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
현세귀환록
097. 구출(1)
“역시 S팀이군요, 부상을 입은 마스터라지만 어쨌든 마스터까지 잡았네요.”
앤더슨 총재가 벤자민이 가져온 보고서를 보며 말했다. 하지만 벤자민 부총재의 표정은 밝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총재님, S2팀 중에서 살아남은 인원이 세 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마스터 한 명에게 입은 손해치고는 너무 큰 것 같습니다.”
벤자민의 말에 자리에 앉아 보고서를 보던 앤더슨이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부총재님, 우리가 마스터를 잡았어요!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마스터를 상대하려면 제가 나서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말한 우리가 말입니다!”
“그, 그건 그렇지요……”
앤더슨은 묘한 열기가 그득찬 눈으로 벤자민에게 말했다.
“어차피 S팀이 쓰던 무구는 다 회수해 왔지 않습니까? 또 다른 S팀을 만들면 되는 것이죠. 그들이 죽으면 또 다른 팀을 만들고요.”
S팀원들을 마치 소모품처럼 여기는 앤더슨의 태도에 벤자민은 내심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항마력이 있는 무기와 방어구를 쓰려면 A급 정도는 되어야 합니다. A급이 되지 않는다면 힘듭니다. 그들도 항마력을 발동시키고 나면 한동안은 후유증으로 마나를 쓰는데 제약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A급 이상의 요원들은 유니온에도 흔한 자원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게 취급할 요원들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음…… 그럼 차라리 B급이나 C급 요원들을 이용하는 건 어떻습니까?”
A급 정도가 아니면 쓰지 못한다고 조금 전에 말했는데 B급, C급을 이야기하는 앤더슨을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벤자민이 말했다.
“아까도 말했듯이 항마 무구를 쓰려면 A급 정도는 되어야 합니다만…….”
그런 벤자민의 표정을 보며 앤더슨이 웃으며 말했다.
“비약이 있지 않습니까? B급이나 C급도 비약을 먹는다면 잠시간은 그 정도 힘을 낼 수 있을 텐데요?”
벤자민은 요원들을 마치 부속품처럼 언급하는 앤더슨의 말에 내심 생기는 불만을 감추며 대답했다.
“그렇지만…… B급 이하의 능력자가 비약을 먹는다면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죽거나 폐인이 되고 말 것입니다.”
“아, 저도 상시 운용하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특별한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에만 그들을 운용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특별한 상황에서 운용한다고 하자 벤자민도 더 이상 반대하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벤자민의 심경은 불편했다. 그런 벤자민의 내심을 읽었는지, 앤더슨은 그를 달래는 듯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저도 우리 요원들을 함부로 낭비하고 싶지는 않아요. 하지만 필요하다면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할 수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유니온이 이능 세계에서 우뚝 서려는 대의는 우리 요원들의 희생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에요.”
벤자민 역시 유니온이 위원회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기구가 되는 것을 원하고는 있지만, 앤더슨이 말하는 이런 전체주의(全體主義)적인 모습은 그가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 대의는 대체 누구를 위한 대의입니까…….’
하지만 벤자민은 이 말은 하지 못하고 입안으로 삼켰다. 앤더슨은 보고서를 읽는다고 벤자민의 표정까지는 보지 못하고 말을 이었다.
“아, 그리고 납치되었다는 요원은 누구인지 밝혀졌나요?”
“그게, S2팀과 AA팀들은 처음 손발을 맞춰보는 것이라 누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보고서를 보니 나카타가 일으킨 폭발 때문에 대지의 기억도 거의 알아보기 힘들 정도라던데 복원은 안 되던가요?”
대지의 기억이라고 완벽하게 상황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과거 유리엘이 한 것처럼 인식 장애 마법으로 기억을 읽는 것을 막을 수도 있었고, 나카타가 한 것처럼 강대한 마나 폭발로 기억 자체를 날려 버릴 수도 있었다.
물론 나카타의 경우에는 그것을 의도하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정확한 상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살아남은 요원이 세 명이나 되기에 그들의 진술을 통해서 정황은 다 파악하고 있었다.
“정확한 정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복원 절차에 들어갔지만, 마나 폭발로 날아간 기억이 많아서 힘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흐음…… 그럼 누군지 찾아볼 수 없나요?”
“일단은 현장을 찾아서 사체의 조각들을 확보하여 DNA 검사를 할 계획입니다. 다만 시간은 좀 걸릴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납치된 요원을 알아야지 누가 무슨 이유로 납치했는지 알 수 있을 테니, 확인해 보세요.”
