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세귀환록-91화 (91/203)

# 91

현세귀환록

091. 격돌(2)

그런데 그렇게 히데오가 지키고자 했던 일본을 외부의 세력들이 나서서 장악하려 하고 있었다. 히데오의 유지까지 들은 나카타가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는 유니온이 더 많은 세력을 차지하고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지만, 나카타의 판단에는 유니온은 충분히 협상이 통할 세력으로 보았다.

유니온이 일본의 이능계를 장악하려는 명분은, 구심점이 없어 혼란한 일본의 이능 세계가 일반인에게까지 피해를 주고 있기에 유니온에서 나서서 그들을 통제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나카타가 일본 이능계의 구심점이 되고 다시 헤이안의 쇼군에 오른다면 유니온과 충분히 협상을 통해 충분히 과거 헤이안과 같은, 과거 쇼군과 같은 위치로 복귀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천왕가의 이극민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애초에 이극민이 나선 것도 히데오 쇼군과의 친분을 명분으로 그의 유지를 잇겠다고 참전한 것이었다.

들리는 이야기에 따르면 한국에서 수련한다고 헤이안의 참사를 피해 살아남은 쇼군의 조카를 내세워 다시 헤이안을 재건하려 한다는데, 쇼군의 조카라는 말도 의심스럽고 기껏해야 A급 정도의 능력자로 헤이안을 재건하려 한다는 것에 나카타는 코웃음이 나왔다.

나카타의 생각으로는 이런 이극민의 행동은 말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한낱 조센징에 불과한 이극민이 어떻게 쇼군의 유지를 잇는다는 말인가. 그의 생각으로는 화경에 오른 이극민이 일본의 이능 세계에 욕심을 내어 거짓 명분을 세운 것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문제는 많은 일본 내 이능 단체들이 이극민의 말에 호도되어 그를 따른다는 것에 있었다.

결국 나카타가 이 자리에 선 것도 그 이유였다. 이극민을 잡지 않고서는 일본 내 이능 세계의 통합은 있을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나카타의 노기 섞인 말에 이극민은 되려 비웃음을 담은 말투로 되물었다.

“너 따위가 어떻게 히데오의 유지를 잇겠다는 것이냐? 아니, 애초에 히데오의 유지가 무엇인지 알고나 있나?”

이극민의 말에 나카타가 확신에 찬 어조로 대답을 하였다.

“물론이지. 히데오 쇼군은 우리 일본이 우뚝 서는 것을 바랐을 것이다. 그것이 일본의 이능계를 책임지고 있는 쇼군이 뜻이지!”

나카타의 대답이 어이가 없었는지 이극민은 혀를 차며 나지막이 말했다.

“허어, 참. 어처구니가 없군. 히데오의 생각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놈이, 어디서 저런 말을 주워듣고 와서 설쳐대기는…….”

“히데오 님의 생각이 어떻다는 말이냐?”

이극민은 할 말은 많았지만, 더 이상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히데오와 이극민 둘 사이의 비밀을 굳이 다른 사람들에게 알릴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알릴 수가 없었다. 히데오는 이미 죽었지만 히데오와 그 사이의 비밀이 알려진다면 일본 이능계에서 우상시 되는 과거의 명성마저 흐려질 수 있었다.

히데오는 이대로 일본의 쇼군으로 남아 있는 것이 좋았다. 굳이 비밀을 밝혀 일본에서 빛났던 그의 이름에 먹칠을 할 필요는 없었다.

지금은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었지만 이극민은 히데오의 형이었다. 즉, 이극민과 히데오는 형제 사이였다. 그랬기에 서로 다른 나라, 다른 집단에 있어서 친하게 지낼 만한 공통점이 없음에도 둘은 자주 교류하며 매우 친한 사이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사실 둘은 그들은 순수한 한국인도, 그렇다고 순수한 일본인도 아니었다. 이극민과 히데오는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형제였다.

이런 상황이니 당연히 그들에게 애국이나 애족 같은 말은 의미가 없었다. 그들에게는 서로 의지할 수 있는 가족 둘만이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과거 한국이 일본의 지배를 받고 있었을 때, 신화일도류의 계승자 중 하나인 나오미는 한국으로 수행을 나온 적이 있었다. 나오미는 한국에 있는 명산과 유명한 이능 단체 등을 돌면서 수행을 하던 중 계룡산에서 천왕가의 종손 이태천과 마주쳤다.

