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세귀환록-86화 (86/203)

# 86

현세귀환록

086. 대화(1)

“총재님! 큰일 났습니다!”

유니온의 전체 정보에 대한 권한을 지닌 윌슨 최고정보관리관(CIO)이 총재실로 뛰쳐 들어왔다.

최고정보관리관, CIO는 정보기술에 대한 사항부터 정보 자체에 대한 관리 통제 등을 겸하고 있는, 정보 분야에 대해 유니온에서 으뜸가는 실력자였다.

앤더슨 총재는 이미 내부 인터폰으로 비서가 윌슨이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그가 올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의 다급함과 함께 큰일이 났다는 이야기에 벤자민 부총재와 이야기를 나누던 이야기도 끊고 그를 돌보았다.

“무슨 일이오, 윌슨 관리관?”

윌슨은 40대의 백인 남성으로 금발의 머리를 깔끔하게 뒤로 넘긴 푸른 눈의 소유자였다.

정보를 관리하고 통제하는 최고정보관리관답게 언제나 침착하고 안정적인 모습으로 일 처리를 했는데, 오늘은 평소의 모습과는 달리 무슨 급한 일이 있는 것인지 헐레벌떡 총재실로 들어왔다.

상기된 표정의 윌슨은 앤더슨의 물음에 숨을 가다듬고 이야기를 전했다.

“이계 바이러스가 나타났습니다!”

이계 바이러스라는 말에 앤더슨도 안색을 굳히고 되물었다.

“이계 바이러스? 어느 타입이요?”

“일단 Z7FWA 타입으로 명명하였습니다.”

“뭐요? 일단 명명하였다는 것은 새로운 종류의 바이러스라는 것인데, 그것에 F, W, A 타입의 성질이 다 같이 들어 있다는 것이오?”

“네. F, W, A의 성질이 같이 포함된 바이러스입니다.”

처음 그가 이계 바이러스라고 할 때만 하더라도 단지 안색을 굳힐 뿐 크게 놀라지 않았던 앤더슨은 이계 바이러스의 타입을 들은 후에는 크게 놀란 눈치였다.

이 세계에 이계 바이러스가 퍼진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유니온 창설 이후로만 해도 5번, 그 이전의 과거까지 다 치면 기록된 사항만 하더라도 수십 번 이상은 발생했었다.

가장 유명하고 세상에 많은 피해를 준 이계 바이러스로는 과거에 흑사병이라고 불린 페스트와 스페인 독감이라고 불린 스페인 인플루엔자가 있었다. 흑사병은 중세 유럽 인구를 3분의 1이나 사멸하게 한 재앙이었고, 스페인 독감 역시 수천만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마나 능력자는 마나의 영향으로 이런 이계 바이러스에 대한 저항력이 강하였고 C급 이상의 강자에게는 이런 바이러스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다. 하지만 마나를 다루지 못하는 일반인에게는 재앙과도 같은 큰 사건이었다.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도 마물의 직접 피해보다 이계 전염병으로 인한 일반인의 죽음이 훨씬 많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과거의 이야기였고 어느 정도 백신을 갖춘 현대에는 과거와 같이 사망자가 발생하는 질병은 아니었다.

현대에는 다양한 종류의 이계 바이러스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대비책은 마련되어 있었기에 크게 과거처럼 이계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가 심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여전히 일반인에게 가장 많은 피해를 주는 것이 이 이계 바이러스인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명명된 코드명을 통해 빠른 전염성과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는 타입의 이계 바이러스임을 알게 된 앤더슨 총재는 놀란 표정으로 윌슨에게 되물은 것이었다.

“최근 5년간 웜홀의 발생 빈도가 이상하게 높아서 이런 일이 생길 것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FWA 타입이라니…… 발병지는 어디요?”

“아프리카의 라이베리아가 최초 발생지입니다.”

“라이베리아라…….”

라이베리아라는 말에 윌슨과 앤더슨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벤자민이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라이베리아라면 몇 년 전에도 한 번 이계 바이러스가 창궐하지 않았습니까?”

“맞소. 그때 UN과 WHO에 지시하여 일반 세계에는 에볼라 바이러스로 알렸지요.”

“허…… 바이러스를 퍼뜨린 마물은 어떻게 되었소? 이미 사멸했소?”

일반적으로는 마나 충돌 때문에 인근 동·식물에게 바이러스만 전파하고 마물은 사멸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벤자민은 당연히 마물이 사멸했을 것이라 추측하며 윌슨에게 물었다.

