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세귀환록-90화 (90/203)

# 90

현세귀환록

090. 격돌(1)

얼마 지나지 않아 최강훈은 한수강이라 추측되는 인물이 보이는 곳까지 따라 왔다. 하지만 기감에서 느껴진 대로 그는 혼자서 달리는 것이 아니라 비슷해 보이는 능력자들 30명과 함께 달려가고 있었다.

그들은 일본의 전형적인 닌자와 같은 복장으로 온몸을 감싸는 검은색 옷을 입고 있었는데, 얼굴마저 복면으로 감싸고 있었기에 한수강이 맞는지 아직은 확인할 수 없었다.

기감만으로 보아서는 8할 정도는 확신하고 있으나, 아직은 완전히 확신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기에 최강훈은 섣불리 그들을 막아 세우지 않았다.

혹시 한수강이 아닐 수도 있었고, 설령 한수강이라 하더라도 집단행동을 하고 있는 그에게 이렇게 갑자기 나타난다면 문제의 소지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이렇게 신분을 감추고 있는 집단 앞에 갑자기 나타난다는 것은 적대적 행동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행위였다.

그래서 최강훈은 우선 그들의 뒤를 따르다 복면을 벗거나, 한수강이 혼자가 되는 시점에 나서서 진짜 한수강이 맞는지 확인할 생각이었다.

복면인들은 최강훈이 따르는지도 모르고 한참을 달려나갔는데 아무래도 암암리에 임무를 수행하러 가는 모습이었다. 복장도 그렇고 인적이 드문 곳으로만 이동하는 모습이 비밀리에 수행하여야 하는 임무를 맡았음을 추측하게 하였다.

삼십여 분 정도 그들의 뒤를 따르다 보니 어느새 도시를 벗어나는 곳까지 다다랐다. 조금 더 지나 사람이 다니는 흔적이 보이지 않는 숲 속 공터에 도착하자 리더로 보이는 인물이 수신호를 하였다. 그 수신호에 모두 멈추어 섰고 이내 품속에서 손바닥 반 정도 크기의 조개 껍데기와 비슷한 둥근 형태의 장치를 꺼내 가운데 붙어 있는 붉은 색 버튼을 눌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최강훈은 깜짝 놀랐다. 그들이 버튼을 누르는 순간, 그들의 기감이 극적으로 흐려졌기 때문이었다. 신경 써서 집중하지 않는다면 마스터에 오른 자신으로서도 기감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의 기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이 정도로 기감을 조절하려면 마스터의 경지에 들지 않고서는 불가능할 것인데, 그들이 방금 사용한 장치가 어떤 기물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물건이었다.

만일 뒤에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지 않고 있었다면, 최강훈은 그들이 갑자기 사라졌다고 판단할 정도로 기감이 사라졌다.

그들의 기감이 사라짐과 동시에 1㎞ 정도 전방에서 강대한 마나의 발현이 느껴졌다. 적어도 마스터급의 마나 파동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한 곳이 아니었다. 한 곳에서 마나의 강대한 존재감이 드러남과 동시에 거의 같은 지점에서 비슷한 규모의 마나 파동이 한 번 더 일어났다.

이윽코 그 두 마나의 원천이 격돌했는지 어마어마한 마나 충돌이 느껴지며 얼마 지나지 않아 최강훈이 있는 곳까지 마나 폭풍이 날아왔다.

강대한 마나를 지닌 두 존재가 전투를 벌이는 것이 틀림없었다.

최강훈은 지금 한수강이라 짐작되는 사람만 없었다면 당장 그곳으로 달려가서 그들의 전투를 지켜보고 싶었다. 자신이 마스터 급에 오르기는 했지만 아직 다른 마스터들을 본 적이 없었기에 그들의 대결을 보며 자신의 무력을 간접적으로나마 확인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마스터를 훌쩍 뛰어넘는 강민이 있었지만 그는 말 그대로 마스터를 훌쩍 뛰어넘었기에 감히 그와 비교해서 자신의 전력을 점검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지금 앞에서 벌어지는 마스터 간의 결전이 너무도 궁금했다. 하지만 몇 년 만에 잡은 한수강의 흔적을 내팽개치고 그리로 갈 수는 없었다.

