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세귀환록-93화 (93/203)

# 93

현세귀환록

093. 격돌(4)

펑! 퍼엉! 펑펑!

아까 전의 굉음에 비해서 한결 가벼워진 충격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에 실린 역도는 아까보다 더 컸다. 서로의 기가 내부적으로 갈무리되어 외부로 터져 나오는 파열음이 줄었을 뿐이었다.

일반인의 눈으로는 쫓을 수조차 없는 엄청난 공방이 이어졌다.

채앵- 챙챙챙-

이제는 숫제 마나도 씌우지 않은 검이 부딪치는 것과 같은 쇳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렇지만 보이는 것과는 달랐다.

이런 현상은 더 깊숙이 마나가 갈무리 되어 충격음이나 충격파로 낭비되는 마나가 거의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주위로 흩어지는 마나 파동이 그 격돌에 실린 무거운 마나를 증명해 주는 것 같았다.

여전히 나카타가 주도권을 갖고 번개 줄기 같은 도세로 이극민의 전신을 노리고 파상공세를 펼쳤고, 이극민은 재빠르지만 신중하게 그 공격 하나하나를 막아내고 있었다.

5분여의 시간이 지났을까? 무서운 격돌을 주고받던 이극민과 나카타의 공방에 잠깐의 멈춤이 생겼다. 주변에서 보는 사람들이라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극히 짧은 순간이었지만, 공방의 당사자들은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더군다나 초월의 영역에 들어간 둘에게는 그 짧은 순간이 엄청나게 긴 시간으로 느껴졌다.

‘윽! 힘이 떨어진다. 이제 진짜 승부를 걸어야겠군!’

나카타는 몸속의 약효가 떨어지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약효가 끝난다면 당분간은 전혀 마나를 쓸 수 없는 몸이 될 것이기에 나카타는 여기서 승부를 봐야만 하였다. 지금 생긴 잠깐의 틈은 그에게는 마지막 기회였다.

이극민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나카타가 초월의 영역에 들어온 것을 알게 된 이극민은 한 수, 한 수를 신중하게 공격했다.

하지만 나카타는 마치 미친개처럼 자신에게 파상공세를 퍼부었고, 이극민은 간신히 그의 공세를 막아가고 있었다.

이대로 좀 더 지속된다면 노화가 이미 진행된 자신의 몸이 더 버텨내기 힘들 것 같았다. 승부를 낼 시점이었다.

나카타도 비슷한 마음을 먹었는지 때마침 그의 기세가 아까 전보다 강렬해지며 번개 같은 도세를 펼쳐냈다.

나카타의 일본도는 이극민의 정수리로 떨어져 내렸다. 밖에서 본다면 빛처럼 빠른 움직임이겠지만, 둘에게는 여전히 느린 공격일 뿐이었다. 그러나 느리게 보인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몸은 그보다 더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마지막임을 직감한 이극민은 이 공격을 흘려내며 나카타의 상체를 갈라버릴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그의 일본도를 막으려고 환도를 올려치는 순간!

나카타의 도에 실린 붉은 빛이 사라지며, 이극민의 환도에 그의 일본도가 잘려 나갔다.

‘헙!!!!’

이극민의 계획은 나카타의 도세를 흘려내며 그에 대한 반발력을 이용하여 공격하려고 한 것이었는데, 나카타의 도가 무 썰리듯이 썰려버려서 반발력을 이용할 수 없었다.

사무라이 정신을 강조하는 그가 이렇게 쉽게 자신의 무기를 포기할 리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새 나카타의 왼손이 붉은 기운을 가득 담고 이극민의 복부까지 다다라 있었다.

‘늦었다!!’

이미 막거나 피하기는 늦었음을 직감한 이극민은 오른쪽으로 몸을 회전하며, 하늘로 향해 있는 그의 환도를 벼락처럼 내리그었다.

복부의 공격은 허용하겠지만, 이 공격을 피하지 않는다면 나카타 역시 큰 상처를 입을 것이었다. 그야말로 동귀어진(同歸於盡)의 한 수였다.

하지만 나카타는 이극민의 공격을 보고도 피하지 않았다. 약효도 떨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자신의 일본도까지 잃은 그가 이 공격을 피한다면 더 이상 기회를 잡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카타는 피하기는커녕 더욱 많은 마나를 실어 이극민을 공격했다.

샤악! 퍼-억!

무언가 갈리는 소리와 함께 약한 파열음이 동시에 발생하였다. 전투가 끝났음을 알리는 소리였다.

