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세귀환록-95화 (95/203)

# 95

현세귀환록

095. 난입(1)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누는 최강훈과 한수강을 지켜보는 눈이 있었다. 아니, 위성이 있었다.

그 위성이 실시간으로 전해주는 그 둘의 모습을, 강민과 유리엘이 지켜보고 있었다.

애초에 마스터 간의 대결처럼 큰 마나 파장을 일으킨 사건을 유리엘의 위성이 놓칠 리가 없었다.

강민과 유리엘은 마스터 간의 대결부터 최강훈이 한수강을 빼돌리는 모습까지 실시간으로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었다.

허공에 스크린처럼 띄운 영상을 통하여 최강훈과 한수강의 대화를 듣던 강민이 입을 열었다.

“그런 것이군.”

“그러게요. 유니온 녀석들 생각보다 치사하게 구는 부분이 많네요. 세계의 이능계를 장악하고 있다고 큰소리치면서 말이에요.”

한수강의 말을 들은 후 어처구니없어하는 유리엘을 바라보며 강민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사실 이능계를 장악한 것은 유니온이 아니라 위원회지. 유니온은 그 위원회의 하수인에서 벗어나려고 발악하는 것이고.”

“하긴 그렇죠. 그러니 민한테 찾아와서 연금의 일족 운운하며 도와달라 한 것이겠지요.”

연금의 일족 이야기가 나오자 강민이 유리엘에게 물어봤다.

“흠……. 연금의 일족이라, 혹시 찾아봤어?”

“한 번이라도 보았으면 마나 파문 데이터베이스를 통해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연금의 일족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확실하게 파악하지는 못했어요.”

“하긴 그렇겠군.”

확실히 찾지는 못했다고 하지만 가만히 있었을 유리엘이 아니었다. 전면에 또 다른 화면을 띄운 그녀가 이어서 말했다.

“그치만 일단 이야기가 나온 그들의 특징으로 필터링해서 찾아보니, 의심되는 사람이 열다섯 명 정도는 나왔어요. 한번 찾아가 볼까요?”

유리엘은 또 다른 화면에는 세계 전도가 입체적으로 떠올라와 있었는데, 그곳에는 열다섯 개의 붉은 점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만일 유리엘이 연금의 일족을 한 번이라도 마주쳤다면 그들의 특징적인 마나 파문을 찾아서 정확한 검색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연금의 일족과 마주친 적이 없는 그녀는 단지 유니온의 말에서 추측한 특징만으로 검색을 시행했다.

하지만 그 정도의 정보로도 전 세계의 이능력자 중 열다섯 명의 후보자를 찾아냈다. 몇백만 명의 이능력자 중에서 열다섯 명이면 찾아낸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그러나 강민은 연금의 일족에 대해서 아직까지 큰 관심이 없었다.

“당장 급한 것도 아닌데, 나중에 확인해 보든지 하지 뭐. 그건 그렇고 유니온에서 항마력이 있는 무구까지 제작했다니 의외야.”

강민이 연금의 일족에서 유니온의 무구로 이야기를 돌리자 조금 전에 띄워 놓았던 화면을 닫으며 유리엘이 대답했다.

“그러게요. 여기의 기술력으로는 무구에 항마력을 부여하기는 힘들었을 텐데 말이에요. 아까 그 무구들을 보니 마물의 사체를 이용한 것 같은데, 어디서 항마력을 쓸 수 있는 마물을 잡았나 봐요.”

“그런 것 같아. 여튼 저들 10명이라면 강훈이 녀석도 쉽지는 않겠네. 항마력을 이겨낼 마나 컨트롤 능력이 없다면 초월의 영역에 드는 것도 힘들 테니 말이야.”

초월의 영역은 단지 집중력만 높인다고 들어갈 수 있는 영역은 아니었다. 극도로 높아진 집중력에 내외부의 마나가 공명하여 새로운 영역으로 들어가는 방식이었다.

그렇기에 항마력이 작용하여 마나 공명을 방해한다면 웬만한 마나 컨트롤로는 초월의 영역에 들어가 힘들 수 있었다.

유리엘도 그걸 알고 있기에 그 무구를 높이 평가했다.

“유니온에게 위원회를 상대할 카드가 생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네요.”

“그렇지. 무구에 담긴 항마력이 상당한지 마스터급이 펼친 폭혈공에도 몇몇은 살아남았으니…….”