이런 최강훈의 마음을 알아차린 것처럼 공교롭게도 최강훈이 대결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함과 동시에 리더로 보이는 한 복면인이 수신호를 하였다.

그 수신호에 따라 30여 명의 복면인이 대결이 벌어지는 곳으로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목표 역시 조금 전 마나 발현을 했던 존재들인 것 같았다.

그 이동은 느린 속도로 조심스럽게 이루어졌다. 모종의 장치를 통해 기감을 최대한 감추기는 하였으나 마나에 민감한 마스터의 능력이라면 그들의 접근을 알아차리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지금처럼 전투에 집중하고 있다면 이야기는 다를 것이었다.

그렇게 복면인들은 기감을 감추고 천천히 5분여를 이동했다. 마치 태풍의 눈으로 다가가듯 거센 마나 폭풍이 그들이 가는 앞길을 막고 있었지만 그들은 천천히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이 가는 길은 실제 태풍이라도 몰아치는 것처럼 무성히 우거진 나무들은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고, 나뭇잎은 우수수 떨어져 사방으로 날리고 있었다.

그런 마나 폭풍을 뚫고 조금 더 앞으로 나가자, 숲이 끝나는 곳 앞으로는 넓은 공터가 보였다. 그리고 예상대로 그 공터에는 경천동지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곳에선 옥색 도포를 입은 70대 정도로 보이는 노선비와 일본 사무라이 복장을 한 50대 정도의 중년인이 대결을 펼치고 있었다.

콰앙, 쾅- 쾅!

노선비의 환도와 사무라이의 일본도가 부딪칠 때마다 쇳소리가 아닌 폭탄이 터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나면서 그 파동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충격에 따른 마나 파동이 발생할 때마다 복면인 중 몇몇은 몸을 잘 가누지도 못했지만 은신만은 굳게 유지한 채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최강훈은 복면인들이 어느 쪽 편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들이 그 전투가 끝나는 시점을 노린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노선비와 사무라이가 보이는 무력의 수준이라면 복면인들은 물론 숨어 있는 최강훈의 기척까지 느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지금 그 둘은 대결에 집중하고 있는 터라 백 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는 곳에 은신하고 있는 복면인들도 아직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아니, 눈치챘다 하더라도 지금의 전투에 집중해야 했기에 한눈을 팔 수도 없을 것이다. 아무래도 복면인들이 사용했던 장치가 그들의 이목을 흐리는 것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 같았다.

당분간 그 복면인들이 움직이지 않을 것처럼 보이자, 최강훈도 마음 놓고 노선비와 사무라이 간의 대결을 지켜보았다.

중년 사무라이의 공세는 날카로웠다. 일도(一刀), 일도가 자신의 생사를 도외시하고 필사의 각오를 담은 필살도(必殺刀)로 보일 정도였다.

지금도 사무라이는 노선비의 가슴팍을 향해 번개처럼 일본도를 찔러갔는데 그 속에 담긴 마나는 둘째 치고 그 기세가 엄청났다. 일반인이라면 그 일본도에 실린 기세만으로도 정신을 놓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 기파가 실려 있었다.

반면 노선비의 움직임은 유려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느긋하고 여유로웠다. 하지만 노선비의 표정은 움직임과는 달랐다. 사무라이의 공세에 긴장했음이 역력히 드러나는 표정이 그의 행동에서 보이는 것처럼 느긋한 상황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아마 노선비가 지닌 무공의 특성이 그런 유려함을 보이는 것 같았다.

노선비는 자신의 가슴을 찔러오는 사무라이의 날카로운 일본도를 향해 자신의 환도(環刀)를 같이 뻗었다.

하지만 그 도세는 마치 나비가 구름 위를 노니는 것처럼 부드럽게 흘러갔고, 사무라이의 일본도는 그 도세에 휘말려서 최초 목표로 했던 노선비의 가슴을 찌르지 못하고 어깨 위로 넘어가고 말았다.

그리고 그렇게 사무라이의 검을 흘려낸 노선비의 환도는 짧은 타원의 궤적을 그리며 사무라이의 목을 향해 날아갔다. 수세에서 공세로의 자연스러운 전환이었다.