“네, 확인되는 대로 보고드리겠습니다.”
말을 마친 벤자민은 앤더슨에게 인사를 하고 총재실을 나왔다.
총재실의 문이 닫히자 벤자민은 참았던 한숨을 내쉬었다.
점점 유니온의 이상과 자신의 이상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앤더슨의 이상과 맞지 않는 것이었다.
벤자민은 항마력이 있는 무구를 얻은 이후, 아니, 어디서 제조법을 알게 되었는지 말하지 않는 비약을 만들 수 있게 된 이후부터 앤더슨이 약간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벤자민은 자꾸 이상한 생각이 들자, 애써 고개를 흔들며 떠오르는 생각을 지웠다.
* * *
“엄마! 오빠! 나왔어~”
일주일도 채 안 되는 짧은 출장이었지만 해외에 나갔다 왔다고 그새 집이 반가웠고, 가족들이 그리웠다.
그래서 강서영은 큰 목소리로 자신의 등장을 알리며 집으로 들어왔다.
그런 강서영을 어머니 한미애와 강민, 유리엘이 문 앞까지 나와 반겨주었다.
“아유 내 딸, 고생했어.”
“고생은 무슨, 해외 나갔다 오니 좋기만 하던데. 히히.”
강서영의 말에 강민이 머리를 콩 쥐어박으며 말했다.
“표정 보니 일하고 온 게 아니라 놀다 온 것 같은데?”
“아얏, 이거 왜 이러셔! 나도 일했어, 일! 흥.”
강서영의 툴툴거리는 모습을 보며 유리엘은 따뜻한 미소로 그녀를 맞았다.
“그래, 다녀온 성과는 좀 있었어?”
“언니, 생각보다 성과는 없었어요. 제가 담당한 일은 아니었지만, 처음 간 해외 출장에서 성과가 없으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더라고요.”
김강숙 과장과 강서영의 이번 출장은 결국 큰 소득 없이 끝났다. 마지막 날 협상에서 2주 안에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면 KM에서는 이번 스즈키 정밀의 인수를 백지화하겠다는 통보를 남기고 모든 협상을 마쳤다.
또한 만약 현승에서 인수를 포기하여 다시 테이블에 앉게 될 때는 지금과 같은 호조건을 없을 것이라는 말 또한 덧붙였다.
물론 김강숙의 일방적인 생각은 아니었고, 장태성 실장과의 대화를 통해서 내린 결론이었다.
김강숙과 관련 직원들이 몇 달간 인수 합병을 하기 위해 애쓴 것은 사실이지만, KM그룹이 굳이 끌려다니면서까지 스즈키 정밀을 인수해야 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었다.
그 사업 말고도 무수히 많은 사업이 있고, 현재 검토 중인 큰 사업들만 하더라도 서너 개가 있는데 여기에만 얽매일 필요는 없었다.
결과적으로 이번 일본 출장에서 스즈키 정밀에 대한 인수 건은 큰 진전이 없었다.
강서영과의 인사가 끝나자 뒤에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강서영의 뒤에는 익숙한 얼굴의 최강훈과 낯선 얼굴의 한수강이 함께 서 있었다.
한미애는 강서영의 뒤에 서 있는 한수강을 발견하고 최강훈에게 물었다.
“강훈아, 여기 이 친구는 누구……?”
“아, 어머님, 이 녀석이 수아 동생이에요.”
“뭐? 수아 동생? 수아한테 동생이 있었어?”
한미애는 깜짝 놀라며 최강훈에게 되물었다.
“네, 어머님. 그때는 이 녀석이 혼자 산다고 독립해 버린 상태여서 말씀드리진 못했는데, 이 녀석이 쌍둥이 동생이에요. 이름은 한수강이라고 하고요. 뭐해, 수강아. 어서 어머님께 인사드려.”
“아, 안…… 녕하세요.”
한수강은 이런 인사가 어색한지 쭈뼛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 한수강의 모습에 한미애가 인자한 표정으로 그를 맞아주었다.
“반가워요. 수아 동생이라니 말 편하게 할게요. 내 집이라 생각하고 편히 있으렴.”
“아, 네, 네…….”
한수강은 여전히 어색해하며 인사했다. 이런 대우는 그에게 처음이니 적응되지 않는 모습인 것 같았다. 그런 한미애는 한수강의 모습을 따뜻하게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최강훈에게 물었다.