하지만 윌슨의 대답은 벤자민의 예상과는 달랐다.

“그, 그게…… 아직 살아 있습니다.”

앤더슨 총재 역시 마물은 이미 마나 충돌로 사멸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기에, 이런 윌슨의 대답에 더 크게 놀랐다.

“뭐라고요? 마물이 아직 살아 있다는 말입니까? 언제 마물이 발견되었소? 그 등급은 어떻소?”

“3일 전입니다. 그리고 마물의 등급은 B급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사멸하지 않은 것으로 봐선 마나 성향이 비슷한 곳에서 나타난 마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위성을 통해서 확인해 본 결과 마나 충돌이 그리 강하지 않았습니다.”

“3일? 이계 바이러스인 것을 알았다면 바로 알릴 것이지, 여태까지 대체 뭘 한 거요?

앤더슨의 질책 섞인 말에 윌슨은 약간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대답하였다.

“최초에는 이계 바이러스의 숙주인 것을 파악하지 못하고 일반 마물에 대한 대응 방식으로 대처하다 그랬던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아프리카 지역이 워낙 넓다 보니 직원들이 많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그래서 마나를 사용할 줄 아는 토착 부족이나 그레이 울프 용병들에게 맡긴 지역이 많은데, 이번에 라이베리아 건은 토착 부족이 자신들이 해결하려고 유니온에 알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토착 부족은 어떻게 되었소?”

윌슨은 여전히 곤란한 표정으로 말했다.

“한 명의 생존자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마물에게 먹히고 말았다고 합니다.”

“허어…….”

윌슨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벤자민이 그에게 다시 물었다.

“그런데 이계 바이러스인 것은 어떻게 알았소? 지금까지 이야기를 들어보니 단지 적응력 강한 마물이 살아남은 것 같은데. 바이러스가 이미 퍼진 거요? 증상은 어떻소?”

“정보부에서도 처음에는 단순 마물이 생존한 것으로 파악했는데, 살아남았던 생존자마저도 이것을 보고한 뒤 얼마 안 가 사망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눈, 코, 입, 귀에서 피를 쏟으며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장면을 목격한 우리 요원들 또한 하루 뒤 같은 모습으로 사망했습니다.”

“흠…… 그럼 사망 시에 바이러스가 대기 중으로 퍼지는 종류의 이계 바이러스인가…….”

벤자민은 나직하게 혼잣말을 하였는데 그것을 들은 윌슨이 말을 받았다.

“그렇습니다. 일단 그렇게 추측하기에 A 타입의 성향이 있다고 파악한 것입니다. 실제로 마물에게 죽은 시체를 수거하러 간 사람들도 그다음 날 같은 방식으로 사망한 것으로 볼 때, 사망 이후에도 상당한 시간 동안은 대기 중에 바이러스가 남아 있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벤자민과 윌슨의 이야기를 듣던 앤더슨이 윌슨에게 물었다.

“현재 우리 요원 중에서는 감염된 사람은 없나요?”

“생존 토착민에게 바이러스가 감염된 요원들이 사망하는 것을 지켜본 요원이 2명 있습니다. 일단 그들은 격리 조치했고, 그들과 접촉했던 사람들도 격리하였습니다. 만일 사망 시에만 바이러스가 전염되는 알고리즘이라면 단지 접촉했던 사람들은 이상이 없을 것이고, 눈앞에서 목격한 요원만 내일 죽게 되겠지요.”

“백신은 준비하고 있나요?”

“네, 일단 바이러스 자체는 확인했는데…… 아무래도 처음 들어온 바이러스이다 보니 백신 제작에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습니다.

“허어…….”

윌슨의 대답에 앤더슨은 탄식을 내쉬고는 다시 질문했다.

“마물이 살아 있다면, 제거팀은 파견했소?”

“네, 위성을 통해서 마물의 위치를 확인하고 아프리카 지부에 있는 A급 팀을 파견했으니 곧 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좋소, 일단 백신 제작을 최우선으로 해주시오. 그리고 우리 요원들이 투입될 때는 완벽한 수준의 바이러스 차폐 복을 착용한 뒤 현장에 투입하도록 하고, 사건 발생 지역 반경 100㎞ 정도는 출입 통제를 지시해 주시오.”

“네, 알겠습니다.”

앤더슨의 말에 윌슨이 그에게 물었다.