이태천 역시 지리산에 있는 천왕가 본가에서 나와 전국 각지를 돌면서 수행 중이었는데, 둘은 계룡산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된 것이었다.

한눈에 서로의 강함을 알아본 둘은 서로가 동시에 비무를 신청했다. 20대 초반, 한창 호승심이 끓어오르는 나이의 둘은 치열한 비무를 치렀다.

둘의 실력은 거의 비등하였는데 결국 간발의 차이로 이태천이 나오미를 이길 수 있었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이태천의 승리라고는 볼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단순 비무라고 생각하여 살기 띤 공격을 자제한 나오미에 반해, 이태천은 이기고 말겠다는 호승심에 상대방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곳까지 가차 없이 공격을 감행하였기 때문이었다.

최후의 순간에도 나오미는 이태천의 목을 공격하려다가 치명상을 염려하여 마지막 순간 어깨로 공격을 틀었고, 어깨를 공격한다는 것을 알아차린 이태천은 살을 주고 뼈를 깎는 마음으로 나오미의 복부를 찔렀다.

그 공격에 나오미는 서둘러 피하려 하였으나 자신의 공격 방향을 바꾸는 것에 먼저 신경을 쓰다 보니, 이미 피할 타이밍을 놓쳤고 결국 옆구리에 큰 검상을 입고 말았다.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치명상이었다.

나오미가 처음의 공격을 유지하였다면 쓰러지는 것은 이태천이었을 것이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고 결국 그녀가 쓰러지고 말았다.

나오미가 쓰러지고 난 다음에야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은 이태천은 깊은 후회와 함께 온갖 약재를 구해서 정신을 잃은 그녀를 살리려고 하였다.

이태천은 나오미를 의원으로 옮겨 한 달이 넘도록 그녀의 병수발을 들었다. 이태천의 지극정성에 한 달 만에 정신을 차린 나오미는 그런 일을 겪고도 이태천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비무지만 너무 안이하게 대응했다며 자책하는 그녀의 모습에 이태천은 더 깊은 죄책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겪고도 그에게 잘못이 없다고 말하는 나오미에게 점차 호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특히 병수발을 하며 세 달에 가까운 시간을 같이 지내는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눈 둘은 서로에 대한 깊은 호감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첫 만남은 좋지 않았지만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의 진실한 모습을 알게 되었고, 그런 모습에 서로가 점점 빠져들게 되었던 것이었다.

결국 이태천은 나오미에게 구애하였고, 나오미 역시 이태천을 받아들여 둘은 함께할 수 있었다.

좀 더 시간이 흘러 사이가 더욱 깊어진 이태천과 나오미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약을 맺었고, 각자의 세력으로 돌아가지 않고 계룡산에서 신혼을 시작했다.

이태천이나 나오미는 이능 세계와 일반 세계가 분리되어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상을 갖고 있었기에, 서로의 국적이 다른 것에 별다른 편견은 없었다. 하지만 천왕가의 원로들이나 신화일도류의 원로들은 생각이 달랐다.

천왕가의 원로들은 당시 한반도를 지배하고 있던 일제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이 있었고, 신화일도류의 원로들은 일본의 지배를 받는 한국인을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기에 둘은 각자의 세력으로 돌아가지 못했고, 계룡산에서 몰래 신혼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몰래 한 결혼이라지만 둘의 신혼 생활은 행복했다. 그리고 함께한 6년 동안 이극민, 이극영 형제를 낳았다.

하지만 그 행복은 그때까지였다. 결국 천왕가의 사람들과 신화일도류의 사람들이 그 둘을 찾아냈기 때문이었다.

종손이 몇 년간 본가로 돌아오지 않아서 천왕가에서는 적극적으로 이태천을 찾았고, 신화일도류 역시 수련을 나간 계승자가 몇 년간 돌아오지 않자 그녀를 찾으러 한국으로 사람을 보냈던 것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둘을 찾은 두 집단은, 서로가 둘 모두를 각자의 세력으로 데려가려고 했다. 자신의 세력으로 데려가서 죄를 물으려 한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두 집단의 대립은 일촉즉발의 상태까지 다다랐다. 자존심 싸움까지 벌어져 이 둘을 찾으러 온 사람들 간의 대립을 넘어 천왕가와 신화일도류 세력 간의 전면전이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에까지 가까워지고 있었다.