“살아남은 녀석들이 장비를 주워가는 것 보니, 저 항마력이 담긴 무구가 많지는 않나 봐요.”

“그렇겠지. 항마력이 있는 마물은 흔하게 볼 수 있는 마물은 아니니까. 마물의 사체를 이용했다 하더라도 그리 많이 만들지는 못했을 거야.”

최강훈은 한수강을 구한다고 나카타의 마지막을 보지는 못했지만, 강민과 유리엘은 마나 위성을 통해서 그의 마지막까지 지켜보았다.

나카타의 폭혈공에도 세 명의 복면인은 살아남았고, 그들은 동료들의 시체를 회수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들이 사용한 무구만을 회수하여 되돌아갔다.

냉정하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조치였다. 시체보다는 무구가 더 중요한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그래, 수강이는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아까 최강훈과 한수강의 대화를 들었기에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이쪽으로 흘러갔다.

“어차피 강훈이가 돌봐주어야 할 식솔 같은 녀석이니 데리고 와야겠지.”

“그럼 유키도 데려올 건가요?”

“데려오지 않는다면 수강이도 안 오지 않겠어?”

“그렇겠죠. 강훈이하고 수강이를 이리로 부를까요?”

“일단 수강이도 한국으로 오려는 것 같으니 이리로 오면 이야기해 보자.”

“유키를 데려온다면 유니온은 어떻게 하려고요? 아예 없애버릴 것인가요?”

표면적으로는 전 세계의 이능계를 장악하고 있는 유니온이지만, 유리엘은 마치 주머니에서 물건을 꺼내듯이 쉽게 유니온은 없앤다는 이야기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농담을 하는 것인 줄 알겠지만, 당연히 유리엘은 농담을 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충분히 능력이 있었으니 말이다.

유리엘의 그 물음에 강민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일단은 유키만 몰래 데려오는 식으로 처리해야겠어. 현재 마나장과 차원장의 파동으로 보아 아무래도 빠르면 몇 년 안에 차원 교차가 발생할 것 같은데, 그때 이능력자들과 일반인들을 통제해 줄 집단이 필요하잖아. 지금 유니온을 없애버린다면 그때 혼란이 더 커질 수 있겠지.”

유니온을 놔둔다는 강민의 말에 유리엘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흠…… 차라리 총재하고 부총재를 비롯한 수뇌부만 갈아치우는 것은 어때요? 하는 짓들이 영 지저분한데 말이에요.”

“그 생각도 안 해본 건 아닌데, 그들도 어차피 위원회와 줄타기 하고 있는 입장이잖아. 이 정도 이전투구(泥田鬪狗)는 누구를 앉혀 놓아도 벌어질 것 같아.”

“하긴 그렇죠. 진흙탕 싸움을 막으려면 위원회와 동시에 처리해야 할 것 같네요.”

“그렇지. 어차피 차원 교차가 발생하면 그런 정치 싸움을 할 여유는 없을 거야. 여기 마나 문명 수준이라면 하나가 되어서 막아도 힘든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니 말이야. 잠시 두고 보자. 길게 가지는 못할 테니 말이야.”

몇몇 소수의 강자는 있지만, 지구의 마나 문명 수준은 지금껏 강민과 유리엘이 들른 차원에 비해서 상당히 낙후된 수준이었다. 마나 문명이 낙후된 가장 큰 이유는 마나장 자체가 약하다는 것에 있었다.

마나장에서 마나를 생성해 내는 마나량 자체가 다른 차원에 비해서 월등히 떨어져 있다 보니 마나 잠재력이 있는 적합자들이나 각성자도 매우 드문 형국이었다.

또한 마나를 수련하는 방법 자체도 비의(秘意)로서 전수되어 제대로 된 마나 수련법의 전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물론 마나장이 약하다는 것이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마나장이 약하기 때문에 다른 차원에서 흔한 마물의 출현이 극히 드물다는 장점도 있었다.

그런 이유로 다른 차원에서는 마물과의 투쟁을 통하여 천천히 문명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과는 달리, 마물이 없는 이곳은 물질 문명이 극도로 발전하여 상대적으로 풍족한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장점은 차원의 교차가 발생하면 모조리 단점으로 바뀔 것이었다.

