇게 된 것도 내가 형님께 부탁해서 그렇게 된 것이야.”

“혀, 형이 부탁한 거라고?”

“그래, 형님께서 방금과 같이 내게 물으셨지, 복수를 원하는지 말이다. 그리고 나는 복수를 원한다고 했지. 그 결과가 헤이안의 파멸이었고.”

한수강은 최강훈의 말에 약간 얼이 빠진 듯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강력했던 일본 이능계를 장악했던 헤이안이 단지 최강훈의 복수를 원한다는 한마디에 무너졌다니……. 한수강으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런 한수강의 모습을 보던 최강훈은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너도 지금 네가 가진 생각을 솔직히 형님께 말해봐.”

마스터인 최강훈이 보장하는 일이었다. 한수강은 조금 더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잠시간의 시간이 지난 후 그가 입을 열었다.

“유키를 데려오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지금도 일본 지부에는 동료가 많이 있었다. 그들 중 이런 생체 실험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었다.

아마 소수의 수뇌부에서 내린 결정이고 알고 있는 사항일 것인데 유니온 전체에다가 복수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한수강의 말은 이것이 다가 아니었다. 잠깐 말을 끊었던 한수강은 이내 한마디 말을 덧붙였다.

“다만, 가능하시다면 관련자를 징벌하셔서 생체 실험은 다시는 못 하도록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한수강의 말에 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겠다. 그럼 그리로 가보지. 너도 함께 가는 것이 좋겠지?”

아무래도 한수강이 유키를 구출하는 것을 함께 하고 싶어 할 것이었기에 강민은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당연한 듯이 지금 바로 움직이려 하였다. 그런 강민의 모습에 한수강은 약간 당황하며 말했다.

“저, 저기 누나를 잠깐이라도 보고 가면 안 될까요?”

한수강은 지금 떠나면 또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한수아를 보고 가고 싶었다.

4년 동안은 일부러 찾지 않았지만, 이제 볼 수 있다 생각하니 더 보고 싶은 누나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유리엘의 대답을 듣고 그는 바로 납득했다.

“수아 오기 전에 돌아올 테니 걱정마. 호호.”

그런 한수강의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강민은 유리엘에게 물었다.

“유리, 위치는 파악되었지?”

“그래요, 아까 수강이 말 듣고 파악해 뒀어요. 도쿄 인근에 유니온에서 운영하는 치료 센터가 있네요. 수강아, 여기 맞지?”

유리엘은 일본 전도 모습의 홀로그램을 나타나게 해서 점차 확대하는 방식으로 도쿄 인근의 한 건물을 한수강에게 보여줬다.

한수강은 놀라면서 대답했다.

“네, 네! 저기가 맞습니다.”

한수강이 맞다고 하자 유리엘은 손을 이리저리 움직여서 치료 센터의 입체도면을 띄웠다. 그 입체도에는 안에 있는 사람들까지 푸른색 점으로 대략 표시되었는데, 마나의 크기에 따라서 그 푸른 점의 크기가 다른 것 같았다.

“그 유키라는 아가씨는 어디 있었지?”

한수강은 홀린 듯이 입체도를 보다가 유리엘의 질문에 서둘러 대답했다.

“702호, 7층의 두 번째 병실입니다.”

다시 유리엘은 손을 움직였고, 건물의 내부가 화면으로 보였다. 이번에는 홀로그램이 아니라 건물 내부 및 사람들 한명 한명이 티비 속에 나온 것처럼 확연하게 보였다.

한수강이 말한 702호에는 4명의 여성 환자가 있었는데, 두 번째 환자의 얼굴이 보이자 그가 외치듯 말했다.

“저기! 저 여자가 유키예요.”

한수강이 가리킨 유키는 긴 생머리의 20대 아가씨였는데, 오랜 병원생활에 몸이 쇠약해졌는지 팔과 다리가 무척이나 가늘었다.

아직도 식물인간 상태인지 여전히 눈은 감겨 있었고, 오른쪽 손목에는 링거줄이 꽂혀 있었다.

한수강이 유키를 확인하자 강민은 유리엘에게 눈짓을 줬다. 움직일 시간이었다.

“그럼 가자.”

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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