결국 전면전이 벌어지기 직전 이태천과 나오미는 각각 자신들의 출신 세력을 설득하였고, 두 세력의 충돌을 막기 위해서 이태천은 천왕가로, 나오미는 신화일도류로 돌아가는 것으로 합의가 되었다.

그리고 이극민과 이극영, 두 형제 역시 이극민은 아버지를 따라 천왕가로, 이극영은 어머니를 따라 신화일도류로 가게 된 것이었다.

자진해서 각자의 원래 세력으로 돌아갔지만 그들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어느 조직이나 원로라고 불리는 나이가 있는 수뇌부는 보수적인 측면이 짙었고, 적대 관계라 할 수 있는 국가의 인물과의 결혼은 그들에게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이태천과 나오미는 각각 천왕가와 신화일도류의 비기를 유출한 것이 아니냐는 원로들의 추궁마저 들었다.

결국 둘은 각자의 종손과 계승자라는 자리와 직무에서 쫓겨나고 말았고, 무공마저 전폐되어 감금과 다르지 않은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부모인 그 둘이 이런 상황에서 그들의 아들들은 더 심한 고초를 겪었다.

이극민은 이극민대로 반쪽은 일본인이라 천왕가 내에서 괴롭힘과 따돌림을 받았고, 일본으로 가서는 히데오로 불리는 이극영은 이극영대로 반은 조센징이라고 이지메를 당했다.

그렇게 이극민과 히데오는 조국에 대한 애국심보다는 증오심이 깊게 자리하였고, 그런 그들에게 남은 것은 수련밖에 없었다. 날개가 꺾인 이태천과 나오미 역시 자신의 아들을 가르치는 데 마지막 힘을 다할 뿐이었다.

무공마저 전폐되고 사랑하는 사람과도 이별하고만 이태천과 나오미는 삶에 대한 희망을 잃었는지 그리 오래 살지는 못했고 비슷한 시기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때가 이극민이 25살 히데오가 22살이 될 무렵이었다.

부모의 사후, 둘밖에 남지 않은 이극민과 히데오는 드물게 서로 간에 연락을 주고받는 것 이외에는 미친 듯이 수련에만 힘을 썼다.

히데오의 무에 대한 재능이 이극민을 앞섰는지, 히데오는 40대의 나이에 화경, 즉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다. 그리고 그가 마스터가 되자마자 신화일도류에는 처절한 피의 숙청이 시작되었다.

히데오는 자신과 어머니를 괴롭힌 원로들부터 자신이 반쪽짜리 일본인인 것을 아는 모두를 숙청해 버렸다.

세력이 약해지는 것은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애초에 신화일도류에 대한 애착도 없었고 마스터인 자신만으로도 무력은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히데오가 마스터에 오른 것을 알게 된 이극민은, 히데오에게 연락을 해 천왕가의 숙청 역시 부탁을 하였다. 당연히 히데오는 형 이극민의 요청에 따라 암암리에 한국으로 건너가 천왕가 역시 마찬가지의 숙청을 시행하였다.

천왕가에서는 이극민이 직접 숙청을 한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히데오의 도움을 받았다.

당시 이극민의 역량으로는 천왕가의 원로들을 모두 상대하긴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무렵 이극민은 A급 정도의 역량밖에 갖추지 못하고 있어, A급과 A+급이 다수 있는 원로들을 모두 처리하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결국 히데오의 도움을 받아, 천왕가의 원로 및 이태천의 일에 관계된 모두를 숙청해 버렸다.

그 이후로는 이극민은 천왕가의 가주로 히데오는 신화일도류의 당주로 활동하였다. 아직 마스터가 되지 못한 이극민은 천왕가만 수습하는 데 온 힘을 다할 뿐이었지만, 이미 마스터가 된 히데오는 전 일본을 아우르는 세력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결과 히데오는 10여 년 만에 헤이안이라는 거대 집단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이후 일본에서는 무소불위의 권한을 누리면서 이능계뿐만 아니라 동명의 기업 집단까지 만들어 일반 세계에서도 누구도 부럽지 않은 자리까지 올랐다.

하지만 자신의 수하 중의 하나가 강민과 엮이는 바람에 파란만장했던 그의 삶은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다. 물론 이극민은 아직 히데오가 무슨 이유로 죽었는지까지는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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