우선 마물에 대한 대비가 전혀 되지 않을 것이었다. 마나 문명에 익숙하지 않은 현 차원의 주민들은 수많은 마물에게 잡아먹힐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물론 몇몇 이능력자가 지금 웜홀에서 마물을 잡는 것처럼 마물을 잡을 것이지만 대다수의 일반인은 마물의 먹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더 큰 문제는 차원의 교차로 차원의 경계가 없어져 마나 자체가 뒤섞이고 나면 마물들이 더 이상 마나 충돌을 겪지 않게 될 것이었다.

지금까지 타 차원에서 오는 마물들은 마나 충돌 때문에 적게는 10~20%, 많게는 90% 이상 힘의 감소가 발생했다.

마물의 본 차원과 현 차원 간의 마나 성질 차이에 따라서 마나 충돌의 정도는 천차만별이었는데, 대부분의 마물은 본래 차원보다는 월등히 약해져서 이 차원에 들어왔다.

하지만 이제 차원의 경계가 없어지면 이런 마나 충돌이 없어진다. 그렇게 되면 마물들은 힘의 손실 없이 현 차원에 난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즉, 지금은 C급이라 불리는 마물도 마나 충돌에 의한 힘의 감소가 없다면 S급 이상의 마물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된다면 지금 이능력자들도 마물에 대해서 승산을 장담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더군다나 마나 충돌이 없으므로 자연적으로 소멸하지도 않을 것이었다. 악몽과도 같은 시간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강민과 유리엘에게는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였다. 어떤 상황이 벌어지든 자신들에게 영향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제껏 지내온 시간이 그것을 반증하고 있었다.

둘이 나선다면 차원이 교차할 동안 지구의 안전을 충분히 보장할 수 있겠지만, 둘에게 그럴 이유는 없었다. 가족들의 안전만 보장되고 나면 둘이 나설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차원의 교차는 짧게는 몇백 년 길게는 몇천 년까지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가족들이 살아 있는 동안만 이곳에 있을 강민과 유리엘이 지구의 안전을 계속해서 지킬 수는 없었다. 어차피 현 인류는 차원 교차에 적응해 나가야 할 것이었다.

한 가지 희망적인 것은 마나장이 합쳐져 마나량이 풍부해지면 각성자나 마나 적합자가 우후죽순처럼 발생할 것이고, 그들이 성장한다면 이 차원을 지키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물론 그들이 성장할 때까지 얼마만큼의 인류가 살아남을지는 알 수 없겠지만 말이다.

한수강에 대한 이야기가 어느 정도 정리되자, 유리엘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아무튼 오늘 하루 만에 한국과 일본의 이능 세계가가 완전히 뒤집혔네요.”

“그러게 말이야.”

지금 강민과 유리엘이 보는 스크린은 하나가 아니었다. 최강훈과 한수강을 잡고 있는 스크린 옆으로 몇 개의 스크린이 더 떠올라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이능력자 간의 치열한 대결이 펼쳐지고 있었다.

대결은 이미 종반에 이르렀는지 처음과 같은 난전은 끝났고, 단발적인 저항만 군데군데서 발생할 뿐이었다.

이제 전투가 거의 끝나가는 것을 확인한 유리엘이 강민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되면 유니온이 한국과 일본 양쪽을 다 장악했다고 봐도 되겠죠?”

“일본은 그런 것 같은데, 한국 쪽은 모르지. 아직도 몇몇 세력들이 남아 있잖아.”

“그렇지만 남한 쪽은 천왕가가 거의 장악하고 있었잖아요. 다른 세력들이 천왕가의 공백을 메꿀 수 있을까요?”

실제로 한국의 대표 세력이라 하면 천왕가를 떠올릴 정도로 천왕가는 이능 세계에서는 유명한 세력이기도 했다.

한반도 전체를 보면 백두일맥이나 금강선원이 천왕가와 비견할 만하겠지만, 남한만 본다면 천왕가를 따라갈 만한 세력은 드문 상황이었다.

어차피 백두나 금강이나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있으니 실제로 이름이 난 세력은 천왕가밖에 없었다.

“흠…… 선인경(仙人境)이나 멸마단(滅魔團) 같은 단체는 소수정예라 힘들겠지만 화랑(花郞) 정도 규모라면 한번 해볼 만하지 않을까?

강민의 말에 유리엘이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말했다.

“그들 정도로 가능할까요?”

“두고 봐야지. 그들도 조만간 천왕가가 멸문에 가까운 타격을 입은 것을 알게 될 테니, 욕심이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반응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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