나카타의 몸은 오른쪽 어깨부터 왼쪽 옆구리까지 갈라져 울컥울컥 상처에서 피가 쏟아지고 있었고, 이극민은 옆구리가 안쪽으로 움푹 들어간 채로 5미터 정도 날아가 피를 토하고 있었다. 둘 다 치명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같은 치명상이라도 이극민의 손해가 더 컸다. 겉으로 보기에는 나카타가 더 큰 피해를 입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이극민의 내상이 더 심각하다는 이야기였다.

만일 지금 상태에서 계속 공방이 이어진다면 이극민의 패배는 불 보듯 뻔한 상황이었다.

어느 정도 피를 지혈한 나카타와 몸을 추스른 이극민이 무언가 이야기하는 순간, 이제까지 잠자코 그들의 대결을 지켜보던 복면인들이 전면으로 뛰어들었다.

“뭐지!”

“뭐냐!”

나카타와 이극민은 동시에 외쳤고, 각자 그 말을 듣는 순간 서로가 동원한 세력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둘 다 아니라면 범인은 한 곳밖에 없었다.

“크으윽……. 유니온이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은 히무라가 배신자였단 건가……. 이러려고 내게 비약까지 주면서 이곳을 알려 준 것이군…….”

나카타는 씹어 삼키는 듯한 말을 내뱉으며 심경을 표현했고, 그의 말에 이극민은 전말을 알 수 있었다.

“쿨럭, 어쩐지……. 정보력도 약한 네가 이곳에 나타난 것부터 이상했지……. 내가 히데오의 묘소를 참배한다는 것은 측근들 말고는 몰랐는데 말이야…….”

이극민은 히데오의 묘소를 참배하기 위해서 비밀리에 움직였었다. 아무래도 유니온의 세력권 안에서 대규모 인원이나 호위 인력을 동원하기는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마스터의 경지에 있는 이극민은 자신감이 넘치기도 하여서 수발을 들 소수의 부하들 외에는 호위인력은 필요 없다 생각했다.

그런데 나카타가 어떤 루트를 통해서 정보를 획득했는지 이곳에 나타난 것이었다.

이극민은 어떻게 나카타가 자신의 앞에 나타났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를 제거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그와의 대결을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 둘 다 치명상을 입은 이 상황에서 복면인들이 나타나고, 나카타도 그 복면인을 알지 못한다는 순간, 이극민 역시 결국 이 모든 것이 유니온의 음모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카타와 이극민 둘 다 이미 치명상을 입은 것으로 보여 처리하는 것에 어려움이 없을 것처럼 보였지만, 둘은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강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복면인들은 섣불리 공격해 들어가지 않고 일단 조심스럽게 둘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이극민과 나카타는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는지, 복면인들의 접근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복면인들이 전장에 뛰어드는 모습을 멀찌감치서 지켜보던 최강훈은 30명 중의 10명은 다른 20명보다는 좀 더 강한 능력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히, 그 10명의 기감이 묘하게 흐트러져서 감지되는 것이 좀 의아하게 느껴졌다.

최강훈은 아직 한수강으로 짐작되는 인물이 위험한 상황에 있지 않아 나서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는데, 전투가 시작되면 혼란스러운 상황을 틈타 그를 빼낼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이극민과 나카타를 둘러싸고 천천히 접근하던 복면인들은 30미터 정도까지 가까워지자, 본격적으로 무기를 빼 들고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래도 이극민과 나카타가 아무런 반응 없이 가만히 서 있기만 하자, 이미 다 잡은 고기라고 생각했는지 몇몇 복면인들이 서로가 먼저 공을 세우고자 둘을 향해 빠르게 접근했다.

하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이 정도 치명상에도 마스터는 마스터였다. 각자에게 공격해오는 3명의 복면인들을 이극민과 나카타는 어렵지 않게 처리했다.

마치 상처를 입지도 않은 것처럼 보였다. 순식간에 복면인의 수는 24명으로 줄어들었다.

6명의 복면인을 처리한 이극민과 나카타는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생각에 몸을 피하려고 마음먹었다. 조금 전 복면인들을 처리하는 것으로 간신히 부여잡은 기운이 다시 흐트러졌기 때문에, 이제는 도망칠 생각만을 하고 있었다.

마스터에 올라 도망친다는 것은 상당히 체면이 상하는 일이지만, 체면이 목숨보다 중요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도망치려고 마음먹고 나자, 이상하게도 몇몇 복면인들에게서 나오는 기운이 그들이 움직이려는 길을 막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느낌을 무시하고 움직였다가는 왠지 더 큰 피해를 입을 것만 같았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니 정확하게는 24명의 복면인 중 10명에게서 기이한 기운이 풍겼다. 그들의 기파가 10명에게 막히는 느낌이었다.