“아, 강훈아 수아한테는 연락했니? 아직 학교에 있으려나?”
“수아 오면 놀래주려고 따로 전화하진 않았어요. 어머님도 수아한테 먼저 연락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래? 동생이 온 걸 알면 어서 보고 싶을 텐데, 연락하지 그랬니.”
“뭐, 몇 시간 뒤면 볼 텐데요. 하하.”
한수아 역시 한수강을 본다면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것이지만, 일단 강민과 이야기하는 것이 먼저였다.
한수아가 오면 조용히 따로 이야기를 나눌 분위기는 되지 않을 것 같아, 최강훈은 그녀에게 별도로 연락하지 않았다. 어차피 얼마 지나지 않아 만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 아, 문 앞에서 이럴 것이 아니라 어서 들어오렴.”
강서영이 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한미애는 솜씨를 발휘해서 저녁을 차려놓았다.
아직 저녁을 먹기는 조금 이른 시간이었지만, 강서영이 배고프다는 말에 모두가 함께 식사했다.
식사를 마친 후 강서영은 한미애와 거실에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최강훈은 강민과 유리엘에게 시간을 내달라고 요청해 한수강과 함께 2층으로 올라갔다.
* * *
“그래서 제 은인인 유키를 살리기 위해 기회를 보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만약 형…… 님이 도와주신다면 이 은혜 평생을 두고 갚겠습니다.”
한수강은 4년 전 제주도에서 강민과 유리엘을 본 이후로 처음 그들을 보는 것이기에 약간 어색해하며 말을 마쳤다.
마나 위성을 통해서 한수강의 이야기를 다 듣고 보았지만, 그것을 내색할 수는 없기에 강민과 유리엘은 다시 한번 한수강의 이야기를 들었다.
최강훈 역시 한 번 더 듣는 이야기였지만, 한수강의 힘들었던 상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그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과거 한수강은 한진문이 죽고 난 후 1년간은 제주도에서 수련을 하였다고 했다.
1년의 수련 끝에 나름의 성취를 보았다고 생각했고, 더 이상 수련해도 느는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자 복수를 생각하며 무턱대고 일본으로 넘어갔다고 했다.
한수강은 그때 상황을 이야기하며 이렇게 말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미친 짓이었죠. C급도 채 되지 못한 주제에 복수는 무슨 복수였는지…….”
젊은 나이, 아니, 어린 나이였기에 가능했던 생각일 것이리라. 성인도 되지 못한 어린 나이에 1년씩이나 동굴 같은 곳에 숨어서 수도승 같은 생활을 하는 것을 견디지 못해 자기 합리화한 것일 수도 있었다.
사실 수련은 주변 환경이 완벽히 받쳐주는 곳에서 하는 것이 월등히 효율이 높다. 혼자서 의식주가 갖추어지지 않는 곳에서 수련한다면 그 효율은 낮을 수밖에 없었다.
단적인 예로 식생활조차 완비되어 있지 않은 곳에서 수련한다면 그날그날 식사를 준비하는 것만 해도 상당한 시간을 빼앗길 것이다. 한수강이 그런 입장이었다.
같은 1년의 수련이라 해도 최강훈이 강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했던 수련과 비교해 볼 때, 양적으로든 질적으로든 엄청나게 비효율적인 수련 방법이었다.
그래서 1년의 수련 동안 D급에서 D+급 정도가 된 한수강은 C급의 벽도 채 넘지 못하고 일본으로 건너간 것이었다.
한수강의 계획은 간단했다. 일본으로 건너가서 빠칭코 같은 곳에서 소란을 부리면 야쿠자들이 나올 것이고, 그런 야쿠자를 하나하나 잡아가다 보면 우두머리가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우두머리는 이능 단체와 연관이 있을 것이니 그렇게 그들을 하나하나 잡으며 기반을 다지다 보면 언젠가는 복수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엄청나게 허술하고 한심한 계획이었지만, 고등학생 정도 나이의 한수강의 생각에는 이렇게 실전을 병행하며 수련한다면 성취 역시 빠를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자신감은 일본으로 넘어온 뒤 일주일도 되지 않아 깨어졌다. 애초에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곳에서 살아남는 것 자체가 힘들 것이었다.
더군다나 처음 계획한 대로 요령 없이 빠칭코 같은 곳에서 소란을 부렸다가 오히려 일반 경찰에 쫓기기도 하였다.
결국 복수를 생각하며 일본으로 건너갔지만, 한수강이 그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