“총재님, UN과 WHO에는 뭐라고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어차피 에볼라 발생 지역이었으니, 에볼라가 재창궐했다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네, 그렇게 지시하도록 하겠습니다.”

앤더슨과 벤자민에게 할 말을 끝낸 윌슨은 둘에게 인사를 하고 총재실 밖으로 나갔다. 윌슨이 나간 것을 확인하고 나서 벤자민은 다시 앤더슨에게 말을 건넸다.

“이번 일이 크게 퍼지면 안 될 텐데……. 큰일입니다, 총재님.”

“그러게요. 현재 우리 유니온의 기동 가능 인력 대부분이 일본에 투입되어 있어, 지금 당장은 아프리카로 현장 요원을 돌리기 힘들 텐데요.”

유니온은 벌써 3년이 넘도록 유니온 가용 인력의 상당 부분을 일본에 투입하고 있었지만 아직도 완전히 일본의 이능 세계를 장악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유니온의 전력을 다한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나, 실제로 유니온이 일본에 쓸 수 있는 가용 인원은 총인원의 20%가 채 되지 않았다.

사실 20%도 상당히 무리한 수치였다. 전체 이능 세계에 유니온은 퍼져 있었고, 각국에서 수행해야 하는 임무들도 있었기에 무작정 많은 인원을 차출하여 일본에 투입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우선 이번 일은 아프리카 지부의 힘으로 해결하도록 해야겠습니다. 필요하다면 D급 이하의 요원들을 파견하는 것으로 조치하겠습니다. 어차피 바이러스가 퍼지지 않도록 민간인 통제만 하면 될 테니 말입니다.”

“그렇게 합시다. 허어, 참 일이 안 풀리려니 이렇게 되는군요.”

앤더슨의 탄식에 벤자민도 동조하며 말했다.

“천왕가의 개입만 없었어도 지금쯤이면 일본 이능계를 대부분 장악하고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습니다.”

“우리가 천왕가와 헤이안의 관계를 간과했던 것이 실책이었던 것 같네요. 예전부터 친밀하게 지냈던 두 집단 사이의 관계라면 충분히 천왕가가 끼어들 것을 예상했었어야 했는데 말이죠.”

“사실 천왕가와 헤이안이 친했다기보다는 이극민 태상가주와 히데오 쇼군이 친했기에, 쇼군이 죽고 나서는 그 연결고리가 끊겼다고 판단했습니다. 실제로 쇼군이 죽은 직후에는 나서지도 않았고요.”

“맞는 판단이었지요. 그런데 일이 이렇게 되다니…….”

“문제는 천왕가가 끼어들었다고 해도 일본을 장악한다는 최초 계획에는 지장이 없었을 텐데, 이극민 태상가주가 마스터급에 오른 것이 계획이 틀어지게 된 결정적 이유였습니다. 그것만 아니었어도 AA팀을 운영해서 충분히 견제할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하긴 그렇죠. 몇 년 전에 확인했을 때만 하더라도 A+급이었는데 그사이에 S급이 되다니…….”

“그것도 태상가주씩이나 되어서 직접 나설 것이라고는 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유니온이 일본의 이능계를 장악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한국에 있는 천왕가의 참전 때문이었다.

벤자민의 말처럼 천왕가만 참전하지 않았다면 이미 4조각으로 쪼개진 헤이안을 각각 흡수하여 진작에 일본의 이능계를 장악하였을 것이지만, 천왕가가 일본의 이능 세계에 참전하면서 그 양상이 달라졌다.

사실 유니온 전체의 역량에 비하면 천왕가는 그리 무서운 조직이 아니었다. 유니온에서 마음먹고 30~40% 정도의 인원만 동원해도 충분히 쓸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조직 간의 역량 차이가 크게 났다.

하지만 유니온은 위원회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조직이었다. 위원회에 뿌리를 두고 있었기에 만약 유니온이 무리한 움직임을 하는 것이 보인다면 위원회에서 제재를 가할 것이고, 그 제재를 따르지 않는다면 위원회와 본격적으로 대립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었다.

장기적으로는 위원회에서 독립하여 전체 이능 세계를 장악할 생각의 유니온이었지만, 아직은 위원회를 감당할 역량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현재 유니온은 위원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일본에 투입하고 있는 20%의 전력이 위원회의 심기를 건들지 않는 최대한의 전력이라 할 수 있기에, 유니온에서 그 이상은 무리하게 전력을 투입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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