복면인들 역시 6명의 복면인이 허무하게 죽자, 리더로 보이는 인물이 수신호로 나머지 인물에게 지시했다. 섣불리 나서지 말라는 것 같았다.

이윽고, 리더는 다른 수신호를 하였고 그 수신호에 복면인들은 6명씩 한 개 조를 이루어 2개 조는 이극민에게, 2개 조는 나카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기이하게 자신들을 감싸는 기운에 나카타와 이극민은 불쾌감을 느끼면서도 함부로 나서지는 못했다. 그만큼 몸 상태가 최악이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나카타는 서서히 약 기운이 잦아들고 있는 것이 느껴져서 등에는 한 줄기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약 기운이 사라져 마나를 못 쓰게 된다면 지금 다가오는 복면인들을 처리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네놈들은 누구냐!”

이미 유니온임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는 이극민이었지만, 상처를 추스르기 위한 시간을 벌고자 리더로 보이는 복면인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리더는 말이 없었고, 단지 오른손을 들어 이극민과 나카타를 향해서 가리켰다. 누가 보아도 공격의 신호였다.

“하압!!”

“합!”

“이얏!”

각종 기합과 함께 24명의 복면인이 12명씩 각각 이극민과 나카타를 향해서 달려들었다.

복면인들과 공방을 주고받기 시작하자 이극민은 그 기이한 느낌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12명 중 5명의 복면인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자신의 마나 운용을 방해한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평소라면 다소 부담은 있겠지만, 이 정도 기운으로는 자신을 묶어 둘 수는 없을 것이었다. 물론 좀 더 많은 기운이 모이면 힘들 수도 있겠지만 지금 기운 정도면 충분히 눌러버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치명상을 입은 직후였다. 상처로 인하여 군데군데의 기혈이 막혀서 기의 순환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초월의 영역에 들어갔다 나온 후유증으로 아직도 온몸이 삐걱거리며 고통을 호소했다.

이들을 처리할 확신이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이극민은 복면인과 공세를 주고받으면서도 틈을 보아 이곳을 빠져나갈 생각만 했다. 정면으로 부딪칠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복면인들은 틈을 주지 않았다. 특히, 기이한 기운을 풍겨내는 복면인 5명 중 3명은 이극민을 삼재진 형태로 둘러싸고 마나 운용을 방해하는 기운을 쏘아내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 때쯤, 머릿속에 나카타의 전음이 들려왔다.

[이 가주, 유니온의 음모 같소. 우리 둘 다 한 번에 처리하려는 수작이었던 것 같군.]

[그런 것 같군.]

나카타는 태상가주인 자신을 가주라고 불렀지만, 이극민은 굳이 그걸 고치지 않았다. 태상가주든 가주든 지금에 와서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내가 이 가주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유니온의 이런 행태는 더 참을 수가 없군.]

[참지 못한다면 어쩌려고 그러나? 이상한 기운을 쏘아내는 저 녀석들 때문에 이 자리를 피하기조차 힘든 상황인데 말이야.]

나카타는 이극민의 말에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조금의 시간이 지나자 다시 전음을 하였다.

[……이 가주, 어차피 난 이 자리를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소.]

이상한 기운을 쏘아내는 복면인들이 얼마나 저 기운을 운용할지는 모르겠지만, 이극민은 아직 이곳을 벗어날 생각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보다 더 젊고 팔팔해야 하는 나카타는 삶을 포기하는 듯한 언급을 하여 이극민은 놀란 내심을 감추고 물었다.

[무슨 소리인가? 후유증이 많이 남기는 하겠지만, 일시적으로 잠력을 터뜨려서 저들의 공격을 튕겨낸다면 충분히 빠져나갈 기회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야.]

[허헛, 이제껏 서로 죽이려고 싸운 내게 조언을 해주는 것이오? 이 가주에게는 다행일지도 모르겠지만 난 이미 터뜨릴 잠력도 없소. 반쪽짜리 마스터인 내가 아까의 힘을 쓰기 위해서 이미 대가로 치렀소.]

그제야 이극민은 나카타가 어떻게 초월의 영역에 들어올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비법인지 비약인지, 무언가 특별한 방법을 통해서 일시적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이었다.

[허허, 그랬군……. 그런데 갑자기 내게 이 말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내가 마지막으로 역혈공을 사용해서 저놈들을 맡을 테니 그사이 이 가주는 몸을 피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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