조금 전 공격에 힘이 실려 있었던 사무라이의 검이 돌아와서 노선비의 공세를 막기에는 늦어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사무라이의 역량을 낮추어본 것이었다. 어느새 공격을 나갔던 사무라이의 검이 번개처럼 날아와서 노선비의 환도를 쳐냈기 때문이었다.

쾅!

이번에는 사무라이의 검을 흘려내지 못했는지 노선비의 환도는 사무라이의 일본도와 정면으로 부딪쳤는데, 각자의 도의 실려 있던 힘이 대단했는지 부딪침에 따라 폭탄의 폭음과도 같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후로도 사무라이와 노선비는 격렬한 대결을 치러갔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둘 다 여유가 있어 보였다.

마스터로 보이는 둘이, 마스터의 상징인 소드 오러를 꺼내지 않고 있다는 것만 하더라도 아직 그들이 전력을 다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하였다.

그렇게 한동안 공세가 더 이어지다 갑자기 사무라이가 훌쩍 뒤로 물러났다. 그런 사무라이의 행동을 노선비 역시 제지하지는 않았다. 마치 이제 탐색전은 끝났다는 것처럼 보여지는 행동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뒤로 물러선 사무라이는 공격 자세를 거두며 입을 열었다.

“과연, 화경에 올랐다고 하더니. 거짓이 아니었군. 이 가주.”

나카타는 일본어로 이야기했지만 이극민 역시 일본어에 능숙했기에 자연스럽게 그의 말을 알아듣고 대꾸했다.

“허허, 자네도 오른 경지에 내가 오르지 못할 게 뭔가, 나카타. 그리고 가주직은 아들에게 물려준 지 꽤 오래되었다네. 이젠 태상가주라네.”

이극민은 이제 자신이 가주가 아니라는 말을 나카타에게 하였지만, 나카타는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가주든 태상가주든 내 알 바가 아니고, 일본에 건너온 이유가 뭔가? 히데오 님의 개로 살다가 히데오 님이 죽고 나니 이제 욕심이 나던가?”

나카타는 이죽거리는 표정으로 이극민을 자극했다. 실제로 그 도발이 통했는지 이극민은 더 이상 청수한 표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히데오의 개라는 말에 이극민의 표정이 무섭게 굳어졌다.

“내가 개라……. 히데오가 불쌍해서 살려준 너 따위에게 그런 말을 들을 줄이야. 내가 듣기로는 넌 대결에서 패배한 후 히데오에게 목숨을 구걸했다고 하던데. 그게 네가 말하는 사무라이의 행동인가?”

이극민 역시 만만한 입담은 아니었다. 바로 나카타에게 반격했고, 그 역시 목숨을 구걸했다는 말에 얼굴을 굳혔다. 하지만 이극민의 말이 틀리지 않았는지 큰 반발을 하지도 못했다.

확실히 나카타는 과거 히데오와의 대결에서 패한 후 그의 아량으로 인하여 살아남았다. 나카타의 당당한 모습에 호감을 느낀 히데오가 한 번의 기회를 더 준 것이었다. 나중에 자신이 생기면 다시 도전하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결코 자신이 목숨을 구걸한 것은 아니었지만 소문은 이미 그가 목숨을 구걸한 것으로 나버렸다. 나카타 역시 히데오가 그를 살려준 것은 맞았기에 굳이 구구절절한 변명을 하지는 않았다.

사실만 놓고 본다면 억울할 법도 했지만 그가 평소에 주장하는 사무라이 정신에 따라 변명은 하지 않았다.

“그 사무라이 정신에 따라 히데오 님의 유지를 잇기 위해, 이 자리에 나선 것이다. 그런데 너는! 네가 무슨 자격이 있다고 이 일본의 이능 세계를 장악하려 하는 것이냐!”

북해도에 있던 나카타가 이 자리까지 온 것은 히데오의 유지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현재 나카타의 곁에 온 헤이안 간부 말에 따르면 오래전부터 히데오는 그를 후계자로 생각했다고 한다.

애초에 일본에서 히데오를 제외하고는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사람은 나카타밖에 없었기에 히데오는 종종 자신의 사후에 나카타가 헤이안의 쇼군에 오르게 될 것이라는 언급을 했다고 했다.

그랬기에 자신에 대한 도전에도 목숨을 뺏지 않고 살려주었고, 항상 그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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